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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BCTV화면 캡처
4월 9일 12시 30분(현지시간), 35년간 불멸의 사랑과 불륜 사이에서 방황했던 영국 왕세자 찰스(56)와 그의 연인 카밀라(57)가 드디어 결혼에 골인했다.

전 왕세자비 다이애나의 그림자와 많은 영국인들의 질타 속에 추진됐던 이들의 결혼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로 당초 예정보다 하루를 늦춰 진행됐다.

결혼 발표, 이어진 각종 반대들

지난달 10일, 찰스 왕세자의 집무실 클라렌스 하우스는 찰스와 카밀라의 결혼을 전격 발표했다. 그러나 대다수 영국인들과 언론들은 둘의 표정에 찬물을 끼얹었다. 찰스와의 힘든 결혼 생활 끝에 비명횡사한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에 대한 영국인들의 사랑 때문이었다. 많은 영국인들은 지금도 찰스와 카밀라의 애매모호했던 관계가 궁극적으로 다이애나의 비극을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한다.

▲ 결혼식을 마친 후 시청에서 나온 찰스와 카밀라. 주변에 많은 인파가 몰려있다.
ⓒ BBCTV화면 캡처
결혼 발표 직후, 찰스와 카밀라는 온갖 비난과 조롱 속에 휩싸였을 뿐만 아니라 결혼식과 관련된 각종 반대에 부딪혔다. 왕실 결혼식을 민간 결혼 방식으로 치르는 게 위법은 아닌지, 여왕 부처가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은 옳은지, 왕위 계승자와 전 남편이 살아있는 이혼녀와의 결혼이 성공회 관습에 위배되지 않는지, 찰스가 왕위와 카밀라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건 아닌지, 카밀라가 왕비 지위에 오를 수 있을지 등등.

이런 와중에 결혼식을 거행할 장소도 윈저 성에서 윈저 길드홀(시청)로 등급이 격하되었으며, 교황의 서거로 결혼 날짜도 늦춰야 했다. 왕실의 성에서는 민간 결혼식을 할 수가 없었고, 금요일 오전에 행해진 교황의 장례식에 켄터베리 대주교와 하객들은 물론, 신랑인 찰스 왕세자 본인도 참석해야 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결혼식과는 확연히 달랐던 두 번째 결혼식

▲ 성 조지 교회에 나란히 선 찰스와 카밀라
ⓒ BBCTV화면 캡처
찰스의 두 번째 결혼식은 첫 번째 결혼식과는 비교가 안 되는 규모다. 이전의 결혼식은 3500여명의 세계 고위층 인사들을 모시고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 왕실혼으로 성대하게 거행된 반면, 이번 결혼식은 일반 민간인들과 마찬가지로 윈저 시청에서 친지들과 지인들 몇몇만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게 치러졌다.

BBC는 생방송을 통해 12시 결혼식을 위해 시청에 도착하는 찰스와 카밀라 및 몇몇 하객들의 모습만 담았을 뿐, 12시30분부터 시작된 20분간의 결혼식은 중계하지 않았다. 방송은 결혼식 대신 여왕 부처와 800여명의 고위층 인사들이 참석한 2시 반부터의 윈저성 성 조지 교회 축복예배를 3시30분까지 생방송으로 중계했다.

이런 모든 면을 감안했을 때, 지난 다이아나-찰스의 결혼식이 세간의 부러움을 살만한 동화 속 결혼식이었다면 카밀라-찰스의 결혼식은 TV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결혼식이었다. 실제로 영국 언론들은 그동안 카밀라-찰스의 결혼식을 위엄이 사라진 'TV 드라마 결혼식(Soap Opera Wedding)'이라고 비아냥거려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혼식에도 멋져 보이는 면은 있다. 그간의 속사정들을 전혀 감안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찰스와 카밀라의 사랑을 '황혼의 로맨스'로만 본다면, 그들의 결혼식은 감탄의 대상이다. 여러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한 감격적이고 아름다운 50대 후반의 사랑이란 면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 켄터베리 대주교 주관으로 열린 예배에서 축복을 받기 위해 무릎을 꿇은 찰스와 카밀라.
ⓒ BBCTV화면 캡처
두 사람의 결혼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영국인들은 "거창하고 화려한 왕실 결혼보다 이번 민간 방식의 결혼이 오히려 더 좋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보통 사람들처럼 수수하게 치러진 이번 결혼 때문에 일반인들이 왕실을 더 친근하게 느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윈저성 외부에서 대형 화면으로 결혼식을 지켜 본 2만여 명의 시민들은 대부분 찰스와 카밀라의 결혼을 축복했으며 특별한 불상사는 없었다. 모든 행사가 끝난 후 찰스와 카밀라는 스코틀랜드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논란 속에서 치러진 결혼식

결혼식 전부터 논란거리였던 사안은 왕실이 카밀라를 왕비로 호칭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부분이다. 법적으로는 카밀라가 왕비가 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카밀라는 "왕비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지만 이에 대한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 여왕 부처.
ⓒ BBCTV화면 캡처
예기치 않게 결혼식이 하루 연기된 탓에 윈저 시청에서 토요일을 치른 또다른 세 쌍도 엉겁결에 스포트라이트를 함께 받았다. 찰스는 이들의 결혼식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12시 30분으로 시간을 잡았으며, 클라렌스 하우스는 이들 세 쌍에게 축하 메시지도 띄웠다는 후문이다.

결혼식에 참석한 찰스와 카밀라의 두 아들도 화제다. 영국에서는 신랑, 신부가 각기 결혼식 증인을 내세워야 하는데, 이 증인을 두 사람의 아들들이 섰다. 찰스의 증인으로는 찰스와 전 왕세자비 다이애나의 큰 아들인 윌리엄 왕자가, 카밀라의 증인으로는 카밀라와 전 남편 앤드류의 아들인 톰 파커-불스가 섰다

영국 국교회의 켄터베리 대주교의 집전으로 이루어진 축복/헌신 예배에서 찰스와 카밀라는 자신들이 저지른 과거의 죄들(manifold sins)에 대해 참회했다고 한다. 한편, 예배 후 만찬에서 여왕은 "내 아들이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집에 왔다"라는 말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만일에 발생할지도 모를 불상사에 대비하여 만 5천명의 병력을 배치해서 특급 경호작전을 펼쳤다. 카밀라의 드레스도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다. 결혼식에서 카밀라는 정식 웨딩드레스를 입지 않았지만, 웨딩드레스보다 더 품위가 돋보이는 아이보리색 드레스를 입었다고 패션전문가들은 말했다.

왕세자를 얻은 카밀라, 영국민들의 마음도 얻을 수 있을까

▲ <더 타임스> 결혼식 보도 기사.
이번 결혼을 둘러싸고 영국인들은 두 파로 갈렸다. 찰스 왕세자와 카밀라 콘월 공작부인의 결혼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이를 국가적 수치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결혼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카밀라의 왕비 호칭은 물론, 더 나아가 찰스의 왕위 계승도 반대하고 있다.

현재 BBC 뉴스 인터넷 판은 시민들의 견해를 모아 게재중인데 이 내용이 극과 극이다. 결혼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찰스 왕세자는 왕위와 카밀라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영국 왕실은 조롱거리가 되었다" "결혼은 허락되서는 안되는 거였다. 차라리 공화제를 하자"는 등의 원색적 비판들을 쏟아내고 있다.

결혼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예전엔 찰스와 카밀라가 미웠지만,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행복을 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의 오랜 우정과 사랑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다이애나와의 결혼생활로 불행했던 찰스가 카밀라와는 행복하길 바란다" "우아한 카밀라의 모습이 멋있다" 등의 칭찬과 축하를 아끼지 않고 있다.

찰스와 카밀라를 둘러싼 논란은 결혼식 이후에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9일자 <가디언>의 기사제목은 영국의 상황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왕세자를 얻은 카밀라, 영국민들의 마음도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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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영국을 '위한' 왕이 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결혼에 대한 영국인들의 다양한 견해들은 http://news.bbc.co.uk/1/hi/talking_point/4424897.stm 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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