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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4일 스위스 출신의 유명한 심리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여사가 향년 78세로 미국 애리조나주 스콧데일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한 여성 심리학자의 죽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의미를 크게 부여하는 이유는 그녀가 평생 죽음을 연구한 독특한 여성학자였기 때문이다.

죽음에 관한 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금기와 기피의 대상이었다. 죽음의 본질에 관하여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고 죽어가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1960년대 초반 미국의 병원에서도 살 가망이 없는 환자들은 그냥 방치되기 일쑤였고, 불치병 환자들에게는 약을 먹으면 나아질 것이라는 판에 박힌 이야기만 들려주는 것이 보통이었다. 퀴블러-로스 여사는 죽어 가는 환자들이 별 관심 없이 거칠게 취급당하는 것을 보고 평생 죽음에 관하여 연구를 했다고 한다.

호스피스 운동에도 큰 영향

약 20여권에 달하는 죽음에 관한 연구 저서는 죽음에 대한 과거의 편견을 깨고 죽음에 대한 사회적인 각성을 새롭게 했고 말기 환자들이 죽음을 의미 있고 평안히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호스피스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녀는 죽음에 관한 연구와 업적으로 1999년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1세기의 100대 사상가에 들기도 하였다.

특히 1968년에 발표된 <죽음의 순간(On Death And Dying)> 이라는 책은 죽어가는 수백명의 말기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연구를 통해 죽음의 과정이 5단계를 거쳐서 이루어진다는 이론을 발표한 것이었다. 이 내용을 간단히 알아보는 것은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말기 환자들 을 이해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된다.

죽음의 5단계 과정,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제1 단계는 부정(Denial)의 단계이다. 대부분의 모든 사람이 암과 같은 죽음의 선고를 받게 되면 처음에는 강하게 부정한다. '아니야, 난 믿을 수 없어.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어' 하면서 자신에게 죽음이 임박했음을 부인한다. 이 단계에서는 환자가 현실적인 견해를 갖도록 시간적 여유를 주어야 한다.

제 2단계는 분노(Anger)이다. '하필 그 많은 사람 중에 내가'하며 자신이나, 가족, 병원 직원에게 분노를 나타낸다. 신을 저주하거나 주위에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 죽음의 단계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이다. 그 분노에 반응을 하면 환자는 더 심한 분노를 일으킨다. 차라리 분노를 표현하도록 하고 아직도 가치 있는 인간이고 존경과 이해와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도록 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제 3단계는 타협(Bargaining)의 단계이다. 죽음 앞에서 신이나 절대자에게 어떻게든 죽음을 연기하려고 타협을 시도한다. 환자의 그런 말을 묵살하지 말고 이것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정상적인 것임을 이해하여야 한다. 타협의 단계는 기간이 짧다.

제 4단계는 깊은 우울증(Depression)의 단계이다. '이젠 도저히 희망이 없구나'라면서 심한 우울증에 빠진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남아 있는 가족들에 대한 걱정, 자신의 무력감에 대해 울기도 하고 조용히 있기도 한다. 슬픔에 젖도록 그냥 놓아두고 옆에서 귀담아 들어주고 부드럽게 대할 것이 필요하다.

제 5단계는 수용의(acceptance) 단계이다. 죽음을 받아들인다. 죽음을 수용한 후에는 마지막까지 의미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자기 운명을 받아들이고 분노하거나 우울해 하지도 않는다. 극도로 지치고 쇠약해진 상태이다. 혼자 있고 싶어하기도 하고 언어보다 무언의 언어로 의사소통을 한다. 머나먼 여정을 향해 떠나기 전에 취하는 마지막 휴식의 시간인 것이다.

퀴블러-로스 여사는 임상학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한 연구를 통해 죽어 가는 사람이 주변 사람들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공헌했다. 특히 불치병 환자들이 평안한 마지막을 맞을 수 있도록 정신적이고 의료적인 도움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이러한 노력은 말기 환자들이 가치 있고 평안한 임종을 맞이할 수 있게 하는 호스피스 운동에 큰 자극을 주었다.

'당신은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란 질문에 '죽음은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 나는 죽음이 기다려진다'고 말했던 퀴블러-로스 여사는 1995년 심장발작을 일으킨 이후로 고통을 받아오다가 결국은 자신이 연구했던 죽음의 문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녀의 마지막은 평안했다고 전해진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고 죽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죽음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느끼는 한국적 풍토에서 죽음을 새로운 학문의 장으로 끌어들일 때가 되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맞이하게 될 절대적인 운명인 죽음을 이해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더욱이 현대 의학으로 못 고치는 불치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당황하는 말기 환자와 가족들을 위하여, 평안하고 의미 있는 임종을 위한 준비도 필요하다. 죽음을 잘 이해하려는 노력은 임종자를 잘 이해하고 잘 돌보기 위해서도 필요하고, 살아있는 동안 죽음을 맞이하는 준비와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죽음은 단순한 생명의 물리적인 정지만이 아니다. 생물학적인 의미의 죽음은 한 생명의 소멸로 끝나지만, 죽음은 종교·철학·의학·사회·문화·문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되며 소중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죽음을 연구한 퀴블러-로스 여사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을 보다 잘 이해하고 평안한 임종을 준비하고 남은 삶을 진지하게 살아가는 풍토가 조성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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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 출신. 경기도 광주 거주. 환경, 복지, 여행, 문학, 통일에 관심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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