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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오후 국회도서관 지하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고문·용공조작 피해자 1차 증언대회'에 참석한 피해자들이 증언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국가보안법, 고문·용공 조작 피해자 증언대회'가 진행되는 2시간 동안 대회장인 국회도서관 대회의실은 충격과 분노로 내내 무거운 분위기였다. 과거 받았던 고통스런 고문의 기억을 끄집어 낸 증언자들도, 이를 듣는 청중도 모두 숙연했다.

이날 대회 참석자들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일동포 관련 사건 ▲진도간첩단 사건 ▲노동해방문학 사건 ▲남매간첩단 사건 등 70∼90년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주요 간첩사건에서 고문이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를 증언을 통해 생생히 고발했다.

전창일·석권호·신귀영·이원혜·김삼석씨 등 이날 증언대회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들 사건에는 공통적으로 과거 중앙정보부 및 국가안전기획부에 의한 불법구금과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이 있었다.

구타와 협박, 잠 안재우기는 물론이고 전기고문, 물고문(전창일·석달윤·신귀영씨의 경우) 까지 자행됐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특히 남매간첩단 사건의 김삼석씨는 계속되는 고문으로 인한 자백 강요를 이기지 못한 채 고문 사실을 폭로하기 위해 변호사 접견시 혀를 깨물고 몸을 벽에 부딪히는 자해행위를 하기도 했다.

검찰, 고문수사관 고소해도 "공소시효 지났다" 기각

복역 후 수사 과정에서의 고문과 조작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도 있었으나 우리 사법부는 그마저도 들어주지 않았다.

재일동포간첩단 사건의 신귀영씨는 지난 94년 이 사건이 조작됐다는 증거를 확보해 두 차례 무죄 취지로 재심을 청구했으나 95년 11월 대법원은 무죄로 인정할 만한 명백한 증거가 없다며 이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되돌려보냈다.

고문 수사관들을 고소했으나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기각된 사례도 있었다. 진도간첩단 사건의 석달윤씨의 아들 권호씨는 "지난 93년 수사과정에서 고문을 자행한 수사관들을 고소했으나 검찰은 87년 10월로 공소시효가 이미 완료돼 조사를 못한다고 기각했다"며 "고문하고, 간첩으로 조작한 사람들에게는 공소시효가 끝났을 지 모르지만, 아버지와 같이 간첩으로 몰려 피해를 받은 우리들에게 시효는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보법 피해자들 "국회, 국보법 폐지하고 조작사건 진상규명 나서야"

이날 증언대회에 참석한 피해자들의 공통된 요구는 "국보법 폐지를 통한 사건의 진상규명"이었다.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과거의 고문 사실을 말하는 것조차 큰 고통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온 이유는 국보법에 의한 인권유린의 실상을 알려야 한다는 결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동해방문학 사건의 이원혜씨는 "과연 이런 자리가 국보법 폐지나, 고문의 실상 알리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회의도 들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보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15년 전의 내 경험을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예순 아홉의 나이에도 멀리 부산에서 상경한 재일동포간첩단 사건의 신귀영씨도 "현재 국회에서 국보법 폐지안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것을 보면 도대체 무엇이 국민을 위한 일이고, 무엇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일인지 모르는 것 같다"며 "내 억울한 사연의 진실을 알리려 왔다"고 호소했다.

인혁당재건위 사건의 전창일씨는 "가슴아픈 과거를 회상한다는 것은 고통의 재현"이라면서도 "국보법 폐지에 일조해 인권과 자유가 보장된 인간다운 세상을 앞당기기 위해 나왔다"고 밝혔다.

▲ 피해자들의 증언이 끝난 뒤 대한변협 인권위원회 박연철 변호사가 침통한 자신의 심정을 밝히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진도간첩단 사건의 석달윤씨 아들 권호씨는 "눈물이 말랐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과거의 일을 말하다 보니 아직도 눈물이 나더라"며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국보법은 당연히 폐지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 밖에 없는 것 같아 나오게 됐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날 이들의 증언을 듣던 박연철 변호사도 법조인으로서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박 변호사는 "증언을 들으며 다 우린 허수아비 검사·법관·변호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것은 나의 범죄였다는 우리 사법부의 자기고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이날 증언대회를 주최한 국보법폐지국민연대는 결의문을 통해 "오늘 우리는 과거 국보법 피해자들의 절규를 들었다"며 "그간 정권이 몇 차례 바뀌었지만 고문과 용공조작의 가해자들은 권력의 핵심부를 장악하고 수구세력은 국보법을 옹호한다"고 개탄했다.

또 국민연대는 "국보법의 시대는 국민의 인권이 짓밟히고 국가폭력이 난무하는 무법의 시대였다. 그 비정상의 시대에 벌어졌던 고문 피해자들에 대해 국가와 사회가 기억하도록 노력하겠다"며 "국보법을 올해 안에 폐지해 치욕스런 과거를 청산할 것을 엄숙히 결의한다"고 밝혔다.

"국보법 폐지가 고문 피해에 대한 위로이자 보상"
국보법피해증언대회 참석 청중들 "충격적이고 가슴 아프다" 한목소리

'국가보안법 고문·용공조작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과거 고문 피해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은 150여명의 청중들은 "충격적이고 가슴이 아프다"며 참담해했다.

민주노동당 학생위 소속으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주희(27)씨는 "고문 피해자들의 증언을 들으니 내 배고픔의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느꼈다"며 "고문가해자에 공소시효는 끝났을지 모르겠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고 밝혔다.

김경욱(35)씨는 "국보법 피해 경험이 없어 그동안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오늘의 증언은 충격적이었다"며 "국보법 폐지는 지금 시대가 고문피해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위로이자 보상"이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김재영씨도 "이렇게 의미있고 소중한 증언들을 소수의 사람들만 청취한 점이 아쉽다"며 "국보법을 목숨 걸고 지키려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런 아픈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 박상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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