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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임>은 4월18일자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을 5개 분야에 걸쳐 선정했다. 타임은 '세계 지도자 또는 혁명가' 분야에 22명을 꼽으면서 여성 정치인으로는 유일하게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50)을 포함시켰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18일자에서 스페셜 판을 내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을 5개 분야에 걸쳐 선정했다. <타임>은 '세계 지도자 또는 혁명가' 분야에 22명을 꼽으면서 부시 대통령, 후진타오 중국 총리, 천수이볜 대만 총통,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 휴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등 쟁쟁한 국제적 인물들과 더불어 여성 정치인으로는 유일하게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50)을 포함시켰다.

<타임>은 이들 가운데 라이스를 첫 번째로 소개하면서 닉슨과 포드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에게 소개글을 맡겼다. 키신저는 다섯 단 가량의 짧은 글에서 "라이스는 금세기중 외교적 격랑이 가장 심한 시대에 각종 난제를 처리해야 하는 인물로 떠올랐다"고 라이스의 '국제적 위치'를 확인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과거 경험을 상기시키며 "국무장관은 대통령과의 친분의 정도, 대통령에 의해 정책 결정과정의 중심으로 인정받고 있는 정도에 따라 임무의 성공 여부가 결정 된다"면서 "라이스는 대통령으로부터 '전례가 없는' 권위를 부여 받고 있으며, 외국의 지도자들도 이를 의심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라이스에게 말하는 것은 곧 대통령에게 말하는 것"

결국 <타임>이 라이스를 부시 대통령 등 다른 쟁쟁한 인물들을 뒤로 밀치고 첫 번째로 소개한 '파격'을 보인 것은 그녀가 '전례 없는' 파워를 가진 인물로 떠올랐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라이스의 '슈퍼 파워'는 이미 여러 사람들의 증언과 그녀가 최근에 보여준 행보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라이스와 함께 지난 3월 유럽을 방문한 한 미국 관리는 지난 3월 28일자 <타임>지에 "그녀와 대화를 하는 것은 곧 대통령과 대화를 하는 것"이라며 "그녀를 상대하는 사람은 그녀가 한 말이 워싱턴이 생각하고 있는 것의 전부인지 아니면 일부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미국 언론은 라이스의 최대의 무기중 하나로 퍼스트레이디 로라 부시를 제외하고 그녀가 부시와 가장 가까운 인물이라는 점을 꼽고 있다. 전임 국무장관 콜린 파월은 재임 내내 부시 주변의 네오콘 강경파 그룹과의 투쟁에 골머리를 앓아온 것으로 알려졌으나 라이스는 파월보다 월등한 파워를 갖고 있다는 것이 워싱턴 정가의 일치된 견해다.

타임지에 따르면, 파월은 재임시절 영국의 잭 스트로 외무장관에게 "워싱턴은 항상 나에게 어딘가 다녀올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돌아오면 누군가 꼭 내 등에 칼을 꽂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콘돌리자 라이스는 그런 걱정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부시 미 대통령과 라이스와의 관계는 이전 아버지 부시 대통령과 제임스 베이커의 16년 동안의 돈독한 관계만큼이나 빈틈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특히 라이스가 베이커나 파월과는 달리 대권과 관련해서 주변의 관심을 비껴간 것도 부시와 친분관계를 설정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 4월, 파월과 네오콘 그룹간의 암투를 폭로한 <공격의 명령>이라는 책을 쓴 밥 우드워드 <워싱턴 포스트> 기자는 그의 책에서 "라이스가 부시 대통령의 눈과 귀를 장악했다"고 묘사하며 이미 라이스가 부시 행정부내의 '실세중의 실세'라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도 평소 "라이스의 말을 들으면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면서 난제를 대할 때 라이스가 보여준 예리한 분석력과 정확한 판단력을 높이 평가해 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부시의 절대적 신임 바탕, 내부 경쟁자들 압도

▲ <타임> 세계를 움직이는 100명 중 '세계 지도자 또는 혁명가' 분야 에 콘돌리자 라이스 등 22명이 선정됐다.
무엇보다도 라이스가 부시로부터 완전한 신임을 얻게 된 것은 지난해 3월 리차드 클라크의 '폭로사건' 때였다는 것이 미 언론의 분석이다.

당시 리차드 클라크 전 백악관 테러담당 보좌관은 <모든 적들에 대항하여>라는 책에서 "내가 9·11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알 카에다의 테러 가능성을 경고했으나 부시 행정부가 이를 묵살해 9.11 테러를 막지 못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상관인 라이스 안보 보좌관이 이를 잘 알고 있다고 적었다. 이에 미 언론과 민주당 등이 들고 일어나 라이스의 의회 증언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녀는 '국가기밀사항이 포함되어 있어 함부로 발설할 수 없다'며 입을 다물었다.

결국 여론에 밀려 실시된 공개 청문회에서 라이스는 '9·11은 클린턴 행정부 당시부터 있었던 정보 라인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서 방어하지 못한 것일 뿐'이라면서 오판에 의한 부시의 직무유기를 일관되게 부인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라이스가 진실을 숨기고 부시를 충성스럽게 옹호하며 부시의 9·11 직무유기 혐의를 벗겨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고 비판했으나, 부시는 텍사스 목장에서 라이스에 전화를 걸어 "성공적인 증언을 축하한다"며 그녀를 칭찬했다.

라이스는 '주군'에 대한 이 같은 '충성도'를 바탕으로 얻은 신뢰감과 더불어 부시 행정부 2기 초반의 '파워게임'에서도 일단 완승을 거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외교 전문가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막후 세력중 하나인 월포위츠 국방차관이 세계은행의 총재를 맡으며 국방성을 떠난 것, 그리고 또 하나의 강경파 존 볼튼이 유엔 대사로 밀려난 것을 들어 '라이스 군단'이 네오콘 경쟁자들을 압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도 지난 수개월 동안 강경론자들이 퇴조하는 걸 보면서 조심스런 행보를 보이고 있으나 올 가을께 교체될 것으로 미 언론은 예측하고 있다.

미 언론은 전임 국무장관 콜린 파월과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해 왔던 정보기관도 라이스의 영향권 내에 들어올 것으로 보고 있다. 부시 1기 행정부의 강경 노선을 유지하는 주요 축 가운데 하나였던 CIA의 특수 정보담당 책임자 더글러스 페이스는 부시 1기행정부에서 이미 공과가 검증된 상태여서 점차 주요 정책 결정에서 배제될 처지에 놓여있다는 것.

특히 라이스의 보좌관들이 국방성의 네오콘 그룹과 대항해 온 인물들로 채워진 사실과, 전과는 외교적 색깔이 다른 '라이스 군단'이 외교무대에서 활동을 개시하고 있는 것은 라이스의 '승리'를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이처럼 막강한 권력을 틀어쥐고 관료계층의 최 윗선에 앉아 복잡한 국내외의 현안들을 떠 맡게 된 라이스가 앞으로 어떤 성과를 올리기 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유연한 '실용주의 외교' 일단 긍정적 반응

▲ 러시아를 방문, 푸틴 대통령과 함께 있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 미 국무부
그녀의 외교적 역량에 대해서 아직은 긍정적인 의견이 많다. 우선 종전 미국의 외교가 강경하고 고압적인 데서 라이스의 등장과 함께 유연한 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평이다.

사실 국제 외교가에서는 처음 라이스가 외교무대의 전면에 등장했을 때 우려하는 시각이 많았다. 즉 온건파인 파월의 퇴각으로 부시 행정부의 외교노선이 강경 기류로 흐를 것이라는 예측이 대부분이었다. 이 같은 우려는 부시 행정부 내의 강경파인 딕 체니 부통령을 견제할 사람이 없어졌고, 특히 라이스가 부시의 여전한 신임을 받고 있는 체니의 강경 외교노선을 거스르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 때문이었다.

그러나 점차 막강한 파워를 가진 라이스가 이미 국내외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아온 네오콘 그룹의 강경 기류에 편승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주류를 이루어 가고 있다. 라이스가 1기 부시 행정부에서 파월과 네오콘 그룹간의 이견을 조율하며 중도적 행보를 보여온 점과, 이념적인 면에서 네오콘 그룹과는 다른 '실용파'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국제 외교가에서도 전쟁으로 지쳐 있는 미국이 라이스를 내세워 실용주의적 외교 노선으로 선회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한다. 가령, 라이스의 등장과 함께 미국은 이란에게 경제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대신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하려는 유럽국들의 노력을 지지하는 등 유럽 동맹국들과 협력하는 자세를 취했다. 과거 부시 행정부 내의 강경파들은 유럽국들의 이 같은 노력을 비웃어 왔었다. 한 프랑스 외교관은 지난 12일 <뉴욕타임스>에 "우리는 한 달 전만 해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면서 "라이스는 그 (변화의) 중심에 있다"고 전했다.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라이스가 미국을 맹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나라의 사람들과도 기꺼이 대화하며 주요 의제와 관련하여 유연한 자세를 보인다고 전했다. 지난 2월 아랍과 이스라엘 지도자들간에 가진 정상회담에서 라이스는 회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접촉했으나 미국이 간섭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은 것도 그 단적인 예라는 것.

한 아랍 외교관은 최근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재차 말한 후 이를 분명한 논점으로 꾸려냈다"며 "그녀는 매우 민첩하고 재치가 있다"고 그녀의 외교적 역량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 이스라엘 관리도 "협상 과정에서 분명치 않은 내용들로 설왕설래 하는 경우에는 라이스는 원하는 한 가지만 집중해서 밀고 나갔다"면서 그녀의 영리한 협상 능력을 평가했다.

아직 라이스는 외교무대에서 당장 눈에 띌만한 어떤 성과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그녀는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려 애써 왔던 이란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공사에 참여한 인도와 파키스탄의 행동을 막지 못했다. 이후 도쿄와 서울을 거쳐 베이징을 방문한 라이스는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6자회담에 북한을 다시 끌어들이기 위해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에 대한 원조를 중단하도록 요청했으나 중국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라이스가 그동안 미국 외교가 보여준 '이중성'의 벽을 깨기 위한 일단의 노력은 '평가'받고 있다. 라이스는 이집트가 대표적인 반정부 정치 지도자를 체포하자 이집트 방문을 그날로 취소해 버렸다. 그녀는 레바논의 군부가 오는 5월의 선거에서 영향력을 확대시킬 것이라는 것을 알고 레바논 군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레바논 방문일정도 변경했다.

독단적 리더십...아시아-아랍 사정 어두운 것도 약점

▲ 2004년 4월 <타임>표지로 실린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라이스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그녀가 전문가들의 조언 없이 회의를 소집하고 혼자 행동하기를 좋아하는 등 독단적 성격의 소유자이며, 자신과 색깔이 다른 사람을 용납하지 않는 등 편협한 면이 있다고 말한다.

국무성의 한 관리는 최근 <뉴욕타임스>에서 "'프리랜서 스타일'의 존 볼튼이 만약 국무부장관에 임명되었더라면 라이스의 허락 없이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면서 "라이스는 강력한 통제형 스타일의 리더"라고 말했다.

외교 관측통들은 교수시절부터 유럽통으로 알려진 라이스가 얽혀 있는 아시아와 아랍문제에 대해 얼마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해 봄 의회 청문회에서 9·11 테러 사건에 대한 책임소재 공방이 벌어졌을 때, 미 주요 언론은 미 정보기관의 오류와 더불어 안보 담당 총수인 라이스의 책임을 지적하고 나서기도 했다.

지난해 4월 1일자 <워싱턴 포스트>는 9·11사태 전 라이스의 연설문 초록 분석에서 "라이스는 미국에 직접 위협이 되는 알 카에다나 오사마 빈 라덴 또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었다"면서 아랍문제에 정통하지 못한 라이스 안보보좌관 등 부시 행정부의 막료들이 미사일 방어계획에만 집중한 것도 테러를 사전에 막지 못한 원인중 하나라고 지적한 바 있다.

외교의 귀재로 불렸던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라이스에 대해 타임지에 "아직 경험하지 못한 외교적 과제를 잔뜩 떠맡은 학생에 불과하다"며 "이제 그녀는 겨우 첫 장면에 등장해 액션을 보이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 가 봐야 성공과 실패를 가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스 vs. 힐러리 클린턴?

현재 워싱턴 정가와 미국 언론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라이스의 승승장구의 종착지가 어디일지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미 언론은 라이스가 안보 보좌관으로 활약하던 당시부터 라이스의 '2008년 대권도전' 가능성을 점쳐왔으며, 그녀의 활약이 눈부실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자 이에 대한 예측이 더욱 무성해 지고 있다.

이 같은 예측이 나오고 있는 이유중 하나는, 지난 수년간 공화당과의 파워게임에서 계속 밀려 온 민주당이 인기 상한가를 유지하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을 차기 대권후보로 내세울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지난 대선전이 시작되기 전 여론조사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존 케리와 리버맨 등 민주당의 유력 후보들을 크게 앞지른 적이 있을 정도로 민주당에 여전히 유효한 '빅카드'로 인정되고 있으며, 반사적으로 라이스도 함께 떠오르고 있는 형국이다.

▲ 라이스의 2008년 미 대선출마를 지지하는 사이트 'http://www.rice2008.com'
이미 라이스의 2008년 대권도전을 지지하고 있는 사이트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그 가운데 'www.rice2008.com'같은 사이트는 "라이스는 영리하고 온정적이고 단호하며 국제외교에 뛰어난 인물"이라며 "여성들과 소수민족의 표를 얻어 압도적으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을 물리칠 수 있는 사람은 라이스 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평론가 존 베르시아는 지난달 31일 <올랜도 센티널>지에 기고한 '클린턴 대 라이스?'(Clinton vs. Rice?) 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현재 라이스는 2008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우주적인 신뢰도를 쌓아가고 있다"면서 "만약 힐러리 클린턴이 2008년에 민주당 후보로 나서는 경우, 이에 대한 대항마로 공화당은 대중적 인기가 있는 콜린 파월이나 강력한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라이스를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보았다.

덧붙이는 글 | koreaweeklyfl.com(코리아 위클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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