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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어머니

어머니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세상의 어머니는 모두가 훌륭하다. 그러나 나의 어머니는 다르다. 이제 내가 자식을 키우고 있는 부모가 되어 생각하니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자식은 분명 사랑스럽다. 주고 싶고 하고 싶어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다 해주고 싶다. 그렇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는 현실을 인정한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야 있지만 여러 가지 제약을 이유를 들어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곤 한다. 아이의 마음을 알지만 내 자신의 편함을 위하여 어렵지 않게 포기한다.

물론 아이에게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변명한다. 구구한 설명을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 고개를 드는 미안함을 주체할 수가 없다. 그럴 때마다 그리워지는 것은 어머니다.

▲ 이제는 대학을 졸업한 손녀와 서 있는 어머니
ⓒ 정기상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유별났다. 평생을 하루같이 똑같았다. 힘이 들고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어머니는 묵묵히 극복하셨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식을 위하는 일이라면 겉으로 나타내지 않으셨다. 돌이켜 생각하면 놀랄 수밖에 없다.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헌신하셨다.

자랄 때에는 모든 어머니가 다 그렇게 하는 줄로만 알았다. 어머니이니 당연히 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아니 다른 어머니보다 못하다고 불평하였고 반항하였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의 난처한 표정을 보았다. 그 때는 몰랐다. 그 것이 얼마나 큰 불효인지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것인지를 뼈 속 깊이 느낀다. 그 힘이 어디에서 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사람의 힘으로 그렇게 자식을 사랑할 수 있었는지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어머니가 보고 싶다. 그리워진다. 자식이란 염치없는 존재이다. 살아가면서 즐겁고 좋은 일만 있을 때에는 어머니 생각을 저 만큼 뒤로 밀쳐놓는다. 그리고는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면서 스스로에게 합리화를 시킨다. 마음이야 간절하지만 현실이 이러하니 어쩔 수 없다고 이유를 댄다.

그러나 살기가 힘들고 어려워지면 달라진다. 기대고 싶고 의지하고 싶어지면 어머니를 찾는다. 염치없는 일인 줄도 모른다. 어머니에게 아무 것도 해 드리지 못한 점은 생각하지 못하고 당연한 것처럼 어머니에게 매달린다.

그렇다면 혼이라도 내고 꾸중을 해야 잘못을 인정할 터인데 어머니는 그렇지 않다. 자식이 아무리 미운 짓을 하였어도 모든 것을 용서한다. 자식이 하는 일은 미운 것이 하나도 없다. 죽을 죄를 지었어도 상관하지 않고 늘 같은 마음으로 따뜻하게 안아준다. 늘 그 자리에 존재하면서 언제라도 상관하지 않고 자식을 사랑해주신다.

어머니가 그랬다. 나의 어머니가 그랬다. 어머니의 크고 높은 사랑을 왜 진즉 알지 못하였는지 후회가 된다.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느낀다. 어머니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조금만 더 사셔서 못난 자식의 효를 받아야 하는데 이제는 계시지 않으니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기 어렵다.

혼자 있으면 어머니의 얼굴이 다가온다. 주름살이 그득한 얼굴을 하시고서 허리는 완전히 굽으신 그대로 되살아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아도 어머니에게 잘해드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머니에게 해 드린 것은 생각나지 않고 어머니에게 잘못한 일들만 그득하다. 그 때는 왜 그렇게 하였는지 알 수가 없다.

철이 없어 한 짓이기는 하지만 후회가 앞선다. 후회할 짓은 하지 않으면 될 일인데 왜 그렇게 잘못하였는지 알 수가 없다. 몰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선생님이나 어른들로부터 귀가 아프게 들었다. 부모님은 기다려 주시지 않으니 미리 미리 잘해야 한다는 소리를 수없이 들었다. 그러나 마음에 새기지 못하였다. 그냥 하는 소리로만 여겼던 것이다. 오늘에서야 그 말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날이면 날마다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 회갑상을 받고 있는 어머니
ⓒ 정기상

회초리

가난하였다. 60년대에는 모두가 가난하였다. 그런데 우리 집은 그 중에서도 너무나 가난하였다. 하루 세끼를 먹을 수 없을 정도였다. 어머니의 희생이 없었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어머니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였다.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었다. 농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품앗이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농촌에서 살면서 땅 한 평 가지지 않았으니 가난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머니의 하루는 새벽 4시부터 시작되었다. 정안수를 떠놓고 기도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아침을 지어놓고는 동도 트기 전에 논으로 나갔다. 품삯을 일한만큼 받게 되어 있으니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하여 일찍 일하러 나가시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하여도 식구들 모두의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지긋지긋하였을 일이었다. 농번기에는 하루도 빼지 않고 일을 하여야 하였고 농한기에는 다른 일거리를 찾아 쉬지 않았다. 요즘 사람들에게 그렇게 살라고 하면 모두 포기할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위로 누나도 넷, 아래로 동생이 하나였다. 어머니의 어깨에 일곱 식구가 목숨을 걸고 있었다. 어머니가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고생을 하여도 가난에서는 벗어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미래를 포기할 것이 분명하다. 희망을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다. 내일을 포기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셨다. 가난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은 배우는 것이라고 하셨다. 배우지 않았기에 고생을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가난을 자식에게 대물림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 때는 그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배가 고팠다. 점심을 굶는 것은 일상이 되었고 아침저녁도 서속밥이나 꽁보리밥이었다. 서속밥을 입에 넣으면 모래알처럼 씹히지 않았다. 보리밥도 마찬가지였다. 배가 고픈 초등학생에게 공부는 큰 의미가 없었다.

4학년 때의 일이었다. 공부는 하지 않고 놀기만 하였다. 시험을 보았는데 공부를 않았으니 좋은 점수를 맞을 수가 없었다. 점수가 평균 36점이었다. 내가 생각하여도 어이가 없는 점수였다. 그 시험지를 차마 어머니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다. 지금 같으면 시험지를 찢어버리면 그만이었을 터인데 어린 마음에 그렇게는 하지 못하고 옷 주머니에 숨기고 보름을 지냈다. 결국 누나에게 들켰고 어머니에게 알렸다.

회초리.

어머니가 그렇게 무서운 분인지 처음 알았다. 뒤 안에 있는 단풍나무 회초리를 꺾어왔다.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어머니는 얼마나 화가 나셨는지 그 많은 회초리가 모두 부러질 때까지 쉬지 않고 종아리를 때리셨다. 나중에는 아픈 것도 느낄 수 없었다.

어머니가 왜 그렇게 화를 내시는지 그 때에는 알지 못하였다. 시험 점수야 조금 잘못 맞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대들 수는 없었다. 평상시와는 분명 달랐다. 어머니가 얼마나 무섭게 화가 나 있는 것인지를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꼼짝 없이 맞는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꿈 속이었다.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가슴 아파하시는 마음이 그대로 배어 있는 말씀이셨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면서 탱탱 부어 있는 종아리를 만지시고 계셨다. 맨소래담을 바르면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일어나서 어머니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된다면 어머니가 난처해할 것이라는 생각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런 기척도 하지 않고 잠든 척하고 있었다.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희망을 버렸다고 생각하신 어머니였다. 그 것만큼은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어머니의 깊은 뜻을 알게 되었으니 어머니의 바람을 가슴에 새기지 않을 수 없었다. 공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죽기 살기로 공부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도 죽기 살기로 일하고 계셨다. 어머니 당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시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렇게 온 몸이 휘도록 일을 하셨지만 당신을 위해서는 단 한 푼도 사용하시지 않았다.

남들이 다 가는 여행 한번 가시지 않았고 먹고 싶은 음식 한번 손수 사시지 않으셨다. 그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어머니는 먹을 줄 몰라서 사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였고 입을 줄 몰라서 좋은 옷을 입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아이들에 배어 있는 어머니

대학을 졸업한 아이가 아팠다. 아픈 딸의 마음이 상하게 할 수가 없어 내색은 할 수가 없었지만 견디기 어려웠다. 차라리 내가 아프고 말지 자식이 아프니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 곳에 어머니가 배어 있었다. 어머니의 마음이 되살아났다. 어머니의 마음이 어떠하였을지 조금이라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평생을 그렇게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죄송함은 산이 되었다.

어머니의 사진을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 효도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어머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지 못하였는지 모를 일이다. 어머니가 바라는 대로 따르면 되는 일이었다.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 것은 내 욕심을 조금 줄이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왜 그 것을 하지 못하였는지 바보 같다.

어머니가 바라는 대로 행동하는 일이 생각만 바꾸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왜 돈도 들지 않는 생각을 바꾸지 못하였는지 후회막급이다. 어머니가 그립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진다. 살아만 계신다면 어리광을 부리면서 재롱을 떨고 싶다. 어머니 어디에 계신가요.

덧붙이는 글 | 어머니 자서전 대필 응모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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