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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개정되어 1월 17일부터 발효된 저작권법을 놓고 이런저런 논의들이 많다. 특히 무단으로 인터넷상에 음악파일을 링크하는 행위에 대한 단속이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을 놓고 네티즌들의 불만이 들끓고 있는 상황이다.

그 동안 암묵적으로 용인되어 온 음악파일 링크가 갑자기 어려워졌으니, 이용자들이 불만을 제기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작권자(작사자, 작곡자)나 저작인접권자(가수, 연주자, 음반제작자)의 권리를 충분히 존중하고 보호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므로 무턱대고 반발만 할 일도 아니다.

그저 속만 끓이고 있기보다는 합법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노래를 찾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오히려 지혜로운 대안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복제하고 링크할 수 있는 노래가 있기는 한 것일까.

작자 사후 50년 지나면 저작권 소멸

그러한 노래를 찾으려면 우선 저작권에 대한 고려를 해야 한다. 작사자와 작곡자의 저작권은 작자 사후 50년까지 보장이 된다. 저작권이 소멸된 경우를 현 시점에서 보자면 1954년 12월 이전에 사망한 작자가 해당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확인이 가능한 주요 해당 작자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금릉인(金陵人) - 1937년 사망. 본명 승응순(昇應順), 필명 추엽생(秋葉生)
유도순(劉道順) - 1938년 사망. 필명 범오(凡吾)
왕평(王平) - 1940년 사망. 본명 이응호(李應浩), 필명 편월(片月)
홍난파(洪蘭坡) - 1941년 사망. 본명 홍영후(洪永厚), 필명 나소운(羅素雲)
김용환(金龍煥) - 1949년 사망. 필명 김령파(金玲波), 조자룡(趙子龍), 김탄포(金灘浦), 임벽계(林碧溪)
김해송(金海松) - 1950년 사망. 본명 김송규(金松奎)
박영호(朴英鎬) - 1953년 사망, 필명 처녀림(處女林)


이들은 모두 대중가요 작사(금릉인, 유도순, 왕평, 박영호), 작곡(홍난파, 김용환, 김해송)으로 비교적 많은 작품을 남기고 1954년 12월 이전에 사망한 작자들이다. 유도순의 경우 1940년대까지 작품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현재 1938년으로 공식화되어 있는 사망 연도에 오류가 있는 것이 분명하나, 1954년 12월 이전에 사망한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작품을 많이 남긴 작자들 외에 나운규(羅雲奎·1937년 사망), 노자영(盧子泳·필명 노춘성(盧春城·1940년 사망), 김종한(金鍾漢·필명 을파소(乙巴素)·1944년 사망), 홍사용(洪思容·필명 홍로작(洪露雀)·1947년 사망), 이광수(李光洙·1950년 사망) 등도 작사로 소량의 작품을 남겼다.

이러한 작자들이 작사자, 작곡자로 조합을 이룬 작품은 저작권이 완전히 소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컨대 박영호 작사, 김해송 작곡과 같은 경우이다. 작사자나 작곡자 가운데 어느 한 쪽만 저작권이 소멸된 경우, 예컨대 박영호 작사, 박시춘(朴是春·1996년 사망) 작곡으로 된 작품은 저작권이 완전히 소멸되지 않았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복제, 링크 등을 할 수 없다.

작품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필명으로 발표된 경우나 개인이 아닌 단체 명의로 발표된 경우(예컨대 음반회사 문예부 명의)에는 작품이 최초로 발표된 이후 30년까지만 저작권이 인정되므로 역시 권리가 소멸된 예가 있을 수 있다.

또 작자가 1955년 1월 이후에 사망했다는 증거가 없고 1954년 12월 이전에 사망했다고 추정되는 경우도 저작권이 소멸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는 애매함이 많기 때문에 확실한 저작권 소멸 목록에 포함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

가수나 제작자에게는 '저작인접권' 권리 부여

저작권이 확실히 소멸된 작품 목록을 정리했다면, 다음으로는 저작인접권의 소멸 여부를 가려야 한다. 저작인접권은 어떤 노래가 최초로 음반에 고착된 것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다시 연주해 녹음하는 경우에는 적용이 되지만 복각작업(예컨대 SP음반 내용을 LP음반이나 CD에, LP음반 내용을 CD에 그대로 옮기는)에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

단일 기준으로 비교적 판별하기가 쉬운 저작권과는 달리 저작인접권은 몇 차례의 법개정 과정을 거치면서 내용이 조금 복잡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저작권과 저작인접권이 모두 소멸된 노래를 찾으려고 한다면 적용되는 기준은 일단 다음과 같은 한 가지로 압축이 된다

"현재 1986년 12월 30일 이전에 발행 또는 공연된 음반으로서 개인이 권리자인 경우, 음악저작권자(작사ㆍ작곡자), 실연자 및 음반제작자가 1956년 12월 31일 전에 모두 사망한 때에는 당해 음반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문화관광부 저작권과에서 제공한 '인터넷상 자료 전송 관련 질의 응답'에서 인용)


문화관광부 저작권과 담당자에게 문의한 결과, 위 조항은 저작권자뿐만 아니라 실연자 및 음반제작자에게도 사실상 저작권과 유사한 성격의 권리를 부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답변이 나왔다.

보다 쉽게 풀어 보자면 1986년 12월 30일 이전에 나온 음반은 그 음반에 개인명의로 표기된 작사자, 작곡자, 가수, 연주자, 음반제작자가 모두 1956년 12월 31일 전에 사망한 경우에만 모든 저작권, 저작인접권이 소멸한 것으로 판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주자나 음반제작자는 개인명의로 표기된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에 고려해야 하는 경우가 별로 없지만, 가수의 경우는 문제가 다르다. 가수 역시 작자와 마찬가지로 1956년 12월 31일 전에 사망해야만 그 음반에 관한 가수의 권리가 소멸되는 것이다.

합법적인 링크 가능한 노래는 47곡 정도

이상으로 살펴본 저작권과 저작인접권에 대한 내용을 통합해서 보면, 작사자와 작곡자가 모두 1954년 12월 이전에 사망하고, 가수가 1956년 12월 31일 전에 사망하고, 연주자나 음반제작자는 개인명의로 표기되어 있지 않은, 1986년 12월 30일 이전에 음반으로 고착된 노래에 대해서는 모든 권리가 소멸된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생각보다 무척 까다로운 조건이기는 하지만,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필명이 무수히 많고 사망 연도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작자와 가수도 많으므로 기준 적용의 엄격성 정도에 따라 확실한 저작권 소멸 작품 목록은 보다 확대될 수도 있다.

일단 1956년 12월 31일 이전에 사망한 것이 확실한 가수인 이경설(李景雪·1934년 사망), 박향림(朴響林·예명 박정림(朴貞林)·1946년 사망), 채규엽(蔡奎燁·1949년 사망), 이복본(李福本·1950년 사망) 등을 1954년 12월 이전에 사망한 작사, 작곡자 작품 목록에 함께 적용해서 저작권과 저작인접권이 모두 확실하게 소멸된 작품 목록을 뽑아 보면 47곡이 나온다.

이는 저작권 관련 기준을 가장 엄격하게 적용했을 경우로 정리한 것이므로 합법적인 복제, 링크가 완전히 자유로운 노래들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노래를 최초 음반발매 이후 다시 연주해 녹음한 경우는 권리가 소멸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목록에 수록된 곡들이 모두 광복 이전에 나온 것들이다 보니 요즘 사람들에게는 대부분 낯설 수밖에 없겠지만, 다행히 <오빠는 풍각쟁이>처럼 어느 정도 귀에 익은 노래도 있다.

그러고 보면 심술궂은 오빠를 나무라는 이 노래의 가사가 저작권자나 저작인접권자에 대한 네티즌들의 불만을 대변하는 듯도 하니, 묘한 재미가 있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관련 법조항, 사료 등을 검토하고 문화관광부 저작권과 담당자와 통화를 해 확인하기도 했으나, 법조항 해석 등에서 오류가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혹 문제가 발견될 경우 바로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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