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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5년 서울 미 문화원 점거 농성에 참석했던 함운경 소장, 신정훈 시장, 이정훈 민주노동당 중앙위원 등 14명, 이들의 가족 등 50여명이 22일 국립5.18묘지를 참배하고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점거 농성 주역들은 농성 20주년을 기념하는 모임을 고민하다 묘지를 참배하기로 했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 분향 후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하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1985년 5월 23일 "광주 5·18 학살에 대해 미국은 사과하라"며 서울 미문화원을 점거 농성했던 주역들이 20년만에 처음으로 국립5·18 묘지를 단체 참배했다.

신정훈 전남 나주시장, 함운경 열린정책연구원 교육연구센터 소장, 윤영상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부위원장, 이정훈 민주노동당 중앙의원 등 서울 미 문화원 점거농성을 주도하거나 참여한 14명이 22일 오전 국립5·18묘지를 참배했다. 이날 참배에는 이들의 부모와 자녀 등 가족 40여명도 함께했다.

점거 농성 주역들은 지난 95년 농성 10주년을 맞아 서울 미 문화원 맞은편에서 한 차례 모임을 갖기도 했다. 처음으로 국립5·18묘지를 참배한 이들은 윤상원 열사와 박관현 열사 등의 묘역을 둘러보면서 85년 점거 농성을 회고했다.

85년 미 문화원 점거 주역들, 20년만에 5·18묘역 참배

이들은 점거 농성 당시 "신군부의 광주 학살을 미국이 지원했다"며 "미국은 공개사과하라"고 외쳤던 자신들의 요구사항이 20년이 지난 2005년에도 여전히 유효한 구호라는 점을 아쉬워했다.

당시 점거 농성 학생대표자 역할을 했던 함운경 소장은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가지고 있었던 미국이 5·18 진압에 개입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고 "농성 과정에서 미 대사관 관계자가 미 8군 고문을 불러 폭동진압 훈련을 받은 20사단을 질서유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광주투입을 승인했다고 확인해 줬다"고 회고했다.

신정훈 나주시장은 "서울 미 문화원 점거 농성은 5·18 진상규명과 관련 국민들에게 미국의 존재를 정확히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다"며 "당시 미문화원을 점거한다는 것은 반미로 인식됐고, 곧 빨갱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래서 개인적인 결단이 필요했다"고 회고했다.

미 문화원 점거농성을 처음으로 제안한 당시 고려대 삼민투위원장 이정훈 민주노동당 중앙위원은 5·18민중항쟁 진상규명과 관련 "여전히 하나도 풀리지 않았다"고 씁쓸해 했다. 특히 그는 지난 16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가 주한미대사관 카페에 올린 5·18 당시 군투입과 미국이 무관하다는 주장의 글을 비판했다.

그는 "20사단의 투입에 미국의 승인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는데 무관하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발뺌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과 한국의 관계는 광주 5월에서 다 보여줬다"면서 "미국이 구조적으로 사실상의 내정간섭을 하지못하도록 군작전지휘권을 완전히 회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미 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은 85년 5월 23일 오전 서울대· 고려대·성균관대·연세대 ·서강대 학생 73명이 미문화원 2층 도서관을 점거한 사건을 지칭한다. 당시 학생들은 광주학살에 대한 미국의 책임 규명과 사과를 요구하며 72시간 동안 농성을 벌인 끝에 25일 자진해산했다. 이들 중 함운경 등 16명이 실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뤘다

전민특위 "당시 카터 대통령 등 미 연방법원에 제소하겠다"

▲ 전민특위광주전남본부 등은 이날 '광주와 미국 25년' 대회를 열고 "미 연방법원에 당시 카터 대통령 등을 제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 <광주드림> 안현주
미 문화원 점거 농성 주역들이 국립5·18묘지를 참배한 22일은 미국에 대한 책임을 묻는 '반미의날'로 매년 5월이면 대학생 등이 집회를 진행해 왔다.

이날 오후 4시 전민특위광주전남본부와 광주전남통일연대는 광주YMCA 무진관에서 '광주와 미국 25주년' 대회를 열고 당시 주한미군에서 근무했던 미국인의 영상 증언 등을 통해 미국의 책임을 재확인했다.

전민특위광주전남본부와 광주전남통일연대는 "2002년 5·18시민법정, 2003년 미군범죄 증언대회 등의 성과를 바탕으로 미 연합법원에 (관련자를) 제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피고는 당시 카터 미 대통령, 글라이스틴 주한 미대사, 위컴 한미연합사령관, 브라운 미 국방부장관, 홀부르크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 등이다. 지난 2002년 5·18시민법정 검사단은 이들을 집단살해죄, 민간인 학살 등의 죄를 물어 유죄판결을 내린 바 있다.

전민특위광주전남본부 주태석씨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잡히지 않았지만 내년 쯤이면 미국을 제소하기 위한 준비 등이 상당히 진척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전민특위, 광주지역 대학 총학생회 등은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반미 문화제'를 개최하고 미국의 사과 등을 요구했다.

힐 차관보, '미국 책임없다' 재확인
"1989년 6월 백서, 그 시기에 미국이 취한 행동 사실대로 설명"

▲ 힐 차관보는 지난해 9월16일 주한 미 대사로는 처음으로 국립5·18묘지를 참배하기도 했다.(자료사진)
ⓒ최성욱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는 지난 16일 주한미대사관 다음 카페(cafe.daum.net/usembassy)에 올린 글을 통해 '미국은 당시 유혈 진압과 관련한 책임이 없다'는 '89년 6월19일 백서'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힐 차관보는 이날 '한국을 떠나면서 광주에 계신 시민여러분들을 생각합니다'라는 글을 통해 "제 아내인 패티와 저는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신 시민 분들을 위해 건립된 장엄한 기념관을 방문하면서 매우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국립5·18묘지 방문을 상기했다.

그러나 힐 차관보는 "아직까지도 한국국민들 사이에 1980년 당시 미국의 역할에 대한 오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1989년 6월 19일 백서를 통해 역사상 중대했던 그 시기에 미국이 취한 행동을 사실대로 설명했습니다"라며 "저는 여러분들께서 그 백서를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고 주장했다.

힐 차관보가 언급한 백서는 지난 89년 국회 광주특위가 미 정부에 48개항에 걸친 질의서를 보낸데 대해 미국 정부가 보내온 문서로, 25쪽 분량의 '1980년 5월 대한민국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에 관한 미국 정부 성명서'를 말한다.

미국은 이 백서를 통해 "계엄사가 광주에 동원한 특전사 부대나 20사단 부대는 광주에 투입될 당시나 광주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중에는 한미연합사 작전통제권 하에 있지 않았다"면서 "그 기간 동안 광주에 투입되었던 한국군의 어느 부대도 미국의 통제 하에 있지 않았다. 미국은 특전사 부대가 광주에 배치된 것을 사전에 몰랐으며, 그들이 광주에서 취한 행동에 대한 책임도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또 "한미연합군 사령부 설치를 위한 1978년 협정은 미국과 대한민국이 상대방의 동의 없이 언제든지 자국의 부대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권을 보장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강력한 종용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한국에서 일어나는 사태에 대해 극히 미비한 영향밖에 미칠 수 없었다"고 밝혔다.

힐 차관보는 지난해 9월16일 주한 미 대사로는 처음으로 국립5·18묘지를 참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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