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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설명에 이렇게 적혀있다. "세상을 바꾼 경이로운 작은 책,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50년 뒤의 이야기. 그리고 생물학의 미래에 대한 거장들의 사색" 마이클 머피와 루크 오닐이라는 이들이 엮었고, 이상헌과 이한음이란 이들이 번역을 했다. 지호라는 출판사에서 펴냈고.

설명에서부터 대강은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은 에르빈 슈뢰딩거의 강연 "생명이란 무엇인가?"의 5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회의에서의 발표문들을 정리한 것으로, 1993년 9월에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있었던 논의들이다. 그 50년 전, 그러니까 43년에 슈뢰딩거는 전쟁을 피해서 아일랜드에 있었고, 당시 같은 학교에서 대중을 대상으로 세 차례의 강연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책이 이후에 출판되어 나온 것이었고.

아마도 학부 때였을 꺼다, 이 책(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말이다)을 읽은 게. 그러니 역시 대강 10년 전이겠지. 상당히 얇았다. 설명대로 작은 책이 맞다. 그 즈음에 과학철학에 대한 책도 좀 읽었었고, 생태주의 서적들도 찾아봤었는데, 지금보다 지식이나 이해력이 크게 낮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감수성의 측면에서는 좀 더 섬세했었을 것으로 기억한다.

무슨 말이냐면, 소위 생명 자체의 소중함이라는 테제에 대해서 지금보다는 다소 감성적으로 예민하게 대응을 했을 것 같다는 거다. 이처럼 당시의 나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 건 그 책이 상당히 불편했다는 기억 때문이다. 얇음과는 상관없는 난해함도 문제였지만, 한마디로 지독히도 기계론적인 생명관이 서술되어 있는 것을 보고, 도대체 왜 그 많은 생태이론가들이 이 책을 어느 정도 긍정적인 시각으로 서술하고 있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정보를 축적하고 보전하기 위해 필요한 물리량을 분자단위에서 헤아리고 있는 저자의 논의가 어이없어 보였고, 물리학의 기반에 대한 과도한 자긍심도 솔직히 고깝게 보였다. 슈뢰딩거는 DNA이중나선의 발견을 알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지금 소개하는 이 책의 여러 부분에서도 언급은 되지만, 그 분자수준에서의 선구적인 헤아림이 왓슨과 크릭의 DNA발견을 견인했다는 식으로 설명을 하기도 하는데, 오히려 그런 면에서 생명체를 기계적으로 바라보는 근대적 시각의 선구자로 슈뢰딩거가 더 강하게 각인된 건 아닌가 싶었다.

카프라, 북친, 장회익, 김지하 등등의 책들을 꽤 읽었기 때문인가? 기계론에 대해서 좋은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없다. (비록 장회익의 온생명론도 은근히 기계론적이라는 느낌으로 거부감을 꽤 느끼긴 하지만.) 그리고 또 하나 불만은, 이건 슈뢰딩거에 대한 것이 아니라 소위 생태론자들의 얄팍함에 대한 것이라고 해야 옳을 텐데, 슈뢰딩거가 이야기했다는 네겐트로피(네거티브 엔트로피)라는 개념에 대한 근거 없는 선호가 그들의 글에서 많이 언급되는 거였다.

제레미 리프킨 류의 엔트로피 논의가 또 생태주의에서 주요한 한 가닥이다 보니, 어찌 보면 염세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그런 논의에 약간이나마 제제를 가할 수 있는 논지를 제공하는 슈뢰딩거를 선호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 실체나 가능성에 대한 성찰이나 연구는 하지 않고, 그냥 아전인수 격으로 자기 유리한 논의만 짜 맞추는 것 같은 근본론자들에 대한 불만, 그게 슈뢰딩거에 덧씌워있었던 거라고도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선정적인 그 제목은 어느 측면에 - 생물학 물리학 그리고 철학 등등 - 서라도 본질이라는 것을 고민을 해본 이들에게는 그 매력을 상실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러다보니 이런 책도 나오게 되고 말이다. 이 책은 열 서넛의 학자들이 발표했던 11개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슈뢰딩거를 기념하는 학술대회여서 그런지, 제목만으로 봐서 짐작하는 것보다는 물리학자들의 참여가 많았다.

그리고 책의 논의수준이 매우 높게 느껴졌다. 실제로 높은 수준인지는 모르겠지만, 생물학-분자생물학-발생학 등에 무지하고, 양자역학-비평형열역학-혼돈이론 등에도 무지한 내가 읽기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구해보는데 도움을 준 사실 하나는, 그 저자들 중에 스티븐 제이 굴드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이다. 굴드는 첫 번째로 편집되어 있는 글의 저자다. 그는 슈뢰딩거에 대해서 별로 탐탁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의 글을 인용해보자면, "일반적으로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과학의 변치 않는 논리에 대해 탐구하는 시대를 초월한 논의로 지금까지 여겨져 왔다. 하지만 나는 그 반대로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과학 통일 운동'이라는 목표를 표현한 사회적 문헌으로, 모더니즘으로 알려진 좀 더 광범위한 세계관의 표현으로 읽을 것을 제안한다.”

나도 모더니즘 정신의 많은 부분에 갈채를 보낸다. 특히 낙관주의와 원리들의 통일성에 근거한 상호 이해가능성에 대한 공약을 성원한다. 그러나 이토록 아름다운 다양성을 지닌 세계에서 표준화를 강조한데 대해서는 개탄한다. 나는 최고로 추상화된 일반 법칙을 향한 추구의 기초가 되는 환원주의를 거부한다" 10년도 넘은 불편함이 아직까지 한켠에 남아있는 나에게, 굴드의 이 주장은 매우 통쾌한 것이었다. 언급했던 대로, 아마추어리즘 적으로 네겐트로피따위를 인용했던 어중이 생태주의자들은 이러한 경고를 가슴에 새기며 성찰을 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나름대로 여러 경험을 하고 난 지금의 내가 느끼는 환원주의에 대한 거부감의 가장 큰 원인은 그 단조로움에 있다. 내 학위논문과정 역시 나름대로 정석을 따르는 환원주의적 방법론의 결과였고, 부분 부분에 대한 조사였는데, 사실 그런 일들이 이제는 매우 지루하다. 아니, 그 방법론에 사로잡혀 스스로의 상상력이 옥죈다는 느낌이 답답하다. 최근에 들어서 자연과학적인,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학자의 업적으로써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결과를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일반적인 언론에 등장하는 기사들로부터는 그렇단 말이다. 하지만, 오히려 토픽성 기사로 등장하는 자연 자체의 급박한 변화나 돌연변이 같은 일들은 오히려 자연과 생명에 대한 일반인으로서의 그리고 어설프지만 자연과학자로서의 호기심을 더 동하게 한다. 이미 작고한 대학자 굴드도 이런 생각을 했나보다. "인과적 제일성에 대한 이런 믿음은 우리가 자연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범하는 광범위한 오류들의 발원지가 되는 점진주의적 신조를 확립시켰다."

첫 번째 실린 굴드의 글을 보면서 나름대로 고무됐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글들은 난해함의 수준이 더 높아서, 좀 힘들었다. 책을 다 본 후 생각해보니, 사실 굴드는 저자들 중에서 슈뢰딩거가 던진 주제에서 가장 거리가 먼 분야에 종사하는 학자였던 것이다. 발생론/존재론적인 주제가 슈뢰딩거의 것이라면, 진화생물학자 굴드는 형태로/기능론/상호작용론/역학의 대가일 테니까. 뭐, 그렇게 보면 굴드가 슈뢰딩거의 환원주의를 싫어하는 것도 당연할 듯하다. 하

여간,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슈뢰딩거 이후에 눈부시게 발전한 환원론적 과학의 결과들에 대한 고찰들이라 하겠다. 어렵긴 하고, 환원주의적이라고도 할 수는 있겠지만, 그리고 나 같은 놈이 가볍게 무시하기에는 저자들의 사색의 수준이 충분히 높고 또한 자유롭다. 정말 보기 드문 높은 추상수준의 고민들을 담은 글들이고, 과학교양도서라 하겠다. 역자의 말에 '한국에서는 이 책이 번역되기 어려울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작업을 했다는 부분이 있다. 여러 사람에게 추천할만한 책인 것임은 확실하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갈래로도 나눌 수는 있겠지만, 내 기억에 남는 주된 논의는 대략 다음과 같이 나뉘어 진다. 1. 생명의 기본을 이루는 분자구조의 탄생과 관련된 생물/물리학적인 논의, 2. 인간의식이나 이미 발생한 생명체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진화/적응에 대한 논의. 너무 대략적으로 나눈 것 같긴 한데 하여간 그렇다. 1번의 경우는 열역학과 분자생물학, 혼돈이론 등에 대한 이야기가 논의되고 있고, 2번의 경우는 진화론이나 정보이론, 그리고 슈뢰딩거 이후의 양자론 등도 이야기가 된다.

만프레드 아이겐이라는, 다소 우파적인 냄새가 강하게 나는 생물학자는 1번과 관련하여 이런 이야기를 했다. "언젠가 잘난 체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최초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즉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혹은 근대적인 용어로 표현해, 단백질이 먼저인가 핵산이 먼저인가, 기능이 먼저인가 정보가 먼저인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유전적 입법부이자 기능적 집행부를 포함하고 있는 RNA 세계가 이 딜레마의 탈출구를 제공할지도 모른다. 나는 최초의 RNA분자가 어떻게 세상에 등장했는지 아직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단백질이 먼저인가 핵산이 먼저인가. 이런 건 소수의 동업집단 내에서 통하는 유머처럼 들려 재미있었다. 하여간, 이 문장과 함께 1번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로부터 분자생물학의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이 없다는 사실, 지놈에 대한 분석이 다 되고 나서도 여전히 그럴 거라는 사실, 그리고 단백질이라는 놈과 핵산이라는 놈이 애초에 어떻게 형성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들, 그리고 DNA라는 놈이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반드시 개체의 발생이나 생장을 결정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이야기들이 쭉 적혀있다.

뭐, 이 논의들 자체가 이미 10년이 넘는 옛날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개괄적으로 현대 생물학의 한계지점과 도전지점에 대한 브리핑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글들이라 하겠다.

앞에서 언급한 2번과 관련하여, 스콧 켈슨과 헤르만 학켄이라는 이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현대 분자생물학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아니 아마도 그 때문이겠지만, 모든 생물학 분야에서 가장 큰 미해결 과제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그것은 복잡한 생명체가 어떻게 시공간적으로 조정을 거치는가 하는 것이다. …생명의 수수께끼는 분자생물학을 통해서 풀려왔다. 하지만 생명에는 세포 반응 화학 이상의 것이 있다.…가령 뇌에서 각각의 신경 세포는 생각하지도 냄새를 맡지도 활동을 하지도 기억을 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그것들은 서로 협력해서 시간적으로 응집된 집단을 만들어 우리가 인지기능이라고 부르는 것을 생성하는 듯하다. 생명체에서의 조정을 이해하려 할 때 본질적인 질문은 기본적인 상호 작용이 어떤 형태를 취하는지, 그것이 어떻게 나타나며 왜 그런 식으로 있는지 하는 것일 것이다."

역시나 매우 인상 깊은 문제제기였다. 지금의 내 존재가 가장 최초로 지구상에서 발생한(이게 사실이라면) 원시세포의 운동으로부터 결정된 것이라는 식의 지독한 결정론을 믿는 이들은 없겠지만, 그래도 그 사이에 알게 모르게 생물학적으로 결정론적인 작용이 있을 것이라고 은연중에 많이 생각을 하는 듯하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를 이루는 것은 내 몸을 이루는 세포들과 그 DNA만이 아니라는 것, 나라는 존재는 open system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생물학의 주요 주제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해준다. 이런 논의로부터 진화(세포수준에서 개체군, 그리고 의식까지)에 대한 여러 논의들이 발전하고 있다.

생물학에 문외한이어서 더욱 그렇겠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맞닥뜨리면, SF적인 상상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란 생각을 한다. 제임스 케이와 에릭 슈나이더는 "생태계 에너지학은 생태계를 질 높은 에너지를 안으로 퍼 올리는 열린계로 다룬다. 질 높은 에너지를 안으로 퍼 올리는 열린계는 평형에서 멀어질 수 있다.하지만 자연은 평형에서 멀어지면 저항을 한다. 따라서 열린계인 생태계는 가능할 때마다 조직화한 행동을 자발적으로 출현시켜 대응하며, 질 높은 에너지를 새로 출현하는 구조를 세우고 유지하는 데 소비한다. 즉 질 높은 에너지의 능력을 흩어놓아 계를 평형에서 더욱 멀어지게 한다. 이 자기 조직화 과정은 구성 요소들의 새로운 활동과 새로운 상호 작용과 전체 계가 출현함으로써 생기는 갑작스러운 변화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 내용은 어떻게 보면, 슈뢰딩거의 네겐트로피 논의를 진전시킨 것이라고도 하겠지만, 어떻게 보면 어떤 우주적인 힘이라는 관념을 설정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기'라는 개념이 떠오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불만은, 그러면 최초 생명발생시기의 균형과 불균형의 관계를 설명할 모델이 함께 제시되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그건 아마도 매우 어려운 문제일 것 같은데, 약간이나마 내 전공의 배경에서 이야기를 해보면, 이미 biosphere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연구되고 있는 기후학이라는 학문은 3~40억년전, biosphere가 없었던 지구의 기후에 대해서 충분한 설명을 할 수 있는 경험이 없다.

뭐 더 단순한 시스템이니 쉬울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는데, 그건 별로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단지 시간의 간격만이 아니라 알지 못하는 변수는 여러 개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꼭 기후학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생명발생 당시의 에너지, 엔트로피의 분포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까와 같은 다소 황당한 호기심이 들기도 했다.

황우석같은 인물과 언론의 천박한 철학으로 인해, 현대 생물학이면 모두 유전자를 가지고 작업을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만연해 있는 지금과 같은 시대에, 생명현상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접할 수 있는 아주 훌륭한 교양서였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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