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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3일 멕시코와 인접해 있는 미국 남부의 애리조나 주 국경에서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기막힌 사건이 발생했다. 한 멕시코 여성이 기네스북에 오를만한 기발한 방법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다 체포된 것이다.

국경부근을 순찰하던 엘파소 국경수비대원들은 수상쩍어 보이는 크라이슬러 닷지 6인승 밴을 세우고 검사를 하다가 차 밑바닥에서 나는 미세한 소리에 기겁을 하고 말았다. 밴 밑바닥에 달려 있는 연료통속에 한 여인이 세살 난 딸과 함께 웅크려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밴 연료통의 한쪽은 가스를 채우고, 다른 한쪽은 차안으로 통하도록 개조된 '신기술'을 보고 혀를 내둘러야 했다.

아데레 파사노라는 국경수비대원은 지난달 4일 <에이피(AP)통신>에 "밀입국자들의 아이디어가 예전보다 훨씬 '창조적'이 되고 있다"면서 이들이 세탁기, 카 시트 내부 등 상상을 초월하는 공간에 숨어서 밀입국을 시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 밀입국자 관련 현황이 담겨있는 미 국경수비대 사이트.
애리조나 주의 국경수비대는 얼마 전 텔레비전 뉴스차량이나 우편물을 배달하는 페덱스 차량, 심지어는 국경 수비대 차로 위장해 밀입국 하려던 사람들도 적발했다.

더글라스 모이서 엘파소 국경수비대원은 <에이피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밀입국자들은 검색대 주변의 덩굴나무가 바람에 굴러가듯 구르거나 소발자국 모양의 신발을 이용해 자신들의 발자국을 감추려고 시도한다"고 말했다.

이민 관련 기관들과 밀입국자들의 위와같은 숨바꼭질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9.11 테러 사태 이후 강화된 국경 경비에도 불구하고 밀입국자들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멕시코 접경지역은 지금 '전쟁중'

특히 멕시코와 접경지역인 남부 애리조나 지역과 캘리포니아 지역은 국경을 넘어 오려는 멕시코인들과 이를 막으려는 미국 국경수비대간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29일 <유에스에이 투데이>가 애리조나 주 투손 국경 경비 사무실의 발표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애리조나 접경지대에서 무단 입국으로 체포된 사람은 총 49만1711명으로 911 사태가 발생한 2000년도의 61만6346명에 비해 다소 줄었으나 10년 전인 1995년의 22만7529명보다 무려 216%나 증가했다.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도 마찬가지다. 한때 캘리포니아 주의 멕시코 접경지역에서는 최고 연 50만 명의 밀입국자가 체포됐다. 밀입국자들이 국경에 인접한 고속도로를 급히 가로지르다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많아 '밀입국자 횡단을 조심하라'는 표지판이 고속도로에 세워질 정도였다.

1990대초 10피트 높이의 국경 장벽을 세운 이후로는 연 13만 명으로 체포자 수가 줄어들기는 했으나 국경수비대와 밀입국자 사이의 숨바꼭질은 그칠 새가 없다. 이 와중에도 용케 밀입국에 성공해 미국에 불법 체류하고 있는 멕시칸들은 지난해 말 현재 132만 명이 넘는 것으로 이민국은 집계하고 있다. 이는 전체 불법체류자의 7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로 불법체류자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 미 '애리조나 보더 워치' 사이트. "분명한 것은 우리는 국경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해 왔다는 것이다. 그것(통제)을 하지 못하고도 존속 될 수 있는 국가는 없다. 우리는 위험이 닥쳐왔음에도 불구하고 상실된 미국의 주권을 내버려 두고 있다"라는 레이건 전 대통령의 말로 자신들의 활동의 정당성을 대변하고 있다.
최근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14마일에 이르는 멕시코 접경지역중 '밀입국자들의 계곡' 이라 불리는 3마일 구간을 요새화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구간은 토사층 습지의 험난한 지형을 갖추고 있어 이를 이용하려는 밀입국자들과 국경수비대간에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연출되고 종종 사고가 일어나는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한때 멕시코 접경 주들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국경수비대의 능력을 믿지 못하겠다며 아예 '자경단'을 조직해 밀입국자 색출에 나서기도 했으나 경찰과 이민 당국은 사고 위험이 크다며 이들의 활동을 중단시켰다.

이 같은 난전을 벌인 끝에 미국 땅을 밟는데 성공한 밀입국자들은 미 이민당국의 기습 단속에 시달려야 한다.

지난달 27일에는 연방 요원들이 플로리다 올랜도 지역의 연방법원 공사현장을 급습해 총 66명의 불법 이민자들을 체포한 일이 발생했다. 현재 이 지역에서 공공건물과 콘도 등을 비롯한 총 16억5000만불 규모의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 불법 이민자들의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3월 워싱턴 소재 '퓨 히스패닉 센터'의 발표 따르면, 플로리다에만 약 85만 명의 불법 이민자들이 있으며 이들은 대부분 멕시코 출신으로, 최근 늘어나고 있는 공사현장에서 일하기 위해 밀입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밀입국자 요구하는 미국 노동시장

그렇다면 미국 정부가 911 테러 사건 이후로 '밀입국은 막고 불법체류자들은 쫓아내는' 정책을 계속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같이 밀입국자들이 계속 생겨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면, 먹고 살기 위해서 국경을 넘는 생계형 밀입국자들의 현실적 요구와 현지 미국 노동시장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다.

노동자들을 위한 인권 단체인 '데레코스 후마노스'의 캣 로드리게스는 지난 4일 <에이피통신>에 "밀입국 하는 이유는 소위 말하는 더트 워크(먼지 날리면서 일하는 직업) 시장이 이들을 요구하고 있고, 이들도 본국에서의 벌이보다 이곳이 낫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에 아내와 두 딸을 두고 있는 게바라라는 청년은 지난 29일 국경지대를 찾아 나선 <유에스에이 투데이> 기자에게 "몇 년 전 이민국 직원의 급습에 걸려 강제출국 당한 적이 있다"면서 "나는 국경을 넘을 기회를 엿보고 있다. 시간당 11불은 좋은 벌이다"라고 말했다.

중앙 플로리다 건축협회의 마크 와일리도 지난달 29일 <올랜도 센티널>에 "불법 체류자들은 매일 위협 속에 살고 있지만 그들은 이곳에서 가질 수 있는 삶의 '기회' 때문에 이민국의 급습 위험이 있다고 해도 다시 일하러 올 것"이라고 전했다.

플로리다 '이민자 보호센터'의 체릴 리틀은 지난달 20일 <탬파 트리뷴>에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자신의 체류신분의 합법성 여부와 관계없이 일반 미국인들이 싫어하는 농업이나 공사판 일을 하고 있으며 세금도 꼬박꼬박 내고 있다"면서 "이민자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그들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이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건설업계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미 전역에서 일고 있는 건설 붐에도 불구하고 자격을 갖춘 현지 미국 노동자들이 태부족한 형편이다.

고용주들은 불법 체류자를 환영한다?

▲ 미 이민국 홈페이지. http://www.usis.com.
건축자협회 월트 머과이어 대변인은 지난달 20일 <마이애미 헤럴드>에 "지금 당장이라도 100명의 일할 시민권자를 데리고 올 수 있으나 공사주들은 이들을 환영하지 않고 있으며, 노동조합을 싫어한다"고 전했다. 즉 고용주들은 고액의 임금을 지불하고 골치를 썩기보다는 저임금으로 부려먹기 쉬운 불법체류자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가령 불법 이민자들은 목수일을 시작할 때 시간당 10~12불을 받고 숙련공이 되면 15불씩을 받는다. 이는 최근 노조에서 발표한 금액인 시간당 17불 96센트에 훨씬 못 미치는 액수다. 더구나 이들에게는 시간외 수당이나 합법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보험 혜택도 주어지지 않는다.

최근 미국당국은 불법체류자를 고용하고 있는 업체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으나 고의로 불법 이민자들을 고용한 경우가 아니면 아예 기소조차 하지 않고 있어 불법 체류자들을 쉽게 고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고 있다.

미국의 현행법은 '피고용자가 두 가지 이상의 신분증명서를 제출하면 이들 증명서가 위조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이상 고용주들은 이들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해 두고 있다. 달리 말하면, 고용주들은 피고용자들이 해당 서류를 제출할 경우 이에 대한 진위 여부를 가릴 법적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9.11 테러 사건 이후로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미국은 '외부세력'에 대한 반사적 경계심리가 그 어느 때보다 강화되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당장 이들과 단절을 할 수도 없는 곤경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딜레마는 부시 대통령의 밀입국자 또는 불법체류자에 대한 정책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국가 안보 강화에 대한 미국민들의 여론을 의식해 그동안 국경경비를 계속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는 해왔으나, 국내외의 여론과 국내 고용시장의 안정화 등을 고려, 미국 내에 들어와 있는 밀입국자들에 대해서는 '기회'를 주자는 이중 정책안을 내놓고 있다.

딜레마에 빠진 부시 행정부의 '불법체류자 정책'

▲ 밀입국자와 불법체류자 문제를 보도한 유에스에이 투데이(USA TODAY) 4월 29일자. 두 명의 멕시코인이 국경 넘어 미국땅을 바라 보고 있는 사진이 보인다.
그동안 멕시코 정부와 소수민족 단체의 압력을 받아 온 부시 대통령은 미국의 국경 경비를 강화하는 반면 불법입국을 했지만 미국 내에 부양가족이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는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게스트 워커'(방문 노동자) 신분을 부여하자는 안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은 물론 공화당 의원들조차 '부시 대통령이 내세우는 게스트 워커 계획은 법을 어긴 사람들에게 상을 주는 것' 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대신 의회에서는 현재 '게스트 워커'안 보다 불법체류자들의 운전면허 취득을 불가능하게 하는 '리얼 아이디(Real ID)' 법안을 먼저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세를 얻고 있다. 이 법안은 허점이 많은 주별 운전면허 발급 제도 대신 전국적으로 통용되는 운전면허증 발급제도를 두어 원천적으로 불법체류자들의 발을 묶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민단체와 소수민족 및 미 의회 일각에서는 "'리얼 아이디' 법안은 현실을 무시하는 최악의 법"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텍사스 출신의 존 코닌 의원은 이번 여름 포괄적인 이민법률이 발표될 때까지 리얼 아이디 법안을 보류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 법안의 실행에 의해 현재 900만~11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 불법체류자들의 노동력에 공백이 생길 경우 고용시장은 물론, 경제에도 막대한 지장을 준다는 것이다.

특히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이 법이 본래의 목적과는 달리 불법체류자들을 지하로 숨어들게 만들어 신분 파악을 어렵게 만들 경우 음성적 범죄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분명한 것은 이 같은 법안의 찬성파나 반대파 모두 미국에 1천만 명 안팎의 불법 이민자들이 있다는 것과 이들이 미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공통의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리얼 아이디' 법안과 '게스트 워커' 법안이 절충된 형태의 제3의 '불체자 구제법'이 생길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현재 불법체류자들에게 불리한 반이민 법안을 상정했거나 상정 예정중인 주들이 30여 개주에 이르고 있어 빠른 시일 내에 이 같은 법이 제정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덧붙이는 글 | koreaweeklyfl.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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