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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원태씨 개인과 문제가 생긴 것이지 대한항공이란 회사와 사고가 난 게 아니다. 그런데 왜 직원들이 나서서 해결하려 하나? 당사자는 오지 않고 직원들만 나오는 걸 왜 우리가 이해해야 하나?"(조씨를 '뺑소니 및 폭행 혐의'로 고소한 태모씨)

"총무부 업무에는 경영층 지원 업무도 포함돼 있다. 조원태씨가 조양호 회장 자제이기도 하고 유학 준비로 바빴기 때문에 총무부에서 태씨를 만난 것이다."(대한항공 총무부 관계자)


재벌가 자제가 입건되면 해당 기업의 직원들이 사후 수습을 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당연한 관행이다?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행위로 불구속 입건됐던 조원태(29) 대한항공 경영전략본부 기획팀 부팀장의 사고 뒷수습 과정에서 당사자인 조씨는 빠지고 그 대신 대한항공 직원들이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조씨는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외아들이다.

지난 3월 22일 서대문구 연세대 정문 앞에서 가족 5명을 태우고 운행하던 태모(44)씨 차량 앞으로 무리하게 끼어들기를 시도한 조씨는 태씨의 정차 요구를 무시하고 버스전용차로 등을 질주했다. 교통정체에 막혀 이화여대 후문 앞에서 멈춰야 했던 조씨는 태씨 일행과의 실랑이 과정에서 태씨의 어머니(77)를 밀어 넘어뜨려 입건됐었다. 땅에 머리를 부딪쳤던 태씨의 어머니는 5일간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조씨가 자신의 어머니를 넘어뜨린 것에 격분해 조씨를 밀쳤던 태씨도 이 때문에 불구속 입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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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 사건 후 단 한 차례도 얼굴 비치지 않았다"... 태씨, 4월말 조씨 고소

당시 이 사건은 '안하무인 재벌 3세의 광란의 질주', '대한항공 회장 아들의 난동' 등의 제목으로 여러 언론에 보도되며 사회적 관심을 모았다. 더욱이 당사자가 재벌 가문의 일원이라는 점 뿐 아니라 예전에도 무리하게 차량을 운행하다 입건된 전력이 있어 이 사건 처리과정이 더욱 주목을 받았다.

조씨는 지난 2000년 6월 세종로 광화문 앞길에서 차선을 위반하려다 이를 적발·단속하려던 교통경찰을 치고 100여m 정도 달아나다가 뒤쫓아온 시민들에게 잡혀 공무집행 방해혐의로 입건된 적이 있다.

3월 말에 발생한 이 사건은 이후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청(서부지검)으로 송치돼 조씨에게는 벌금 100만원의 약식 기소, 태씨에게는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졌다.

그러나 이 사건은 여전히 종결되지 않았다. 조씨의 사과 및 보상을 요구했던 태씨가 '사건 발생 후 한 달이 지나도록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며 지난 4월 28일 조씨를 '뺑소니 및 폭행 혐의'로 서부지검에 고소했기 때문이다.

태씨는 8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조씨는 잘못을 사과하기는커녕 사건 후에 단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인 뒤 "약자의 입장에서 마지막 수단으로 택한 것이 고소"라고 말했다.

태씨의 말대로 조씨는 사건 관련 합의 등을 위한 사후 처리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고 지난달 말 미국 남가주대학에서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밟기 위해 출국했다. 사후 수습을 위해 태씨를 찾은 건 조씨가 아니라 대한항공 총무부 직원들이었다.

대한항공, 조씨 대신해 뒷수습... "조직 차원에서 나선 건 아니다" 해명

대한항공 총무부 및 홍보실 관계자들은 8일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조씨를 대신해 이 일을 처리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회사 차원에서 나선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회장 아들인 조씨 개인이 관련된 일을 회사의 공조직에서 맡아 수습하는 게 타당한가'라는 지적에 대해 매우 부담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이들은 "조씨는 사건 발생 후 유학 준비와 관련된 해외 출장 등으로 바빴다"고 운을 뗀 뒤 "당사자들끼리 만난다고 해서 합의가 원만하게 잘 되리란 법도 없고 양쪽 모두 변호사를 내세워 문제를 처리하는 것도 한국적인 정서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이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현실적으로 조씨가 직접 나서기는 어렵지 않았겠느냐"며 "조직 차원에서 나서는 건 아니지만 조씨가 회장 자제인 만큼 총무부에서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다른 데서도 통상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이들은 또한 "조씨의 유학은 사건 발생 이전부터 결정돼 있던 사안일 뿐 아니라 한국에서의 실무와 대학에서의 학업이 혼합된 새로운 과정으로 2년 내내 외국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다"라며 일각에서 제기된 '도피성 유학' 의혹을 일축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들은 이와 함께 "조씨도 피해자"라고 강조했다. "쌍방 폭행이었을 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두 달이 넘게 지났는데도 양쪽이 합의하지 못하고 있는 원인이 태씨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태씨가 6000만원이라는 과도한 액수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아울러 "태씨는 합의가 지연됨에 따라 처음에는 별로 강조하지 않던 당사자 사과 요구를 내세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 관계자는 "합의가 지연돼 태씨가 인터넷상에서 일방적인 주장을 펼치면 조씨 개인 뿐 아니라 회사의 이미지까지 악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대한항공 쪽이 '우월적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우리는 조속한 해결을 원한다"고 밝혔다.

태씨 "당사자가 찾아와 사과했으면 끝났을 사안... 조씨가 문제를 키웠다"

태씨는 대한항공 관계자들의 이같은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태씨는 "사건 초기에 당사자가 직접 찾아와 노모에게 사과했으면 끝났을 사안인데 조씨 쪽에서 문제를 크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6000만원이란 금액이 과도하다'는 대한항공 관계자들의 지적에 대해서는 "조씨의 난폭운전 때문에 급정차를 하는 과정에서 아내 김모씨가 차 앞유리창에 부딪쳐 다치는 등 노모 뿐 아니라 가족 6명 모두 다친 것을 감안한 금액"이라고 반박했다.

태씨는 "사건 발생 직후에 찾아온 대한항공 관계자가 합의 문제와 관련된 안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6000만원을 이야기한 건 사실"이라고 말한 뒤 "그러나 조씨가 초기에 사과했다면 그 금액을 더 이상 요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동안 성의 있는 조치가 없었기 때문에 처음과 상황이 달라졌다"며 "당사자가 사과를 못 하겠다면 합의금 요구액을 100% 지급해야 할 것이고 이제라도 사과를 한다면 합의금 액수는 백지 상태에서 다시 논의할 수 있다는 게 현재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서부지검의 담당 검사는 8일 전화통화에서 "현재 수사 중이며 고소장이 접수된 뒤 5개월을 넘기지 않는 것이 통상적인 사건 처리 시한"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씨의 유학 사실은 모르고 있었으며 출국 금지 등 제한을 가할 수 있는 사안인지 여부는 수사가 더 진행돼야 판단할 수 있는 문제"라고 밝혔다.

양쪽 모두의 바람대로 합의가 원만하게 이뤄져 사안이 종결될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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