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파라치들의 취재열기. 팔레 데 페스티발 붉은 카펫 위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턱시도를 입어야 한다. (사진제공 Agence Saint-Clair Internationale)


▲ 심사위원장 에밀 쿠스트리차.(사진제공 Agence Saint-Clair Internationale)

미래의 스타를 꿈꾸는 반라의 미녀들이 해변에서 뽐내는 현기증 나는 몸매, 기관총을 난사하듯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는 턱시도 차림의 파파라치, 엘리트주의와 스노비즘(속물근성), 예술과 상업의 교차 그리고 스타!

제58회 칸 영화제가 경쟁작 프랑스 도미니크 몰 감독의 <레밍>을 개막작으로 지난 11일 저녁 닻을 올려 22일까지 10일간의 짧은 항해에 돌입,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스스로를 '미스터 시네마'라 부르며 '선장'을 자처한 에밀 쿠스트리차는 올해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으로 '팔레 데 페스티발'의 붉은 양탄자를 밟았다. 쿠스트리차는 <아빠는 출장중(1985)>과 <언더그라운드(1995)>로 이미 두 차례에 걸쳐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은 바 있는 '칸의 아들'이다.

쿠스트리차는 프랑스 '누벨바그의 대모'로 불리는 아녜스 바르다, 홍콩에 이어 이제는 <미션 임파서블2> 등으로 할리우드 상업영화의 중심에 우뚝 선 홍콩 감독 오우삼, 아름다운 멕시코 배우 셀마 헤이엑 등 8인과 함께 심사위원단을 구성했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1992)>와 함께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상륙하면서 처음으로 칸과 인연을 맺었으며 마침내 <버찌의 맛(1997)>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이란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황금카메라상' 부분 심사위원장 자격으로 칸을 찾았다.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결혼, '칸은 신혼여행중'?

▲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

ⓒ 박영신
"심사위원장 제의를 받았을 때 나는 거절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칸에서 예술 영화와 상업 영화를 결합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결국 승낙했다."

쿠스트리차의 이 발언은 장차 황금종려상의 향방을 결정하는데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의미심장하다.

구스 반 산트,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빔 벤더스, 라스 폰 트리에, 아톰 에고이앙 그리고 짐자무시….

세계 영화계의 거물급 시네아스트가 속속 공식 경쟁 부문에 도착했고 막차에 올라탄 우리나라 홍상수 감독까지 총 21명이 황금종려상을 놓고 경쟁하는 올해 제 58회 칸 영화제는 일명 '별들의 전쟁'으로 불린다. '작가주의로 회귀', '비정치화'를 내세운 올해 칸의 성격은 '반 부시'를 목청껏 부르짖은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화씨 9/11>에 황금종려상을 안겨줘 절충주의라는 논란을 야기했던 지난해에 대한 반작용으로 풀이되고 있다.

때문에 심사위원단의 변덕과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이름 높은 칸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 지는 사실 미지수다. 그러나 판을 뒤집는 변수가 있다하더라도 칸의 명성과 관객의 취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쪽으로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미 2003년 <엘리펀트>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바 있는 구스 반 산트, <어둠 속의 댄서(2000)>의 라스 폰 트리에, <로제타(1999)>의 장 피에르와 뤽 다르덴 형제, <파리 텍사스(1984)>의 빔 벤더스 등 이미 황금종려상에 입을 맞춘 이들이나 혹은 1990년대 우리시대 최고의 감독으로 꼽히기도 했던 허우 샤오시엔 등 세계적 거장을 염두에 둘 수 있다.

▲ 데니스 호퍼와 우마 서먼. (사진제공 Agence Saint-Clair Internationale)

선정적인 결과를 상상해 볼 수도 있겠다. 자신만의 영화세계를 구축해 이미 세계적으로 추앙받고 있으나 아직 칸으로부터 사랑고백을 받지 못한 짐 자무시. 이미 <천국보다 낯선(1984)>으로 칸에서 신인감독상을 받은 일은 있으나 이후 10년이 지나도록 무관심으로 일관해온 칸이 이제는 자무시를 '돌볼 때'가 됐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예측을 제외한 나머지는 돌발상황에 해당한다. 숨겨진 진주를 뭍으로 끌어 올리는 쪽으로 기운다면 우리나라의 홍상수 감독과 멕시코의 카를로스 레가다스를 기대해볼 수 있다.

꾸준한 작업으로 세계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 내고 있음에도 지난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4)>로 칸을 찾았다가 혹독한 냉대를 견뎌야 했던 홍상수 감독에게 올해의 칸이 과연 화해의 손길을 내밀까. 애초에 경쟁 부문에 제외됐다가 부랴부랴 불러들인 홍 감독을 칸이 '설마' 올해에도 빈손으로 돌아가게 할지 궁금하다.

또 하나의 무시할 수 없는 복병 레가다스의 경우 2002년 첫 작품 <하폰>으로 세계 평단을 흔들어 깨우며 무서운 신인으로 떠오른 34세의 젊은이다.

'별들의 전쟁' 시작, <별들의 전쟁> 상륙

▲ 팔레 데 페스티발의 붉은 양탄자에 엎드려 입맞춤 하는 <킬로미터 제로>의 배우 나즈미 키리크. (사진제공 Agence Saint-Clair Internationale)

칸영화제 이틀째인 12일과 13일, 15일 미국 구스 반 산트 감독의 <마지막 날들>과 캐나다 아톰 에고이앙 감독의 <진실이 있는 곳>,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폭력의 역사>가 각각 소개돼 본격적인 '별들의 전쟁'이 시작됐다.

'커트 코베인이 죽기 직전 이틀 동안 그의 행적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난 2003년 컬럼바인 고등학교의 총기 난동 사건을 영화화한 <엘리펀트>로 이미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바 있는 구스 반 산트의 <마지막 날들>은 1994년 4월, 27세를 일기로 자살한 그룹 '너바나'의 리드 싱어 커트 코베인의 생애 마지막 날을 그리고 있으나 전기영화는 아니다. 현실과 허구를 적당히 교배시킨 이 영화는 한 록스타의 흔적을 따르기 보다는 인간의 고립과 죽음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커트 코베인을 연기한 배우 마이클 피트가 실제로 코베인과 너무나 흡사해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반면 우리에게는 <엑조티카(1994)>로 알려진 아톰 에고이앙의 <진실이 있는 곳>은 1950년대 말 한 미모의 여성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미국의 화려한 연예사업을 분해하면서 다양한 인물들에 의해 진실의 발견과 재발견을 거듭하는 추리영화다.

인디애나에서 작은 레스토랑을 경영하며 변호사인 아내와 함께 평화로운 일상을 사는 두 아이의 아버지 톰 스톨이 어느 날 저녁 들이닥친 떼강도에 맞서 손님과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두 명의 강도를 죽이면서 모든 것이 파탄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 <폭력의 역사>는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메가폰을 잡은 영화다.

▲ 영화 <매치포인트>의 감독 우디 알렌과 아내 순이(검은 드레스)와 배우 스칼렛 요한슨(흰 드레스). (사진 제공 Agence Saint-Clair Internationale)

한편 경쟁 부문에 초청된 작품보다 더 시끄러운 영화들도 주목할 만하다. 프랑스가 흠모하는 뉴욕 출신 감독 우디 알렌이 이번에는 뉴욕을 떠나 영국에서 작업한 영화 <매치 포인트>를 들고 찾아와 변함없는 열정을 과시했다.

그러나 영화제 5일째인 15일, 칸의 카메라가 집중된 영화는 단연 조지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 에피소드3-시스의 복수>. <스타워즈>시리즈 완결편으로 오는 18일 전 세계 70여 개국 동시 개봉을 앞두고 있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3…>의 공식 시사회가 같은 날 오전 8시 30분(이하 현지 시각)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려 관객의 열렬한 호응을 이끌어냈다. 저녁 6시 15분 경 <스타워즈 에피소드 3…>팀이 연출한 팔레 데 페스티발의 붉은 양탄자 오름식에서는 영화의 한 장면을 재현, 1시간여 동안 카메라와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칸, 다시 이라크로 가다

▲ 카트린 드뇌브.(사진제공 Agence Saint-Clair Internationale)

그러나 칸은 여전히 이라크를 잊지 않았다. 12일 팔레 데 페스티발을 오르기 전 기자들의 질문공세를 받은 프랑스의 여신 카트린 드뇌브의 반전 발언 등 스타들도 이라크 전쟁의 메아리를 피해가지 못했다.

지난 1월 5일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돼 소식이 끊어진 일간지 <리베라시옹>기자 플로랑스 오브나스와 이라크인 통역 후세인 하눈 그리고 콜롬비아 반군에 피랍돼 오늘에 이르고 있는 전 콜롬비아 대선 후보 잉그리드 베탕쿠르의 초상이 담긴 플래카드가 팔레 데 페스티발 벽면에서 증언하듯 이라크 전쟁은 여전히 칸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프랑스 영화 <레밍>의 감독 도미니크 몰은 플로랑스 오브나스와 후세인 하눈의 초상이 그려진 배지를 가슴에 달고 팔레 데 페스티발의 붉은 양탄자를 오르기도 했다.

▲ <베이싱>에서 유코 역을 연기한 후사코 우라베(왼쪽부터), 고바야시 마사히로 감독. (사진 제공 Agence Saint-Clair Internationale)

한편 경쟁 부문에 출품된 일본 마사히로 고바야시 감독의 <베이싱(Bashing)>은 이라크에 납치됐다가 일본으로 돌아와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던 두 일본인 인질에 접근한다. 인질 중 하나인 유코의 심리를 추적하는 이 영화는 그녀가 귀국함과 동시에 작당이라도 한 듯 그녀를 '왕따'로 몰아붙이는 일본 사회를 통해 이라크전쟁을 끌어들였다.

영화 <베이싱(Bashing)>은 픽션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이것이 2004년 4월 고국으로 돌아간 첫 일본인 이라크 인질 3인의 이야기임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기자회견에서 "이들 옛 인질들이 겪은 충격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일본에서는 타부"라고 밝힌 고바야시 감독은 때문에 아직 영화 배급자를 찾지 못했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영화제 첫날 개봉된 프랑스와 쿠르드 합작 영화인 하이너 살렘 감독의 <킬로미터 제로>는 이라크 내부에서 바라본 전쟁의 참상을 들려준다. 1980년대 초 조국을 등지고 파리에 살고 있는 이라크의 쿠르드족 출신 살렘은 사담 후세인 군대에 징집된 한 쿠르드 병사를 이야기 한다.

살렘 감독은 "사담 후세인 독재 치하에서 짓눌렸던 쿠르드족의 고통을 세계를 향해 뿜어내는 기회가 됐다"며 "이번 칸 영화제는 이라크에서 오랫동안 금지됐던 쿠르드 영화에 '체류증'과 '비자'를 선사한 소중한 장소"라고 말했다.

김기덕 매 맞고 임상수는 날개를 달다?
<그때 그사람들>, "한국판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찬사

▲ <그때 그 사람들>의 임상수 감독.

이번에는 김기덕 감독의 차례인가. 지난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와 함께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홍상수 감독에 대한 칸의 싸늘한 반응이 재연되는 듯하다.

'주목할 만한 시선' 개막작으로 초청돼 지난 11일과 12일 이틀에 걸쳐 세 차례의 상영을 끝낸 김기덕 감독의 영화 <활>이 일간지 <리베라시옹>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리베라시옹>은 "규모가 큰 국제영화제 때마다 작품을 소개하는 '수상한' 김기덕은 확실히 다작 감독이지만 동시에 과대평가 받는 감독 중의 하나"라고 평가하고 "영화 <활>은 <섬(2000)> <빈집(2004)>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만큼 공허하다"고 일갈했다. 감정을 잔뜩 실은 듯한 <리베라시옹>은 이 같은 '비난'의 근거는 제공하지 않았다.

반면 지난 13일 오전 9시 기자시사를 마치고 같은 날 저녁 5시 일반에 공개된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은 성공적이었다. 오전 기자시사가 경쟁부문 아톰 에고이앙 감독의 작품 상영과 겹쳐 외면받은 반면 저녁 일반 상영 시간의 분위기는 활기 그 자체였다.

영화 상영 직전 무대에 오른 임상수 감독은 특유의 비아냥과 유머로 한국 개봉 당시 '무시무시했던' 분위기를 언급하고 "이곳 칸에는 영화 상영을 제지하려는 포탄도 헬리콥터도 없이 평화로운 것 같다"고 말해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관객들은 마음껏 폭소를 터뜨리며 영화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상영이 끝나고 관객석에 앉아있던 임 감독이 일어나 다시 한번 인사를 보내자 관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대답했다.

다음날인 14일 <리베라시옹>은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에서 페미니즘을, <바람난 가족(2003)>에서 성을, <눈물(2000)>에서는 세대를 이야기 한 임상수 감독의 낯선 경력이 이번 <그때 그 사람들>을 통해 명확해 졌다"며 영화가 다루고 있는 1979년 10.26 사태를 상세히 설명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리베라시옹>은 이어 '세련된 취향을 포기하지 않는 임 감독의 어투'라는 찬사와 더불어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해 "한국의 민감한 사건을 절대 권력의 보편적 참극으로 변모시킨 거의 중간자적이며 감각적, 정치적 시각을 제시한다"고 평가했다. 매일 칸 영화제 소식을 전하고 있는 <버라이어티>지 15일자는 <그때 그 사람들>을 한국판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스탠리 큐브릭, 1964)>라 격찬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제작사인 'MK버팔로'의 한 관계자는 영화 상영 이후 임 감독에게 쇄도하고 있는 각국 언론의 인터뷰 요청 때문에 숨을 쉴 겨를조차 없다고 즐거운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그는 "놀라운 것은 영화를 보는 세계언론의 시각"이라며 "어쩌면 한국에서 오해됐던 감독의 의도가 오히려 해외에서 먹혀들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때 그 사람들>은 오는 10~11월 사이, <활>은 오는 12월 프랑스의 관객과 만나게 된다.

한편 올해 한국영화는 장편 경쟁부문 홍상수 감독의 <극장전>을 비롯해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의 <활(김기덕)>, 감독주간의 <주먹이 운다(류승완)>와 <그때 그 사람들(임상수)>, 비경쟁부문의 <달콤한 인생(김지운)>,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의 <조금 더 걷기(심민영)> 그리고 칸 클래식 부문의 <죽음의 다섯 손가락(정창화)>까지 총 7편이 칸의 스크린에 영사되고 있다. / 박영신



2005-05-16 10:28ⓒ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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