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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식물,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어디?
- 한강의 '몽고반점' 등 <2005년 이상문학상 작품집>


ⓒ 문학사상사
나이 서른 다섯. 등단 11년차. 중견보다는 신진에 훨씬 가깝다. 그럼에도 이미 '동물적 욕망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식물의 심성으로 꿈꾸기'라는 자신만의 문학적 성채를 구축한 한강. 아버지 한승원(소설가)과는 또 다른 문학적 화두를 독자에게 던지며 일찌감치 주목받아온 그녀가 2005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최근 묶여 나온 <2005년 이상문학상 작품집>(문학사상사)에는 올해 수상작인 한강의 '몽고반점'과 우수작으로 선정된 이혜경의 '도시의 불빛' 윤영수의 '내 여자친구의 귀여운 연애' 박민규의 '갑을고시원 체류기' 등이 실려있다. '몽고반점'은 심사위원들의 말처럼 탐미와 관능의 세계를 고도의 미적 감각으로 묘사하고 있다.

비디오 아티스트인 화자는 성인이 됐음에도 아이들의 엉덩이에서나 볼 수 있는 몽고반점을 가진 처제에게 억제할 수 없는 열망을 품는다. 정신과 치료를 받은 병력이 있고, 한 점의 고기도 입에 대지 않는 채식주의자인 처제. 그녀 엉덩이에 푸른 멍 자국처럼 낙인찍힌 몽고반점. 화자의 열망은 견딜 수 없는 욕망을 낳는다. 그러나, 그 욕망은 단순한 성욕이 아니다.

한강은 보편과 통속을 거부하는 처제의 복잡하면서도 순수한 정신세계와 그 정신세계의 편린으로 설정된 듯한 엉덩이 위 푸른 반점을 통해 '끈적이는 동물적 욕망'에 메스를 댄다. 또한 결핍과 결락의 힘으로 인간 혹은, 예술의 궁극을 찾아가는 주인공을 통해 작가 특유의 매혹적인 세계해석 방식을 보여준다.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서는 처제와 주인공이 온몸에 붉고 푸른 꽃을 그린 채 섹스하는 장면이 묘사·서술된다. 몹시 격정적이다. 그러나, 거기에선 동물의 냄새가 아닌 순정한 식물의 향기가 난다. 처제 엉덩이에서 예술의 궁극을 발견한다는 독특하고도 기이한 발상. 근래 만나기 힘들었던 수작(秀作)이다.

함께 수록된 우수작 이만교의 '표정관리 주식회사'를 통해서는 천민자본주의사회에 대한 유쾌하고 통렬한 비판을, 김경욱의 '나비를 위한 알리바이'에서는 합리주의만을 숭배하는 세상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가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를 아프게 깨닫는다. 모두 빼어난 단편들이다.

절정에 달한 구어체와 해학을 맛보다
- 성석제 신작 소설집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


ⓒ 창비
지난 2002년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로 물오른 해학과 감칠맛 나는 구어체의 매력을 유감없이 선보였고, 그해 이효석문학상과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성석제가 신작 소설집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창비)를 상재했다.

이번 책에서도 농담과 진담이 가뭇없이 뒤섞이는 '성석제표' 문장과 낄낄대며 좌충우돌하던 이야기 전개가 마지막에서는 한 방울 눈물로 절묘하게 전화(轉化)되는 감동을 맛볼 수 있다. 독자와 평론가들이 입을 모으는 "기가 막힌 입담'이란 칭찬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잃어버린 인간' '내 고운 벗님' '본래면목' 등 9개의 중·단편이 수록된 책에서 기자가 특히 주목한 작품은 '인지상정'. 부동산 투기를 통해 거부(巨富)가 된 말단 세무공무원 출신의 사채업자. 죽음을 앞둔 그 앞에 모인 삼 형제는 아버지가 가진 '돈의 위력'에 짓눌려 숨 한번 크게 쉬지 못한다. 떨어질지도 모르는 한 점 '떡고물'을 기대하며 병실 앞에 모여든 온갖 피붙이들. 하지만, 그 부자 영감은 모두가 목을 빼고 기다리던 유언 대신 엉뚱한 짓을 하는데...

길어야 백 년을 사는 인간에게 돈과 권력이란 참으로 하잘것없는 무상한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인지상정'은 그 제목부터가 아이러닉하다. 그 아이러니의 화선지 위에 성석제가 그려내는 농담(濃淡) 뚜렷한 문장과 기상천외한 발상. 그의 추종자들이 "과연 성석제"라며 무릎을 치는 모습이 환히 보인다.

문학평론가 정홍수는 동료의 출간을 축하하며 "웃음의 모든 차원을 자유자재로 열어놓는 말의 부림"이란 말로 성석제를 추켜세웠다.

한줄 이상의 의미로 읽는 신간들

김명인·임홍배의 <살아있는 김수영>(창비)

지상에서 머문 47년의 생애와 작품이 향후 470년은 인구에 회자될 것이 명약관화하며, 또한 마땅히 그러해야할 시인 김수영. '풀'과 '거대한 뿌리' 등으로 대표되는 그의 시는 70년대 80년대 걸쳐 시를 통해 세상과 만나려했던 모든 문학청년의 교과서로 역할 했다.

문학평론가 김명인과 서울대 독문과 임홍배 교수가 1990년대 이후 김수영 문학의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살아있는 김수영>은 작품론에서부터 김수영이 한국시사에 미친 영향까지를 광범위하게 보여주고 있다.

김수영의 산문세계를 꼼꼼하게 분석한 고려대 황현산 교수의 '시의 몫, 몸의 몫', 분단시대를 산 김수영의 민족문제에 관한 접근법을 들여다본 원광대 김재용 교수의 '김수영 문학과 분단극복의 현재성' 등 수록된 15편의 평문 모두가 하나하나 귀해 보인다.

이승우 소설집 <심인 광고>(문이당)
<에릭직톤의 초상>으로 종교인들은 물론 일반독자들의 가슴에도 지울 수 없는 화인을 남긴 이승우의 신작 소설집. 인간과 죽음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가벼움만이 용인되는 시대를 질타한다.

위기철 소설집 <껌>(청년사)
'논리' 시리즈로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가 20년 동안 써온 단편들을 모아 묶었다. 인간이라면 추구해야 마땅할 진정한 가치를 찾아가는 즐거운 여행.

서영은 산문집 <일곱 빛깔의 위안>(나무생각)
원로 평론가 김윤식이 말한 존재의 시원(始原)이란 어디를 지칭하는 것일까? 등단 40년을 목전에 둔 서영은이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정홍섭의 <채만식 문학의 풍자와 정신>(도서출판 역락)
"마침내 그에 이르러 풍자가 완성되었다"는 평가를 받는 백릉 채만식. 그의 풍자정신을 조목조목 해부한 연구서. 상세하게 기술된 생애와 작품 연보, 연구서지 등을 부록으로 실었다.

더글러스 스타의 <피의 역사>(이룸)
마법 도구로써의 피, 절대자의 상징이 되기도 했던 피, 상품으로 전락한 피... 당신이 '피'에 관해 알고싶은 모든 것을 담은 '피의 백과사전'.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 - 2019년 제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윤이형 지음, 문학사상사(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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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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