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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 표지
ⓒ 정병진
책 읽는 사람들을 위한 책? 조급한 독자 중엔 '세상에 그렇지 않은 책도 있느냐'고 당장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시기 바란다. 지금 소개하려는 이 책은 책과 책 읽기 자체를 성찰하는 메타적 성격의 책이라는 뜻에서 쓴 말이니까.

주로 '출판 평론가'로 소개되는 지은이는 소문난 책벌레에다 번역가이며, 젊은 작가로 현재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책날개에 적힌 소개란을 살펴보니,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읽은 책을 정리하는 습관을 줄곧 유지해왔다고 한다. 한마디로 책 읽기에 관한한 거의 달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라는 것.

내용 중에 지은이가 관심을 갖고 주로 읽어온 책들이 언뜻 언뜻 비친다. 가만 보면 나와는 독서 취향이 많이 다른 편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이 책 자체가 술술 읽히는 독서칼럼으로 엮어져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같은 독서인으로서 공유하는 책에 대한 각별한 애정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책에서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할 법한 책과의 인연, 책 고르기, 책값, 서가 배치, 장서표, 독서가 등 독서와 관련된 많은 흥미로운 주제들이 다뤄지고 있다. 그 가운데 특히 대중에게 널리 읽힐 만한 좋은 교양도서는 무엇인지, 좋은 서평은 무엇인지를 다룬 글은 지은이의 경험에서 고스란히 우러나온 것으로 날카로운 통찰이 돋보인다.

한편, 요사이 말썽 많은 청소년 교육 현실에 대한 다음 같은 정곡을 찌르는 충고는 교육을 책임지는 정책 입안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다.

"실험실이 과학 교육의 중심지가 되어야 마땅하듯, 인문 교육의 중심지는 역시 학교의 도서관이어야 한다. 전문성을 갖춘 사서 교사의 지도가 있어야 함은 물론, 다양한 분야의 고전과 신간을 포함한 충실한 도서 자료를 갖추어야 한다. 현재의 논술고사는 깊은 바다 한가운데에 수영 못하는 사람을 빠뜨려놓고 그들의 수영 실력을 평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의 청소년들을 실험실의 청개구리로 만들지 말자. 그들에게 최소한 제대로 된 도서관부터 마련해주자.”(158쪽)

지은이는 정보화의 요체를 ‘네트워크화’로 규정지으면서 새로운 세기를 주도하는 전문가는 ‘연관짓기 능력’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연관짓기 능력을 기를 수 있는 수단을 책 읽기로 꼽고 있다. 이렇게 책 읽기에서 갈고 닦은 능력이 인터넷과 연결될 때라야 이지스함과 같이 탁월한 인포스피어(정보 인지 및 처리 가능 공간 범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 구체적 실례로, 자신이 고정 출연 중이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전혀 문외한이던 그리스 문학에 관해 인터뷰했던 경험담을 들려준다. 그리스 작가라면 니코스 카잔자키스 밖에 몰랐던 지은이가 방송 진행자의 급한 부탁을 받고 하이퍼 링크를 이용한 정보수집과 그것을 적절히 가공 편집하여 방송으로 전달하기까지 과정을 비교적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요즘 정보화다, 정보 고속도로다 다들 큰소리들 치지만, 지은이의 주장처럼 제대로 된 정보소통과 연관짓기 능력이 없으면 아무 소용없는 껍데기에 지나지 않음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게이츠는 “오늘날 나를 있게 한 것은 동네의 공공 도서관이었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말에만 그치지 않고 미국 공립도서관 기부 사상 최대 액수인 2000만 달러를 자신의 고향 시애틀의 공립도서관에 기부했다고 한다. 이 사실은 아무리 컴퓨터 인터넷을 통한 정보화 사회라고 하더라도 그 바탕이 되는 책과 책 읽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단적으로 잘 보여준다.

한국의 현실 가운데서 책 읽기의 소중함과 그 도를 일깨워주는 이 책은,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가볍게 한번 읽어볼만 하다.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

표정훈 지음, 궁리(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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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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