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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10년의 결산

▲ '인터넷과 사회' 포럼이 열린 매사추세츠의 케임브리지.
ⓒ 강인규
12월 9일부터 11일까지 하버드 대학교에서 열렸던 '인터넷과 사회' 컨퍼런스는 여러 모로 뜻 깊은 자리였다. 인터넷이 그 동안 전 세계에 끼쳐 온 영향력을 차분히 되돌아보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그 동안 대중들의 삶 속에 더 넓게, 그리고 더 깊이 파고들었지만, 인터넷이 초기에 불러온 들뜬 기대나 깊은 우려는 오히려 상당 부분 잦아든 상태다.

미 국방성의 정보네트워크 '알파넷(ARPANET)'으로부터 시작된 인터넷의 역사는 올 해로 35년이나 된다. 그러나 인터넷이 대중적인 영향력을 갖기 시작한 것은 그래픽 기반의 일반용 웹 브라우저인 '넷스케이프'가 등장한 1995년부터라고 볼 수 있으므로, 올 해는 인터넷 대중화 10년을 기록하는 해가 된다. 인터넷 10년, 그동안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인터넷에 대한 인식의 변화일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학회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인터넷을 논하는 발표자들의 태도로부터 이전의 흥분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인류 역사에 존재했던 모든 '새로운 미디어'가 예외 없이 '흥분기'와 '냉각기'를 경험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인터넷에 대한 관점의 변화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20세기 초 라디오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이제 드디어 화성인들과도 교신할 수 있게 되었다'고 흥분했으며, 텔레비전이 처음 소개 되었을 때에는 '고대 마법사가 꿈꾸던 마법의 구슬을 손에 넣었다'며 환호했다. 인터넷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 1933년 텔레비전이 처음 시판되기 시작했을 당시 발행된 광고
인터넷이라는 '뉴미디어'가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처럼 분홍빛 미래를 점치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 반대편에 서서 인터넷이 가져올 '재앙'에 관한 묵시록을 쓰는 사람들도 있었다. 앞서가는 '퓨처리스트'들은 사람들의 관계가 더 이상 물리적 공간에서 육체끼리 만날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 선언했다. 몸과 몸이 만나는 '분자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사람들이 시공간을 초월해 '사이버 공간'을 통해 디지털 신호인 '비트'의 형태로 접속하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10년을 달구었던 그 뜨거운 예언은 이제 차분한 반성 속에서 식어가고 있다. '인터넷과 사회' 포럼 역시 이 반성의 산물로, 발표자들은 '시공을 초월한 사이버공간'보다는 오히려 지역사회의 소규모 모임에 인터넷이 어떤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가 하는 '소박한' 가능성에 초점을 두었다.

볼링, 피자, 맥주 그리고 인터넷

과거의 기대와는 달리 인터넷이 현실세계의 인간관계를 대체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만남을 위한 보조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바로 그 지점에서 인터넷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발표자들의 일치된 견해였다. 토론자로 참여한 하버드 대학의 정치학 교수 로버트 퍼트남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가상의 공간'으로 파악하는 기존의 입장을 비판하면서 어떻게 인터넷이 현실의 물리적 공간과 뒤섞여 가는지를 강조했다.

예컨대 '미트업(Meetup)'과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는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지만 이 커뮤니티의 회원들은 자신들과 같은 관심사를 가진 소규모의 사람들과 '가상의 공간'이 아닌 커피숍이나 공공도서관 같은 '현실 공간'에서 만난다. 퍼트남 교수는 '미트업'의 사례는 그 동안 지리하게 반복되던 그 무의미한 논쟁, 즉 "인터넷상의 '가상의 커뮤니티'가 진짜 커뮤니티인가 아닌가"하는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밝혔다.

▲ 포럼 토론자로 참석한 하버드 정치학 교수 로버트 퍼트남
ⓒ 강인규
'미트업'의 대표 스캇 하이퍼만은 포럼의 주연설자 가운데 한 명으로 초청받았다. 그는 몇 년 전 퍼트남 교수의 저서 <혼자서 볼링하기: 미국 커뮤니티의 몰락과 부활>을 읽고 영감을 얻어 사람들 현실세계에서 만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미트업'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퍼트남의 <혼자서 볼링하기>는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사회에서 사람들간의 유대관계가 어떻게 파괴되어 왔는지를 보여준 책이다.

퍼트남은 사회구성원간의 신뢰와 유대를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개념으로 이론화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사회자본은 시민들의 민주적 참여를 가능케 하는 무형의 자산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민주주의 발전의 토대가 된 이 시민들간의 연대와 상호관계가 지난 30년동안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이 퍼트남의 주장이다.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자주 볼링장을 찾지만, 그들은 더 이상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웃고 떠들며 시합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혼자서 외롭게, 혹은 기껏해야 가족들과 함께 말없이 볼링공을 굴릴 뿐이다. 과거에 사람들이 볼링 시합 후 다른 사람들과 피자와 맥주를 놓고 벌이던 대화의 장을 이제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고 퍼트남은 주장한다. 독일 철학자 하버마스가 찻집에서 발견했던 '공론장'을 그는 볼링 시합 후의 피자회식에서 발견한 셈이다.

그렇다면 사회자본이 쇠퇴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퍼트남은 그 이유 중 하나로 '여가활동의 개인화'를 꼽고 있다. 20세기를 특징짓는 가장 큰 경향 가운데 하나는 "과학기술에 의한 여가시간의 개인화"다. 20세기 초 만해도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공연장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앉아있어야 했으나, 현대인들은 자신의 방에 앉아서도 고성능 음악기기로부터 흘러나오는 '현장감 넘치는'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 베스트셀러가 된 퍼트남 교수의 <혼자서 볼링하기>. 퍼트남은 미국에서 혼자 볼링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현상을 '사회자본,' 즉 유대관계의 쇠퇴와 연관지어 설명하고 있다.
ⓒ Simon & S.
이들이 집 밖으로 나와 사람들이 넘치는 거리로 나선다고 해서 사정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이들의 귀에 꽂혀있는 '아이포드' 이어폰은 자신만이 초대받는 휴대용 공연장인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차단하는 벽이 되기 때문이다. 라디오, 텔레비전 등의 '개인화된 미디어'가 제공하는 무수히 많은 채널 선택의 폭은 사람들의 관심사를 더욱 파편화하고 차별화함으로써 타인들과의 소통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인터넷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인터넷이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 것이고, 둘째는 오히려 인터넷이 문제를 더 심화시킬 것이라고 믿는 것이며, 셋째는 인터넷이 기존의 매체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퍼트남은 인터넷이 사람들의 관계를 회복시켜 줄 것이라는 믿음에 회의적인 견해를 보인다.

온라인 커뮤니티: '실리콘과 육체의 결합물'

퍼트남은 인터넷이 '개인화된 미디어'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고 믿는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다양한 관심사에 따라서 나뉘어가고 있으며, 그들을 하나로 묶을 공감대를 찾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고 그는 밝힌다. 퍼트남은 더 나아가 인터넷상의 '가상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는 '낡은 커뮤니케이션' 양식을 대신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한계가 있다고 믿는다. 온라인상에서는 얼굴 표정이나 몸짓 등과 같은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을 매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하는 지점일 것이라고 퍼트남은 지적한다. 이제 순수한 '가상현실'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인터넷이 현실세계의 물리적 만남에 어떤 도구적 가능성을 주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훨씬 더 건설적이라는 것이다.

▲ 같은 취미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현실공간'에서 만나는 온라인모임 '미트업(Meetup).' 이 웹사이트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오프라인 커뮤니티가 상호공존한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 Meetup.com
바로 이런 이유에서 퍼트남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실리콘과 육체의 결합물'로 정의한다. 반도체로 대표되는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대표하는 물리적 신체가 접합되는 지점에서 인터넷의 가능성을 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그렇다면 과거 '퓨처리스트'의 예언과 달리 인터넷은 순수한 디지털 신호인 '비트'의 영역이 아니라 살과 피가 존재하는 '분자'의 영역 속에 더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셈이다.

퍼트남의 이러한 견해는 다른 발표자들의 입장과도 대체로 일치했다. 민주당보다 인터넷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했다는 평가를 받은 공화당 측의 온라인 선거운동 관리자인 척 드페이오의 발언은 그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는 '정치는 여전히 현실세계에서 일어난다'고 강조하며, 자신의 인터넷 선거운동이 어떻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적절하게 결합한 전략이었는지를 설명했다. 드페이오에 따르면, 인터넷은 현실세계에서 사람들을 연결시켜주는 효율적인 도구였을 뿐이다.

민주당측의 온라인 선거운동 담당자인 잭 엑슬리는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인터넷을 더 성공적으로 활용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엑슬리에 따르면, 인터넷이 그 자체로 진보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은 서서히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그는 양당의 인터넷 선거운동을 평가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정당이 공화당보다 인터넷 활용 면에서 더 '위계적이고 권위적이었다'고 고백했다. 진보진영의 고유물로 인식되던 '풀뿌리 정치'에서조차 보수진영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평가였다.

▲ 왼쪽부터 민주당 온라인 선거담당 잭 엑슬리, 댄 길모어 기자, 그리고 선샤인 힐리거스 교수
ⓒ 강인규
인터넷이 세상을 바꾸는가?

하버드 대학 정치학 교수인 선샤인 힐리거스는 인터넷이 2004년 선거에서 미친 영향력은 지극히 미미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인터넷이 그 동안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가로막아왔던 장애물을 제거해준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이미 정치적인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인터넷은 이미 정치적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도구로 사용될 뿐이며, 인터넷이 정치적 무관심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는 것이 힐리거스의 입장이다. 오히려 인터넷이 사람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입장을 강화하는 가운데 그 사이의 소통을 더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힐리거스는 이 '양극화'가 인터넷이 가진 가장 큰 위험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다.

그녀에 따르면 인터넷이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지만, 관심이 없는 사람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게 한다. 더 나아가 인터넷은 자신의 견해를 지지하는 정보만을 선별적으로 추구하게 함으로써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과의 대화를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인터넷보다는 이라크 전쟁이라는 현실적 상황이 대선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최근 <산호세 머큐리뉴스>에 사표를 내고 인터넷 대안미디어를 기획중인 댄 길모어는 이번 대선에 기존의 언론이 여전히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인터넷이 뉴스보도에 서서히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고 보았다. 기존의 미디어가 보도하던 일방적인 '훈계'나 '강의'식 보도가 점차 독자들의 반응과 견해를 반영하는 '대화'의 양식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에 속보성을 빼앗긴 기존의 언론이 이를 만회하기 위해 성급하고 무책임한 보도를 양산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포럼의 주연설자로 초청받은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대표는 한국의 성공적인 인터넷 활용을 한국사회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인터넷을 영향력 있는 대안매체로 활용하고 있는 한국의 드문 사례는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정치권력과 맞서 싸우면서 국민들이 길러 낸 역량의 결과이자 희생의 대가였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사회를 바꾼 것은 인터넷이라는 기술이 아니라 그를 도구로 쓸 준비가 되어있는 국민들이었던 셈이다.

▲ 오연호 대표가 연설 후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 오른쪽으로 인도네시아 블로거 제프 오오이, 하버드 법대 버크만 센터의 레베카 매키넌, 그리고 옥스포드 인터넷 연구소의 스티븐 와드 교수.
ⓒ 강인규
토론자로 나선 버크만 센터의 레베카 매키넌은 <오마이뉴스> 사례를 언급하면서, 인터넷이 국민들에게 힘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사회적 조건이 필요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인터넷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곳은 민주주의 사회로 새롭게 부상하는 나라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말할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서 이 목소리가 반드시 행동으로 나타나지는 못한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목소리가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은 곧 온라인이 오프라인으로 옮겨지는 것을 의미하기에, 이 지점에서 공권력이 개입할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속한 사회가 민주적으로 더 발전할 여지가 있다는 깨달음, 그리고 그를 위해 국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언론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 그리고 이 필요를 여론으로 묶어낼 수 있는 소통의 장으로서의 대안언론, 그리고 그 여론이 행동으로 응집될 수 있는 물리적 공간, 그리고 이 움직임을 억누르려는 세력과 맞설 수 있는 열정. 이 모든 것이 인터넷과 민주주의 사이를 매개하는 조건인 셈이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꾸는가?' 그렇다면 이 질문은 다른 식으로 제기되어야 할 듯하다. '인터넷 모니터 앞에 누가 앉아있는가?'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치 않은 것 같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컴퓨터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 못지않게 그 컴퓨터를 끄고 거리로 달려 나가는 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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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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