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북한에 왔으니 북한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이미 온정봉사소의 봉사원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긴 했으나 계속 일을 해야 하는 그들을 붙잡고 오래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지요.

▲ 중국 심양 북한 식당의 북한 여성. 이들은 음식을 나르기도 하고 직접 연주와 노래를 합니다. 길게 대화하기는 곤란하지만 질문에 잘 응해 줍니다.
ⓒ 백유선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늘 궁금했습니다. 지난해 심양의 북한 식당에서 대화를 했던 북한 여성들에게서는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았었거든요.

산행 도중 만난 북한 여성 안내원은 넘어질 뻔한 저에게 "조심하세요"라며 걱정을 해주었습니다. 배려해 주는 마음이 고마워 인사를 건넸습니다.

"참 아름다우십니다."
"금강산에 오셨으니 예뻐 보이는 겁니다. 금강산의 아름다운 경치 속에 있으니 그렇게 보이시는 거예요."

너무나 금강산에 어울리는 그녀의 답변에 다음 질문을 잇지 못했습니다. 곁에 있던 나이 지긋한 북한 사람은 이 짧은 대화가 재미있었는지 웃으며 말했습니다.

"야, 너 좋겠다. 한턱내야 되겠는 걸."

▲ 아름다운 금강산
ⓒ 백유선


편안한 느낌을 준 잘 생긴 북한 청년

구룡폭포를 감상하고 기념사진 촬영을 부탁하다 우연히 북한의 젊은 안내원과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잘 생긴 외모에 올해 나이가 30세라는 이 안내원은 오랫동안 이곳에 근무해서인지 각계각층의 남한 사람들을 접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남한의 사정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호기심 많은 청년이었습니다.

국사교사인 제게는 남과 북의 역사가 어떤 점이 다른지 질문을 하더군요. 남한에서도 북한의 역사책을 볼 수가 있고 북한의 역사 연구 동향이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생각을 말할 수 있었습니다.

주로 서로의 다른 체제가 근현대사를 보는 방법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최근 사회주의계 독립운동가들의 서훈 문제가 제기되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남한에서도 아직은 사회주의 계열을 다루는 데 있어서 조심스러우며, 그 점은 북한도 마찬가지라는 지적을 했습니다. 북한에서 우익계열 독립운동가를 거의 다루지 않는 것과 같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대뜸 그렇지 않다며 반박을 했습니다. 어떤 우익을 말하느냐며 자기도 김일성 주석의 항일 혁명 역사만을 배운 것은 아니며, 상해 임시정부라든가 김좌진, 김규식, 정인보 등 우익인사들을 거명했습니다. 특히 평양 근처의 애국열사릉에는 우익인사들의 무덤이 많다면서, 북한에서 서술하는 역사가 편협되지 않다는 것을 말하려 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대화는 남북한의 경제 사정 등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을 소재로 계속되었습니다. '미국 문제'라든가 '김일성 주석의 항일 투쟁 문제'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조리 있게 자신의 주장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나름대로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기 위해 애쓰면서도, 가급적 남한 사람에게 체제의 감정을 싣지 않고 말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았습니다.

북한 경제가 어렵지 않느냐는 저의 말에, 그는 "아시는 것처럼 미국의 경제 제재가 가장 큰 어려움 중의 하나"라며 "그러나 우리는 굽히지 않고 잘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답했습니다. "앞으로 10여 년이면 우리도 많이 발전할 것"이라며 희망적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 구룡폭포의 북한 안내원이 찍어준 기념사진. 구룡폭포와 ‘미륵불’ 글씨 사이에 인물을 배치하여 구도가 아주 좋아 마음에 드는 사진입니다. 이 안내원은 사진을 아주 잘 찍습니다.
ⓒ 백유선

나이가 서른 살이 되었는데 장가 가야 하지 않느냐는 저의 질문에, 자신도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며 겸연쩍어하던 모습은 순수한 한 총각이었을 뿐입니다. 부모님의 권유로 여자 집을 자연스럽게 방문하여 선을 보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 금강산에 예쁜 여성 동무들이 많은데 여기서 잘 해보시지 그래요?"
"이곳의 여성 안내원들은 눈이 높습니다."

눈이 높으면 어떤 남자를 원하느냐고 물었더니, 군관이 가장 인기가 많다고 했습니다. 왜 그런지를 묻는 질문에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사명을 다하는 모습" 때문이 아니겠느냐며 자신의 군인 경력이 짧은 것이 아무래도 단점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로 보아 북한의 여성들은 '사상성'이 투철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점은 내려오면서 대화를 나눈 여성안내원에게서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대화 도중에 제가 근무하는 학교의 졸업생이 다가와 인사를 하고 예를 갖추는 모습을 본 그는 "선생님 인기가 많으신가 보네요"하며 웃는 얼굴로 말했습니다. 그 졸업생이 저에게 직접 배우지는 않았으나 잘 안다고 하면서 인사를 했거든요.

이처럼 농담도 할 줄 아는 그는 진지하게 대화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에게서 '경직된 사회주의 국가의 청년', '아마 선발되었을 사상이 투철한 사람'의 모습을 느끼기는 어려웠습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만 보았던 저의 생각이 오히려 경직되어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 역시 같은 민족으로 비록 다른 체제에 살지만 지극히 건강한 젊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일이 대화의 내용을 모두 전하지는 못하지만 그런 그의 모습에서 체제가 달라서 생긴 이질감보다는, 언제나 대화가 가능하고 토론이 어렵지 않은 한 민족, 같은 동포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처음 휴전선을 넘어 오면서 보았던 북한 군인의 경직된 자세나 경계심은 그와의 한 시간이 넘는 대화를 통해 말끔히 씻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서로 이름을 주고받고 나중에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며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느라 구룡폭포 앞에는 관광객 중에서 유일하게 저만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꼴찌로 내려오게 되었고 제가 내려오자 그곳의 모든 분들도 철수를 하였습니다.

여전히 순박함을 간직한 북한 처녀

내려오는 도중에는 비봉폭포 안내원으로 배치되어 있다가 철수하는 북한 여성과 대화를 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주차장까지 대화를 계속했으니 이 여성과도 한 시간 이상 대화를 하게 된 셈입니다.

약간 통통하면서도 예쁜 얼굴로 북한에서는 꽤 인기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고성읍에 집이 있다는 이 여성은 대학졸업 후 금강산에 근무한 지가 5년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 비봉폭포 전망대의 북한 안내 여성. 살색 옷에 털모자를 쓰고 사진 찍는 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 백유선

나이가 26세라는 이 여성에게 그럼 결혼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하더군요. 먼저 이야기를 나누었던 남성안내원에게서 북한에서는 보통 남자 30세, 여성 26세쯤이 결혼 적령기라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남자친구가 있느냐고 했더니, 자기의 남자친구는 군 제대 후 김책공대에 다니고 있다고 했습니다. "명문 대학에 다니는 것을 보니 남자친구가 공부를 잘했네요"라고 했더니 그렇다고 대답하며, 이제 1년만 다니면 졸업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는 학교가 평양에 있으니 평양에서 직장을 잡게 되면 그곳에서 살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그녀는 꽤 자신감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녀는 아버지가 의사, 어머니는 전업주부이고 자신은 무남독녀 외동딸이라고 했습니다. 남한에서의 의사의 사회적 지위를 말해주었더니, 자신의 아버지는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직업"으로 이곳에서도 신망이 두텁다고 했습니다. 이야기 중에 아빠라는 표현을 쓰더군요. "지금도 아빠라고 해요?"했더니, "아니요, 지금은 아버지라고 합니다"라며 쑥스러워했습니다.

무남독녀 외동딸인데 그럼 결혼 후에는 부모님은 누가 모시느냐고 물었습니다. "아직은 젊으셔서 괜찮습니다. 나중에는 제가 모셔야지요"라고 하더군요. 앞의 남성 안내원도 자신이 셋째 아들이지만 부모를 모시고 싶다고 했습니다. 남한과는 달리 아직 북한에는 전통적인 효의 관념이 더 강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부모를 모시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이들은 모두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제가 국사교사라고 했더니, "우리나라 사람은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며 자신도 관심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평양에 갔을 때 단군릉을 보았다며 국조 단군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한다는 자신의 역사관을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남한에서는 단군릉을 보는 견해가 북한과는 다르다고 했더니, "학자들 간에는 견해가 다를 수도 있겠지요"라며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또 아마도 학교 시절에 많이 배웠을 '김일성 주석의 항일 혁명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 여성은 남한 사람들에게 굳이 자신의 생각을 먼저 내세우려 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남한에서 역사 과목은 아무래도 입시제도 때문에 중요 과목이 아니라는 저의 설명에는, 역사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꽤 아쉬워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선생님의 역할이 참 중요합니다"라며 우회적으로 역사를 잘 알아야 한다는 자신의 견해를 강조했습니다.

▲ 구룡연코스 내려오는 길
ⓒ 백유선

원산에서 대학을 나왔다는 그녀는 학창시절에 물리 과목은 싫어하고 음악을 좋아했다고 했습니다. 자신 있게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있느냐는 저의 질문에 풍금은 잘 연주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원산으로까지 대학진학을 했으니 공부를 잘했겠습니다"라는 저의 말에는 미소로 답을 하는 겸손함을 보였습니다.

러시아에서 올해 8월에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날 수도 있을 거라는 신문 보도의 내용을 전해 주었더니 꽤 좋아하였습니다. 그녀는 "지금 우리처럼 이렇게 남과 북이 자주 만나 대화를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라며, 그러면 "통일의 길도 멀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앞의 청년도 그랬지만 통일 문제에 대해서는 꽤 적극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회주의 소련의 붕괴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그녀는 사회주의 '사상학습'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그것이 부족했기 때문에 소련이 붕괴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앞서 남성안내원이 북한 여성들은 군관을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실감이 났습니다. 그녀와의 대화에서 저와 의견을 달리하는 유일한 내용이 바로 사상학습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 부분만큼은 저의 반박에 지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매우 다정다감해 보이는 이 여성은 제가 눈길에 미끄러지려고 하면 얼른 손으로 팔을 잡고 조심하라며 걱정을 해주었습니다. 신발 끈이 풀어져 다시 묶으려 하면 기다려 주며 대화를 나눈 상대를 배려하는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마음으로나마 결혼 후 행복해지기를 바랐습니다.

주차장에 이르기까지 나누었던 대화를 통해서, 그녀 역시 언제나 어렵지 않게 대화할 수 있는 우리 동포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 겨울 금강산의 소나무. 우리 민족의 기상을 보여주는 소나무는 남북 어디에서나 다르지 않습니다.
ⓒ 백유선

대화를 나눈 두 남녀를 통해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작용하지 않는다면 통일은 멀지 않았다고 할 만큼 우리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화의 논조나 방향은 다소 다른 점이 있었지만 이렇게 기분 좋은 대화를 해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북한 총각, 북한 처녀와의 대화는 이번 금강산 여행 중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의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갈라놓아 이렇게 '금강산 기행기'의 일부에 북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가야 하는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계속됩니다)

관련
기사
연어가 올라오지 않는 '신기한 계곡'

덧붙이는 글 | 지난 2월초 2박 3일 동안의 금강산 기행기의 열두 번째입니다.
이 내용은 글쓴이의 홈페이지('백유선의 고구려 유적답사기', http://noza.pe.kr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국사 콘서트>, <청소년을 위한 한국사>(공저), <우리 불교 문화유산 읽기>, <한번만 읽으면 확 잡히는 국사>(상,하)의 저자로 중학교 국사 교사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