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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북한과 관련한 소설을 읽고 독후감을 쓰라는 명이 내게 떨어졌다. 교과서를 비롯한 기존 북한 자료와는 달리 비록 가상의 상황을 설정하긴 했지만 민간인의 입장에서 서술된 소설이었다고 기억한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 그것도 반공의식이 철저한 남한에서 발간된 소설인 만큼 북한 사회주의의 실상을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사회주의에 대한 이상적 환상을 갖고 있던 내게 그 책은 여러 모로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쓴 독후감의 ‘평소에 사회주의를 신봉해오던 나로서는’이라는 구절이었다. 윤리를 가르치는 선생이 나를 불렀다. 현재 남한 사회에서 사회주의를 ‘신봉’해왔다는 말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게 요지였다. ‘관심’이었던가, 여하튼 그다지 집착할만한 단어는 아니었으므로 다른 단어로 대체하긴 했지만 무언가 기분이 찝찝했다. 조금 자란 지금 와서 보면 그 선생은 그 순간만큼은 개인으로서가 아닌 집단의 부속품으로서 존재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국보법이라는 허울 좋은 악법 아래 매순간 자기검열을 요구당하는, 거대한 집단 속 개인으로서 선생은 학생이 쓰는 단어 하나하나에도 행여나 색깔이 들어가 있지나 않은지 반응을 보인다. 그 어떤 대립보다 이데올로기 대립이 극심한 이곳에선 자유로운 의미에서의 개인이란 불가능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 통일뉴스
지난 4월 출간된 북한연구가 김남식 선생의 <21세기 우리민족 이야기>는 북한의 주체사상을 여러 각도로 분석하여 쓴 글이다. 이 글에서 주로 다뤄지는 내용은 민족과 민족주의의 개념, 북한의 통일론, 북한의 사회주의 등이다. 그러나 모든 내용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민족’에 관한 것인데, 저자는 책에서 민족을 ‘사회역사적으로 형성된 공고한 사회적 집단’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다.

‘2002 월드컵 한일전이 벌어지고 있는 경기장에서 집단적으로 흥분에 휩싸여 이성을 잃으면서까지 자국 응원을 하는 것은 민족주의적이다’라는 문장을 살펴보자. 여기서의 민족주의가 함의하고 있는 것은 바로 다름 아닌 배타적 민족주의, 국수적 민족주의다. 즉 민족주의라는 개념은 나치의 홀로코스트, 팔레스타인 지역분쟁, 네오나치와 같은 역사적 · 사회적 사건을 거쳐 오면서 상당부분 그 의미가 오염 혹은 변질되어왔다.

저자는 이러한 민족주의를 ‘사이비 민족주의’라 지칭하면서, 이와 별개로 긍정적인 민족주의는 본래의 성질이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긍정적인 민족주의의 이상적 모델로 상정하고 있는 것은 북한식 민족주의, 즉 우리민족제일주의이다. 그리고 우리민족제일주의 정신의 합리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북한식 사회주의, 주체사상론을 이야기한다.

1. 도대체 ‘사람’은 누구인가

주체사상론이란 김정일에 의해 체계화된 ‘사람중심의 철학사상’이다. 기존 마르크스주의가 물질과 의식, 존재와 사유에 관한 것을 철학의 근본문제로 삼았다면, 주체사상은 세계와 삶과의 관계에서 삶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에 관한 문제를 우선시한다.

전자가 사람을 포함한 물질세계의 본질과 운동의 일반적 합법칙성을 논증한 것이라면, 후자는 세계와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람이 주체이며 모든 것의 주인이고 따라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는 원리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과연 철학적 고찰에 사람을 중심으로 놓는다는 것이 북한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독자적이고 자주적이며 소위 ‘인간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14세기 일어난 르네상스는 흔히 휴머니즘, 즉 인문주의의 태동과 결부시켜 설명되는 게 일반적이다. 신 중심 세계관이 지배했던 중세 시대와 달리 르네상스는 중세를 암흑시대(Dark Ages)라고 매도하면서 인간을 세계의 중심에 놓고 삼라만상을 설명하려고 한다. 이러한 인문주의는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켜 인간을 보다 자유롭고 현세의 삶을 즐길 수 있게 하는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인간을 찬양하는 많은 예술 작품과 사상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그들이 상정하고 있는 ‘인간’이란 일부 지식층과 상류 사회의 구성원에 지나지 않았다. 인간의 자유로움을 노래하면서 노예제는 계속 유지되었고 이렇듯 일반 민중은 ‘인간’들의 쾌락을 극대화하는 데 도구로써 이용되었을 따름이다.

북한식 사회주의, 주체사상이 주장하는 ‘사람 중심의 철학사상’이 과연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일반 민중을 위한 것일까?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고 했을 때의 ‘사람’은 다수 인민이 아니라 사회주의 권력 피라미드의 정점에 위치한 소수 수뇌부이다. 또한 주체철학에서 중요시하는 ‘사상의식’이란 ‘물질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사람의 뇌수라는 물질의 산물’인데, 이러한 사상의식이 사람들의 행동을 규제하고 조절 통제해야 한다는 것은 ‘수령’이라는 절대자의 등장을 정당화하는 논리에 불과하다.

자본주의의 불평등한 계급구조를 비판하면서 정작 북한식 사회주의의 이념적 혜택은 ‘수령-당-대중 통일체’라는 빛 좋은 개살구를 전면에 내세우며 인민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몇몇 엘리트들에게만 국한되어 있을 뿐이다.

2. 그렇다면 ‘민족’은 누구인가

‘민족’이라는 개념이 상정하고 있는 실체 - 즉, 한반도라는 지역 내에서 한국어를 쓰며 핏줄이 같은 한민족은 근대 이전에도 분명 존재하고 있었지만 ‘민족’, ‘민족주의’라는 개념 자체는 확실히 근대적인 것이다. ‘근대적’이라는 것, 즉 근대성에 대한 논의는 최근 몇 년간 학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지속되어온 담론이다. 이에 가리타니 고진은 그의 저서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에서 일본사회 내 근대성의 시초를 ‘풍경의 발견’에 의거하여 설명한다.

그는 일본 근대 작가 구니키다 돗포의 책 <소라치 강가>를 근거로 ‘풍경’이 외부 세계에 관심을 갖지 않는 ‘내면적 인간’에 의해 도착적으로 발견되었다는 것과, 돗포가 가진 ‘풍경’에의 사유가 타자의 타자성을 생략시키는 제국주의의 식민지정책과 유사하다고 설파하고 있다. ‘민족’이라는 공동체적 내면에 회귀하기 위해서는 타자의 타자성을 삭제하는 과정을 필요로 하는데, 외부 세계에 대한 인식과 이어지는 배제 없이는 내부 세계가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족주의, 특히 한국이라는 포스트식민지 사회에서 민족주의는 이와 유사하게 타자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존재해왔다. 다시 말해, 일제의 식민질서를 극복하지 못한 채 한국의 민족주의는 남성 일반을 주체로 상정하고 이에 타자인 여성을 은폐시키며 이어져왔던 것이다.

저자는 책 속에서 얼마 전 배우 이승연의 누드집 사건을 일컬어 ‘정신대의 아픔을 누드화보집으로 만든 한 연예인과 기획사에 대한 전 국민적인 분개’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한국에서 민족주의가 어떠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가지 예라고 보인다.

촛불시위와 같이 ‘민족/외세’라는 대립구조를 갖는 장(場)에서 주로 사용되는 이미지들이란 미군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한국여성들의 시체 사진(윤금이씨, 신효순 · 심미선씨)이다. 이는 ‘미국이라는 상징적 남성에 의해 강간당한 여성으로서의 민족’이라는 구도를 통해 전 국민적으로 민족주의적 분개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때 여성의 신체는 네크로필리즘을 만족시켜주는 도구로써, 그리고 ‘내 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남성적이고 가부장적인 울분을 증폭시키는 장치로써 마구잡이로 이용된다.

또한, 민족을 정의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를 ‘핏줄’로 드는 것은 단일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이 아니라 국가간 인구 이동이 활발한 최근 추세로 봤을 때 민족내 순수혈통을 지키려는 배타적 민족주의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저자는 현대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범죄, 경제 위기, 빈부격차 등을 ‘사회병리현상’이라 지적하고 이는 미국의 세계화정책을 원칙 없이 비자주적으로 수용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대안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남북 협력체제의 민족경제’는 당위적인 견지에선 옳을지 모르지만 현실적인 측면에선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충분한 부연설명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

맺으며

민족주의가 여전히 풀어내기 힘든 과제인 것만은 확실하다. 북한식 사회주의가 독자적이고 자주적인 방식으로써 ‘우리 것’을 지켜나간다고는 하지만, 폐쇄적 경제구조로 인해 결과적으로 인민들의 삶의 질을 저하시킨 데는 분명 큰 오류가 있다.

또한 소련 등 동유럽 국가의 사회주의 붕괴 원인을 두고 ‘…경제건설만 내밀면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중략)…인간개조사업에 선차적인 힘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김정일의 담화는 북한식 사회주의가 인민의 구체적 삶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사회 전체적인 이데올로기에 맹목적으로 매달려 있다는 인상을 준다. 기존의 봉건적인 제도(수령이라는 절대자를 구심점으로 중앙집권, 절대권력을 구축하는 제도)에 대한 비판은 존재하지 않고 단지 자본주의로 대변되는 외세를 향한 타파만이 그들이 이야기하는 모순의 궁극적 소멸을 가져다줄 지에도 의문은 남아 있다.

막연히 민족적 당위에 의해서가 아닌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통일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현재와 같이 남북의 경제 수준이 현저하게 다른 상황에서는 아무리 북한식 통일론이 우세한 것이라고 해도 자본주의 남한 사회 내 북한 여성들의 성매매 산업 유입, 마구잡이식 북한 개발, 남북 간 상이한 문화토양에서 오는 충격 등 통일 후 후유증은 심각할 것이다. 물론 이에는 저자의 의견처럼 남북간 지속적인 교류와 합의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북한연구가 김남식 선생의 21세기 우리민족 이야기

김남식 지음, 통일뉴스(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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