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일본군에 의한 남북한 성노예 피해자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내 청춘을 돌려다오(Give me back my Youth)>가 지난 13일 베를린영화제 국제포럼 부분에서 특별상영되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가 만행을 당한 뒤 현재 평양에 거주하고 있는 박영심 할머니와 남한에 거주하고 있는 희생자 할머니, 남북한 공동으로 일본을 국제법정에 기소했던 2000년 <일본군 여성전범 국제법정> 등의 내용이 다뤄진 이 다큐멘터리는 2000년 제작, 상영된 후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 다큐멘터리 소개시간. 사진 왼쪽부터 다큐 제작자 한원상 기자, 통역을 맡은 한정화씨, 사회를 맡은 드링크 박사, 특별상영을 위한 실무를 담당했던 한정로씨(정대협 전쟁과 여성인권센타 전 이사)
ⓒ 강구섭 특히 이 다큐멘터리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에 의한 성노예 피해자와 가해자, 가해 장소 등에 대한 실증적 자료를 제시함으로써 당시 일본군에 의해 이뤄진 비인도적 행위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한원상 기자(YTN 영상취재부)는 상영에 앞서 가진 작품 소개시간에 “그동안 수차례 해외초청이 있었지만 사정상 직접 참석하지 못했는데 2차 대전 종전 6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독일에서 상영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생각에 베를린영화제에서 특별 상영하게 되었다”고 이번 상영의 취지를 밝혔다.

영어로 제작된 이 다큐멘터리는 독일 베를린 자유대, 미국 하버드, 예일 등을 비롯한 아이비리그 대학 등에서 이미 상영돼 태평양 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넘은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일본군 성노예 희생자 문제를 국제사회에서 여론화하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이날 상영에는 교민들과 외국인 관람객 등 100여명이 자리를 함께 해 시종일관 숨을 죽인 채 다큐멘터리를 관람했다.

특히 박할머니가 강제 성행위로 임신된 아이를 유산시킨 후 배에 남은 흉한 수술자국을 비롯, 일본군의 잔혹행위로 인해 지금까지 후유증을 앓고 있는 할머니들의 장면이 화면에 나오자 곳곳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45분에 걸쳐 상영된 다큐멘터리가 끝난 후에도 관람객들은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고 이후 진행된 감독과의 대화를 끝까지 경청했다.

베를린영화제 특별상영 후 <오마이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원상 기자는 ‘내 청춘을 돌려다오’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을 비롯, 현재 진행하고 있는 작업 등에 대한 자신의 계획을 밝혔다.

한 기자는 “역사에 대한 재조명은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기 위한 필수적인 작업”이라고 강조하며 특히 방송 언론계에서 역사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 기자는 “제대로 된 역사 다큐멘터리가 나오기 위해서는 오랜 제작 기간이 소요되는 탐사보도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하며 “한국의 언론계가 역사 문제에 좀더 많은 관심을 갖고 관련 작업에 적극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아래는 한원상 기자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위안부'나 '종군피해여성'이 아니라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다"

▲ 상영전 다큐멘터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한원상 기자
ⓒ 강구섭 -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태평양 전쟁 등 역사 분야의 전문가라고 알려졌는데 어떻게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
“먼저 ‘위안부’라는 말은 틀린 말이다. 위안을 했다면 어떻게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가. 일본군 입장에서는 위안이지만 우리 쪽에서는 위안이 아니다. 위안은 사랑, 애정이 들어간 말이다. ‘종군피해여성’이란 용어 역시 틀린 말이다. ‘종군(從軍 따를 종, 군인 군)’은 자발적 의지가 들어간 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강제로 끌려간 강제연행이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라고 고쳐야 한다.

과거, 일본방송사에 근무하며 일본에 있을 때 재일한국인들이 모이는 교회에 다녔는데 거기에서 재일한국인들이 한국에도 일본에도 끼지 못한 채 차별받는 것을 목도했다. 그 가운데는 국적을 바꾼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일본인이 되지 못했다. 결국 재일한국인 자손들은 다시 부모님의 역사를 배우기 위해 모였고 그때 함께 공부하면서 어디에 그 원인이 있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전쟁에 그 원인이 있었다. 태평양 전쟁 당시 강제로 끌려나온 이들의 문제가 결국 1세대, 2세대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그 이후 강제연행, 군인 군속, 징용 문제 등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 이 다큐멘터리는 특히 외국에서 더 많이 알려졌다고 들었다.
“영어로 제작됐기 때문에 외국에서 접하고 이해하기가 수월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독일 베를린 자유대를 비롯해 몇몇 지역에서 상영됐고 특히 미국에서는 아이비리그 대학 등의 학생들로부터 테이프를 보내달라는 요청도 많았다. 지금까지 5백부가 훨씬 넘는 수의 테이프가 외국에 전해졌다. 아무쪼록 이 문제가 해결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수요시위가 수백 회를 넘긴 채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일본에서 열린 재판에서도 1건도 이기지 못했다.”

- ‘내 청춘을 돌려다오’는 2000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다. 시간이 꽤 흐른 상태에서 다시 상영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올해가 2차 대전 종전, 태평양 전쟁 종전, 즉 일본 패전 6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패전국 일본이 아직까지 문제해결의 의지를 보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독일사회에서 알리고 싶었다. 2차 대전 이후 독일, 일본의 패전 후 양국의 전후 문제 처리는 큰 차이를 보였다. 일본의 역사왜곡,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성노예 희생자 문제 등에 대한 나를 비롯한 이번 특별상영을 계획했던 분들의 생각에 베를린영화제 인터내셔널 포럼 측에서 공감하면서 특별상영이 이뤄지게 된 것 같다.”

왜 독일에서 상영하냐고? 일본과 독일의 전후처리가 상반됐기 때문

▲ 성노예 희생자로 끌려갔다가 현재 북에 생존해 있는 박영심 할머니. 강제 성행위로 임신된 아이를 수술로 유산시킨 후 배에 남은 자국을 보여주고 있다.
ⓒ 한원상 - 이번 상영을 통해 바라는 것이 있다면.
“독일과 비슷한 역사적 연원을 갖고 있는 일본은 여전히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이 문제를 독일에서 알린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은 연세가 아주 많으시다. 얼마나 사실지 모른다. 영화제에서 상영됨으로써 이 문제가 여론화되고 종국적으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가 해결되는데 작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이 다큐멘터리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나.
“2000년, 일본의 성범죄를 알리고 일본군의 책임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아시아 8개 피해국 공동 국제법정(일본군 여성전범 국제법정)이 민간차원에서 열렸는데 이에 앞서 일본군의 범죄행위를 밝힐 수 있는 - 가해자와 피해자를 입증할 수 있는 - 자료가 필요했다. 나는 그간 수집한 자료를 통해 다큐멘터리 제작을 구상하기 시작했고, 남북이 공동으로 국제법정에서 일본을 고발하겠다는 기소장에 협의(대만)했을 때 이 내용을 처음으로 담았다.”

- ‘내 청춘을 돌려다오’는 다양한 실증적 자료를 통해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성노예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히 밝힌 다큐멘터리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군 성노예 희생자의 피해와 관련된 내용 중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확실한 정보가 확보된 것은 이 다큐에 나오는 박명심 할머니의 경우가 처음이다. 미국국립자료관소의 자료를 비롯해 박할머니가 끌려갔던 중국 숭산과 난징 위안소 사진, 일본군 가해자까지 구체적인 자료들이 밝혀졌다.

일본인 증언자의 진술에 따라 박할머니를 임신시킨 것으로 추정되는 당시 일본군의 집을 찾아갔으나 그는 이미 피한 상태였다. 또 박할머니가 태평양 전쟁 후 중국 쿰밍 포로수용소에 있을 때 포로 심문을 담당했던 미연합군 윔스 대위와 함께 동행해 박할머니 등 포로들을 심문했던 한국인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한국에 생존해 있다.”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명확히 밝히고 싶었다"

- 자료는 어떤 식으로 수집하는가.
“현직 근무시간 이외에 저녁 시간이나 주말 시간 등 가능한 모든 시간을 이용해 자료를 수집한다. 자료 수집을 위해 일본이나 미국도 자주 방문한다.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렇지 않고는 제대로 된 다큐멘터리가 나오기 힘들다.”

- 현직기자로서 근무하면서 그런 일을 하는 것에 어려움이 많을 것 같은데.
“쉽지는 않지만 스스로 보람과 기쁨을 느끼며 이 일을 하고 있다. 자료 조사를 위해 자비를 들여 일본, 미국 등을 방문하기도 하는데 자리를 비우게 되면 아무래도 직장 동료들의 업무가 늘어나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직장동료, 가족들의 이해가 있기 때문에 이런 작업이 가능하다.”



ⓒ 한원상 - 이전에 작업한 것 가운데 소개할 만한 것이 있다면.
“<평양에서 고발>이라는 작품이 있다. 일본의 한 프리랜서 기자가 북한에서 찍어온 화면을 보았는데 화면속에서 한 할아버지가 “내 고향은 경상남도…”라고 말했다. 그 할아버지는 17세 때 일본에 의해 강제징용에 끌려간 뒤 해방 후 북송선을 탔던 백제인씨였다. 주소를 따라 할아버지의 고향 경남 동사무소에 가서 할아버지의 신원을 확인했고 생존해 있는 그의 형을 찾았다.

그 후 형 백수인씨와 동생 백제인씨는 일본 기자를 통해 비디오편지를 교환한 끝에 형제라는 것을 확인했다. 60년 전 소식이 끊긴 두 형제는 백발노인이 되어 생사를 확인하고 2003년 평양 양각도 호텔에서 60여년 만에 상봉하게 된다. 두 할아버지를 모델로 강제징용 이후의 고통스러운 기억들, 그로 인한 어머니의 죽음, 두 형제의 극적인 만남 등을 카메라에 담았다. 상봉하는 장면을 촬영하면서 내 눈에서도 나도 모르게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 북한에서 박영심 할머니를 만난 한원상 기자.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
ⓒ 한원상 - 현재는 어떤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인가. 또 앞으로의 계획은?
“태평양 전쟁 당시 강제연행자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올해 방영할 예정이다. 2년에 걸쳐 자료를 수집했고, 한국인 피해자, 가해자(일본군)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이미 확보했다. 이후에도 태평양 전쟁 등 역사와 관련된 작업을 계속 할 계획이다. 태평양 전쟁 당시 수백 명의 강제연행자를 싣고 가던 일본군함이 침몰한 사건이 있었는데 관련 자료를 계속 수집하고 있다. 영화로 만들 수도 있는 중요한 소재라고 생각한다. 남북합작 영화로 만들어 베를린영화제 같은 영화제에 참가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또한 기회가 되는 대로 지금까지 수집한 태평양전쟁 관련 자료들을 정리해 한국, 독일 등에서 전시회를 열 생각이다.”

- 역사문제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 우리사회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지금까지 한국 언론은 역사를 재조명하는 일에 소홀히 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국민들에게 바른 역사를 알려주기 위해 역사 되찾기, 역사 재조명 작업에 언론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또한 역사보도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깊게 파고들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탐사보도에 매우 약하다. 일본 <엔에이치케이(NHK)>의 경우 적어도 2년 이상 깊이 있는 취재가 이뤄진 후 하나의 프로그램이 제작된다. 우리처럼 3~4개월의 짧은 제작 기간으로는 깊이 있는 역사보도가 불가능하다.

이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언론단체, 재단 등이 관심을 갖고 이를 적극 지원했으면 좋겠다. 또 방송발전기금 등이 역사 재조명 관련 분야에 많이 지원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성노예 희생자 문제 해결을 위해 남북이 적극 협력해야" '내 청춘을 돌려다오' 상영장에서 만난 독일인과 일본인
▲ 다큐멘터리 상영에 참석한 일본인 기오미씨.
다큐멘터리 상영 후에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사회를 맡은 드링크 박사(베를린 자유대 교육학과 젠더연구팀 책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메일인터뷰에서 “2003년, 수업시간에 50여명의 학생들과 이 타큐멘터리를 관람한 후 나를 비롯해 학생들이 엄청난 충격을 받았으며 그 가운데 몇몇은 독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또한 드링크 박사는 “태평양 전쟁 당시 희생된 네덜란드인 성노예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이뤄졌는데 아시아인 희생자에 대한 사과,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비판하며 “일본 정부가 당시의 범죄를 시인하고 이런 일이 재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드링크 박사는 이어 “성노예 희생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북한이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한 기자가 북한에 대해 선입견을 갖지 않고 이 문제에 접근했다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고 전했다.

이번 특별상영에 참석, 영화를 관람한 일본인 기오미씨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이 다큐멘터리가 실제적인 역사적 증빙자료를 통해 일본의 범죄행위를 구체적으로 보여줬다”며 “독일을 비롯한 외국인들에게 성노예 희생자 문제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이번 상영의 의미를 평가했다.

기오미씨는 90년대 초 김학순 할머니의 최초 증언 후 당시 일본 언론에서 이 문제를 다루기는 했지만 지금은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잊혀지고 있으며 성노예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소수그룹 외에는 무관심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기오미씨는 남북한이 이 문제를 국제 여론화시켜 아시아뿐 아니라 미국, 유럽이나 UN 등과 같은 국제기구에서 일본에 직간접적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오미씨는 현재 일본동경방송(TBS) 독일 주재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독일 내 일본여성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 강구섭 2005-02-18 10:12ⓒ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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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독일에서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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