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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 회원들이 27일 오전 국회 기자회견실에서 박창희 전 한국외대 교수와 양홍관씨(왼쪽부터 순서대로 세,네번째) 등 `고문피해' 희생자들과 함께 국가보안법 연내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90년대 이후 국가보안법으로 고문 피해를 받은 사람들이 '치떨리는' 고문의 기억을 추가로 폭로했다. 이들 가운데는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으로부터 '성기 고문'을 당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정 의원은 자신이 고문에 연루된 사실이 밝혀질 경우 모든 공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정 의원의 대응이 주목된다.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는 27일 오전 국회에서 '국보법 연내폐지를 촉구하는 고문피해자 기자회견'을 열고 김영삼·김대중 정권 당시 고문피해를 상세하게 증언했다. 지난 16일 '국가보안법 고문·용공조작 피해자 1차 증언대회'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공개적 고문증언이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박창희 교수(1994년 '외국어대 교수 간첩' 사건), 양홍관(1992년 남한조선노동당 사건), 전지윤(2002년 국제사회주의자들 사건), 하영옥(1999년 민혁당 사건), 박경순·김이경(이상 1998년 영남위원회 사건), 은종복(1997년 이적표현물 소지 배포로 구속), 손준혁(2001년 구속. 제6기 한총련의장)씨 등 8명이 참석했다.

'간첩들은 씨를 말려야 한다'고 성기 짓밟아

지난 95년 4월 일명 '외국어대 간첩사건'으로 공안기관에 끌려가 고초를 겪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박창희 교수는 울먹이면서 당시 자신이 안기부에서 당한 고문 피해를 생생히 증언했다.

박 교수는 "6·25 때 헤어진 북에 있는 친형을 수소문해 안부편지 한 통을 주고받았는데, 이것이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구성원과의 회합·통신' 혐의로 체포 구속됐다"며 "95년 4월 27일부터 20일간 6명의 수사관들이 구타하고 강제로 술을 먹여 자백을 강요했다"고 말했다.

또 지난 92년 이른바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으로 1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98년 8·15사면 때 형 집행정지로 석방된 양홍관씨는 "과거 고문받은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더 고문"이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안기부에 들어가면서부터 팬티 한 장 입히지 않고 3조로 나뉜 수사관들이 돌아가면서 3일간 고문했다. 몽둥이로 몸을 마구 때렸고, 손가락으로 눈알 치기를 했다. 그리고 정형근 의원은 직접 막대기로 내 성기를 때렸다. 수사관들은 옷을 벗긴 상태에서 '간첩들은 씨를 말려야 한다'며 내 성기를 발로 짓밟았다"

양씨는 "국보법이 연내에 폐지되면 개인적으로 과거의 책임을 묻지 않으려 했다"며 "그러나 정형근 의원이 뻔뻔스럽게 '고문은 절대로 없었다'며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것을 보고 맞고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근 양홍관씨는 남산 안기부 지하실에서 조사받는 동안 당시 안기부 수사차장보였던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으로부터 성기고문을 당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양씨는 현재 정형근 의원으로부터 명예훼손 혐으로 피소당한 상태다.

▲ 고문피해자 박창희 전 한국외대 교수(오른쪽부터 네번째)가 27일 오전 국가보안법 연내폐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고문피해 사례를 증언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김영삼·김대중 시대에서도 고문 있었다"

이날 고문 피해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과거를 되살리는 것 그 자체가 고통이기에 되도록 잊고 살려고 노력한다"고 전제한 뒤 "우리들의 소박한 바람은 정형근 의원과 이름 모르는 고문 가해자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추악한 고문에 대해서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들은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을 향해 "고문의 특성상 익명성과 증거를 대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한 그의 가증스러운 말에 치가 떨린다"며 "고문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의원직을 사퇴하라"고 거듭 주장했다.

또한 이들은 ▲ 국가보안법 즉각 폐지 ▲ 김원기 국회의장의 국회법에 따른 국보법 폐지 표결처리 ▲ 정형근 의원의 즉각적인 의원직 사퇴 ▲ 반인권 국가폭력에 대해 공소시효 배제한 특별법 제정 등을 촉구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박래군 국민연대 공동운영위원장은 "91년 국보법 7차 개정 이후 인권침해가 없었다는 일부 정치권 인사들의 말을 반박하고 싶었다"며 "김영삼, 김대중 시대에도 국보법은 인권을 짓밟는 야만의 수단으로 사용됐다"고 말했다.

지난 1985년 '구미유학생 간첩단사건'으로 13년 동안 옥고를 치른 <야생초 편지> 저자 황대권씨는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국가보안법은 당장 폐지되어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보내왔다.

이 글에서 황씨는 "겨울철 내내 내복을 입고 지낸 사람은 봄이 와도 옷을 벗을 줄 모른다"며 "내복을 벗어버리고 변해버린 날씨에 새로 적응해야 한다"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했다.

고문 피해자들, 무슨 사건으로 어떻게 당했나

▲ 박창희(95년 외국어대 교수 간첩 사건) : 95년 4월 26일 일명 '외국어대 교수 간첩' 사건으로 안기부에 체포 구속됐다. 당시 박창희 교수는 일본에 있는 선배 사학자를 통해 6·25 때 헤어진 친형을 수소문해 안부편지 한 통을 주고받았다. 안기부는 이 같은 사실을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구성원과의 회합·통신 혐의로 체포 구속했다.

남산 안기부 지하실에서 95년 4월 27일부터 20일 동안 6명의 수사관에게 둘러싸인 채 가혹생위, 구타 등을 통해 자백을 강요당했다. 특히 검찰에 송치될 즈음 안기부는 피의사실을 사전 공표함으로써 재판결과와 관계없이 '간첩'으로 낙인찍혔다.

이후 뒤늦게 박 교수의 정정보도 요청이 받아들여졌으나 이미 명예훼손을 회복하기는 어려웠다. 박교수는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도 담당 검사로부터 혐의사실을 부인한다고 발길질을 당했다. 박 교수는 검찰의 가혹행위에 대해 진상조사와 처벌을 요구했으나 '혐의없음'으로 끝났다.

▲양홍관(92년 남한조선노동당 사건) : 92년 9월 14일 일명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으로 안기부에 체포 구속됐다. 안기부에서 조사받던 22일간 구타 등 가혹행위와 고문을 당했다. 1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1998년 8·15사면 때 형 집행정지로 석방됐다.

▲전지윤(2002년 국제사회주의자들 사건) : 2002년 5월 7일 이적표현물 제작반포 혐으로 체포 구속됐다. 전지윤씨는 성공회대 총학생회 정책기획국장응로 활동할 당시 다음(Daum) 카페 '다함께 성공회대' 게시판에 실을 문안, 조선일보 비평 글, 99년 구속당시 법정 최후진술문 등 7개 글이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하는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이라는 이유로 구속됐다.

그러나 전씨가 카페 게시판에 올린 글을 수사기관이 전체적인 맥락이나 작성의도를 무시한 채 몇몇 문장만을 의도적으로 문제 삼아 국가보안법을 적용한 사례로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하영옥(99년 민혁당 사건) : 하영옥씨는 86년 12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안기부에 체포 구속되어 2년형을 복역했다. 당시 극심한 고문을 당하여 그 후유증으로 출소 후 폐 수술을 받았다. 하씨는 또한 99년 8월 19일 '민족민주혁명당'이라는 반국가단체 구성 가입 혐의로 국가정보원에 체포 구속돼 8년형을 선고받고 2003년 석방되었다. 하씨는 민혁당 사건에서도 국정원 조사과정에서 '약물투여'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김이경(98년 영남위원회 사건) : 98년 7월 22일, 현직 구청장을 비롯해 부산 울산지역 노동시민단체 활동가 15명이 '영남위원회'라는 국가보안법 상 반국가단체 구성가입 혐의로 체포 구속됐다. 당시 김씨는 간경화를 앓고 있던 남편과 함께 구속됐으며 그 외 구속자 역시 디스크 환자, 부부 동시 구속으로 인권침해 논란이 일었다.

검찰은 이들을 반국가단체 구성 가입죄로 기소했으며 1심 법원 역시 유죄판결을 했다. 그러나 2심에서 구속자 전원이 반국가단체 구성가입 부분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어 대법원에서 3명에 대해서만 이적단체 구성가입 부분을 유죄 판결했으며 나머지 12명은 무죄취지로 원심 파기됐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최초 반국가단체 사건이다. 장기간의 감청 등의 증거능력 여부와 조작의혹, 사생활 침해 등으로 인권침해 시비가 일었던 '영남위원회' 사건은 공안당국의 수사방식과 검찰의 기소권 남용 등의 문제점을 남기며 무죄판결로 마무리됐다.

▲은종복(97년 이적표현물 소지 배포로 구속): 성균관대학 앞에서 사회과학서점(풀무질)을 운영하던 은종복씨는 97년 4월 15일,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소지 배포 혐의로 구속됐다.

97년 1월 17일 대검찰청이 검찰총장 직속기관으로 '민주이념연구소'를 설치한 이래 서적 판매상에 대해 '이적 목적'을 추단하여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된 사례이다. 은씨는 서점에서 <일보후퇴 이보전진>(레닌 저) 등의 서적을 판매했다는 혐의가 적용됐으나 구속취소 결정으로 석방됐다.

▲손준혁(2001년 구속, 제6기 한총련 의장):2001년 5월 21일, 이적단체 제6기 한총련 구성 가입 혐의로 체포 구속됐다. 손준혁씨는 98년 영남대 총학생회장, 한총련 6기 의장으로 당선되었으나 한총련을 탈퇴하지 않아 수배생활을 하던 중 담도암 말기 환자인 아버지를 만나러 집 근처로 가다가 체포되었다.

당시 손씨의 부친은 '6개월을 넘길 수 없다'는 진단과 함께 어떠한 치료도 불가한 상태로 외아들 준혁씨의 손 한번 잡아보겠다는 일념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었다. 손씨는 정부당국에 아버지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으나 거부당했고, 아버지 임종마저 끝내 불허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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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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