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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42년 8월 6일, 고아들과 함께 가스실에서 죽은 코르착

유럽에서 큰 전쟁이 다시 터지고 유대인이 하나둘 끌려 가던 1942년 8월 6일, '야누슈 코르착'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이들 손을 잡고 폴란드 거리를 걸었습니다. 그 뒤에는 스테파니아라는 고아원 교사가 마찬가지로 아이들 손을 잡고 걷습니다. 나라가 보살피지 못하고, 사람들이 내버린 고아들 200명 남짓은 저마다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이나 책을 손에 들고 단출하게 옷을 차려 입은 채 트레블링카 가스실이 마지막 역인 화물차에 올랐습니다.

코르착을 아는 동무들은 독일군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해 주겠다고 애를 썼지만 "당신 아이가 아프고 불행하고 위험에 처해 있는데 이 아이를 버리지는 않겠지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200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꾸하면서 폴란드 거리 곳곳에 버려진 고아들을 거두어서 보살피다가 가스실로 갔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코르착은 1904년에 의사 자격을 얻은 뒤 러일전쟁 때 군의관으로 징병됩니다. 전쟁을 겪은 뒤 그는 "전쟁은 참으로 혐오스러운 것이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굶주리고 학대 받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국가든 참전하기 전에 아무 죄도 없는 아이들이 다치고 죽고 고아가 되어야만 하는 현실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회를 개혁하려면 먼저 교육을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편,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빼앗기고 잃어버린 '존중' '사랑' '관심'을 되돌려 주고자 애쓴 사람이 야누슈 코르착이라고 하는 폴란드 사람입니다.

아이가 어른과 다른 점은 단 하나,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뿐입니다.
생계를 어른에게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어른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강요받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양철북(200)> 35쪽


"아이들을 알려고 하기 앞서 자기 자신을 알려고 애쓰라"고 말하는 코르착. 그는 세상 사람을 고치는 의사가 되었으나 의술만으로는 아픈 마음을 다스릴 수 없어서 교육자가 되고, 고아원장이 됩니다. "비밀을 캐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는 비밀을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어린이가 누려야 할 권리, 어린에게 지켜줘야 할 권리를 말하고, 몸으로 지켜주려 애쓴 코르착입니다.

아이가 숟가락으로 식탁을 두드리고 있을 때
그 숟가락을 빼앗아 버린다면,
단지 물건 하나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에너지를 분출하고
소리를 냄으로써 자신을 표현하던
손의 일부를 빼앗는 것입니다. <38쪽>


우리들은 아이들이 누리고 얻을 권리도 지켜주지 못하지만, 자기 감정을 나타낼 숟가락마저 빼앗아 버립니다. 그리고 주먹을 들어 머리통을 내갈기거나 손바닥을 펴서 뺨따귀를 때리죠? 손가락에 힘을 주어 팔뚝이나 옆구리에 멍이 들 만큼 세게 꼬집기도 하고요.

<2>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 책 겉그림입니다. 따로 책싸개가 있는데, 읽을 때 벗겨놓고 읽다가 그만 읽어 버려서 속 모습 사진만 올립니다.
ⓒ 양철북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아주 정성스럽게 '좋은 책'을 기꺼이 사 줍니다. 돈이 얼마가 들던 그다지 신경쓰지 않습니다. 아이가 그 책을 다 읽어 내고 속으로 삭여 내느냐도 헤아리지 않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들은 깜냥으로 끝없이 책을 사 줍니다. 그런데 이런 '책 사주기'는 아이가 중학생이 될 때부터 끊어집니다. 이때부터는 학원 교재, 문제 모음, 참고서, 학습지뿐입니다. 이제는 과외비에 돈 대느라 바쁩니다.

무슨 놀이를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노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놀이를 할 때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느냐가 중요합니다. <42쪽>


제 어릴 적 기억으로, 어머니가 책을 사 주신 일은 아주 드뭅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어릴 적에 책을 얼마 안 읽었습니다. 동네 아이들과 신나게 뛰어노느라 바빴거든요. 놀이란 놀이는 다 하면서 놀던 그때를 생각해 보면, 요즘 아이들은 우리에 갇힌 돼지와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좁은 우리에 틀어 박혀서 주인이 주는 밥만 꾸역꾸역 먹어야 하는 돼지와 요즘 아이들이 무엇이 다를까요?

좁디 좁은 우리에 갇힌 돼지는 자기 생태와 달리 '사람 눈에는 더럽게 보이고 살도 디룩디룩 찝니다'. 마찬가지로 요즘 아이들은 머릿속에 지식은 많이 들어가지만 사람답게 자라나는 마음과 생각은 익히거나 배우지 못해요.

책을 푸짐하게 사 주는 부모들이 그 책을 아이와 함께 읽고 즐기나요? 아닙니다. 그런 부모는 아주 드뭅니다. 어린이 책에 담긴 깊고 너른 뜻을 제대로 헤아리는 부모는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저 '아이가 어리니까 사서 읽히게 하는 것'뿐인 부모가 거의 모두입니다. 그러니, 그런 부모들이 중고등학생 아이들에게 책 한권 사 주지도 않을 뿐 아니라, 아이가 사람답게 크고 곧고 튼튼한 생각을 갖추도록 가르치는 일에는 털끝만큼도 눈길을 보내지 못하는 거예요.

아이에게 참으로 중요한 걸 모릅니다. 세상 모든 부모들은 '아이를 낳고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힐 줄'은 알지만 '아이가 사람답게 자라도록 가르치고 이끌 줄'까지는 모릅니다. 밥과 옷과 집은 돈이 있으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습니다. 요즘 부모는 '돈'으로 할 줄 아는 것만 생각할 뿐, 돈 없이, 아니 돈을 넘어서 온몸과 온마음으로 부대끼며서 아이 마음을 헤아리고 함께 하면서 나눌 수 있는 것은 도통 모르고, 알려고도 애쓰지 않습니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있어도
그 안에는 수백의 다른 심장이 뛰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은 서로 다른 난제이고,
서로 다른 과업이며,
서로 다른 염려와 관심을 베풀어야 할 대상입니다.<58쪽>


<3> 어린이에게도 '사람 권리'가 있다

국제연맹은 1924년에 어린이 인권선언을 채택하고 1959년에 2차로 선언문을 다시 만들지만 '말'뿐인 선언문이었답니다. 코르착은 국제연맹 선언문이 있기 앞서부터 "선언문은 선의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 강요해야 한다. 호의를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1989년, 비로소 '어린이 인권협정'이 나와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어린이 인권' 문제를 법으로 강제할 장치를 마련합니다. 하지만 이런 인권협정이 있어도 우리 나라에서 살아가고 자라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인권을 누리는 모습'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대로, 중고등학생은 중고등학생대로, 학교를 안 다니는 아이들은 또 그 아이들대로 온갖 짐과 굴레에 갇힌 채 숨도 제대로 못 쉬며 살고 있어요.

"사실은 어린이들은 인류, 국민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뿐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이고, 현재 여기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67쪽>"라는 걸 어른들이 모르기 때문일까요?

"엄마는 어른이 차를 엎지르면 '괜찮아요'라고
말하면서 내가 엎지르면 화를 내요!"
아이들은 불공평한 대우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깊은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서 종종 울음을 터뜨리지만 어른들은
대수롭지 않고 성가신 것으로만 취급합니다.
그리고 무시할 만한 것으로 여깁니다.
"또 칭얼거리고 징징대네!"
이 말은 아이들에게 쓰려고
어른들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53쪽>

어린이가 어른의 잘못을 따지는 것을
우리는 싫어합니다.
그들에게는 우리의 잘못과 어리석음을 눈치챌
권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56쪽>


돈이 있고, 얼굴이 예쁘고, 권력이 있으면 죄를 지어도 죄값을 받지 않고 뒷구멍으로 빠져나올 수 있듯, 우리들은 '어른'이라는 엄청난 권력으로 '어린이'를 차별하고 괴롭힙니다. 멀리 볼 것 없이, 우리네 학교를 생각해 봅시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잘못했을 때 '체벌'해야 하느니 마느니, 회초리를 어떤 것으로 써야 하느니 마느니를 따집니다. 그런데 교사들이 잘못했을 때는? 학생들이 잘못했을 때 교사에게 체벌을 받아야 한다면, 교사들이 잘못했을 때는 학생에게 체벌을 받으면 될까요?

<4>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이 맑겠죠?

야누슈 코르착은 어떤 사람?

1879년 7월 22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자기 이름은 '헨리크 골드슈미트(Henryk Goldszimt)'인데 스무 살이 되던 해 폴란드에서 권위 있는 문학상 가운데 하나인 '파데레프스키(Paderewsky)'상을 받으면서 글이름(필명)인 '야누슈 코르착'을 쓴다. 이 문학상은 응모자에게 글이름을 쓰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공모하기 바로 앞서 글이름을 '야냐슈 코르착'이라 지었다는데, 식자공이 잘못해서 '야누슈'로 쓰는 바람에 그 뒤로 이 이름을 그대로 쓴단다.

가난하고 아픈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의사가 된 코르착은 부유한 환자에게는 돈을 많이 받고 가난한 환자에게는 돈을 한 푼도 안 받고 돌봐 주는 한편 약 살 돈까지 주고 가기도 한 사람이다. 그런데 의술만으로는 사회 문제를 풀 수 없음을 느끼고는, 새로 세워진 유대 어린이 고아원 원장이 되며 아이들 문제를 부대끼고 고쳐 나가게 된다. 이때부터 코르착은 고아원 다락방에서만 살며 아이들을 돌보는 일로 평생을 바친다.

코르착은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한편 <매트 1세>, <내가 다시 어려진다면> 같은 작품을 쓰고 <작은 평론>이라는 어린이 주간지를 만들고 폴란드 국영방송에서 '의사 할아버지'란 이름으로 어린이와 보육 문제를 사람들에게 알리기도 한다. 그러던 1939년,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했고 마침내 1942년 8월 6일, 고아원 아이 200명 남짓과 평생 고아원지기로 함께 일한 교사 스테파니아 들과 함께 가스실로 가는 기차에 당차게 오르며 삶을 마친다. 1989년에 국제연합에서 내놓은 어린이 인권협정은 바로 코르착이 쓴 어린이 인권에 얽힌 글을 바탕으로 썼으며 1979년 '세계 아동의 해'는 코르착이 태어난 지 100해를 기려서 '야누슈 코르착의 해'라 하기도 했다.
코르착이 한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게는 예부터 내려오는 훌륭한 말이 있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그 말입니다. 윗물, 그러니까 어른들이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워야 아랫물은 아이들은 그런 어른을 보고 배우고 따르고 우러르고 좋아하기 마련입니다.

청소년범죄는 청소년이 못나고 문제가 많아서 일으키는 범죄가 아닙니다. 어른들이 저지르는 온갖 범죄를 흉내내고 따라하는 범죄입니다. 청소년들이 범죄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터전을 만들고 만 어른들 탓입니다. 남녀차별, 인종차별, 계급차별, 재산차별, 생김새차별, 지역차별, 학력차별이 곳곳에 퍼진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고 느끼면서 자랄까요? 이렇게 '차별 넘치는 세상'에서 동무들끼리 따돌리고 괴롭히는 '왕따'라는 게 안 생길 수가 없습니다.

.. 안타깝게도, 무심한 어른은 화가 났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이 물건들을 꺼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머니가 늘어진다거나 서랍 속에 복잡하다는 이유로요. 다른 사람의 소중한 재산을 이런 식으로 매정하게 다룰 수 있나요? 이렇게 하는데 어떻게 아이가 다른 사람이나 물건을 존중하는 마음을 배우겠어요? 그것은 쓰레기통에 들어갈 휴지 조각이 아니라 소중한 물건이고, 눈부신 꿈의 조각입니다 .. <131쪽>

아이들을 아이들답게 받아들이고 껴안고 토닥거리면서 감쌀 수 있는 마음이 참으로 소중합니다. 이런 마음을 지니면 우리 사회에 차별이 자리할 수 없습니다. '다름'을 '아름다움'으로 느끼면서 '틀림'과 '잘못됨'을 하나씩 고치고 다듬어 나갈 수 있어요.

모든 사람이 다 같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낮과 밤, 여름과 가을, 젊은이와 늙은이가 있고,
뜰에는 나비가, 하늘에는 새가 있고,
꽃 색깔이나 사람들 눈 색깔이 저마다 다르듯이
신이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였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만 차이를 싫어하고,
생각하고 들여다보고 이해할 필요가 있는
다양성을 불편해 합니다. <146쪽>


<아이들, 양철북(2002)>이란 작은 책에는 코르착이 우리에게 건네는 속깊은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허리를 굽혀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길 바라는 이야기, 사실을 얘기할 수 없지만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아서 말없이 있는 아이들 이야기, 사랑이 있으면 곧바로 사랑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아이들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야누슈 코르착의 아이들

야누슈 코르착 지음, 노영희 옮김, 양철북(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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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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