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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호박
ⓒ 한성희
추석과 연휴가 끝나자 갑자기 날씨가 추워질 정도로 기온이 급강하한다. 한여름의 기억이 불과 어제 같은데 추워서 옷을 단단히 껴입을 정도라니. 그러나 낮이 되자 따가운 가을 햇살 아래 공릉 한 켠 담장 밑의 호박이 누렇게 익어가고 산사나무 열매가 빨갛게 물든 것을 보니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 확실하긴 하다.

▲ 영릉 시냇가의 산사나무 열매
ⓒ 한성희
추석 날, 공릉에서도 작은 이벤트가 벌어졌다. 민속놀이마당을 개최해 윷놀이, 널뛰기, 제기차기, 투호놀이를 펼쳤다. 성묘를 끝낸 가족들이 능을 찾아 공릉 입구 마당에서 벌어진 윷놀이와 제기차기를 즐기다가, 숲 그늘에 자리를 펴고 단란하게 모여 차례 음식을 나눠먹으며 즐기는 모습은 보기에도 흐뭇한 광경이다.

윷놀이나 제기차기, 널뛰기는 해 보았던 것이니 별로 새로울 것도 없었지만 투호놀이는 처음이었다. 전통 화살을 재현한 국궁 화살을 던져 넣는 투호놀이는 쉽게 접할 수 없는 것이라 화살을 던져보았지만 잘 들어가지 않는다.

파주지구 문화재청 관리소에서 준비한 투호는 옛날 궁에서 궁녀들이 즐기던 투호 항아리와 전통화살을 그대로 본떠 만든 것이다. 투호놀이는 원래 궁에서 여자들이 하던 놀이였고 차츰 남자도 함께 즐겨 상류층의 놀이문화로 퍼졌다.

호리병처럼 생긴 항아리의 입구는 작아 여간해서 화살이 잘 들어가지 않아 요즘은 입구를 넓힌 항아리가 보급돼 있지만 공릉에 나온 투호는 궁전에서 쓰던 투호 항아리를 틀에 넣고 모형을 본떠 제작한 것이라 색깔과 모양이 원형과 거의 다름없다.

▲ "아이쿠, 안 들어갔네."
ⓒ 한성희
2~3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대여섯 대의 화살을 던져 넣어봤지만 한 개만 어쩌다가 소가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으로 들어갔을 뿐 나머지는 항아리 배를 때리고 빗나가거나 엉뚱한 곳으로 떨어져 버렸다. 워낙 운동신경이 선천적으로 무딘지라 더 이상의 성과를 포기하고 말았다.

또 윷을 1백 개 준비해 한복을 입고 온 사람들에게 나눠주자 '왜 나는 안주냐'고 항의하는 어린이도 있었다. 오후 일찌감치 윷 1백 개는 동이 났다. 해마다 공릉에서는 추석과 구정에 무료개방하고 민속놀이마당을 펼친다.

의외로 많은 입장객들이 한복차림으로 들어왔다. 문화유산해설사의 의무를 발휘하려고 공릉 문화재 해설을 들려주니 몰랐던 것을 알아서 고맙다는 인사가 쇄도하는 걸 보면 문화재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을 느낀다. 무엇보다 기분 좋은 것은, 열심히 들으며 문화재에 대해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다.

서울에서 왔다는 10여 명의 한 가족은 얼핏 보기에도 3대가 모여 단란했다. 할머니는 해설을 해줘서 너무 고맙다면서 집에서 손수 만든 음식이라며 하나만 맛보라고 자꾸 권해서 난감해지기도 했다. 사양하다 못해 콩 박은 찰떡을 한 개 집었더니 굳이 하나를 더 집어준다.

문화유산해설사로 활동하면서 해설을 하다보면 여러 유형의 관람객들을 보게 된다. 자녀와 함께 와서 자녀들에게 공부가 된다며 이끌어 관심 있게 듣는 사람이 제일 많다. 동반한 아이들은 부모님 때문인지 대개 열심히 듣는 척 하거나 듣기는 한다. 그렇지만 더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는 사람은 부모님과 노인층인 것도 흥미롭다. 사극을 통해 대략적인 사건은 알고 있기 때문에 질문도 많다. 드라마와 역사를 착각해서 바로 잡아주기도 하지만.

그렇지만 가족과 함께 문화유산 답사반에 들어가 함께 온 어린이들은 그 동안 숙달된 능숙한 경험으로 진지하게 질문도 하고 받아 적기도 하는 노련함이 있다. 놀랄 정도로 역사에 통달한 초교생도 있는 것을 보면 흐뭇한 웃음이 나오며 참 유식하다고 칭찬을 해주기도 한다.

유치원생이나 초교 저학년들을 상대로 할 때면 두어 가지 원칙을 지켜야한다. 10분을 넘어가지 말 것과, 3초 이상 지루한 얘기를 하면 눈과 입이 다른 데로 돌아가기 때문에 계속 시선을 집중시키고 대답할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어린애에게 무슨 문화재를 가르치냐고?

"여러분 안녕? 선생님이 재미난 얘기 해줄 게요. 진짜 왕자와 왕비 얘기."
"와~."

▲ 한가위 날, 널뛰기에 열중인 어린이들.
ⓒ 한성희
눈이 초롱초롱 빛나며 관심이 집중되면 일단 첫 단계는 성공이다. 그럼 두 번째로 들어간다. 정자각에 데리고 올라가서 이곳은 올라오면 안 되지만 선생님이 여러분이 예뻐서 구경시키려고 특별히 올라왔다고 말하고, 소중한 문화재니까 문을 흔들거나 장난을 치면 안 된다고 하면 거의 모두가 얌전하게 자리 잡는다.

"여기는 옛날에 진짜 있었던 왕자님과 왕비님이 돌아가셔서 잠들어 계신 곳이에요. 이담에 왕비 되고 싶은 사람? 손 들어봐요."
"저요, 저요."
"그럼 왕자가 되고 싶은 사람?"

모두 빠짐없이 손을 드는 여자 애들과는 달라 남자어린이들은 쑥스러워서 몇몇만 손을 든다. 이어서 9살에 결혼하고 어쩌고 하면서 계속 질문을 던진다. 지금 몇 살? 7살? 9살? 그 나이에 왕자님은 결혼했어요, 놀랬죠? 그리고 10살에 돌아가셨다는 말 정도로 맺음을 하고 여기는 왕과 왕비님들이 계신 곳이고 소중한 문화재가 있는 곳이니 휴지 같은 거 함부로 버리지 말고 아껴야 한다고 끝낸다.

어린아이들에게 소중한 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길러주는 정도만 심어준다면 성공이다. 그리고 ‘바이바이’를 하면 "선생님 안녕, 안녕" 하는 귀여운 음성들이 끝없이 따라와 계속 뒤를 보며 손을 흔들어야 한다.

초등학생들이 단체로 왔다면 그래도 좀 낫다. 제일 말 안 듣고 딴 짓 하는 건 중학생들 중 남학생들이다. 가뜩이나 국사 공부는 학교에서도 따분하고 골 아픈 과목인데 하는 표정이 역력하고, 여기에서 성종과 예종이 어쩌고 한명회가 어쩌고 영조까지 나오면 시들시들하다는 얼굴에 다른 곳을 보거나 거의 반응을 안 보인다. 그래도 장순왕후가 16세에 세자빈이 됐다는 얘기가 나오면 관심을 보이긴 한다. 사춘기 나이들인지라 결혼 얘기엔 눈이 번쩍 하나보다.

그래서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 남학생들이 단체로 오면 처음부터 군기를 확 잡아야 한다. 우선 홍살문 앞으로 데리고 가서 마이크가 잘 들리느냐고 물어 주의를 환기시킨 다음, 왕과 왕비가 잠들어 계신 곳에서는 우선 문화해설 이전에 인사부터 드리는 것이 예의라고 모두 정자각을 향해 서게 한다.

"차렷! 경례."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고 나면 흩어졌던 신경이 좀 긴장된다. 인사를 하게 하는 실제 이유는 왕과 왕비의 능에 절을 하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문화재에 대한 예의와 경각심을 갖게 하려는 의도다.

그리고 임금님과 신이 걸어간 ‘참도’를 설명해주면 서로 걸어본다고 야단들이다. 이 정도면 슬슬 느긋하게 시작해도 된다. 흥미와 재미가 있을 때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솟고 애정이 생기지 않겠는가. 역사와 문화재에 대한 애정은 관심에서 비롯되고 애정으로 발전하며 그것이 평생 간다는 것이 내 믿음이다.

"귀신이 들어가는 문이라면서요?"

해설을 하다보면 웃지 못 할 일도 더러 생긴다. 능이 시작되는 홍살문 입구에는 능에 대한 간략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대개 이곳에서 시작해서 정자각으로 가는 것이 순서다. 홍살문이 서 있다는 것일 뿐 사방으로 잔디밭이 훤하게 트인 정자각은 어느 곳에서든지 출입이 가능하다.

홍살문에서 해설을 마치고 참도를 지나 정자각 쪽으로 가려고 할 때, 갑자기 젊은 여인이 저쪽에서 잔디밭에서 놀고 있는 아이 이름을 마구 부르며 허둥지둥 달려왔다. 새파랗게 질려서 헐레벌떡 달려온 여인은 잘 놀고 있는 아이 손목을 확 낚아챈다.

아이가 다친 것도 아닌데 무슨 일이 생겼나 의아해서 바라보니, 아직 홍살문을 들어서지 않은 내 앞으로 아이를 손목을 잡은 채 끌고 가다가 숨을 헐떡거리며 겁에 질려 홍살문을 가리킨다.

"얘가 이 문으로 들어갔어요."
"????"
"이 문, 귀신이 들어가는 문이라면서요?"
"네?"

귀신이 들어가는 문? 맙소사. 홍살문을 홍문, 신문이라고도 하며 신이 들어가는 문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자릴 떠났나보다. 신이 들어가는 문이라니 귀신만 들어가는 문인가본데 자기 아이가 홍살문을 통과하는 것을 보고 혼비백산해서 잔디밭을 가로질러 정신없이 달려온 모양이다. 그 순간, 어이가 없어 기가 막혔지만 하도 겁에 질린 어머니의 모습에 웃을 수도 없었다.

귀신이 들어가는 문이 아니라 임금님이 들어가는 문이고 예전 같으면 아무나 들어설 수도 없는 문이었다고 일러주니 안심한 듯한 아이 엄마의 모습이 나중에 생각하니 왜 그리 우습던지.

▲ 일요일에 찾은 순릉에서 문화유산해설사의 해설을 듣는 가족들.
ⓒ 한성희
파주시에는 군부대가 많아서 군인들이 가끔 찾아오기도 한다. 하루는 인근 군부대에서 중대가 단체로 와서 해설을 청했다. 절도 있게 줄을 맞춰 걸어가는 군인들의 뒤를 따라가면서 중대장에게 햇볕이 뜨거우니 그늘에서 자리 잡고 해설을 듣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냈더니 승낙한다.

내심 군부대에서도 지역의 문화재에 관심을 갖고 견학을 오다니 굉장한 변화라고 반갑기도 했고, 힘든 군대생활을 하면서도 부대가 있는 지역에 대해선 거의 모르고 전역하기 일쑤인데 민간과 군이 함께 공감대를 갖게 된 기회를 잘 활용해서 파주 문화에 대해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식수대에서 물을 먹고 편히 쉬라는 중대장의 명령에 따라 군인들은 너도나도 물을 마시고 나서 물통에 물을 담기도 하며 여기저기 나무 그늘에 모처럼 느슨하게 자리 잡았다. 중대원들 앞에 서서 능의 구조와 내력을 설명하고 순릉으로 올라가서 석물을 보겠느냐고 했더니 가보고 싶다고 한다.

순릉은 조선초기의 능의 모습이 거의 완벽할 정도로 보존된 곳이라서 능상과 석물을 보고 싶다면 주로 이곳으로 안내하는 편이다. 장대석과 문인석, 석양과 석호, 장명등에 대해 해설을 끝내고 나자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절을 하는 예의를 잊은 것이다.

"19세의 꽃다운 나이로 돌아가신 왕비님의 무덤이니 여기서 모두 절 한 번씩 하세요."
"절? 야, 우리 절할까?"

중대장의 목소리가 갑자기 당황한 걸로 봐서 절을 시킬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인가보다.

"우리 절하자. 자, 모두 나란히 서라."

중대장이 시키는데 별 수 있는가. 어수선하게 모여 설명을 듣던 부대원들이 대충 줄을 서서 절 할 준비를 할 때, 뒤에서 한 마디 더 던졌다.

"여기서 절을 하면 행운이 온대요."

채 피지도 못한 나이에 죽은 소녀 왕비가 50 명이 넘는 늠름한 현대의 군인들에게 절 받는 건 처음이었으리라. 나중에 다른 문화유산 해설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박장대소를 하며 '행운이 온다고 사기를 쳤다'고 했지만 내 생각은 좀 달랐다.

이왕 예를 갖추는 거 기분 좋게 하면 더 좋은 것이고 행운이란 결국은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른 것 아닌가. 행운이 올 것이란 기대는 즐거운 것이고 사고도 긍정적으로 변한다. 행운의 샘물에 동전을 던지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이태리의 관광명소도 따지고 보면 사기다. 하지만 관광객들은 기꺼이 작은 동전을 던지고 이뤄지거나 말거나 웃으며 소원을 빈다.

행운의 샘물에 동전 던지기보다는 실존했던 왕비님이 잠든 명당에서 절하고 행운을 비는 것이 더 이뤄질 확률이 많을 것이다. 기분 좋게 절하고 부대로 돌아가서 내일이라도 예쁜 여자 친구가 면회 온다면 소원은 이뤄진 거지 뭐.

대부분 내방객들에게 능상에 올라가 인사를 먼저 드리라고 권하면 다들 진지하게 응한다. 나이 든 사람들은 정식으로 엎드려서 절하고 어린이나 외국인들은 목례로 대신한다. 공릉을 찾아왔다가 문화유산을 관람하고 행운이 올 거라는 유쾌한 기분으로 돌아간다면 내일의 일과는 더 즐거울 것이 아닌가. 행운에 목을 맬 만큼 어리석은 집착을 가진 사람도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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