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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 저녁 생방송된 BBC의 TV토론 <정당 대표에게 듣는다>. 좌측 상단에서 시계 방향으로 자유민주당의 찰스 케네디, 보수당의 마이클 하워드,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 BBC 화면캡처
- 고소득자들에게 세금을 더 부과하겠다는 정책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가? 상당수 국민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자유민주당 케네디 대표) "대신 우리는 주민세 폐지, 대학등록금 무상, 고령자 완전 무료의료 혜택을 주장한다. 어느 편이 국민들에게 이익이 될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 영국으로 오려는 정치망명자들을 엄격하게 규제하겠다는 정책은 인권침해 요소가 많다. 당신 아버지도 영국에 정치망명자로 들어오지 않았는가?
(보수당 하워드 대표) "망명을 막겠다는 것이 아니라 범법자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겠다는 이야기다. 그들 때문에 정말 망명해야 하는 사람들이 영국에 오지 못하고 있다."

- 이라크 공격 전, 법무장관은 파병이 불법일 수도 있다고 조언했는데, 왜 묵살했는가? 실제로는 대량살상무기도 없었다. 지금도 이라크 전쟁이 타당했다고 생각하나?
(노동당 블레어 수상) "수상은 최종 결정을 해야 하는 직책이다. 후세인은 세계 평화를 위협했으며 그에 따라 파병했다. 이라크에 후세인이 지금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보라."


5월5일 총선을 일주일도 채 남겨놓지 않은 영국은 1위를 고수하려는 노동당과 막판 뒤집기를 시도하는 보수당, 자유민주당의 막바지 싸움이 치열하다.

지난 28일 BBC가 마련한 TV토론 <정당 대표들로부터 듣는다>에서는 3당 대표들을 향한 청중들의 날카로운 공격이 이어졌다.

이번 총선이 어느 때보다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유는 토니 블레어 수상 때문이다. 만일 노동당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되면, 블레어는 영국 노동당 사상 최초로 3기 연속 집권에 성공한 수상이 된다. 노동당은 28일(현지시간) 현재 보수당에 7~8%P차로 앞서고 있다.

블레어와 노동당, '신노동당주의' 약발 또 먹힐까

▲ 3개 주요 정당의 정책과 공약이 비교표로 공개되어 있는 BBC 홈페이지
블레어 수상은 97년 총선에서, '노동 418석, 보수 165석, 자유민주 46석, 군소 30석'이라는 압승을 일구어 내며 집권했다. 대처 수상 은퇴 후 당 내분으로 약체화된 보수당의 상황,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강하게 표방되는 노동당의 신노동당주의, 즉 '제3의 길'이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신노동당의 '제3의 길'은 좌파이념을 바탕으로 하지만 자본주의적 가치관들 대부분을 긍정하는 사고방식이다. 이는 경제 효율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모든 사람에게 기회 균등을 주는 정책과 직결된다. 노동당은 노조와의 전통적 관계까지 조정해서 영국민 전체의 지지를 광범위하게 이끌어 내는데 성공하였다.

한편, 좌파이념을 바탕으로 우파의 정책들을 대거 수용한 노동당의 신노동당주의에 의해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은 자신들의 정체성까지 위협받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2001년 6월 총선에서 블레어의 노동당 압승으로 다시 이어졌다. 총선 결과는 '노동 412석, 보수 166석, 자유민주 52석, 군소 28석'이었다.

두 차례나 큰 타격을 입은 보수당과 활로를 모색해야만 했던 자유민주당은 결국 노동당과의 '정책적 차별화 부각'에 더욱 역점을 두게 되었다. 보수당은 사회보장제도의 확충을 부르짖게 됐고, 자유민주당은 좌우이념을 사안에 따라 선택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3당 모두 자신들 나름대로의 중도 노선을 취하게 된 것이다.

'이라크 전' 막판 변수?

▲ 보수당의 노동당 공격 표어 게시판 중 하나. "조기 출소자가 당신 딸을 공격한다면 기분이 어떠시겠습니까?' 그 아래에 "두려움의 정치학 - 투표를 위한 좋은 이유가 아니다"라는 낙서가 보인다.
ⓒ 김성수
현재 보수당의 마이클 하워드 대표는 "노동당이 만든 사회문제는 엄청나다"며 노동당의 실정을 신랄하게 비판 중이며, 자유민주당의 찰스 케네디 대표는 "우리가 노동당의 진정한 대안이다"라 강조하고 있다.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수상은 "지든 이기든 간에 이번이 자신에게는 마지막임"을 공언하고, 배수의 진을 친 채 선거운동에 임하고 있다.

선거 운동 초반, 가장 큰 쟁점으로 떠오른 사안은 의료와 세금문제였다.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NHS(국민의료제도), 유럽 최고의 MRSA(치명적인 병원감염) 감염률, 서민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주민세(Council Tax)와 그에 대한 거부운동이 최근 영국의 사회문제 중 가장 큰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중반에는 각 당의 정치망명자 정책, 교육 및 대학등록금 문제, 치안, 이라크 전쟁 등 사회 전반적인 문제들이 모두 쟁점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 어떤 사안도 노동당을 '지지율 1위'에서 끌어내리지 못했다.

현재 '막판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이라크 전쟁'뿐이다. 28일 영국 언론은 법무장관 골드스미스 경이 전쟁 발발 전인 2000년 3월7일 블레어 수상에게 "전쟁이 불법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는 내용을 모두 머리기사로 내보냈다. 이 기사는 '이라크 전쟁'이 다시 이슈화 되는 데 도화선 역할을 했다.

28일 BBC가 주최한 TV토론에서 노동당 블레어 수상은 이라크 전쟁 타당성 여부, 의료 제도, 대학 등록금 등 각종 사회문제들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았다.

케네디 자유민주당 대표는 전쟁 이전부터 줄곧 반대해 온 "이라크 전 부당성"을 주장했으며, 하워드 대표는 "블레어 수상은 거짓말쟁이"라고 공격해 청중들로부터 박수를 받기도 했다. 반면, 블레어 수상은 박수 대신 청중들의 강도 높은 질문 공세로 시종일관 진땀을 흘려야 했다.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영국민의 25%만이 블레어 수상의 말을 신용한다고 답했다.

2005, 영국인들의 선택은?

▲ <더 타임스>의 29일 현재 정당별 전체 지지도 (의석수 비례 아님)
한 달 전만 해도 이라크 전쟁의 각종 문제점, 블레어-브라운의 마찰, 사회폭력이나 의료제도 같은 사회문제들이 언론에 의해 크게 부각되면서 노동당 지지도는 상당히 떨어졌었다. 유세 중반에는 자유민주당의 약진 속에서 노동당과 보수당의 지지율이 불과 3~4%밖에 차이가 안날 정도로 가까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후반부로 가면서 노동당과 보수당의 지지율 격차는 10%P 이상으로 벌어졌고, 특히 3기 집권 중 블레어가 브라운에게 순차적으로 권력을 이양할 예정이란 내용이 보도되면서 노동당이 1위 자리를 굳히는 듯한 분위기다. 또 영국인들 상당수가 "보수당의 정책은 탐탁치가 않고, 자유민주당의 정책은 훌륭하나 믿음이 가지 않아, 노동당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라는 견해를 갖고 있어 어찌됐든 노동당에 유리하다.

28일 보수당의 전직 수상 마거릿 대처가 베니스로 떠난 것도 현재의 영국 총선 판도를 대변한다. <더 타임스> 29일자에 따르면 대처 전 수상의 베니스행 이유는 "보수당의 패배를 보고 싶지 않아서"라고.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에는 예전과 다르게 부동층이 많다"고 강조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이라크 전쟁 문제가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같은 날 BBC 정치부의 유명 논설위원 앤드루 마는 "노동당이 우세하긴 하지만 이번 총선은 결국 투표함 뚜껑을 열어봐야 하는 상황"이라 논평했다.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이 집권하기까지

영국은 13세기에 의회를 만든 근대 의회제 원조국가다. 17세기에 올리버 크롬웰은 의회정치를 정착시켰고, 19세기부터는 토리당(보수당의 전신)과 휘그당(자유당의 전신)의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어 여당 내각과 야당 예비내각(쉐도우 캐비닛)의 대결로 요약되는 양당제 정치형태인 웨스트민스터 시스템도 도입됐다.

1900년 2월, 좌파 정당인 노동당이 창설되고 영국정치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보수당'과 '자유당'의 전통적 대결이 이념의 시대인 60년대를 지나면서 우파 '보수당'과 좌파 '노동당'의 대결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편 몰락한 자유당은 1988년에 사회민주당과 합당해서 '자유민주당'이란 이름으로 제3당의 지위를 획득했다.

80년대는 보수당의 시대였다. 노동당은 보수당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 수상의 영향력에 눌려 기세를 펴지 못했다. 그러나, 90년대가 되고, 대처 수상이 은퇴하면서 남긴 공백을 존 메이저 수상이 메꾸지 못하게 되자 노동당은 집권의 기회를 맞게 된다. 또한 당시 노동당 대표 존 스미스는 고든 브라운과 토니 블레어를 노동당의 양날개로 키우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94년 5월 12일 노동당 스미스 대표가 심장마비로 사무실에서 급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 대표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인해 노동당 개혁파의 두 축이었던 브라운과 블레어는 당권 경쟁의 위치에 놓이게 되었으며, 당의 미래도 불투명해졌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경쟁은 싱겁게도 20여일만에 끝났다고 한다.

5월 31일, '그라니타'라는 런던의 한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두 사람은 비공개 만남을 가졌으며, 이후 브라운은 경쟁 포기 및 블레어 지지 발표를 했다. 이것이 지금도 수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거래(The Deal)'란 소문이다. 브라운은 총선 승리를 위해 블레어에게 당권을 양보했으며, 수년 후 다시 양보받는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거래'에 대한 소문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94년 6월에 개최된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블레어는 브라운의 지원을 받아 쉽게 당대표가 됐다. 그리고 97년 5월 총선에서 블레어가 이끈 노동당은 18년만에 여당이 됐다. 블레어는 수상, 브라운은 내각의 최고 요직인 재무장관을 맡았다. /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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