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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에 걸려 있는 친부확인테스트 광고.
ⓒ 강구섭
"아이가 당신의 눈을 갖고 있나요?"

베를린 지하철안에서 종종 접할 수 있는 광고문구다. 자신의 아이가 진짜 자기 자식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아빠들에게 친부확인테스트(Vaterschaftstest)를 해보라고 권하는 선전이다.

다른 남자를 통해 아내가 낳은 아이를 독일에서는 ‘뻐꾸기아이(Kuckkuckskind)’라고 부른다.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놓고 휭 날아가 버린다는 뻐꾸기의 특이한 번식습관에서 유래된 말이다. 독일에서는 매년 7만여 명(총 출산율의 10%)의 아이가 ‘뻐꾸기 아이’인 것으로 추산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이에 대해 일말의 의혹이라도 갖고 있는 아빠들에게 ‘내가 아이의 친부인가’라는 의문은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다. 특히 결혼관계를 청산하는 남편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합법적 결혼인지 사실혼인지를 떠나 아이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 이혼 후에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독일 남성들은 이혼을 하더라도 자녀가 18세가 될 때까지 부양의무를 져야 함은 물론, 출산 후 8년차까지 직업을 갖지 않고 가정에 머물 권리가 있는 아내에 대한 부양의무를 져야 한다(사실혼 관계에 있던 아내는 3년간만 집에 머물 수 있게 되어 있는데 독일 법무부는 결혼과 사실혼 사이의 이러한 차이를 없애기 위해 법 개정을 고려하고 있다).

자신의 아이가 뻐꾸기아이로 의심되면 친권포기 소송 해야

현행 독일 법에 따르면, 아내의 불륜 등의 이유로 자신의 아이가 '뻐꾸기아이'라고 의심될 경우, 아빠들은 '친부권취소 소송'이라는 법적 절차를 거쳐 친부확인 테스트를 할 수 있다.

‘그 당시 배우자가 불륜관계를 갖고 있었다’ ‘본인이 외국에 체류했다’ 는 등의 정확한 증거가 제시된다면 법원은 친부확인테스트를 허가한다. 이 때 법원은 제3자의 입회하에 아빠와 아이의 유전자 정보를 채취, 분석한다. 법원 검사에서 ‘친부가 아니다’라고 판명될 경우, 남편은 2년 내 친부권리를 포기할 수 있다.

문제는 ‘왜 자신이 친부가 아닌지’에 대한 구체적 증거를 법원에 제시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미 수년 이상의 시일이 지난 상태이기 때문에 ‘아내에게 아이가 생겼을 무렵 장기간 외국에 체류했다’라는 등의 정황증거를 갖고 있지 못하다면 남편의 주장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또 ‘의심을 갖고 있는’ 남편들의 입장에서는 ‘만의 하나’ 자신이 친부일 수도 있는 상태에서 아내와 아이와의 갈등을 빚어가면서까지 친권포기 소송이라는 법적 절차를 거친다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상당수의 ‘아빠’들이 ‘비밀 친부확인테스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자신이 아이의 친부인지 확인도 하면서 가족간의 불화를 가져오지 않는 방법으로, ‘아내 몰래’ 테스트를 선택하게 된 것.

90년대 중반부터 '아내 몰래‘ 테스트 활성화

▲ 비밀 친부확인테스트 상품 관련 인터넷 사이트.
현재 ‘비밀 친부확인테스트’는 자연스레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슈피겔> 1월24일자 보도에 따르면 독일 내에서 매년 5만 여건의 ‘비밀 친부확인테스트’가 이뤄지고 있으며 4천만 유로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주 수요층은 자신이 아이의 친부인지를 의심하는 남성들이지만 아이의 진짜 아빠가 누군지 확인하려는 여성들도 40%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한 ‘비밀 친부확인테스트’는 기술이 발달하고 수요가 늘어나면서 익명성 보장은 물론 초간편 방식으로 점차 변화했다.

아이의 유전자 정보를 얻기 위해 아이를 데리고 직접 검사기관에 가던 고전적 방법에서 검사기관에서 보내온 채취도구를 통해 자신이 직접 채취한 본인과 아이의 구강내피를 검사기관에 직접 보내거나 인근 약국을 통해 검사기관에 보내는 방법 등으로 점차 다양하게 바뀌어 왔다.

테스트 비용은 기관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략 300~700유로 선(아이의 혈액이나 타액 대신 칫솔이나 껌을 보낼 경우 75%의 추가요금을 낼 수도 있다). 검사에 걸리는 시간은 대략 3~5일. 테스트를 의뢰한 사람은 집으로 배달된 소견서를 통해 검사결과를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비밀 친부확인테스트’는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벽에 부딪히면서 금지될 상황에 놓였다.

법무부 “아내와 아이 동의 없는 ‘비밀친부확인테스트’는 인권 침해“

1월 초, 독일 법무부는 아내 및 아이의 동의를 거치지 않은 남편의 비밀 친부확인테스트 금지를 법제화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유전자정보분석법에 친부확인테스트에 관한 조항을 삽입하려고 하는 것.

주된 이유는 ‘인권’문제다. 독일 법무부는 시사주간지 <포쿠스> 인터넷판 1월 8일자를 통해 “당사자의 동의 없이 남편이 테스트를 의뢰하는 것은 아이 및 아내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 웹사이트를 통해 위치를 확인하고 찾아간 친부확인테스트 기관 현판.
법무부는 무엇보다 개인의 인권정보에 속하는 유전자 정보테스트가 상업화되면서 적절한 통제 없이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또 제3자가 유전자 정보를 악용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법무부의 ‘선언’에 정치권과 사회단체의 논란이 이어졌다.

연방의회 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 패터 샤르는 독일일간지 <타게스슈피겔> 1월5일자를 통해 “남편이 테스트에 관심을 가질 수는 있으나 이를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는 없으며 아내의 동의가 항상 수반돼야 한다”면서 법무부의 견해에 찬성했다.

노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 베티나 소콜 또한 <서부도이체방송>의 대담에서 “제 3자가 유전자 정보를 악용할 수 있는 소지가 많다”고 지적하며 “유전자 정보에의 접근이 너무 쉬워진 지금 인권정보 보호를 위해 비밀테스트를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일각에서는 법무부의 비밀친부테스트 금지 움직임에 회의적이다.

집권 사민당과 연정을 이루고 있는 녹색당의 원내대표 카트린 에카르트는 1월7일,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인 짜이퉁>을 통해 “법무부가 추진하는 비밀친부확인 테스트 금지법안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에카르트는 “친부권 취소소송이라는 합법적이고 공개적인 방법을 통해서만 테스트가 가능할 경우 법적진행 과정에서 가정 안에 엄청난 불신이 생겨난다”면서 “테스트를 통해 뻐꾸기아이가 아니라고 밝혀질 경우에도 이미 막다른 골목까지 간 부부간의 불신은 회복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실제 한 TV다큐멘터리 프로는 아내를 의심하던 남편이 아이가 친자가 맞다는 것을 확인하고 크게 기뻐하지만 남편이 그런 검사를 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아내가 씻을 수 없는 커다란 상처를 입고 괴로워하는 내용을 방영하기도 했다.

노트라인베스트 팔렌의 <비밀검사를 지지하는 아빠들의 모임> 대표 볼프 귄터 그리저는 <서부도이체방송>의 대담에서 “엄마가 자신이 낳은 아이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는 것처럼 아빠 또한 검사를 통해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 전역에 3천여 명의 회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비밀테스트를 지지하는’ 한 단체는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인 짜이퉁> 1월7일자를 통해 “이러한 법은 아내의 부정을 합법적으로 보호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로 인해 많은 남성들이 뻐꾸기아이를 부양해야 한다는 불합리성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범죄생물학자 마르크 베넥케도 “비밀테스트가 법으로 금지될 경우 많은 사람들이 테스트를 위해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방재판소는 “법무부 지지”, 여론은 “반대”

▲ 독일은 연 출산아 중 10%선인 7만여명을 뻐꾸기아이로 추산하고 있다.
ⓒ 강구섭
이 가운데 독일연방재판소는 ‘비밀테스트 결과는 법원 증거자료로 채택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일단 법무부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1월12일, 독일연방재판소는 자신의 친부권 취소를 위한 증거로 아내의 동의 없이 시행한 검사결과를 법원에 제시한 두 명의 아빠에게 그 결과를 친권취소 소송을 위한 자료로 채택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비밀 친부확인테스트는 아이의 인권을 침해하는 법에 저촉되는 행위이며 이러한 법에 저촉되는 방법을 통해 취득된 자료를 재판과정에서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연방재판소 판결에 앞서 독일 동부 튀링엔 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도 비밀친부확인테스트 결과를 재판자료로 이용하는 것은 법에 저촉되는 것이라는 판결이 내려진 바 있다.

<디 벨트> 1월 13일 자는 정치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비밀친부확인테스트 금지를 법제화 하려는 여성 법무장관 찌프리에스의 계획이 연방재판소의 이번 판결로 탄력을 받게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연방재판소의 판결 이후에도 정치권은 여전히 법무부의 계획에 대해 반대의견을 보이고 있다. 연정파트너인 녹색당의 일부에서도 비밀친부확인 테스트 금지와 관련된 처벌 조항(최고 1년의 징역형)에 대해 거부의사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여론도 대체적으로 반대의 분위기다.

전문뉴스 채널 N-TV에서 지난 1월 초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0% 이상이 비밀친부확인테스트의 금지 추진에 대해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작년에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여성의 82%, 남성의 74%가 복잡한 법적절차없이 가정불화의 소지가 될 수 있는 뻐꾸기아이 여부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 찬성을 표시했다. 또한 작년 3월에 독일의 유력 여론조사 기관 Emnid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는 남자 응답자의 43%, 여자 응답자의 35%가 아내의 동의없이 이뤄지는 친부확인검사에 대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인권보호 우선이냐, 아버지의 알권리 우선이냐

법무부는 ‘인권정보 보호’라는 기본원칙을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근 시일내에 법안을 통과시켜 늦어도 내년 초부터는 비밀 친부확인테스트를 금지키시겠다는 것.

브리기테 찌프리에스 법무장관은 법안이 제정되면 많은 사람들이 외국으로 '친부확인테스트 여행'을 떠날 것이라는 견해에 대해 "이 금지법안이 유럽차원으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찌프리에스 법무장관은 이어 12일 공영방송 < ARD >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새로운 유전자분석법안은 진실을 알고자 하는 아빠의 권리를 제한하려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정보에 대한 검사가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것을 제한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주장하며 “합법적 친부확인테스트를 위해 요구되는 까다로운 조건과 법적절차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비밀친부확인테스트가 아내와 아이의 권리를 침해한다면 법적 증거로는 채택하지 않되, 가정불화를 피하면서 사실 확인을 할 수 있도록 테스트는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아버지로서의 ‘알권리’와 아내와 자녀의 ‘인권 보호’, 부부간의 ‘불신’으로 뒤섞인 ‘뻐꾸기아이’ 논쟁과 맞물린 법무부의 비밀친부확인테스트 금지 시도가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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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독일에서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