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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제 폐지는 사회 전반의 성차별 문화에 많은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림은 한국여성단체연합의 '평등가족 캠페인'.
ⓒ 한국여성단체연합
@3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호주제 폐지를 뼈대로 한 민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본회의장 앞에서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여성단체 관계자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이를 반겼다. 지난 1958년 신민법 제정 이후 지금까지 반세기에 걸친 민법개정운동이 마침내 결실을 보는 순간이었다.

이 순간을 위해 애쓴 사람들은 비단 ‘여성단체’ 사람 들뿐만은 아니었다. 예의 ‘여성’뿐만도 아니었다. 호주제 폐지는 이 제도 때문에 근 50년 동안이나 부당하게 차별받은 모든 ‘소수자’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손가정’이란 말 자체에서 먼저 불손한 혐의가 엿보이듯, 호주제는 ‘다른 이’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강화하는 제도였다.

이번의 민법 개정안 통과는 결혼과 혈연으로 이뤄진 가족만을 ‘정상’으로 취급하는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를 현실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한부모 가정, 소년소녀 가장 가정, 입양가정, 재혼가정, 동거가정, 독신 등 수많은 사람들이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마음의 부담과 차별적 시선을 받았다. 그리고 호주제는 이런 부당한 차별이나 편견을 대대로 재생산했다. 이것이 바로 호주제 폐지를 주장한 이들의 공통적인 문제인식이었다.

권해효, 홍석천, 문소리, 김미화…

특히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연예인들의 홍보 활동은 호주제 폐지 운동의 결정적인 기폭제가 됐다. 탤런트 권해효 씨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각종 집회의 사회를 비롯하여 대학 특강, 길거리 특강, 국회 앞 1인 시위, 남성 국회의원들의 호주제 폐지 지지 기자회견 사회까지 기꺼이 맡았다. 그는 호주제에 대한 논란을 두고 “호주제 폐지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이라고 사람들을 설득했다.

여기엔 자신의 경험담도 한몫 했다. 그는 “아이가 태어나 출생신고를 하러 갔다가 내 본적과 아내의 본적을 같이 적었더니 담당 공무원이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보더라”며 “아내와 나는 당연히 서로 본적지가 다른데 왜 결혼을 했다고 아내가 내 호적으로 들어와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폐지의 필요성을 힘주어 말했다.

민법 개정에 힘을 보탠 연예인은 또 있다. 배우 홍석천씨. 그 역시 호주제 폐지를 주제로 거리특강을 하며 어머니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제 어머니는 딸만 셋을 낳았다는 이유로 소박을 맞았습니다. 그러다 제가 태어나는 바람에 어머니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실 수 있었습니다. 단지 아들 하나 때문에 어머니는 그 굴곡진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바로 호주제 때문입니다.”

홍씨와 함께 호주제 폐지 거리홍보에 나선 영화배우 문소리씨는 “제 이름은 문씨와 이씨 사이에 태어난 작은 아이라는 뜻으로 다행히 부모님의 성이 다 들어가 있다”고 소개한 뒤 “영화 '바람난 가족'을 촬영하면서 호주제가 이혼·재혼 여성에게 커다란 고통을 주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호주제는 민주적인 가정을 이루는 데 걸림돌이 되는 치욕스러운 제도”라고 주장했다.  

개그우먼 김미화씨는 그 자신이 호주제의 엄청난 피해자다. 그는 2003년 여성단체연합이 연 ‘호주제 폐지를 지지하는 문화예술인 선언’에 참석한 뒤 한 기자회견에서 “나는 김미화가 아니라 박미화였다”고 ‘커밍아웃’했다. 그는 친아버지가 박씨였고, 초등학교 2년 때까지 호적에 박미화로 등재돼 있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뒤에 어머니의 성을 따라 다시 김씨로 성씨를 바꾸었지만 어린 시절 받은 상처가 적지 않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가 태어났을 때 호적상 어머니는 친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의 부인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호주제로 인한 그의 피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그는 이혼소송을 내며 호주제에 다시 한 번 발목 잡혔다. 지난해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이혼을 결심하고 아이들을 내 호적에 올리려고 알아보니 입양이 아니면 올릴 수가 없었다”면서 “호주제는 반드시 폐지돼야 하고, 이를 위해 노력할 것이고,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수많은 여성들이 이런 제도 때문에 이혼을 망설이고,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미디어오늘, 2004.5.)고 괴로운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노란손수건'의 박정란 작가와 김종창 피디

호주제에 따르면 이혼한 여성은 아이를 데리고 살더라도 혈연관계를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아나운서 백지연씨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는 3년 전 재혼했지만 아이는 여전히 전 남편의 성을 따라야 했으며 그와 그의 아들은 현재 호적법상 ‘동거인’일 뿐이다. 어머니와 자식의 법적 관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몇 년 전 여성단체연합의 제의로 호주제 폐지 홍보대사를 맡으며 호주제 폐지에 목소리를 더했다. 최근엔 “정치적 활동처럼 비칠까 봐 홍보대사 일을 망설였지만, 호주제 폐지는 원래 내 신념이었다”(조선일보, 2005.3)고 밝히기까지 했다.

연예인뿐만 아니라 방송작가와 프로듀서들도 호주제 폐지라는 ‘대세’에 동참했다. 2003년 KBS 일일드라마 '노란손수건'의 박정란 작가와 김종창 피디, 두 사람은 여성부의 남녀평등 방송상 대통령상을 받으며 호주제 폐지 여론몰이에 한몫 했다. 비혼모의 사랑과 갈등을 다룬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 비혼모는 아이의 아버지가 아닌 새로운 남자를 만나 어렵게 가정을 꾸미려 하지만 호주제의 걸림돌에 맞닥뜨려 어려움을 겪는다. 이들의 현실적이고 절절한 사랑 앞에 많은 시청자들이 눈시울을 적셨다. 작가 박정란 씨는 대통령상 수상소감을 밝히며 “남녀의 사랑과 비혼모 문제를 다루다 보니 자연스럽게 호주제 문제를 건드리게 됐다”고 말했다. 그만큼 호주제는 현실의 가족관계와 인간관계를 반영하지 못하는 구시대적 ‘국가관리 인간대장’이었던 셈이다.

그 밖에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 윤후정 이화여대 이사장, 박영숙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황석영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장, 가수 패티 김 씨도 호주제 폐지를 위한 공동선언문에 이름을 올렸다.

김주수·김상용, 부자지간 교수의 활동

법학자와 법조인들도 호주제의 위헌성을 경고하긴 마찬가지였다. 부자지간인 김주수 경희대 법대 객원교수와 김상용 부산대 법대 교수는 대를 이어 호주제 폐지의 정당성을 학문적으로 증명했다. 김주수 교수에게 호주제 폐지는 평생의 바람이었다. 그는 지난 1957년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논문을 최초로 발표해 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 이태영 박사와 함께 민법 개정에 앞장섰다. 아들 김상용 교수는 법무부 가족법개정특별분과위원회 위원과 여성부 정책자문위원을 맡아 민법 개정안을 손질했다. 옷 로비 사건 특별검사로 이름을 날린 최병모 변호사도 호주제 폐지 홍보대사와 호주제 위헌 소송을 주도하며 호주제 폐지에 힘을 보탰다.

▲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은 2000년 호주제 위헌소송을 제안한 주인공이었다.
ⓒ 인권위 김윤섭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역시 숨은 공로자. 그는 이석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과 함께 지난 2000년 호주제 위헌 소송을 제안하고 결론을 이끌어낸 주인공이다. 두 변호사의 바통을 이어받은 민변의 조숙현, 김수정, 진선미, 이정희 변호사 등이 호주제 위헌 소송을 책임지고 진행해 결국 지난 2월 헌법재판소는 호주제의 위헌성을 인정하게 된다. 이들 변호사들은 때론 당당함으로, 때론 철두철미함으로 무장하고 호주제 폐지를 이끌어 내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헌법재판소 결정이 내려진 날, 진선미 변호사는 “가장 힘든 것은 친정어머니를 설득하는 일이었다”면서 웃었다.

“남편과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지금껏 10년 넘게 살았어요. 처음 1~2년 동안은 단순히 게을러서 신고를 안 한 거였는데, 제가 호주제 폐지를 위한 법적 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남편하고 농담 삼아 ‘호주제 폐지 될 때까지 혼인신고 하지 말자’한 것이 오늘까지 왔어요.” (이프 2005. 봄호)

최재천, “생물학적인 족보는 여성의 혈통”

학자들은 호주제 폐지를 학문적으로 증명했다. 서울대 법대 양현아 교수 역시 지난해 호주제 관련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공개 변론에 출석해 “여성과 남성이 생리적인 차이로 가구 내 상이한 지위를 갖고 포괄적인 성차별을 당하는 것은 헌법정신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며 호주제 폐지에 손을 들어 주었다. 헌법재판소의 공판에서 역할을 톡톡히 한 또 한 명의 ‘스타’가 있다. 바로 최재천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그는 호주제 위헌 여부를 가리는 마지막 공개 변론에 나가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위헌론 쪽 참고인으로 나온 그는 재판정에서 “부계혈통주의는 생물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진술해 호주제 폐지의 과학적 근거를 내놓았다. 이에 그치지 않고 “우리 족보와 반대로 생물학적인 족보는 암컷, 즉 여성의 혈통만을 기록한다”고 말해 호주제에 미련을 못 버린 사람들을 경악케 했다. 최 교수는 “호주제 폐지는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환호성을 질러야 할 일”이라며 “호주가 되어 부당한 짐을 지고 살던 남자들이 부담을 벗어 버리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료계도 호주제 폐지의 당위성을 저버리지 않았다. 1957년부터 수십 년 동안 계속된 호주제 폐지 주장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하다가 여아 낙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 한의사 고은광순 씨의 활동으로 다시 불이 붙게 된다. 고은광순 씨는 1998년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을 이끌면서 호주제 폐지에 앞장섰다. 그때부터 최근까지 7년 동안 ‘호주제 폐지’라고 적은 리본을 가슴에서 뗀 적이 하루도 없다.

“뱃속 아이가 여자라서 낙태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눈물이 줄줄 흘러요. 가끔은 누가 내 몸에 칩을 만들어서 넣어 둔 게 아닐까 생각해요. 호주제 폐지운동은 제가 잘나서 하는 게 아니라 누가 시켜서 하는 일 같습니다.”

'살에게 말을 걸어봐', '꽃피는 자궁' 등의 저술을 통해 여성 몸의 중요성을 피력해 온 한의사 이유명호 씨 역시 호주제 폐지운동에 동참한 한의사. “자연분만을 해도, 제왕절개를 해도, 500에서 1000리터의 피를 흘려요. 생리만 해도 여자는 평생 피를 흘리며 사는 셈이지요. 그렇게 피로 낳고 제 살로 키워 세상에 내보낸 아이에게 왜 아버지의 성과 본을 강요하는지 모르겠어요. 단연 어머니 피를 받아 세상에 나간 건데 혈통이니 혈육이니 하면서 남자 집안만을 따르게 한단 말이에요.”

국회에 입성한 여성 국회의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남성 국회의원들 역시 호주제 폐지에 앞장섰다. 그 가운데 호주제 폐지를 당론으로 정해 밀어붙인 민주노동당의 노회찬 의원은 특히 눈에 띄는 ‘일등 공신’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인 그는 열린우리당 이은영 의원과 함께 법사위 소위원회와 전체 회의에서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는 의원들의 목소리를 압도했다. “고유의 전통인 호주제를 유엔 문화유산으로 등록해야 한다”거나 “여성단체들에 밀려 호주제 폐지를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올 때마다 그는 “등록은 등록대로 하시라”, “호주에도 없는 호주제는 없애자”는 등의 기지와 농담으로 ‘전세’를 반전시켰다.

독자적으로 팀을 꾸려 호주제에 대해 공부하는 한편,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호주제 폐지가 확정된 뒤 그는 “이제 목적별(사건별) 신분등록부 제도를 골자로 하는 새로운 신분등록법을 준비하려 한다”며 “토론회와 공청회를 통해 논의되었던 대안을 토대로 사회인권단체들과의 밀접한 의견교환을 통해 그 안을 구체화하는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며 현재 협의 중인 민법 개정안보다 더욱 진보적이고 개인의 존엄을 고려한 신분등록제를 고려중이라고 밝혔다.

노회찬, “호주에도 없는 호주제는 없애자”

하지만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던 이들이 갖는 사회적 권위나 영향력 덕분에 폐지 반대를 주장하는 여론의 뭇매를 피해간 건 아니었다. 김주수 경희대 교수는 “매국노는 이 땅을 떠나라”는 등의 협박전화와 편지에 시달리며 폭행을 당할 뻔하기도 했다. 1977년에는 재직 중이던 성균관대에 유림들이 투서를 하고 해고를 종용하는 한편 강연과 집필을 막는 바람에 대만으로 떠났다가 다시 1981년 연세대 교수로 임용되기도 했다.

최재천 교수도 다르지 않았다.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는 남성들이 연구실에 전화를 걸고, e메일로 욕설과 항의를 쉼 없이 퍼부어 댔다. 그들의 ‘공격’으로 최 교수는 풀이 꺾이기는커녕, 오히려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시작은 지난 2000년 교육방송에서 ‘여성의 세기가 밝았다’란 주제로 모든 생물의 세계에서 주체가 암컷이라는 내용의 특강을 하고 있을 때부터였다. “욕설이 섞인 남자들의 전화가 수도 없이 걸려왔어요. 막말을 하는데, 아무리 차근차근 설명해도 제 말을 듣진 않고 욕설만 퍼부어요. 아, 이래서 문제가 되는구나 싶었죠. 그 뒤 여성들한테 전화가 오기 시작했어요. 엉엉 울면서. 사십 몇 년 동안 묵은 체증이 날아갔다는 얘기예요. 아, 이거 해야 되는구나 싶었죠.”

호주제는 인권의 문제다. 누구나 부당한 이유로 차별이나 억압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인간 권리’의 문제에 우리 사회는 결국 침묵하지 않았다. 시간은 헛되이 흐르지 않았다. 2008년, 이 구시대의 제도는 드디어 과거 속으로 사라질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인권> 3월호(3월 26일)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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