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 '한국 금지곡의 사회사' 펴낸 문옥배씨.
ⓒ 심규상
금지곡으로 본 한국의 근현대사는 어떤 모습일까?

대한제국에서부터 현재에 이르는 한국 근현대사를 금지곡을 통해 들여다 본 연구서가 나왔다. 음악평론가이자 대전신학원 음악원 교수인 문옥배(42)씨가 내놓은 <한국 금지곡의 사회사>(예솔)가 그것.

이 연구서는 금지곡과 관련 그동안의 저널리즘적 접근에서 한발 나아가 한국 근현대사를 정치사회적 해석으로 승화시켰다. 또 철저한 사료 분석을 통해 금지곡에 대한 일부 잘못 알려진 사연을 바로 잡아 놓거나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문 교수에 따르면, 일제하에서는 민족적 성격이 있는 노래는 찬송가나 동요마저도 금지시켰다. '일하러가세'와 '금쥬가' 그리고 ‘프로레타리아동요’ 등이 그 예.

해방 이후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발표된 지 1년만에 금지곡(1965)이 된 진짜이유는 알려진 ‘왜색풍’ 이 아니다. 박정희 정권이 취한 ‘한일국교정상화’ 조치라는 정치적 배경 때문이다.

한일국교정상화에 반대하는 국민 저항이 끊이지 않자 ‘한일 수교=저자세 외교’로 비춰질 개연성을 차단하기 위해 당시 인기가요인 이 노래를 ‘왜색’으로 몰아 여론몰이 도구로 사용했다는 해석이다. 실제 이 노래를 금지 시켰던 박 대통령은 이미자를 청와대로 불러 들일 만큼 이 노래를 즐겼다고.

4개월간 금지(1983년)되었던 '독도는 우리땅'도 한일관계가 원인이 됐다.

현재 노래방 애창가요로 올라 있는 '알뜰한 당신' '꿈꾸는 백마강' '고향초' '번지없는 주막' '목포는 항구다'는 음반사에서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 또는 다른 사람이 작사한 것으로 바꿔져 살아 남았다. 월북작사자 가요에 대한 정부의 규제로 실제 작사자가 조명암(1948년 월북) 임을 의도적으로 숨긴 것.

1970년대 유행했던 노래 이장희의 '그건 너', 신중현의 '미인', 김추자의 '거짓말이야', 송창식의 '왜 불러' 등은 ‘가사퇴폐’와 ‘저속’이라는 이유로 금지됐지만, 실제 이유는 대학가에서 유신정권을 비판하는 의미로 불려졌기 때문이다.

배호가 부른 '0시의 이별'은 남녀가 0시에 헤어지면 당시 통행금지 시책을 거스르는 것이라며 ‘불건전’ 딱지를 붙여 금지(1975년) 시켰다. 정미조의 '불꽃'과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방송부적격’이라는 애매한 사유가 붙었다.

"'봉선화' '희망의 나라로', 금지곡 근거 없다"

▲ '한국 금지곡의 사회사'. 이 책은 한국에서 금지곡 제도가 만들어진 배경과 역사를 명확한 근거 사료를 통해 처음으로 체계화 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 심규상
문 교수는 이같은 예를 통해 금지곡이 지배체제에 의해 사회와 개인을 계획, 조작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고 말한다. 지배체제가 노래에 대한 ‘검열’ ‘심의’ 등을 통해 이데올로기를 선택적으로 생산-분배, 소비하게 했다는 설명이다.

문 교수는 또 홍난파의 '봉선화'가 금지곡으로 알려져 왔지만 금지곡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악보가 출간되고 음반으로 출반됨은 물론 공연기록까지 있는 것으로 미뤄 금지곡이 아니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문 교수는 훗날 금지곡이었다는 근거사료가 발견되더라도 '봉선화'와 민족음악가 홍난파론을 연결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문 교수는 현제명의 '희망의 나라로'의 금지곡설 또한 진위를 확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 역으로 현씨는 '대일본청소년단가' 등 조선의 민족정신을 약화시키는 노래보급에 적극 나서 민족작곡가로 취급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음악역사학을 전공해 일찍부터 한국음악사에 관심을 가져왔다는 문 교수는 “100년간의 금지곡 역사에 대한 1차 자료와 근거를 학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한 점에 의의를 두고 싶다”고 말했다.

이 연구서에 인용된 500여건의 참고문헌과 200여개의 주석은 그가 들인 탐사적 노력과 학문적 태도를 엿보게 한다. 특히 언급된 조선총독부 <관보>와 <경무월보> 및 내부문건, 공연윤리위원회의 회보, 방송윤리위원회의 내부자료 등 1차 사료는 그동안 어디에서도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았던 것이다.

“‘음악은 순수해야 한다’고 강조한 정부일수록 음악의 힘을 정권유지에 이용했다”고 말하는 그는 올해 안에 속편으로 재미있게 읽히는 ‘금지곡을 통해 본 한국사회사’를 출간해 보고 싶단다.

문 교수가 보는 ‘노래 마을’의 지금의 모습은 어떨까.

“방송심의제와 음반사전심의제가 모두 철폐돼 과거의 금지곡 개념은 사라졌습니다. 그만큼 민주화되고 열린사회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라는 한계를 명확히 하기 힘든 상업적 이유에 의한 사후 심의와 국가보안법 등 실정법 저촉 등을 근거로 한 또 다른 ‘금지곡’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간추린 '한국 금지곡의 사회사'
노래 검열, 일제강점기부터 100년간 지속

한국 역사에서 검열을 통한 음악의 통제는 일제감정기에서 비롯된다. 시작을 따지자면 노래책이 규제 검열당하는 <출판법>이 공포된 1909년이다.

일제는 36년간 1만여개의 법률 칙령 제령 부령들을 통해 노래책, 음악공연, 레코드, 노래교육 심지어 찬송가까지 통제했다. 다른 한편 가요정화 운동 등을 통해 일제 체제를 찬양 고무하는 내용의 노래로 대체시키는 작업을 벌였다.

해방 후에는 월북한 작가의 작품에 금지곡 딱지가 붙는다. 1957년 공보실에서 건전가요 보급을 이유로 ‘음악방송위원회,가 구성되고 대중가요 심의제도가 처음 도입된다.

5.16군사쿠데타 이후 통제는 크게 방송사 심의와 사전심의제라는 두 축에 의해 이뤄진다. 1965년에 ‘한국방송윤리위원회’가 가요자문위를 설치하고 음악방송에 대한 광범위한 심의를 벌이기 시작한다. 1966년 ‘한국예술문화윤리위’가 창립돼 노래 등에 대한 또 다른 심의를 벌인다. 1967년에는 '음반법'이 제정공포되고 이 법에 따라 108곡의 가요가 금지된다.

1976년 ‘한국예술문화윤리위’가 해체되는 대신 ‘한국공연윤리위’가 발족되고 음반에 대한 '사전심의제'가 시작된다. 1975년 긴급조치 9호에 의해 ‘공연활동 정화대책’이 발표되고 국내외 대중가요 222곡이 금지곡으로 선정된다. 당시 통제기준은 유신헌법의 부정, 반대, 왜곡, 비방, 개정 및 폐기의 주장, 퇴폐성 등으로 흘러간 노래까지 검열 대상이 됐다. 다른 한편 일제시대 가요정화운동을 본딴 건전가요운동을 전개한다. '충무공의 노래' '새마을노래' 등의 그 예.

1980년 신군부 등장과 함께 ‘방송윤리위원회’가 ‘방송심의위’로 명칭이 바뀐다. 반면 군부에 대한 저항과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 '오월의 노래' 등 저항가요가 자리매김한다. 1987년 6월 항쟁이후 문화공보부의 ‘가요금지곡 해금지침’에 따라 국내 금지곡 382곡 중 186곡이 해금된다. 1988년에는 일부 월북음악가 작품도 규제에서 풀려난다. 같은 해 방송금지곡도 499곡이 해제된다. 1994년 탈냉전 등 시대적 변화에 힘입어 783곡이 추가해금된다.

1990년대 들어서 정태춘이 음반 '아 대한민국'의 제작으로 '사전심의제' 논쟁이 촉발되고 헌재의 위헌결정으로 이 제도가 폐지된다. 서태지와 이이들의 '시대유감'도 심의제 폐지에 한몫했다. 방송위에서 시행하던 음악방송은 자율심의로 이관된다. 공연윤리위도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로, 다시 1999년 ‘영상물등급위원회’로 개편돼 현재에 이른다. 즉 5.16 이후 노래 검열과 규제의 틀이 됐던 두 축이 폐지된 것.

이 책 속에는 일제강점기에서 현재까지 금지된 노래책, 레코드 목록은 물론 금지곡 목록(곡명, 작사자, 작곡자, 금지사유, 금지일자)에서 해금곡까지 일체의 정보가 담겨 있다. 중간 중간 수록된 일부 금지곡의 가사 및 악보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태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