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 '광마잡담',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한꺼번에 책 세 권을 내고 활동 재개한 마광수 교수.
ⓒ 오마이뉴스 남소연

‘사라’라는 여자를 잘못 만나 40대를 통째로 날려버린 ‘광마’가 돌아왔다.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며 다시 성욕을 불태우는 광마는 ‘잡담’(음담패설)을 늘어놓으며 “홍홍홍… 인생은 정말 아름다워용용용!”이라는 말로 ‘야한 여자’를 호객하여 ‘장미여관’으로 가자고 옷소매를 잡아끈다.

한껏 발기된 광마는 장미여관에 들어서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욕망과 편견 사이에 적당히 양다리를 걸친 우리들의 얼굴에다 대고 “제발 내숭 좀 떨지 말라!”며 ‘유쾌한 독설’을 사정한다.

“자유를 믿으라,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우리가 기억하는 ‘광마’는 40대 초반의 패기만만한 작가이자 대학교수였다. 그런 그도 십수 년의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보다. 허얘진 머리카락과 넓어진 이마가 쉰다섯의 중늙은이티를 낸다.

몸은 예전 같지 않지만 성욕만큼은 여전하다고 말하는 광마, 마광수.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오늘의책)를 비롯 <광마잡담>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이상 해냄) 등 책 세 권을 한꺼번에 내고, 필화사건 때 적극 나서서 편들어주었던 동갑내기 화가 이목일과 서울 관훈동 ‘장미의 여관’(그의 작품에 나오는 장미의 여관은 신촌에 있었음) 자리에 마련된 인사갤러리에서 2인전(6월7일까지)을 열고 있다. 이처럼 분주하게 활동을 시작하는 마광수 교수를 지난 5월30일 그의 동부이촌동 집에서 인터뷰 했다.

<사라>보다 덜 야한 <광마잡담>

“역시 책을 내야 기분이 좋습니다. 곤욕을 치르게 했던 ‘즐거운 사라’가 나온 지 한 달 만에 8만부가 나갈 정도로 한때는 잘나가던 베스트셀러 작가였는데, 그런 명성이야 한갓 허울이고, 지금은 그저 아이 하나 낳은 기분뿐입니다.”

책 내서 좋다고 말하는 마광수 교수는 그러나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고 했다. 형형색색의 긴 손톱에서 야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변태’ 취향의 ‘시대를 앞서 갔던’ 그의 관능적 상상력이 지금은 외려 네일아트숍 앞에 길게 줄이 늘어설 만큼 당당한 문화가 되었다지만, 자라보고 너무 놀란 그의 가슴이 솥뚜껑만 보아도 여전히 벌렁벌렁하기 때문이다.

그가 이번에 내놓을 작품을 고를 때 예의 자기검열 버릇이 발동했던 데서도 문화적 테러리즘과 맞섰던 후유증이 어떠했는지가 짐작이 된다.

그의 책상 서랍에는 세 작품이 잠자고 있었다. 이번에 내놓은 ‘광마잡담’을 비롯 <문화일보>에 연재했던 ‘별것도 아닌 인생’과 지금은 없어진 여성잡지 <여원>에 연재했던 ‘절망보다 더 두려운 희망’이 그것.

그 중에서 그가 ‘광마잡담’을 선택한 것은 세 작품 중에서 ‘가장 덜 야한’, ‘즐거운 사라’보다도 ‘덜 야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란다.

그는 여전히 팬옵티콘의 보이지 않는 감시에 떠는 죄수처럼 불안해 했다. 필화사건을 일으킨 <즐거운 사라>가 잡지 연재 당시 경고 한번 받지 않았었고, 책이 나오고도 한 달여 동안이나 잘 팔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신기한 사건’으로 만들어졌었던 점을 감안해 볼 때 연재 당시 이미 심한 태클을 받았던 터여서 이 작품들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사실 겁도 난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무의식에 갇혀있는 리비도(libido)를 성욕으로 해방시켜 대리배설시킴으로써 윤리적 압박에 짓눌려 질식해버릴 것 같은 우리의 자아를 살리려는 계몽주의자를 자임하기에, 나머지 두 작품도 언젠가는 차례차례 세상에 내놓겠다고 했다.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 오마이뉴스 남소연
전작 <광마일기>의 속편 격인 <광마잡담>에서 마광수의 ‘이빨’이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으로 등장한 ‘마광수(나)’는 시공을 초월해 넘나드는 설화적 모티브를 차용하여, 상상력이 시키는 대로, 의식이 흐르는 대로, 원초적인 날것 그대로의 에로틱 판타지 세계로 끌어들이는 솜씨가 진짜 같이 느껴질 만큼 그럴 듯하다.

아홉 개의 이야기가 연작 형식을 띠고 있는 <광마잡담>은 부당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나, 마광수가 친구 하일지의 제주도 별장에 놀러갔다가 바닷가에서 우연히 만난 환상적인 미녀(인어를 가장한 암갈치)와 사랑에 빠지고, 이어 두 명의 미소녀, 모란꽃에서 환생한 여인, 무덤 속을 뛰쳐나온 한 맺힌 묘희, 우주에서 온 다이아나 등을 만나 열정적인 섹스를 나눈다는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고 로봇이 인간생활을 대신하고 있는 별에서 일곱 개의 로봇과 유희를 즐기는 것으로 마광수의 판타스틱 에로티시즘은 절정을 맞는다.

“‘사라’는 성행위 묘사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야한 편인데, 이 작품은 사건 전개를 충실히 따르는 서사적 구성을 띠고 있어 ‘사라’보다 덜 야합니다.”

덜 야해서 아쉽다는 표정을 짓는 마 교수에게 이 작품에 등장하는 하일지씨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경마장 가는 길>을 쓴 소설가 하일지씨가 맞느냐며, 작품에 나오는 묘사의 사실 여부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드러내는 삼류독자 티를 내봤다.

“제가 어려울 때 많이 도와준 그 작가 하일지씨가 맞습니다. 그리고 사실 여부야 기자 양반이 알아서 생각하세요. 제가 그 질문에 대해 드릴 수 있는 답변은 소설은 그럴 듯하게 꾸며낸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다만 작품에 묘사된 것들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면 1차 목표는 달성한 셈이지요. 진짜처럼 거짓말을 실감나게 했다는 얘기인데…….”

이번에 함께 나온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역시 ‘시대와의 불화’로 인해 그가 겪어야 했던 사회적 냉대, 삶을 갉아먹는 집단의 횡포, 도덕적 테러리즘과 맞서게 했던 사유의 편린들이 묶여진 것이어서 그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 존재증명 구실을 한다.

이 책은 그가 상상과 실제를 가르고 관습과 도덕을 부르짖는 뿌리 깊은 지식인들의 이중성에 신음하며 청년시절부터 지금까지 ‘미친 말’(狂馬)이 되어 쓴 에세이를 묶은 것이다.

역시 이 책에서도 그는 에로티시즘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국인의 이중적 성의식, 거기서 파생되는 판단력의 부재, 학벌과 외모 같은 외형적인 것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우둔함, 지적 사유를 권리로 잘못 인식하는 지식인들의 표리부동한 모습 등을 신랄하게 까발린다.

배부른 투정이 진보를 부른다!

마광수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이 저항시인의 대명사인 ‘윤동주가 저항시인이 아니라 자아분열적인 마조히스트’였다며 교과서 지식을 깡그리 뒤집는 내용을 담은 ‘윤동주 연구’였다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그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성심리학적 관점에서 ‘상징시학’이나 ‘카타르시스론’을 폈던, 그래서 한때는 학계에서 기대를 모았던 학자였다는 사실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마광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두 책보다 며칠 앞서 나온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 또한 꼭 읽어야 할 텍스트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야한 얘기하는 교수’라는 통념을 걷어내면 드러나는 마광수 교수의 진면목과 만나게 해주는 저작이기 때문이다.

1995년 <운명>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던 것을 동성애나 피어싱 같은 내용을 보강하는 등 시의성에 맞게 대폭 수정하여 개정판 형식으로 낸 이 책은 ‘힘든 고비를 넘기고 그 자신이 체념적 운명론과의 힘겨운 싸움 끝에 얻어진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운명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부모한테 물려받은 유전인자인데, 그것으로 인생이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가족이나 환경, 윤리관, 가치관 등이 중요한데,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하는 자의식입니다. 그런데 윤리, 도덕, 체면 같은 표면의식에 의해 잠재의식이 억눌려 있는데, 이 잠재의식을 끌어올려서 표면의식을 압도하도록 하면, 마음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고, 스스로 자기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이 책을 통해 ‘운명의 정체’가 아니라 ‘운명론의 정체’를 밝히려는 그는 배부른 투정이 없으면 문명의 진보가 없다고 했다. 고픈 배가 채워지고 나면 성욕이 생겨나고, 각종 편안함에 대한 욕구가 생겨나게 마련인데, 그게 결국 그런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발전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광수 교수는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데카르트적 이원론에서 벗어나 ‘야(野)’한 것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한다.

개인이 성적 쾌락 즐기게 하는 것이 인간해방

ⓒ 오마이뉴스 남소연
더 잘 살기 위해 쾌락을 긍정하는 마광수 교수는 개인들이 누구나 성적인 쾌락을 누릴 수 있는 세상, 그게 바로 인간해방이라고 했다.

“프로이트의 성 이론은 성기 중심입니다. 그래서 사디즘, 마조히즘, 관음증, 페티시즘 등은 모두 ‘변태’죠.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육체 전체가 성적 기관으로 변했잖아요. 성은 온몸으로 느끼는 성, 이상성욕도 용인되는 성, 생활 속에 녹아 있는 성이잖아요. 각자의 기호와 취향에 따라 스스로의 쾌감을 자연스럽게 선택하면 됩니다.”

그런 그에게 예술과 외설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단칼로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였다.

“야한 면에서라면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D. 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도 결코 ‘즐거운 사라’에 뒤지지 않는데, 그 작품들은 실존적 고뇌가 있다나 뭐나 해서 예술이고, ‘즐거운 사라’는 섹스 장면만 묘사했다고 포르노라며 잡아가고…….”

모든 예술은 관능적 상상력을 원동력으로 하는 ‘창조적 백일몽’이라고 말하는 마광수 교수. 전시회 때문에 이목일 화가를 만나러 가야 한다며 인터뷰를 그만해야겠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바쁘다’는 말을 핑계 삼는 모습을 참으로 오랜만에 보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신문>에 콩트 ‘마광수의 섹스토리’ 연재를 시작한 그에게는 올 가을에 낼 시집 <(가제)야하디야하자> 등 여러 권의 책 출간을 비롯해 다양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외출을 위해 주섬주섬 저고리를 챙겨 입는 마광수 교수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를 해달라고 하자, 그는 여태까지 판금 상태에 있는 <즐거운 사라>를 제발 풀어달라고 했다.

여전히 야한 여자에 대한 강한 동경을 갖고 사는 마광수 교수.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자작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일부를 인용하면서 이 인터뷰를 마친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 꼭 금이나 다이아몬드가 아니더라도 / 양철로 된 귀걸이, 반지, 팔찌를 / 주렁주렁 늘어뜨린 여자가 아름답다 / 화장을 많이 한 여자는 더욱 아름답다 / 덕지덕지 바른 한 파운드의 분(粉) 아래서 / 순수한 얼굴은 보석처럼 빛난다”

마광수는 누구인가
야한 여자 밝히는 진보주의자

‘사라’의 연인 마광수는 195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뛰어놀기보다 누워서 책읽기를 더 좋아한 그는 <아라비안나이트> <금병매> <지킬 박사와 하이드> <멋진 신세계> 같은 책을 읽으면서 왕성한 상상력을 키웠다. 수석으로 연세대 국문과에 들어간 그는 ‘윤동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스물아홉의 나이에 홍익대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하여 1984년 연세대로 옮겼다.

1977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온 그는 시·소설·수필 등 문학은 물론 그림을 그리는 등 전방위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며 독특한 미학을 표현해내는 예술가로 많은 이들에게 각광을 받았다.

그렇게 전도양양했던 그의 삶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1992년 장편소설 <즐거운 사라>로 필화사건을 겪으면서다. 이 사건은 ‘주홍글씨’가 되어 구속과 유죄 판결, 해직과 복직 등을 거듭하는 골 깊은 그의 삶을 따라다녔다.

스스로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며 “운명은 없다”고 말하는 마광수 교수는 책을 펴내고 전시회를 하면서 다시 사람들과의 만남을 시작했다. 세상 사람들과 스스럼없는 만남을 통해 그동안 자신의 삶을 갉아먹던 울화증을 치유하면서 그는 예전과 같은 관능적 상상력으로 ‘야한 여자’를 찾겠다고 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권태> <광마일기> <즐거운 사라> <불안> <자궁 속으로>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등의 장편소설과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사랑받지 못하여’> <열려라 참깨> <성애론> <자유에의 용기> 등의 에세이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광마집> 등의 시집, <상징시학>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문학과 성> <시학> 등의 문학이론서가 있다. / 조성일 기자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

마광수 지음, 오늘의책(2010)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