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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내음 폴폴 풍기는 시금치 된장국
ⓒ 이종찬
봄이 성큼 다가왔다. 가까운 들녘에 나가면 그 추웠던 겨울을 이겨낸 시금치와 봄동 등이 연초록빛 입술을 뾰쫌히 드러내며 봄볕을 쬐고 있는 것을 쉬이 볼 수 있다. 해마다 이맘 때면 온몸이 찌뿌둥하고 나른해지면서 모든 일이 몹시 귀찮게만 여겨진다. 게다가 입속이 까끌거리는 게 밥상에 앉아도 입맛이 영 당겨지지 않는다.

지난 겨우 내내 맛나게 먹었던 김장김치도 신맛이 조금씩 나면서 점점 입에 물리기 시작한다. 아침마다 쓰린 속을 시원하게 달래주던 동치미도 군내가 감돌면서 수저가 자주 가지 않는다. 잘 말린 무청을 넣어 구수하게 끓여낸 된장찌개와 먹을 때마다 시원하게 느껴지던 시래기국도 이젠 지겹기만 하다.

좀더 색다른 음식은 없을까. 지난 겨우 내내 꼭꼭 채워두었던 마음의 빗장을 스르르 풀어줄 그런 음식은 없을까.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절로 마음이 환하게 열리면서 코끝을 향긋하게 만드는 음식, 절로 군침이 감도는 음식, 입에 넣으면 혀끝에 착착 감기는 봄내음 폴폴 날리는 그런 음식은 없는 것일까.

있다. 그게 뭔데? 시금치 된장국. 시금치 된장국? 시금치로도 국을 끓여먹을 수 있어? 그럼. 재료를 구하기도 쉽고 값도 싼 데다 만들기도 얼마나 쉽다구. 에이! 농담 좀 하지 마. 쑥국이라면 몰라도. 한 번 먹어봐. 시금치 된장국이 얼마나 향긋하고 시원한지. 바로 당신이 지금 애타게 찾는 그 봄맛이지.

그렇다. 시금치,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참기름과 다진 마늘 등 갖은 양념을 넣고 만드는 시금치 나물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아니, 어쩌면 시금치로 된장국을 끓여먹는다는 사실을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은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먹어본 사람은 그 시원하고도 구수한 시금치 된장국의 맛을 결코 잊지 못하리라.

▲ 지난 겨울을 이겨낸, 텃밭에서 자라는 시금치가 훨씬 더 향기롭다
ⓒ 이종찬
▲ 흙내음 봄내음 물씬 풍기는 이 시금치를 캐서 시금치 된장국을 끓여보자
ⓒ 이종찬
흔하디 흔한 채소 시금치. 비타민을 골고루 가진 시금치는 채소 중 비타민A를 가장 많이 가진 채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게다가 시금치는 칼슘과 철분 옥소 등까지 들어 있어 어린이와 임산부에게 아주 좋은 알칼리성 식품일 뿐만 아니라 변비에 좋은 사포닌과 섬유소, 빈혈예방에 좋은 철분과 엽산까지 들어 있다.

<본초강목>에 따르면 "시금치는 혈맥을 통하고 가슴이 막힌 것을 통하게 해주며, 기를 내리고 속을 고르게 한다"고 적혀 있다. <식료본초>에도 "시금치는 오장을 이롭게 하고 위의 열을 통하게 하여 주독을 풀어준다"고 나와 있다. 이는 그만큼 시금치가 사람 몸에 아주 좋은 거의 완전식품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시금치가 어린이 성장촉진과 빈혈예방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으면 미국에서는 시금치를 어린이들에게 많이 먹게 하기 위해 뽀빠이란 만화영화까지 만들었겠는가. 뽀빠이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시금치를 볼이 터져라 맛나게 먹고 위험에 빠져 있는 올리브를 구한다는 내용의 그 만화영화 말이다.

"아빠! 오늘 점심 뭘 먹어? 또 김칫국밥 끓일 거야?"
"왜? 김칫국밥이 싫어?"
"아니. 하도 많이 먹어서."
"그럼, 다른 걸 한 번 끓여볼까?"
"뭘 끓일 건데?"
"너희들 몸에도 아주 좋고 키가 금세 쑥쑥 커는 봄국."


지난 27일(일), 평소에도 제발 키가 좀 쑥쑥 컸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두 딸 푸름이와 빛나를 위해 시금치 된장국을 끓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시금치 된장국을 제맛이 나게 잘 끓이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싱싱하고 파릇파릇한 시금치와 어머니 손맛이 배인 잘 담근 된장이 있어야 한다.

▲ 시금치를 물에 깨끗이 씻는다
ⓒ 이종찬

▲ 양파, 대파, 마늘, 매운고추를 준비한다
ⓒ 이종찬
특히 시금치는 시장에서 파는, 비닐 하우스에서 자란 그런 때깔나는 시금치보다 지난 한겨울을 맨몸으로 이겨낸 조금 작고 볼품없는 시금치, 텃밭에서 금방 캐낸 봄내음 폴폴 풍기는 그런 시금치가 훨씬 향기롭다. 된장 또한 냉장고에 넣어둔 오래 묵은 된장보다 마악 장독에서 퍼낸 된장이 훨씬 구수하다.

사실, 시금치 된장국은 준비할 재료도 간단하고 요리를 하기도 아주 쉽다. 봄내음과 흙내음이 물씬 풍기는 텃밭에서 금방 캐낸 싱싱한 시금치만 있다면 따로 준비할 게 별로 없다. 왜냐하면 멸치나 대파, 마늘을 비롯한 갖은 양념들은 평소에도 냉장고 속에 늘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시금치 된장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다싯물을 만들기 위해 냄비에 쌀뜨물을 붓고 국물멸치와 다시마, 땡초를 넣은 뒤 가스불 위에 올렸다. 굳이 멸치 내장을 일일이 빼낸 뒤 잘게 부수어 다싯물을 내지 않아도 다싯물이 구수하고 시원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어 향긋한 봄내음 폴폴 풍기는 시금치를 물에 깨끗이 씻은 뒤 양파와 대파, 매운고추를 부엌칼로 송송송 썰고 마늘을 빻았다. 이제 잘 우려난 다싯물에 된장을 풀어 한소끔 끓인 뒤 시금치와 썰어놓은 재료만 넣고 다시 한소끔 끓여 집간장으로 간만 맞추면 그만이었다.

그때 문득 1997년 봄 낙원상가 옆 인사동 골목길의 허름한 식당에서 먹었던 그 시금치 된장국이 떠올랐다. 그 집 이름이 '시골집'이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여튼 그 집은 백반을 전문으로 하는 집이었는데, 나는 점심 때마다 그 집으로 가서 그 시원하고 구수한 시금치 된장국을 시켜 먹었다.

▲ 양파, 매운고추, 대파는 부엌칼로 송송송 썰고 마늘은 다진다
ⓒ 이종찬

▲ 쌀뜨물과 멸치로 우려낸 다싯물에 된장을 풀고, 시금치와 각종 재료를 넣는다
ⓒ 이종찬
커다란 양은 국그릇이 철철 넘치도록 듬뿍 떠주던 그 시금치 된장국. 파래무침과 오징어 젓갈 등을 비롯한 서너 가지 반찬이 딸려 나왔지만 다른 반찬이 필요 없었다. 그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다란 국그릇에 푸짐하게 담긴 시금치 된장국에 밥을 통째 말아 약간 신 김치를 곁들여 입에 넣으면 그만이었다.

그때 나는 그 집에서 그 구수한 시금치 된장국을 먹을 때마다 땀을 비오듯이 흘리곤 했었다. 초봄의 제법 쌀쌀한 날씨였지만 그 집에서 시금치 된장국을 한 그릇 먹고 밖으로 나오면 마치 금방 샤워를 하고 나온 것처럼 시원했다. 땀에 축축히 젖은 몸만 시원한 게 아니라 속까지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아빠! 이게 어디서 나는 냄새야?"
"왜?"
"자꾸만 입에 침이 고여서."
"짜아식! 맛난 것은 알아가지고."
"아빠! 나는 큰 그릇에 많이 떠 줘."
"왜?"
"아빠가 이거 많이 먹으면 키가 쑥쑥 자란다고 했잖아."


그날 내가 끓인 시금치 된장국은 향긋하고 개운했다. 다싯물을 만들 때 매운 고추를 넣어서 그런지 국물맛이 그렇게 매콤하고 시원할 수가 없었다. 그해 봄날, 인사동 골목에 있는 그 식당에서 먹었던 시금치 된장국 맛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그때처럼 내 이마와 목덜미에서도 굵은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가며 맛나게 떠먹는 두 딸의 까아만 눈빛에서도 어느새 연초록빛 봄이 다가와 있었다. 시금치 된장국을 떠먹고 있는 내 숟가락 위에도 두 딸의 숟가락 위에도 어느새 매화 꽃내음 같은 봄내음이 폴폴폴 풍겼다. 이윽고 내 마음에도 두 딸의 마음에도 환한 봄꽃이 깔깔깔 웃으며 피어나기 시작했다.

▲ 잘 끓여진 시금치 된장국
ⓒ 이종찬

▲ 약간 신 김치와 시금치 된장국을 밥과 함께 차려낸다
ⓒ 이종찬
그래. 오늘 저녁에는 파릇파릇한 봄내음이 풍기는 시금치를 사서 시금치 된장국을 한소끔 끓여보자. 향긋하고 감칠맛 나는 시금치 된장국을 먹으며 다가오는 봄도 먹고 지난 겨울 내내 꼭꼭 닫아 걸었던 마음의 빗장도 풀어보자. 그리하여 활짝 열린 내 마음의 황토마당에 찬란한 봄을 심어보자.

시금치 된장국 이렇게 끓여 보세요

준비물: 시금치, 멸치 혹은 모시조개, 된장, 쌀뜨물, 마늘, 대파, 매운 고추, 양파, 집간장,

1. 파릇파릇한 시금치를 잘 다듬어 찬물에 깨끗히 씻는다.
2. 멸치는 내장을 뺀 뒤 잘게 부순다. 멸치를 쓰지 않고 모시조개를 이용할 때는 미리 소금물에 담궈 해감시킨 뒤 약한 불로 서서이 끓이는 것이 좋다.
3. 냄비에 쌀뜨물을 붓고 잘게 부순 멸치를 넣어 멸치국물이 충분히 우러날 때까지 끓인다.
4. 끓인 다싯물에 된장을 풀어 한소끔 끓인 뒤 깨끗히 씻어둔 시금치를 넣고 다시 팔팔 끓인다.
5. 송송 썬 파와 매운 고추, 양파, 다진 마늘을 넣고 집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이때 입맛에 따라 고춧가루를 약간 뿌려도 좋다.
6. 팔팔 끓는 시금치 된장국을 잘 저어 국그릇에 푸짐하게 담은 뒤 잘 익은 김장김치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공기밥을 함께 내놓는다.

※멸치나 모시조개 대신 마른새우를 갈아 다싯물을 내어도 시원하고 구수한 시금치 된장국을 즐길 수 있다. / 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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