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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가 뛰어 갑니다'

"어떻게 뛰어 가는지 궁금하지요. 재미있고 자세하게 표현하려면 무슨 말을 넣어야 하나요?"

아이들은 "저요. 저요" 하며 손을 번쩍 든다. 아이들에게 '깡충깡충' 뛰는 모양을 보이자, 교실은 금세 웃음바다로 변한다.

▲ 수업시간.
ⓒ 김재경
"자아 박수 열 번 치고, 머리 어깨 무릎 발…. 머리 어깨 귀 코 입."

어수선한 교실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이번에는 소리로 흉내내기 해요."

손을 번쩍 든 장석진 군은 "저는 늑대를 흉내내 보겠습니다"라고 또렷히 말한다. "아오오르~ " 늑대 울음소리를 재연하자, "와아 진짜 늑대 같다"며 일제히 탄성을 지르며 아이들은 서로 해보겠다고 아우성이다.

그럴 때마다 적절히 박수와 노래 율동이 병행되는 곳은 황규진(48) 선생이 담임을 맡고 있는 안양 박달초등학교 1학년 교실이다. "우물가엔 나무 형제, 하늘에는 별이 형제, 우리 집엔 나와 언니" 가사까지 자유자재로 바꿔 부르며 아이들은 신이 났다.

어미 닭을 따르는 병아리 떼처럼 아이들이 선생님을 에워싸며 놀기에 선생님은 쉬는 시간조차 없다. 윤소이양은 "우리 선생님은 참 좋아요. 화도 안 내시고 우리 모두를 다 사랑해 주셔요"라며 밝게 웃는다.

▲ 야외수업 재미있어요
ⓒ 김재경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은 "화창한 봄날에 코끼리 아저씨가~ 가랑잎 타고서 태평양 건너 갈 적에…"를 힘차게 부르며 각자의 주변을 티끌 하나 없이 말끔히 줍기 시작했다. 청소를 하면서도 즐거운 아이들과 함께 교실은 언제나 청결하다고.

하교시, 선생님은 아이들을 인솔해서 안전하게 횡단보도를 건너 귀가시키고 돌아왔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우리 학교에는 헌신적인 선생님들이 아주 많아요. 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요. 그냥 있는 그대로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 준 게 전부인 걸요"라며 극구 취재를 사양했다.

▲ 아이들을 귀가 시키기 위해 인솔하는 선생님
ⓒ 김재경
박달 초등학교 박연춘(59세) 교장은 "황 선생님은 지난 3월에 우리 학교에 부임했지만, 모든 아이들을 편애없이 골고루 사랑과 열정으로 보듬는 것을 보며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를 어머니처럼 챙기며 교사식당에서 손수 밥하고 국을 떠서 먹이는 심성이라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함께 동행한 제보자 김학연씨는 "지금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 비산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만난 황규진 선생님은 교사의 표상이랄까. 세월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잔잔한 감동이었어요"라며 말문을 열었다.

▲ 옛 학부모 김학연씨와 황규진 선생님의 만남
ⓒ 김재경
김씨와 황 선생은 10년 전을 회상하며 반가움에 서로 손을 맞잡았다.

몇 년 전 김씨는 갓 입학한 아들이 걱정되어 학교에 찾아갔는데, 학부모들이 복도를 지나며 "빨간 잠바 입은 애는 어제도 혼자 앉았더니 오늘도 혼자네" 하는 말을 우연히 들었단다. 교실 안을 들여다보던 김씨는 황 선생과 눈길이 마주쳤다.

황 선생은 "어머니, 혼자 앉은 것을 보고 속상하셨죠. 책상에 금을 긋고 여자 짝꿍을 울리기까지 해서 친구의 소중함을 알게 하려고 떼어놓았어요"라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김씨는 "우리 애가 산만해서…"라며 고개를 떨구었지만 맘이 편치는 않았다고. 하지만 선생님은 "남자애는 저렇게 떠들고 장난기가 있어야 건강한 거예요. 가만히 있으면 아픈 것이니 너무 염려하지는 마세요"라고 말해 다소 안심이 되었다고.

내심 인사라도 해야겠다고 벼르고 있을 때였다. 주변 학부모들은 "아들이 혼자 앉았는데 학교도 안 찾아가고 뭐해요"라며 은근히 촌지를
부추겼다. 서둘러 학교로 갔지만 펄쩍 뛰는 선생님을 보고 촌지는 엄두도 못 낸 채 부끄러운 마음으로 돌아오고 말았다는 김씨. 당시는 행여 '왕따'라도 당하면 어쩌나 노심초사했었다며 사심 없이 이어지는 지난 이야기가 동화 속 이야기처럼 잔잔하고 아름다웠다.

"선생님! 관악산 소풍 때 한 아이가 '선생님 이거요'라며 신문지에 둘둘 말은 김밥을 내밀었던 기억나세요. 솜씨 자랑하듯 엄마들이 준비한 형형색색의 맛깔스런 음식을 두고, 선생님은 '잘먹겠다'며 아이가 준 김밥을 맛있게 드시던 모습이 어찌나 신선하던지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황 선생은 1979년 인천교육대학을 졸업, 첫 부임지인 안산의 초등학교에서 동료 교사인 남편을 만났다. 아들 형제를 기르며 아이들 하나 하나가 내 아이처럼 소중했다.

요즘 아이들이 똑똑하지만 어떻게 손을 대야 될지 대안이 서지 않는 아이도 더러 있다고. 방치할 수밖에 없는 못 따라오는 아이는 짝꿍 도우미에게 도와주도록 칭찬으로 유도하는 것도 오랜 경륜에서 오는 황 교사의 노련한 지도방법이다.

"아이들 교육은 다른 게 없어요. 어머니과는 상담보다는 많이 칭찬하고 격려하며 기다려 주는 거죠. 어느 정도 평행선을 유지하며 물 흐르듯 그렇게 2, 3학년이 되면 서서히 변하는 모습이 보여요. 못하는 아이가 잘 할 때는 사탕과 함께 자신감을 갖도록 크게 칭찬해 주며 격려하는 것도 저학년만의 특징"이라고 말하는 황 선생의 눈은 수정처럼 밝게 빛났다.

반대표인 김우현 어머니는 "선생님은 모든 아이들을 편애하지 않고, 사랑과 칭찬으로 지도하는 분이죠. 환경미화 때도 있는 그대로 재활용하며 넓은 공간에서 아이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주력하기에 엄마들이 신경 쓸 일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학교가 즐거운 아이들과 교사를 믿고 마음 편하게 학교에 보내는 어머니, 사랑과 열정으로 꿈나무를 길러내는 선생님의 훈훈한 사랑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의 물결로 이어지며 스승의 은혜를 새삼 느끼게 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월간 {우리안양}에도 송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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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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