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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속담에 '취향은 설명할 수 없다(There is no accounting for taste)'는 말이 있다. 사람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무슨 논리적인 이유를 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호가 사회문화적 진공상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면, 취향에는 반드시 사회적, 역사적 배경이 있기 마련이다. 음식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의 북부에서 주간고속도로(Interstate)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도로 주위에 켄터키프라이드치킨 식당체인점이 하나 둘 늘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다가 루이지애나 근처로 들어서면 그 식당들은 서서히 파파이스 치킨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물론 '케이에프씨'가 켄터키 주에서 시작되었고, 파파이스가 루이지애나 주의 뉴올리언즈에 본사를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다른 식당의 분포는 무엇보다 지역마다 다른 입맛과 음식문화를 드러내 준다.

▲ 위스콘신주의 축제에서 브랏을 굽는 장면. '브랏'은 독일 이민자들에 의해서 미국사회에 유입되었다.
ⓒ 강인규
한국과는 달리, 미국의 켄터키프라이드치킨에서는 매운맛 치킨을 팔지 않는다. 멕시코 음식과 아시아 음식의 보편화로 미국인들의 식성이 서서히 바뀌고는 있지만, 아직 매운 음식은 미국인들의 보편적 입맛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파파이스는 매운맛 치킨을 주 메뉴로 삼고 있는데, 이것은 강한 양념을 좋아하는 루이지애나 특유의 '케이준(Cajun)' 취향을 반영한다.

한국에서는 이 두 체인점의 차이가 허물어져 버려, 어느 곳에서든 매운 맛 치킨을 살 수 있다. 매운 음식을 선호하는 한국인의 취향을 고려한 마케팅 전략이다. 이는 세계가 거시적으로는 획일화 되지만, 동시에 지역적으로는 차별화 된다는 소위 '세계-지역화(glocalization)'의 예라 할만하다.

비록 앞의 두 식당체인이 서로 다른 입맛을 겨냥하고 있지만, 모두 '튀긴 음식'이라는 점에서는 남부 특유 음식문화를 공유하고 있다. 남부의 튀긴 음식 선호가 비단 닭고기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켄터키와 루이지애나 사이에 있는 테네시는 돼지갈비를 쪄서 양념을 발라 구운 '포크 립'으로 유명한데, 이곳의 식당에서는 갈비와 함께 기름에 튀긴 빵을 함께 내놓기도 한다. 이 빵은 '튀겼다'기보다는 '적셨다'고 할 만큼 기름을 흠뻑 머금고 있기 일쑤다.

'순대 소시지'와 '잠수함 샌드위치'

그러나 남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케이에프씨와 파파이스는 북부로 올라오면서 하나 둘 맥도널드 속으로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일리노이를 지나 위스콘신에 도착하면 '브랏(Bratwurst)'이라는 독특한 음식이 기다리고 있다. 순대와 소시지의 중간쯤 해당하는 이 음식은 독일계 이민자들에 의해 개척된 위스콘신주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민자들의 가지고 온 독일 및 북유럽의 문화는 이 주의 건축양식과 교육방식뿐 아니라 음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처음으로 미국에 유치원(Kindergarten) 제도를 공교육에 편입시켰고, 대학교 식당에서 처음으로 맥주를 팔기 시작했으며, 매년 두 차례 '브랏 페스티벌'을 열어 도시를 소시지 굽는 연기로 뒤덮기 시작했다.

햄버거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지만, 1885년 위스콘신주의 시모어 마을에서 독일계 이민자인 찰리 내그린(Charlie Nagreen)이 처음 소개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 마을에서는 매년 햄버거 축제가 열린다.

처음으로 팝콘 튀기는 기계를 발명해 미국에 '팝콘 문화'를 소개한 일리노이의 시카고를 지나, 팝콘용 옥수수의 본고장인 인디애나를 거쳐 펜실베이니아에 도착하면 미국에 '서브 샌드위치(sub sandwich)'를 유행시킨 필라델피아의 '필리 치즈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다. '서브'란 이름은 잠수함(submarine) 모양의 긴 타원형 빵을 쓴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네덜란드 이민자들이 가지고 온 프레첼과 함께 펜실베이니아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이곳에서 조금 더 동쪽으로 가면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들여 온 피자의 본고장 뉴욕에 도달한다. 본래 피자는 이탈리아의 남부도시 나폴리에서 유래했지만, 미국에서는 제나로 롬바르디가 1905년 뉴욕시에 처음으로 피자식당을 연 것을 시작으로 해서 미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성장했다.

▲ 시카고 특유의 '딥-디시' 피자
ⓒ 지노스
비록 이보다 역사는 짧지만, 피자에 관한 한 시카고의 자부심은 뉴욕에 뒤지지 않는다. 시카고식 피자는 밀가루 반죽을 강조하는 뉴욕식과는 달리 두꺼운 토핑이 주가 되어 '딥-디시(Deep-dish)' 피자로 불린다.

매사추세츠, 메인, 코네티컷, 버몬트, 뉴햄프셔, 그리고 로드아일랜드로 구성된 뉴잉글랜드 지방은 추수감사절 요리로 잘 알려진 미국 전통음식의 원조라 할 만 하다. 가재, 조개, 굴 등 풍부한 해산물을 사용한 수프와 육류를 활용한 스튜 류의 물을 넣어 끓이는 요리가 잘 발달되어 있다. 쇠고기와 감자, 당근, 양배추를 담백하게 삶아내는 '보일드 디너(boiled dinner)'는 뉴잉글랜드 지방에 영향을 준 영국음식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미국음식'은 먹을 것이 없다?

미국을 방문한 사람들은 흔히 '미국음식은 먹을 것이 없다'고 말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미국음식'이란 햄버거나 피자를 지칭하는 것일 터이다. 그러나 이 평가는 여러 모로 부당하다. 무수히 많은 이민자들로 구성된 미국사회의 음식은 그 이민자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 보스턴의 한 중국식당 상차림. 이곳의 중국요리는 보스턴의 풍부한 해산물과 결합되어 독특한 음식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 강인규
엄밀히 말해 '미국음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햄버거는 독일 이민자들이, 그리고 피자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가지고 들어 온 '외국음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햄버거와 피자를 '미국음식'으로 부를 수 있다면, 미국에 존재하는 멕시코, 그리스, 쿠바, 중국, 일본, 한국, 태국, 베트남 음식까지 그 목록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각 나라에서 건너 온 이민자들은 엄연히 미국사회의 구성원들로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이 가지고 온 음식은 그 사회의 입맛에 맞게 서서히 '미국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미국의 어느 지역에서 설탕을 듬뿍 넣은 김치찌개가 팔리고 있을 것이며, 생선을 뺀 초밥이 '캘리포니아 롤'이라는 이름으로 대학 식당으로 배달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각기 '한국음식'과 '일식'이라는 이름으로 식당의 메뉴를 장식하겠지만, 미국사회의 식탁을 풍성하게 가꾸어 가는 '미국음식'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미국음식의 다문화성은 '미국적 고유성'을 가장 많이 지닌 것으로 알려진 텍사스 서남부 지역의 음식마저 예외가 아니다. '텍스-멕스 요리(Tex-Mex cuisine)'로 알려진 이 지방의 음식은 텍사스 지역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옥수수, 토마토, 칠리 고추, 얼룩콩 등의 재료를 멕시코식으로 조리한 것이기 때문이다. 쿠바, 자메이카, 바하마 제도 등 카리브해의 영향을 받은 플로리다 음식이나 중남미에서 아시아와 유럽 대륙 등 가능한 모든 영향을 받은 캘리포니아의 음식은 두 말할 나위 없다.

▲ 위스콘신주 근교의 스위스마을 뉴글래러스의 풍경. 150년 전에 건너 온 스위스 이민자들은 아직도 자국의 풍습을 지켜가고 있다. 식당과 가게의 간판이 독일어로 쓰여져 있기도 하고, 식당에서는 퐁뒤 등의 스위스 전통음식을 판다.
ⓒ 강인규
멕시코의 칠리와 부리토, 아시아의 볶음밥, 에그롤, 캘리포니아롤, 그리고 지중해의 기로와 케밥 등 미국의 전역에서 찾아볼 수 있는 보편화된 외래음식이 있는가 하면, 특정 지역에서만 명맥을 유지해 온 독특한 음식들도 있다. 루이지애나의 포보이(Po’ Boy)샌드위치나 크로피시(crawfish) 튀김, 플로리다의 악어고기 스튜나 바비큐, 위스콘신의 피시보일(fish boil)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 음식들은 고유의 재료와 조리방법으로 각지의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위스콘신 북부지방 도어카운티의 명물인 '피시보일'은 백여 년의 스칸디나비아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독특한 음식이다. 미시간 호수에 둘러싸인 이 반도지역은 스웨덴과 노르웨이 출신의 북유럽이민자들에 의해 개척되었는데, 그들은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인 송어와 감자를 써서 이 음식을 만들었다. 먼저 장작불 위에 솥을 올려 물을 끓이다가 야채를 넣어 익힌 다음, 큼직하게 썬 백송어를 야채 위에 올려 함께 끓인다.

▲ 위스콘신 북부 도어카운티의 특산음식인 '피시보일.' 끓는 물과 소금만으로 요리하는데, 백여년 전 스칸디나비아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에 의해 소개되었다. 요리를 마무리하기 전에 불 속에 연료를 부어 솥이 불길에 휩싸이게 한다.
ⓒ 강인규
조미료는 오직 소금만을 쓰는데, 이것 역시 맛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물 온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생선이 다 익을 무렵에 요리사는 장작불 위에 연료오일을 끼얹어 집채만한 불길을 만든다. 이것은 불의 온도를 갑자기 높여 생선으로부터 나온 기름과 불순물을 끓어넘치는 물과 함께 솥 밖으로 내보내는 역할을 한다. 야채와 함께 같은 접시에 담겨 나오는 피시보일은 보통 맥주와 곁들여 먹는다.

미국인의 커피, 영국인의 차

1773년 12월 16일 밤, 인디언 복장을 한 미국인 세 명이 보스턴항에 정박중이던 세 대의 영국상선 위로 몰래 잠입해 들어갔다. 그들은 그 배에 실려 있던 판매용 차 300여 상자를 들어 물속으로 던져버렸다. '보스턴 티 파티(Boston Tea Party)'로 알려진 이 사건은 미국 독립전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의도하지 않게 '역사적 사건'이 되어버린 이 소동은 영국정부 때문에 오른 차 값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영국이 몇 년 전 미국을 대상으로 차 1파운드에 3펜스씩 세금을 매기는 '타운센드 법'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건너온 식민지 개척자들은 차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인류의 역사는 차와 설탕, 후추로 인해 일어난 무수히 많은 전쟁을 기록하고 있다. 역사가 사람들의 입맛을 바꾸기도 하지만, 입맛이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영국에 맞서 싸우는 동안 미국인들은 계속해서 영국을 통해 수입되는 차의 소비를 거부했으며, 결국 영국인과는 다른 입맛을 가지게 되었다. 미국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 중국으로부터 직접 차를 수입하게 되었으나, 이미 잃어버린 차 맛은 되찾지 못했다.

우리가 길가에서 파는 음식 하나하나에서 문화와 역사를 발견 할 수 있다면, 그 음식을 입에 넣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는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다. 포장마차의 붕어빵에서 학교식당의 '함박스텍'에 이르기까지 그 음식이 거쳐 온 다른 문화가 우리 삶을 얼마나 풍성하게 해 주었는지 대해서도 생각할 여유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누구보다 이 문화적 다양성의 수혜자임을 깨달아야 할 대상이 있다면 바로 미국일 것이다. 다문화의 혜택으로 풍요를 누려왔으면서도 점차 배타적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미국사회를 생각해 볼 때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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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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