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0대기업이 국민총생산의 65%를 차지하는, 경제력 집중이 심각한 나라. 한 재벌이 거느린 계열사가 상장주식 총가액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재벌공화국. 이쯤 되면 이 나라는 상당히 심각한 경제병에 걸린 나라임에 분명하다. 이렇게 경제력이 소수에게 집중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나라 국민소득이 2만5천달러란다. 뿐만 아니라 가장 큰 재벌의 오너가 그 나라국왕과 함께 국민적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고 한다. 우리로서는 선뜻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복지국가 모델인 스웨덴에서 일어나고 있다.

앞서 말한 상장주식 40% 이상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지주회사는 인베스터AB다. 이 회사가 거느린 계열사를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에릭손(전자)과 SAAB(자동차)가 있다. 또 일렉트로룩스와 스카니아 등도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지주회사를 지배하는 재벌가문, 즉 발렌베리 가문의 존재다. 150년의 전통을 이어 5대째 가족경영을 해오고 있는 이 재벌은 놀랍게도 정부로부터 엄청난 특혜를 받고 있다.

소위 '황금주' 제도인데 이들 가문이 소유한 주식 1주를 일반주식에 비해 최대 1000주에 해당하는 특혜를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특정재벌가문으로 하여금 안정적인 기업지배권을 보장해주고 있으니 불공정거래행위도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그런데 이 같은 특혜는 정경유착의 결과가 아니라 철저하게 국민경제 살리기의 결과였다는 점이 이채롭다. 1938년, 외국자본의 스웨덴기업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응하기 위해 내놓은 것이 바로 스웨덴정부와 발렌베리 가문이 맺은 샬트셰바덴협약인데 이 협약으로 정부는 발렌베리 가문의 특혜적 기업지배를 용인해주는 대신, 발렌베리 가문은 일자리창출과 기술투자에 앞장서고 85% 이상의 높은 소득세를 내는 등 사회공헌에 자신들의 부를 기꺼이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1930년대부터 세계최장기간 집권하고 있는 좌파정권하에서 희한한 일이 벌어진 것이고, 그 결과 오늘의 스웨덴이 바람직한 모델국가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 같은 모델을 우리도 차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리 내부의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보월간지인 '말'지와 이를 받아 '분수대'라는 상자기사로 긍정적으로 화답하고 있는 보수일간지인 중앙일보다.

스웨덴식의 사회복지국가를 추구하는 진보진영의 요구와 기업지배권을 안정적으로 인정받으려는, 삼성계열 흔적을 지닌 중앙일보가 현실적 타협점으로 만난 것이 발렌베리 가문과 샬트셰바덴협약인 것이다.

그런데 이를 꼭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을 듯하다. 진보지인 월간 말과 '비교적' 건전한 보수지인 중앙일보가 하나의 모델로 만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타협과 절충을 중시하는 열린사회로 이행하고 있다는 증좌일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1등만 의미있는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에서 생존하려면 경쟁력을 키워야 하고, 그 경쟁력은 세계시장에서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이 유리하다. 그래서 선진각국의 기업들은 인수합병이란 덩치 키우기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고, 스웨덴과 같이 작은 나라는 국민적 대기업을 키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같은 이치는 작은 나라인 우리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그래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삼성전자(반도체와 이동통신)나 현대자동차(자동차), 그리고 현대중공업(조선)이나 대우조선(조선), 팬택(이동통신)과 같은 기업들을 국가가 지원하고, 국민들이 그들을 대한민국 대표선수로 만들어 세계시장이란 올림픽경기에서 금메달을 따게 하는 것은 결국 우리 국민 모두의 이익과 부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쯤 정부와 재벌간의 대협약, 대타협이 필요하다. 특히 엄청난 수출로 인해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재벌기업들이 국내투자를 꺼리는 상황에서 국가는 재벌의 기업지배권을 인정해주고, 현재 금지함으로써 대기업이 세계시장에서 족쇄가 되고 있다는 출자총액제한제도 등의 규제조치도 과감히 폐지할 필요가 있다. 경쟁력강화가 목적이 아니라 중소기업 잡아먹기 위한 상호출자행태를 지금의 우리 국민의 민도가 허용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도 필요하다.

그리고 재벌기업은 고용촉진과 기술투자, 그리고 상당 부분의 소득을 세금이나 사회공헌으로 환원할 줄 아는 합리적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몇몇 대기업들이 국민을 먹여 살린다는 소리가 재벌가의 주변에서만 나올 게 아니라 온 국민의 입에서 나올 수 있도록 솔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으로 존경받는 재벌과 명문가문이 되어야 한다.

누가 뭐래도 지금은 경제위기다. 그리고 이 위기는 경제적 토대, 즉 펀더멘탈의 위기가 아니라 심리적 위기이며 사회적 타협부재로 인한 위기다. 정부와 재벌집단은 전 국민의 생존권을 볼모로 하는 자존심 겨루기라는 미몽에서 벗어나 서로를 이해하고 절충함으로써 국민을 위해 '윈윈'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지금은 경직된 원칙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고도의 실용주의, 실사구시적 태도가 필요한 때이다.

태그: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