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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 무상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의 국가의료제도(NHS)가 의료체계의 계급화, 오랜 진료대기 시간 등으로 ‘애물단지’화 됐다는 비판을 받았던 영국의료체계가 이번에는 또다른 의료사건으로 시끄러워졌다.

▲ <더 타임스> 3월 23일자 기사. 엄마와 사망한 신생아의 사진이 크게 실려 있다
병원에서 신생아 한 명이 태어난 지 이틀(36시간)만에 돌연 사망한 것. 올 2월 영국 입스위치(Ipswich)에서 발생했던 이 신생아 사망사건은 정밀조사 결과 MRSA(메티실린-저항성 황색포도상구균)라는 세균감염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MRSA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슈퍼 박테리아'로 알려져 있는 MRSA(Methicillin-Resistant Staphylococcus Aureus)는 세칭 '초강력 균(Super bug)'으로도 불린다. 이 세균이 초강력이란 별명을 갖게 된 이유는 항생제에 강한 저항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 MRSA라는 세균에 감염되어 특정 병이 생기면 웬만한 항생제를 먹어도 쉽게 치료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 세균이 가장 많이 득실대는 곳이 병원이라는 것이다. 병원 외 지역에서도 발견된다고는 하지만, MRSA는 현대 의학이 각종 항생제를 동원하여 여러 병균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또 항생제가 남용되는 현실에서 출현한 부작용이다. 현재 MRSA는 전 세계 병원에 널리 퍼져 있는 병원감염 세균 중 가장 위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MRSA란?
1961년 영국에서 처음 발견돼

페니실린 내성을 가진 세균(박테리아)에서 발전된 MRSA는 1961년에 영국에서 최초로 발견됐다. 이 세균은 메티실린에 내성을 가지면서 더욱 강력해진 뒤 그 이후 변종들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최근에는 사람이 애완동물에게 세균을 전염시킨 경우들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 MRSA는 동물과 인간을 구별하지 않고 전염되고 있는 양상까지 띄는 셈이다.

현재 MRSA 치료에는 반코마이신이라 불리는 항생제가 쓰이고 있으나 MRSA 변종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어 완전한 치유책은 없는 상황이다.

일부 의료인들은 MRSA가 항생제에 내성을 키워나가는 세균이기 때문에 항생제 치료가 답이 될 수 없다며 마늘 추출물을 이용한 약품이나 구더기 자연요법(상처 부위에 구더기를 올려 놓는)등도 연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김성수
병원감염이란 "병원에 오기 전에는 감염되지 않았던 사람이 병원 환경에 노출되었다가 특정 미생물 및 세균에 의해 감염되는 상황"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병원감염은 병원 내 환자는 물론 의료인, 직원, 병원 방문객까지 모두 대상이 된다.

보균자와의 신체 접촉으로 전파되는 MRSA는 보통 피부감염 정도에서 멈추지만, 심한 경우에는 폐렴이나 패혈증 같은 큰 병으로까지 확대된다. 전문가들은 "노약자나 병으로 인해 면역력이 저하된 사람들, 어린아이들에게는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는 아주 치명적인 감염"이라고 말하고 있다.

영국의 MRSA 실태는 '유럽 최악'

MRSA는 영국에서 수 년 전부터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문제다. 이는 재정부족과 낙후된 운영방식 등 여러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는 NHS(국가의료제도)와 함께 영국 의료 체계의 큰 구멍으로 간주되어 왔다. 미국이나 유럽 등 다른 나라들에서도 사회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몇 년 전부터 급격히 사례가 늘고 있는 영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영국 의회의 2000년 보고서는 "자기 안주, 질 낮은 처방, 항생제의 오용이 감염 내성의 확산을 불러 일으켰다"고 영국 상황을 진단하고 있다. 또 병원의 부족한 입원실 침대 숫자와 많은 환자 처리량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

▲ <비비씨(BBC) 뉴스> 2000년 2월 17일 기사. 5년 전부터 영국은 MRSA를 포함한 병원감염으로 연간 5000여명씩 사망하고 있다.
올해 초 영국 보건부(Department of Health)는 영국내 병원감염이 2001년~2002년 1만7933명에서 2003년~2004년 1만9311명으로 8% 증가했는데, 이중 MRSA가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유럽 최악의 수치라고 발표했다. 영국 보건보호청(Health Protection Agency)은 2003년 4월부터 2004년 3월까지 1년 새 잉글랜드에서만 MRSA 환자가 7384명에서 7647명으로 3.6%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또 회계검사원(National Audit Office)은 2004년 7월, MRSA를 포함한 병원감염으로 영국 전역에서 매년 5000여명 정도가 생명을 잃고 있다고 보고했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시 스톱힐 병원의 도날드 모리슨 박사는 "최근 MRSA 변종인 CA-MRSA가 위협이 되는 가운데 새로운 종류를 다섯 개나 발견했다"고 밝혔다.

유럽 주요나라의 전체 감염에서 MRSA가 차지하는 비율

덴마크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독일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그리스

영국

1%

1%

11%

19%

23%

33%

38%

33%

44%

44%

ⓒ European Antimicrobial Resistance Surveillance Systems data 2002
이런 상황이니 생후 이틀 만에 사망한 이번 신생아의 비극은 이미 어느 정도 예정되어 있던 셈이다.

<더 타임스> 23일자는 "그레이트 오몬드 아동병원(Great Ormond Street Children’s Hospital)이 이 사건을 조사한 결과, 아이가 MRSA 감염으로 사망했다는 것을 알게 된 아이의 어머니 글리니스와 가족들은 깊은 실의의 늪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아이의 할머니인 케이티 여사는 "NHS 병원에서 아이가 MRSA로 죽었다.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우리는 다른 가족들이 우리가 겪은 고통 속에 빠지기를 원치 않는다. 아이 엄마는 아이의 옷이나 장난감 등 많은 걸 준비했었다"고 울부짖었다. 이 일로 케이티 여사는 그간 NHS 병원에서 해왔던 간병인 일도 그만두었다.

<더 타임스>는 "MRSA가 전국 단위로 조사되기 시작된 이래 최초로 이번 달에 최저 수치를 기록했지만, 2003년 MRSA 발생건수를 종합한 결과 잉글랜드와 웨일즈에서는 4년 새 MRSA 감염 관련 사망이 두 배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병원감염으로 죽다니...! 근본대책을 세워달라

▲ MRSA 관련 각종 정보를 일반인들에게도 쉽게 자세히 소개하고 있는 BBC 방송국의 웹 사이트
영국인들은 이번 MRSA 감염 신생아 사망 사건에 당황해 하고 있다. "신생아 사망 사건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라고 하는 영국인도 있지만 대부분 이런 상황을 걱정하는 눈치다. 한 영국인은 "NHS 문제로 오랫동안 대기한 후,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병원감염으로 인해 죽게 된다면 이는 정말 슬픈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바쓰 대학교의 MRSA 전문가 마크 엔라잇은 3월 3일자 <가디언>지를 통해 "감염을 억제하기 위한 통제 노력도 중요하지만, MRSA 자체와 감염경로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네덜란드 의료인들의 발본색원(search and destory) 작업을 예로 들면서 MRSA는 의료 관계자 모두의 책임이라고 덧붙였다.

의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한 영국인 학생은 "인류가 항생제를 사용해서 병균과 싸워온 지 오래되었으므로, MRSA 자체를 아예 없애버리는 것은 쉽지 않은 만큼 의료인들과 환자들 모두 MRSA를 감안해서 위생과 소독에 대한 개념을 더욱 확실하게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병원 감염 전문가들 또한 "의료인들은 환자 진료와 처치 전후로 항상 손을 깨끗하게 씻어야 하며, 철저하게 소독된 의료기구와 가운 등을 준비해 사용해야 한다"며 병원 측에 보다 철저한 예방을 당부하고 있다.

▲ 보수당의 웹 사이트. MRSA 문제도 노동당 실정 공격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한편, 우스꽝스런 블레어의 사진은 조롱문화 및 애교(?)섞인 네거티브 캠페인에 익숙한 영국의 정치현실을 잘 보여준다.
MRSA로 인한 신생아 사망사건은 총선을 불과 한달 여 앞둔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보수당은 "노동당이 8년 집권기간 동안 초강력 세균 문화를 만들어 냈다"며 블레어 수상에게 직격탄을 날리고 있는 중이다. 특히 몇 년 전 장모를 MRSA 감염으로 잃은 보수당의 마이클 하워드 대표는 사망한 신생아 유족들에게 특별한 애도를 표하기도 했다. 또 자유민주당의 찰스 케네디 대표는 "환자가 병원 문을 들어서기 전에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라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노동당 블레어 수상은 "MRSA는 영국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이며 NHS의 예산 증액으로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BBC뉴스 인터넷 판 25일자는 "영국 병원은 대부분 신생아 사망사건과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는 위험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강도 높은 경고를 내보냈다. 또 같은 날 <데일리 메일>은 "개발도상국에서도 MRSA 감염이 위험수위에 올라 있다"며 전 세계가 병원감염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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