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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41호 실상사 약사전 철제여래좌상
ⓒ 이종찬
실상(實相)이란 무엇인가. 실제로 우리들 눈에 보이는 겉모습, 즉 몸이 실상인가. 아니면 눈에 보이는 겉모습을 깡그리 걷어내고 그 겉모습 속에 웅크리고 있는 속내, 즉 마음이 실상인가. 그도 아니면 겉모습과 속내를 서로 다독이며 함께 끌고 나아가게 하는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실상인가.

나의 실상은 무엇인가. 지금 살아 꿈틀거리는 나의 몸이 실상인가. 아니면 나도 함부로 어쩌지 못하는, 주어진 환경에 따라 이리저리 마구 흔들리는 내 마음이 곧 나의 실상인가. 그도 아니면 몸과 마음을 모두 떠나 대자연의 순리에 따라 그저 그렇게 물처럼 흘러가게 놔두는 것이 실상이란 말인가.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의 참된 속성'을 실상이라고 했다. 참된 속성? 대체 그 어떤 것을 참된 속성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이 세상살이의 모든 미련을 훌훌 벗어던지고 깊은 산속에 들어가 수도를 통해 이 세상의 그 어떤 진리를 깨치고 나면 나의 참된 속성이란 것이 빛과 그림자처럼 서로 환하게 드러나는 것일까.

지난 시월 마지막 날 오후에 찾았던 실상사(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번지)는 지리산이 일구어놓은 널찍한 들판 한가운데 오래된 느티나무처럼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깊은 계곡을 디딤돌로 삼아 깊은 산 속에 산짐승처럼 엎드려 있는 여느 절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 실상사 가는 길목에서 만난 벅수
ⓒ 이종찬

▲ 철제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는 약사전
ⓒ 이종찬
저만치서 언뜻 바라보면 아이들 서넛 추수가 끝난 들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부처님 사리로 구슬치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니, '실상'이란 이름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깊은 산속에 감추지 않고 생긴 모습 그대로 이 세상에 송두리째 드러내놓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게 곧 나의 '실상'이라는 듯이.

실상사로 가는 들머리. 티없이 맑은 물이 흐르는 도랑 옆에는 독특한 모습을 한 돌장승이 사천왕처럼 눈을 부릅뜨고 있다. 삿갓 모양의 길쭉한 모자, 왕방울눈, 뭉텅한 코는 여느 돌장승의 그것과 엇비슷하다. 하지만 날카로운 송곳니와 이빨을 드러낸 채 입술을 꾹 다물고 있는 모습이 독특하다.

벼 밑둥만 드러나 있는 텅 빈 들판을 간지럽히는 도랑 위에는 반달모양의 해탈교가 돌다리처럼 놓여져 있다. 근데, 왜 하필이면 저 해탈교를 반달모양으로 만들었을까. 스스로 해탈을 하기 전에는 스스로의 반쪽만 보고 있다는 그 말일까. 그래서 해탈을 통해 나머지 반쪽을 찾아야만 완전한 나, 보름달 같은 나의 실상을 볼 수 있다는 그런 뜻일까.

실상사 천왕문을 지나면 널찍한 황토마당이 펼쳐진다. 하얀 모래가 섞인 황토마당에는 하늘을 찌르는 3층석탑(보물 제37호) 2기가 동서로 마주 보고 서서 바라보는 길손의 눈을 시리게 한다. 저 3층석탑의 머리 꼭대기에 올려진 저 멋드러진 장식이 경주 불국사 석가탑의 상륜부를 복원하는 모본(母本)이 되었다고 한다.

▲ 철불이어서 그런지 군데군데 녹이 슬어 있다
ⓒ 이종찬

▲ 철제여래좌상의 뒤에는 화려한 약사불 그림이 걸려 있다
ⓒ 이종찬
실상사 3층석탑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보광전을 지나면 정면 3칸 측면 2칸의 기와집이 봉황의 깃털처럼 아름다운 단청을 뽐내고 있다. 이곳이 바로 보물 제41호 철제여래좌상을 속내에 품고 있는 약사전이다. 약사전은 만중생의 몸과 마음의 질병을 깨끗하게 사라지게 함으로써 만중생을 부처님 품 속으로 이끈다는 곳다.

통일신라시대 때 철로 만들었다는 이 철제여래좌상은 실상사 창건 때부터 지금까지 옛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철불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철불이어서 그런지 손가락을 비롯한 몸체 곳곳에 벌건 녹이 슬어 있다. 철불 뒤에는 조선 후기에 그렸다는 약사불화가 철불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무지개처럼 아름답게 걸려 있다.

이 철불은 통일신라 후기, 우리나라 곳곳의 선종사원을 중심으로 철로 만든 불상이 활발하게 만들어질 그때 태어난 불상이다. 특히 실상사는 우리 나라 최초의 선종사찰이므로 이 철불은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우리 나라 철불의 표현 양식을 원형 그대로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상투 모양(육계)을 한 철제여래좌상의 머리에는 온통 동글동글 모여있는 달팽이 모양의 머리칼이 촘촘촘 붙어 있다. 길게 늘어진 귀는 어깨에 닿을락 말락하고, 목에는 3개의 주름살(삼도)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여기서 삼도(三道)란 깨달음에 이르는 3가지 수행단계인 견도(見道), 수도(修道), 무학도(無學道)를 말한다.

▲ 이 철불은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 이종찬

▲ 달팽이 모양의 곱슬한 머리, 초생달 모양의 눈꺼풀 속에 또렷한 눈동자가 눈에 띈다
ⓒ 이종찬
눈썹 사이에 하얀 보석(백호)이 박힌 철불의 이마는 여느 석불의 널찍한 이마에 비해 아주 좁은 편이다. 그리고 초생달처럼 길게 늘어진 눈꺼풀 속에 박힌 또렷한 눈동자, 평범한 코, 꽃잎 두개를 포개놓은 듯한 굳게 다문 입 등에서 부처님의 부드럽고 포근한 천년의 미소를 찾아내기란 그리 쉽지 않다.

철불의 어깨선은 두 팔 아래로 물결처럼 매끄럽게 흘러내리고, 가슴 또한 숨을 들이쉴 때 약간 부풀어오르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잘 표현되어 있다. 붉으죽죽한 이 철불의 듬직한 몸에 얇게 걸쳐져 있는 옷주름 또한 여느 불상처럼 자연스러운 U자형으로 짧게 새겨져 있다.

하지만 여기저기 꺼무튀튀한 녹이 낀 흔적이 남아 있는 철불이어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왠지 어둡고 우울하다. 양 어깨를 매끄럽게 흘러내린 법의 또한 아랫배와 무릎으로 내려올수록 속세에 쌓인 번뇌처럼 무거워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니, 어쩌면 그런 칙칙한 느낌은 철불 뒤에 걸려있는 화려한 모습의 약사불화 때문인지도 잘 모르겠다.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실상사 철제여래좌상의 이러한 특징은 "긴장감과 활력이 넘치던 8세기의 불상이 다소 느슨해지고 탄력이 줄어드는 9세기 불상으로 변화"하는 그런 시기에 만들어진 다소 "과도기적인 작품이라는 점에 그 의의를 둘 수 있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이 철불을 누가 만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 불상을 철제로 만들어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느낌이 든다
ⓒ 이종찬

▲ 철불의 몸에 낀 저 녹이 저절로 사라지는 그날은 언제쯤일까
ⓒ 이종찬
실상사는 신라 흥덕왕 3년, 서기 828년에 증각대사가 신라 9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산문'(實相山門)을 이곳에 개산하면서 처음 세운 절이라고 한다. 또한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 나라를 감싸고 있는 정기가 가까운 왜국으로 건너가 버린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실상사를 세웠다고도 전해진다.

군데군데 거무튀튀하게 낀 녹과 붉으죽죽한 녹이 슬고 있는 철제여래좌상을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을 때 문득 환청이 들린다.

'내 몸에 녹이 스는 것은 오늘날 이 세상의 실상을 드러내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이 세상이 아름다워지면 곧 내 몸에 슬고 있는 이 녹도 저절로 사라질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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