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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대나무는 1년에 몇 마디씩 자랄까요? 대나무가 다 자라기까지 몇 년이 걸릴까요? 아니면 대나무는 하루만에 다 자랄까요? 대나무는 몇 달 만에 자랄까요?

▲ 한 달이면 다 자라 버리는 대나무
ⓒ 서종규
▲ 여기저기 죽순이 자라는 소리가 들려요.
ⓒ 서종규
옛날에 함경도에서 어느 두 사람이 시비가 붙었대요. 시비의 내용인즉 대나무가 원인이었대요. 전라도가 고향인 을이라는 사람이 우연히 대나무 이야기를 하다가 "대나무는 한 달 내에 다 자라 버린다"고 말하자, 함경도가 고향인 갑이라는 사람은 "턱도 없는 소리, 대나무는 매년 몇 마디씩 자란다"고 비웃었다네요.

그래서 둘은 싸움이 벌어졌고, 급기야는 고을 원님에게 소를 올렸지요. 누가 이겼게요? 물론 함경도가 토박이인 고을 원님은 갑의 손을 들어 주었다네요. "모든 나무들이 매년 얼마씩 자라는데, 어찌 대나무라고 예외가 있겠느냐?"고.

▲ 땅을 박차고 솟아나는 죽순
ⓒ 서종규
지난 주 비가 많이 와서 녹음이 이제 절정으로 내닫고 있었어요.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는 말이 있지요. 비 온 뒤에 대나무가 쑥쑥 자란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발동했습니다. 죽순이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싶었거든요. 5월 22일(일) 오후에 대나무의 고장 전남 담양으로 차를 몰았답니다.

담양군의 모든 마을 뒤에는 대나무가 너울대고 있었어요. 멀리서 보면 푸른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가까이 가 보면 모두가 대나무들이었어요. 역시 대나무의 고장이라서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옛날에는 미쳐 생각지도 못했던 대나무숲 산책이라니! 원래 대나무밭은 빽빽한 대나무들로 인하여 사람들이 다닐 수 없었답니다. 그런데 문화의 시대에 전남 담양군에서 문화의 상품으로 계발하는 과정에서 생각해 낸 아이디어인지. 굵직굵직한 대나무들이 빽빽한 대나무밭에 산책로를 내고, 사람들에게 대나무숲을 산책하게 하는 이색적인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답니다.

저우룬파(주윤발)가 주연한 영화 <와호장룡>에 보면, 대나무 위를 날아다니며 결투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죠. 물론 대나무 위를 날아다닐 수는 없지만 대나무밭이 주는 충격이 신선했거든요. 저는 감우성 주연의 영화 <알 포인트>의 대나무밭 전투 장면을 찍었다는 곳으로 더욱 유명해진 전남 담양군 '죽녹원'을 찾았어요.

▲ 전남 담양군은 대부분의 마을 뒤에 대나무숲이 있다.
ⓒ 서종규
죽녹원은 담양읍에서 담양천인 '관방제' 다리 건너에 있어요. 그 앞에는 남도대학이 있구요. 관방제는 오래 전부터 나무들이 많이 심어져 있어서 전국적으로 알려진 제방이구요. 옛날에 그 제방에는 2일과 7일에 장이 서면 온통 대나무 제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인다고 널리 알려진 곳이지요.

대나무숲 산책길이 잘 정비되어 있었어요. 입구에 대나무 등을 달아 놓아 분위기를 띄웠으며, 군데군데 정자를 세워서 쉼터를 만들고 있었어요. 대나무들 사이사이로 구불구불한 산책 길에는 '샛길' '사랑이 변치않는 길' '철학자의 길' 등 여러가지 재미있는 이름들을 붙어서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었어요. 다른 고장에서는 보기 힘든 굵은 대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고 있어서 시원한 맛을 느낄 수 있답니다.

▲ 우후죽순이란 말이 실감나는 죽순들
ⓒ 서종규
군데군데 죽순들이 솟아나기 시작했어요. 대나무의 죽순은 5월 중순부터 나기 시작하여 6월 중순까지 솟아 오른다네요. 대나무는 조건이 맞으면 하루에 보통 40~50cm 정도씩 자라 올라 30~45일 사이에 다 자란대요. 특히 비가 내린 뒤에는 훨씬 더 많이 자라 하루에 1m씩 자라기도 한대요. 그래서 예부터 비온 뒤에는 대나무밭 출입을 엄격히 금했답니다. 솟아나는 죽순을 분질러 놓을까 봐요.

차(茶) 나무가 대나무 밑에 자라고 있었어요. 대나무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먹고 자란다는 이곳 '죽로차(竹露茶)'는 보성이나 하동의 녹차들과는 다르게 독특한 차 맛을 낸다네요. 예부터 담양에 그렇게 차를 재배하는 죽로차의 고장이었답니다. 그래서 담양에는 이와 관련된 삼다리(三茶里)란 마을 이름이 있어요.

▲ 대나무 밑에 자라고 있는 차나무
ⓒ 서종규
▲ 곧은 정신을 휘날리는 대나무들
ⓒ 서종규
죽순의 껍질을 잘 말려서 방석을 만들었어요. 우리들은 어렸을 때 죽순의 껍질을 접어서 제비 울음소리를 내며 놓았던 기억도 있구요. 한꺼번에 자라 오른 대나무 밑에 떨어진 죽순 껍질로 물동이를 일 때 머리에 받치는 똬리도 만들었구요.

저는 담양이 고향은 아니지만 집 뒤에 대나무숲이 있었어요. 어린 시절에 대나무로 만들었던 팔랑개비며 활이며 화살이며 연이며 모두 즐거운 추억으로 남네요. 눈이라도 많이 내린 날이면, 작대기를 들고 대밭으로 들어가 눈을 다 털어 주었지요. 대나무가 눈이 무거워 부러지기라도 하면 재산의 일부가 손실을 입으니까요.

어느 가을밤이면 전등불을 들고 살금살금 대나무숲에 들어갔지요. 갑자기 전등불을 켜고 비추며 대나무를 흔들면, 대나무숲에서 잠자던 참새들이 떨어진다구요. 참새를 많이 잡았냐구요? 잡기는 무슨 참새요. 대나무그루터기에 찍겨서 발만 퉁퉁 불었던 기억뿐이지요.

▲ 대나무숲을 산책하는 여인
ⓒ 서종규
▲ 대나무가 지닌 힘의 근원이 느껴지지 않나요?
ⓒ 서종규
옛 선인들로부터 사철 푸르고 곧다고 사군자로 사랑 받았던 대나무숲을 걸어 보니 그냥 좋았습니다. 곧게 뻗은 대나무의 끝을 따라다가 보면 파란 하늘이 눈부시구요. 마디마디 굳은 신념을 말하는 것 같은 대나무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구요. 쑥쑥 솟아나는 죽순이 생의 활력을 불어 넣어 주는 것 같았어요.

마치 관방제에 담양장이 서 있었어요. 그런데 장에 대나무 제품은 없고 각종 생활 용품들이 진열되어 있었어요. 몇 곳에서 팔고 있는 죽순들이 보였어요. 지금은 많이 나지 않아서 조금 비쌌지만 껍질이 벗겨지지 않은 죽순들이 미식가들의 구미를 당기고 있었지요.

▲ 대나무를 사랑하는 이유를 알겠지요?
ⓒ 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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