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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질 사태의 주인공인 셰노와 말브뤼노의 대형 사진은 9월초부터 시청 건물 벽면을 지켰다.
ⓒ 박영신
분명 상징이었다. 이라크에 억류된 두 사람의 거대한 초상화가 파리 시청 건물 벽면에 꼼짝없이 못 박혀 있었다. 이들의 석방 소식이 전해진 날 초상화 머리 부분에 ‘자유(libre)’라는 단어가 더해졌다. 그리고 초상화의 주인공인 두 사람이 조국 땅을 밟은 22일, 초상화도 시청 벽면에서 서서히 바닥으로 내려왔다.

차례대로 사진이 떨어져 나갈 때마다 현장에 모여든 파리시민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지난 8월 20일, 이라크에서 두 프랑스 언론인 조르주 말브뤼노(41·르피가로)와 크리스티앙 셰노(38·라디오 RFI) 그리고 이들의 시리아인 운전기사 모하메드 알조운디가 수니파 근본주의 무장단체 '이라크이슬람군대'에 납치되자, 9월초 이들 세 사람의 초상화가 시청 벽면에 등장했다. 알조운디가 풀려난 지난달 12일부터는 나머지 두 사람의 사진만이 시청 광장을 지키고 있었다.

두 사람의 석방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이 전개된 곳도 시청광장이었다. 지난 8월 31일부터 지금까지 총 7만3402명의 시민이 서명에 참여했다. 시청광장은 그렇게 상징적인 장소가 됐다.

‘국경없는 기자회' 로베르 메나르 사무국장은 전날 두 사람의 석방 소식이 전해지자 ‘이것은 최상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다함께 시청 광장에 모여 샴페인을 터뜨릴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됐던 두 프랑스 언론인 4개월 만에 찾은 자유

▲ 인질석방을 축하하며 샴페인을 터뜨리다
ⓒ 박영신
크리스티앙 셰노와 조르주 말브뤼노는 납치된 지 4개월 만에 가족의 품에 안겼다.

미셸 바르니에 프랑스 외무장관과 두 사람을 태운 특별기는 22일 오전 8시경(GMT) 바그다드를 출발해 17시경(GMT) 파리 부근의 비앙꾸블레 군사기지에 안착했다.

마중 나온 가족을 껴안은 두 사람의 얼굴은 그제서야 귀환을 실감하는 듯했다. 지난 20일 모로코로 휴가를 떠났던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도 이들의 석방 소식이 전해진 21일 저녁 급히 프랑스로 돌아와 현장에서 이들을 반겼다.

“석방 과정은 순조로웠다. 사실 기대하지 못했었다(…) 메르세디스 트렁크에서 나왔을 때 그리고 3m 전방에 삼색기장이 눈에 들어왔을 때 ‘(포도주 병의) 코르크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기자들의 질문공세에 먼저 입을 연 것은 말브뤼노였다. 그는 "매우 힘든 경험이었고 때로는 너무나 힘든 때도 있었지만 프랑스 정부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 두 프랑스인과 함께 납치됐다가 지난달 12일 풀려난 시리아인 운전기사 모하메드 알조운디
ⓒ 박영신
이어 셰노는 "이라크는 현재 극단의 위험 상태에 있고 그들과 같은 장소에 감금됐던 이탈리아 언론인(엔조 발도니, 8월 27일 참수됨)의 소식도 잘 알고 있다"는 말을 보탰다.

도착과 함께 30분간의 즉석 기자회견에 응한 이들은 납치단체로부터 억압받은 일은 없다고 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이 끝나고 조국에서의 첫날을 프랑스 대외정보기관(DGSE)에서 보내야 했다. 건강한 모습이었다.

두 사람이 바그다드를 떠났던 22일, 이라크 모술에서는 무장단체 ‘안사르알수나’의 자살테러로 인해 미군 18명을 포함해 총 22명이 사망하고 72명(미군 51명)이 부상하는 참극이 발생해 희비가 엇갈렸다.

승부수 "우리는 프랑스 기자다!"

"두 프랑스 언론인 인질이 막 바그다드에서 풀려났고 두 사람은 바그다드 소재 프랑스 대사관에 인계됐다. 빠른 시간 내에 이들은 프랑스 땅을 밟을 것이다."

셰노와 말브뤼노가 납치된 지 124일 째 되던 21일 저녁, 카타르 위성방송 <알자지라>로부터 낭보가 날아왔고 엘리제궁은 이 사실을 확인했다.

▲ 바닥으로 내려오는 조르주 말브뤼노
ⓒ 박영신
<알자지라>가 입수한 ‘이라크이슬람군대’의 성명은 ‘두 프랑스인 기자가 미국 정보원 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에’ 이들을 석방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의 석방은 동시에 ‘이슬람 협회’의 요구뿐만 아니라 이라크 분쟁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입장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보는 두 기자의 태도’에 대한 화답이기도 하다고 <알자지라>는 덧붙였다. 이라크의 반미유격대의 상황을 전 세계에 알릴 것을 셰노와 말브뤼노가 자발적으로 받아들였다고도 했다.

프랑스 정부는 이들의 석방 소식이 전해지기 24시간 전까지 미셸 바르니에 외무장관의 입을 빌어 두 사람이 건강하며 이들은 조속히 석방될 것이라고 전망해왔다.

"우리가 프랑스 기자라는데 승부수를 두었다. 프랑스는 전쟁에 반대했고 저항군을 이해하며 뿐만 아니라 우리는 친미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려고 노력했고 그들은 확인했다."

말브뤼노의 증언이다. 두 사람보다 앞서 지난달 12일 팔루자에서 미군에 발견돼 풀려난 운전기사 모하메드 알조운디도 지난 21일, 일간지 <리베라시옹>과의 인터뷰를 통해 나자프로 향하는 국도에서 납치되는 순간 말브뤼노와 셰노가 잠시도 거리낌 없이 '프랑스 기자’라 외쳤다고 진술한 바 있다.

같은 인터뷰에서 알조운디는 “납치와 함께 끌려간 한 농가에서 납치범들은 납치과정에서 발생한 난폭한 대우에 대해 정중히 사과하고 소지품을 돌려줬다”고 말했다. 납치범들은 심지어 분실된 기자들의 노트북과 휴대폰 보상비로 현금을 지불하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조운디는 바그다드 소재 프랑스 대사관의 도움으로 현재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망명한 상태다.

▲ 크리스티앙 셰노
ⓒ 박영신
납치단체 ‘이라크이슬람군대’는 올해 3월 15일 프랑스 국회에서 가결된 비종교화 법안(공립학교에서 종교 상징물 특히 이슬람 히잡 착용을 금지한 법, 이하 3/15법)을 무효화할 것을 요구하며 프랑스 정부와 협상을 시작했으나 3/15법은 지난 9월 2일 개학과 함께 시행중이다.

프랑스의 외교력 VS 밀거래? 프랑스 언론이 보는 ‘124일간의 미스터리’

이제 한숨을 돌린 것일까. 사건 초기부터 두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시시각각 소식을 전해온 프랑스 언론은 이번 인질사태를 점검하느라 분주하다.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124일간의 미스터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들의 석방이 불러온 감동의 순간을 잠시 언급한 뒤 “프랑스 외교력은 녹초가 됐다. 프랑스의 전통적인 대 아랍 정책과 이라크 전쟁 반대 입장이 최악의 순간에 면책특권을 받지 못했고 더욱이 프랑스 외교력의 허점을 여실히 보여줬다”며 인질사태가 4개월 동안이나 지속된 점을 강하게 부각시켰다.

말브뤼노가 활동해온 일간지 <르피가로>는 ‘자유’를 외치며 1면 등 총 3면에 걸쳐 이번 사건을 다뤘다. <르피가로>는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프랑스의 외교적 노력에 사의를 표하고 이번 사태에 보여준 시민들의 응집력을 높이 평가했다.

<르피가로>는 “두 사람의 구출 과정은 아랍세계에 대한 프랑스 영향력의 시험대였고 결과적으로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과 반목하면서 따낸 이미지상의 특권이 주효했다”고 보았다.

두 사람의 사진 위에 ‘마침내 !’라는 글자를 굵게 인쇄한 공산당 일간지 <뤼마니떼>는 ‘진정 프랑스가 이라크 전쟁에서 면죄부를 받았기 때문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두 인질 석방의 이면은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차차 알려질 것이라는 미온적 자세를 취했다.

역시 ‘마침내’라는 제목을 내걸고 5페이지에 걸쳐 관련 기사를 게재한 일간지 <르파리지앙>은 프랑스 정부가 납치범들에게 인질의 ‘몸값’을 지불했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췄으나 크리스마스 전날 이들의 석방이 불러온 ‘기쁨과 연대의 순간’을 과소평가 하지는 말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 <국경없는 기자회> 로베르 메나르 사무국장
ⓒ 박영신
일간지 <라크루아>도 ‘그들은 자유다’라는 제목으로 “희망과 절망이 교차했지만...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들거나 잡다한 소음 없이 전 프랑스가 두 사람을 중심으로 하나로 뭉쳤다는 것은 그나마 프랑스가 얻은 긍정적 교훈이 될 것”이라 평가했다.

말브뤼노가 통신원으로 활동해온 지방 일간지 <웨스트 프랑스>는 “시라크 대통령조차 휴가지인 모로코에서 허겁지겁 돌아오게 만든 급작스런 인질 석방은 '미스테리'”라며 조심스레 ‘몸값’ 지불 의혹을 제기했다. 이번 인질사태가 “참으로 의문투성이”라는 것.

언론의 이런 반응을 의식한 탓일까. 22일, 마티뇽 총리 관저에 모인 정계 지도자들 앞에서 라파랭 프랑스 총리는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해 프랑스가 ‘몸값’을 지불한 일은 없으며 납치범들도 이것을 요구한 일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인질 사태에서 ‘프랑스적 예외’가 과연 작용했을까

그렇다면 이번 인질 사태에서 셰노와 말브뤼노의 국적이 상황을 호전시키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을까.

두 사람의 납치 소식이 전해졌을 때 프랑스는 이것이 ‘계획에 없던 납치’리라 짐작했고 이 사태가 짧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프랑스는 이라크 전쟁에 반대했기 때문에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바르니에 외무장관은 수많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비롯해 이슬람 지도자들과 만남을 갖고 납치범들과의 중재를 요구했다. 납치단체와 접촉하기 위해 이집트 등 아랍 국가들을 차례로 방문하기도 했다.

▲ 말브뤼노와 셰노의 대형사진 앞에선 알조운디(오른쪽), 메나르(붉은 상의), 달릴부바쾨르 파리 모스크 사제(왼쪽)
ⓒ 박영신
도미니끄 드빌팽 내무장관의 요청으로 프랑스의 이슬람 대표단도 같은 목적으로 직접 바그다드를 방문했다. 프랑스 내 이슬람의 목소리를 십분 활용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러나 8월 26~27일 사이 두 사람을 납치했다고 알려진 ‘이라크이슬람군대’가 이탈리아 언론인 엔조 발도니를 참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분위기는 달라졌다.

사건 중반부터 납치범들과의 접촉을 독점해온 프랑스 대외정보기관(DGSE)은 납치범들이 두 사람을 ‘알카에다’의 지류 무장단체인 ‘안사르 알수나’의 지도자 알자르카위에게 팔았고 이것은 다른 몇몇의 경우와 같이 두 사람의 죽음으로 막을 내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분명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프랑스 인질이 석방된 진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프랑스가 ‘아랍세계’에 무기를 판매하고 있는 것일까.'

억측이라 치부할 수 있는 이 같은 의혹을 조심스럽게 제기한 것은 다름 아닌 라디오 ‘RFI’였다. RFI는 셰노가 통신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라디오 채널이기도 하다. RFI는 ‘어째서 유독 프랑스 인질만은 살아올 수 있었을까’ ‘어떻게 프랑스는 이토록 아랍세계에서 강자로 군림할 수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최근 발생한 레바논 헤즈볼라 위성채널 <알마나르> 사건을 상기시켰다.

프랑스 고등시청각위원회(CSA)가 “증오와 폭력을 고무”하고 “반유태주의를 선동”한다는 이유로 지난 11일 <알마나르>의 프랑스 전파 금지를 요청했던 사건이 그것이다.

레바논의 아랍동맹과 레바논 언론조합, 아랍 언론인연합은 즉시 이것을 언론탄압이라며 반발, <알마나르>와의 연대를 표명했다. 파리의 팔레스타인 단체 대표도 “이 채널에서 어떤 종류의 증오도 발견할 수 없다”며 <프랑스2> TV를 통해 <알마나르>금지 조처에 유감을 표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헤즈볼라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실제 프랑스에서 이 방송을 시청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 그리고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조치는 다소 의외라 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 ‘아랍의 목소리’에 제재를 가하면서도 최악의 순간에 동지가 되는 프랑스의 ‘저력’은 과연 무엇일까. 말브뤼노의 <웨스트 프랑스>가 한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겠다. ‘우리는 결코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2003년 3월부터 이라크에서 실종되거나 납치된 언론인

<2003>
- 3월 22일 : 바소라 부근에서 영국 티비 ' ITN' 프랑스인 카메라맨 프레드 네락 실종.
- 11월 12일 : 이라크 남부 공격 당시 무장 괴한에 의해 포르투갈 민영 라디오 ' TSF' 특파원 카를로스 랄레이라스(33)가 납치됐다가 이튿날 풀려남.

<2004>
- 4월 8일 : 일본인 독립 사진작가 소이치로 고리야마(32)외 두 일본인이 납치됐으나 4월 15일 모두 풀려남.
- 4월 11일 : CAPA 의 프랑스 언론인 알렉상드르 조르다노프(40)와 카메라맨 이반 세리예 납치. 세리예는 12일, 조르다노프는 14일 바그다드 수니파 이슬람 법전 박사위원회 본부 앞에서 풀려남.
- 4월 12일 : 영국 <선데이 텔레그라프> 기자 제임스 브랜든(23)이 바스라 소재 자신의 호텔에서 무장 괴한들에 납치. 이튿날 영국 ' BBC'는 복면을 쓴 남자가 24시간 내에 미군의 나자프 공격이 중지되지 않으면 브랜든을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비디오를 방송. 13일 풀려남.
- 4월 14일 : 팔루자로 들어가려던 언론인 준페이 야수다(30)를 비롯한 두 일본인도 납치됐다가 17일 풀려남.
- 8월 14일 : 다큐멘터리 전문<포 코너즈 미디어> 설립자 미국 언론인 미카 가렌(36)이 통역관과 함께 나시리야에서 납치. 18일, <알자지라>를 통해 ‘순교 기병대’라는 그룹은 48시간 내 나자프에서 미군 병력을 철수시키지 않으면 가렌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비디오를 방송. 8월 22일 석방.
- 8월 19일 : 주간지 <디아리오> 소속 이탈리아 언론인 엔조 발도니(56) 실종
- 8월 20일 : 프랑스 언론인 셰노와 말브뤼노 실종
- 8월 26일 : 무장단체 ‘이라크 이슬람 군대’가 엔조 발도니를 살해했다고 <알자지라> 보도.

이외에도 전세계 수많은 민간인들이 납치된 후 다시 풀려나거나 납치범들에 의해 살해됐다.

무장단체에 납치된 민간인

모하메드 리파트(캐나다) 4월 8일, 오엘 맘도우(요르단) 4월 12일, 사드 사도운(쿠웨이트) 6월 5일, 이발로 케포이(불가리아) 6월 27일, 모하메드 알사나드(이집트) 7월 21일. 이브라힘 카미스(케냐) 7월 21일, 살람 파이즈 카미스(케냐) 7월 21일, 잘랄 아와드(케냐) 7월 21일, 수크데브 싱흐(인도) 7월 21일. 안타리야미(인도) 7월 21일, 타신 톱(터키) 8월 7일, 두르무스 쿰드렐리(터키) 8월 16일, 신원을 알 수 없는 12인의 네팔인 8월 19~20일, 신원미상의 이라크인 8월 25일.

무장단체에 납치됐다가 희생된 민간인

파브리찌오 콰트로치(이탈리아) 4월 14일, 닉 버그(미국) 5월 11일, 후세인 알리 알라이얀(레바논) 6월 12일, 김선일(한국) 6월 22일, 케이스 매튜 마우핀(미국) 6월 28일, 조지 라조브(불가리아) 7월 13일, 라자 아자드 칸(파키스탄) 7월 28일, 사자드 나엠(파키스탄) 7월 28일, 무라트 유스(터키) 8월 2일, 오스만 알리산(터키) 8월 5일, 모하메드 무타오알리(이집트) 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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