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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H.W. 부시는 자신의 아들이 미국의 43대 대통령으로서 첫 직무를 시작한 날 퍼레이드로 지친 몸을 이끌고 백악관에 돌아와 욕실에 잠겨 몸을 풀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들기더니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보기를 원한다고 했다. 부시는 순간 누가 대통령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나 곧 그는 자신의 아들이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냈다. 그는 재빨리 욕조에서 나와 젖은 머리 그대로 대통령 집무실에 있는 자신의 큰아들을 만나러 갔다. 전직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에 의해 불려가는 광경이었다.’

▲ 부시 일가 기사를 특집으로 다룬 <타임> 2004년 송년호 표지.
ⓒ 연합=AP
위의 인용은 <타임> 지난해 마지막호가 부시 부자간에 일어난 실제 일화를 그의 어머니 바바라 부시의 증언을 빌어 소개한 것이다. <타임>은 부시 대통령을 '2004, 올해의 인물'로 선정, 무려 40여 페이지에 걸쳐 부시와 부시가문을 집중 해부하는 글을 실었다.

부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일 선거에서 대부분의 여론조사 기관들의 막판 예상을 뒤엎고 재선에 성공하자 미국의 언론들은 아예 부시가(家)를 ‘부시 왕조'(Bush Dynasty)’라 부르고 있다.

부시 가문이 ‘왕조’로 불리며 미국에서 케네디가의 위세를 제친 유일한 가문으로까지 여겨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부시가는 2명의 미국 대통령, 두 번째와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텍사스와 플로리다의 주지사 두 명, 상하원 의원 한 명씩을 각각 배출했다.

케네디가와 비교했을 때, 부시가의 후예들은 보다 더 긴 권좌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케네디가는 약 1000일 동안 대통령 직에 올랐으나 부시 일가는 현 부시 대통령이 앞으로 4년간의 직무를 무사히 수행한다면, 도합 4383일 동안 대통령 직을 수행하게 된다.

또한 지난 일곱 차례의 대선에서 부시가는 총 여섯 번이나 대통령 직에 도전했으며, 지난 24년 중 16년 동안을 대통령으로 또는 비서직급 등으로 백악관에서 지내왔다.

불출마 공언 불구 '시운' 따르는 젭 부시

▲ 지난 1999년 12월 22일 플로리다 탤라하시에서 가진 한국전 참전용사비 제막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젭 부시. 그는 미국 언론에서 차기 또는 차차기 대선 주자로 지목되고 있다.
ⓒ 김명곤
그러나 부시가의 행진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동안 젭부시 플로리다 주지사는 <올랜도 센티널> 등 플로리다 지역 언론에 "2008년 대선 때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으나 이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의 측근들은 "젭이 출마하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결국은 출마하게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그 어떤 '상황' 이 그를 백악관을 향한 정치무대로 밀어 올릴 것이라는 말이다.

젭 부시는 지난해 네 차례에 걸친 허리케인에서 그의 형(부시 W. 대통령)의 도움을 입어 거액의 연방지원금을 타내고 발 빠른 지원활동을 진두지휘했다. 이는 1992년 허리케인 앤드류 당시의 늑장 대응과 크게 대조되면서 위기 상황에서 보여진 그의 '능력'이 미국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다.

젭 부시는 지난해 12월 31일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함께 이번 아시아에서 발생한 지진 피해를 돕기 위한 미국 대표로 임명되었는데, <시엔엔(CNN)>은 "광범위한 재난에 대한 그의 경험 때문"이라고 이례적으로 그의 임명배경을 설명했다.

가장 최근인 4일에도 <올렌도 센티널>은 젭 부시가 지진 피해 구조 활동차 태국을 방문한 사실을 4면 상단기사로 비중있게 다루고 "주지사(젭 부시)의 첫 국제무대 활동은 장래 대선주자로서의 행보라는 소문을 불러 일으켰다"면서 브르킹스 연구소 선임 연구원 스테펜 헤스의 말을 빌어 "워싱턴 정가에서는 젭 부시가 태국에 파견된 사실에 대해 이미 주목해 왔다"고 보도했다.

특히 올랜도 센티널은 "이는 과거 마이애미의 개발업자에 불과했던 조지 부시가 그의 아버지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절인 1988년 2만5000명의 생명을 앗아간 아르메니아 지진 피해 현장에 구조 활동차 파견되었던 사실을 상기시킨다"면서 "그(조지 부시)는 결국 6년후에 대선후보 경쟁에 뛰어들었다"고 이번 젭 부시의 태국 방문이 모종의 정치적인 포석에서 나온 것임을 암시했다.

이 같은 '시운'에다 젭 부시가 이미 깊게 '단맛'을 본 것도 그의 출마를 점치는 이유다. 젭 부시는 지난 두 차례의 미 대선에서 당락의 열쇠를 쥐고 있는 플로리다를 형에게 헌사한 것으로 1등 공신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연스레 최고 권좌에 오르는 '노하우'를 익혔으며 그에 대한 '짜릿함'까지 맛보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출마를 예측하는 또 다른 뿌리 깊은 이유는 좀더 색다른 데 있다. 미국 언론은 백악관을 향한 부시가의 열망을 대대손손 이어져 내려온 '가업' 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가업 전통은 또 다른 '부시들'로 하여금 숙명처럼 백악관에 도전하도록 자극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시 가문의 이 같은 '가업'은 어디에서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공화당과 생사를 함께 한 부시가문

부시가는 지난 50년 동안 지리적으로나 정치 신념적으로 공화당과 함께 움직여왔다. 1960년대 부시가와 공화당은 자신들의 근거지를 북동부 지역에서 보수적인 남부와 서부지역으로 옮겼다. 뉴잉글랜드출신의 공화당 온건파인 프레스콧 셸던 부시는 아이젠하워와 친분을 유지하면서 가족계획 정책 등을 지원했다.

41대 대통령인 조지 H.W. 부시는 70년대 닉슨의 '큰정부주의'를 지지했으며, 88년 레이건의 취임과 함께 백악관에 입성했다.

한편 조지 H.W. 부시의 4남 1녀중 둘째인 젭 부시(51)는 지난해 플로리다 주지사로 재선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일찌기 멕시코 여성인 콜롬바 부시와 결혼해 다문화주의적 가정을 꾸리고 있다. 여기서 부시가의 또 하나의 '별'이 뜨고 있다.

▲ 사진은 지난 12월 27일자 타임지가 소개한 젭 부시 플로리자 주지사의 아들 프레스콧 부시(28). 그는 이미 지난 대선 당시 부시 대통령을 도와 히스패닉계 유권자들의 표를 끌어 모으는 데 큰 역할을 해 미국 언론으로부터 부시가의 '떠오르는 별'로 지목되고 있다.
플로리다 지역 언론은 젭부시의 부인인 콜롬바 부시의 완곡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일찍부터 젭 부시의 아들인 조지 프레스콧 부시(28세)가 몇 년 안에 어떠한 형태로든 정계에 뛰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젭 부시의 장남인 조지 프레스콧 부시는 지난 8월말 뉴욕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큰아버지인 부시 대통령을 지원하는 연설을 멋지게 해내는 등 이미 '스타'적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이에 앞서 지난 봄 선거전 초반부터 큰 아버지의 유세장을 돌아다니며 위트 넘친 지원연설을 소화해 내 히스패닉계의 표심을 사는 데 큰 역할을 해 냈다. 그는 지난해 <피플>지가 선정한 '가장 멋진 남성 100인'순위에서 당당히 4위에 오르기도 했다.

'부시가는 레이저 빔으로도 죽지 않을 가문'

부시가의 대부분은 정계입문 초기에 패배를 맛보았으며 그것을 계기로 자신들의 부족한 점을 파악하고 보완했다. 부시가의 '선구자'인 프레스콧 셸던 부시는 1950년 상원의원 공천에서 탈락했으나 2년 후 당선되었다.

프레스콧 부시의 장남인 조지 H.W. 부시는 1964년 상원의원에 도전해 패했으나 이후 하원의원이 되었다. 그의 둘째아들인 젭 부시는 1994년 플로리다 주지사 선거에서 패했으나 두 번째 도전에서 성공했다. 현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1978년에 처음으로 출마한 하원의원 선거에서 패했으나 1995년 텍사스 주지사에 당선됐다.

부시 가문은 이같이 오뚝이처럼 패배를 딛고 일어섰는데, 그 때마다 가족 구성원의 패배를 분석하여 승리로 일궈낸 일화들로 유명하다.

1994년 어느 날 밤, 부시 가문은 조지 H.W. 부시를 위해 4년 동안 일했던 사람을 초대해 ‘왜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클린턴에 패했는지’에 대해 질문을 퍼부었다고 한다.

부시가문의 한 측근은 이런 부시 가문의 특징을 가리켜 '아무리 레이저 빔을 맞아도 죽지 않는 공상과학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이라고 비유했다고.

부시가는 '가족'이 아닌 '전국적인 체인망'

부시 가문이 이처럼 수대에 걸쳐 성공적으로 살아남는 이유는 또하나 있다.

부시가문은 '가족'이라기보다는 '전국적 체인망'에 가깝다. 부시 일가가 오랫동안 아이들에게 교육시킨 것은 "가서 너의 행운을 찾아라"였다고 한다. 이들은 이 가르침에 맞게 자신들의 인맥을 전국에 걸쳐 형성하고 있다.

조지 W. 부시는 고향인 텍사스로 돌아가 터전을 닦았고, 젭 부시는 플로리다로, 다른 부시들은 버지니아와 콜로라도로 퍼져 나갔다. 이들은 50개 주에 걸쳐 지맥을 형성하듯 자신들의 친인척과 지지자들을 곳곳에 심어 놓았으며 언제나 '출동준비' 상태로 대기하고 있었다.

이러한 아버지 쪽의 인맥 외에 어머니 쪽의 인맥까지 합친다면 그들의 수는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바바라 부시는 1999년에 "미국인 8명중 1명은 부시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를 '부시 왕조'라 부르지 말라?

분명 부시가는 미국인들에게 '부시 왕조'로 불려지기에 충분할 만큼 가문의 전통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정작 부시가문은 이 같은 세간의 호칭을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다고 한다.

▲ 휴가중인 부시가족. 좌로부터 조지 W.부시 현 미국 대통령,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
ⓒ 연합뉴스
부시 가문의 좌장격인 조지 H.W. 부시는 지난 대선이 끝난 이후 미국의 언론들이 '부시 효과'에 대해서 질문하자 지레 "또 '부시왕조'에 대한 것이냐"면서 예민한 반응을 보이면서 '부시 효과' 보다는 '부시의 좋은 영향력'이라고 불러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부시 가문의 가업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부시 왕조'라 불리기를 꺼리는 것일까?

우선 미국 언론은 헌법에서 '귀족'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미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왕조(Dynasty)'라는 단어가 주는 일반인들의 거부감 때문일 것으로 풀이한다. 시류에 체질적으로 민감하도록 훈련된 정치집단이기 때문에 ‘왕조’라는 단어가 자신들의 '장래'에 결코 득이 될 수 없을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부시가의 오랜 '가풍' 때문인 것으로 여기는 측도 있다.

조지 H.W. 부시 대통령 때부터 부시가문을 측근에서 지켜본 앤디 카드 백악관 비서관은 <타임>지에 "부시 대통령의 어머니는 '자랑하지 말라'고 자식들을 혼내곤 했다"면서 "그들은 겸손이 모든 것의 기본이라고 가르쳤다"고 말했다. 이들 가족간에는 이를 '자랑하지 않기'라는 말로 가슴에 새기도록 했다는 것이다.

조지 H.W. 부시의 비서관인 제임스 치코니는 "부시는 그의 연설초안을 보며 '나'라는 단어를 '우리'로 바꿨다"면서 "그들의 가족관은 자기중심적인 사람을 무척 싫어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증언은 한마디로 부시 가문은 어느 미국인 가정들보다도 '몸 낮추기'와 '공동체 의식'으로 길러진 가문이라는 것이다. 일면 부시 가문의 이 같은 가풍은 보수 기독교 가정 특유의 그 어떤 숭고한 기독적 가치로부터 연유한 듯 보인다.

'가문의 영광' 퇴조 가능성도

그러나 여기서 부시 가문의 이 같은 가풍이 온갖 책략과 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가업 을 일으키는 데 어떤 '효력'을 발휘했는지를 짐작해 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즉 부시 가문의 '가업적' 측면에서 볼 때, '공동체 의식'과 '몸 낮추기' 같은 '현명한' 가풍이 이들을 정치적으로 승승장구하게 만들어 부시 왕조를 이룬 토대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부시가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 같은 국가적 위기 시에 미국민의 '단결' 을 최고조로 이끌어 낸 것이나, 선거초반 상대 진영의 엄청난 공세에 '저공비행'을 하다가 공화당 전당대회를 기회로 보수진영의 단결을 이끌어내 케리를 물리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미국의 언론들이 멀지 않은 장래에 또 하나의 부시가 최고의 권좌에 도전장을 던질 것으로 예측하는 이유는 바로 이 같은 부시가의 가업적 '영리함'이 미국민들에게 일정기간 잘 먹혀들어왔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이 같은 영리함이 언제까지나 계속 그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부시가문의 퇴조 현상이 일부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20일 CNN과 갤럽의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부시의 직무수행 지지도는 49%를 보였다. 이는 미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 가운데 클린턴이 재선 성공 후 지지도가 58%였고, 닉슨과 레이건이 59%, 아이젠하워 79%였던 것에 비하면 형편없이 낮은 것이다.

부시가 '안보 특수'와 동성결혼 반대 등으로 극보수화된 분위기를 등에 업고 당선되기는 했지만, 상당수 미국인들이 부시에 대해 갖고 있는 반감을 반영해 준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반감은 타임지가 같은 날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부시는 이 여론조사에서 단임으로 끝난 자신의 아버지보다도 정직성과 신뢰도, 쟁점 이해도, 호감도, 판단력 등에서 10%P~22%P까지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부시가문의 영광을 가져다 준 '가풍'의 효력이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부시 가문의 성공전략인 '몸 낮추기'가 발톱을 감추었다가 결정적 순간에 비상하여 먹이를 쪼아대는 독수리의 ‘공격 전략’의 일환이었다는 것, ‘공동체 의식’은 공격을 받을 가능성만으로도 선수를 쳐버리는 ‘패거리 이기주의’였다는 것을 많은 미국인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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