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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강술래 가락에 취해 하나 되는 북경 교민들
ⓒ 정호갑
늦은 밤 중국 북경에 강강술래가 서서히 울려 퍼지고 있다. 서로 마주 잡은 손에서 우리는 한 핏줄 배달겨레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지난 15일 북경 곤륜호텔에서 '2004 송년 한국인의 밤'이 열었다. 중국에는 20여만 명의 우리 교포가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이날 천진, 대련, 청도 등에서 오신 분들을 비롯하여 북경에 거주하고 있는 교민 350여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중국이 넓다고 하지만 이곳에서 살다보면 한국보다 더 좁다는 것을 느낀다. 낯선 땅 그것도 우리와 체제가 다른 곳에서 살다보니 서로에게 관심이 더 많기 때문이다. 서로에 대한 관심은 물리적인 거리를 뛰어넘는다.

국민의례를 시작으로, 재중 한국인회 이훈복 회장님의 인사가 이어졌다. 올해 임기를 마치는 그의 말에서 그동안의 애쓴 흔적이 묻어나온다.

"올 한 해는 중국이 긴축재정을 하는 바람에 우리 모두에게 힘든 한 해였다. 하지만 한국인의 저력으로 무사히 잘 넘겼다. 재중 한국인회는 한국인을 하나로 엮는 제 5회 체육대회를 성대하게 치렀고, 자녀들의 관심사인 교육 문제를 위해 대입 안내 특강 자리도 마련하였다. 한국인회는 우리 교민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중국에 건너와서 우리 교민들을 위해 노력하신 분들에게 봉사상이 주어졌다. 한 해 동안 교민들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를 많이 쓴 그들이 상을 받을 때 터져 나오는 박수 소리는 유난히 컸다. 또 부모를 따라와 낯선 곳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장학금이 전달되었다.

▲ 올해 북경 교민들을 위해 애쓰신 분들에게 봉사상이 수여되고 있다
ⓒ 정호갑
이어 새로 선출된 백금식 재중 한국인회 회장님의 인사 말씀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그 분의 말씀에는 희생과 봉사의 각오가 느껴진다.

"새로 구성된 임원진 모두 우리 교민을 위해 봉사와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 관심을 가지고 격려를 해 달라. 그리고 대사관에서도 지금과 같이 많이 도와 달라. 해외 특파원 여러분도 계속적인 관심을 보여 달라."

무엇보다 오늘 행사를 빛내기 위해 국악인 신영희 선생님이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이곳까지 오셨다. 공연에 앞서 신영희 선생님이 한 말씀을 하셨다.

"북경에서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중국에 세 들어 살고 있다. 그런 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재 한국 학교를 짓고 있는데, 건축 기금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을 한국에서 들었다. 네 아이 내 아이 하지 말고 우리 모두 내 아이라 생각하자. 오늘 여기에 오신 분들 모두 지금껏 많이 도와주었지만 오늘 내 소리를 듣고 조금 더 힘을 내주었으면 좋겠다. 사실 나도 오늘 한국에서 큰 상을 받기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제자에게 대신 상을 받으라고 하고 여기까지 왔다. 물론 출연료도 받지 않았다. 2005년 한국인회를 이끌어 갈 백금식 회장께서는 이를 약속해 달라. 반드시 한국 학교를 우리 손으로 마무리하겠다고."

국악인답게 그 분의 한 말씀 한 말씀에 겨레에 대한 사랑이 묻어있다. 신영희 선생님의 제자들이 <춘향가> 가운데 '사랑가'로 분위기를 돋우고, 이어 신영희 선생님이 무대에 올라 <심청가> 가운데 '심봉사 맹인 잔치에 참가하는 대목'을 불렀다. 그리고 제자와 함께 민요 몇 가락을 들려주었다. 모두들 낯선 곳에서 듣는 우리의 소리에 취했다. 공연이 끝나자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 신영희 선생님 공연
ⓒ 정호갑
그 박수 소리에 신영희 선생님과 제자들이 다시 무대에 올라 강강술래로 마지막 분위기를 돋웠다. 그 소리에 맞춰 하나 둘 손을 잡고 원을 만들어 나간다. 원은 점점 커지고 마침내 모두가 하나 된다.

사실 올해 송년 모임은 예년하고 다른 것이 하나 있었다. 한국 학교 건축 기금 마련에 많은 초점을 두었다. 이날 한국 학교 건축기금 모금 예정액은 3만 달러였다고 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6만5230 달러가 모였다. 대단한 힘이다.

배달겨레임을 다시 확인하고 모두들 을유년을 기약하면서 발길을 돌렸다. 낯선 곳에서 들어보는 우리 소리, 그리고 우리 학교, 하나 된 배달겨레의 마음이 '2004 송년 한국인의 밤'에 그대로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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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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