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1984년. 그때 LA에서 올림픽이 열렸습니다. 당시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겨 준 건 레슬링의 김원기 선수였습니다. 어렴풋하지만 분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금메달을 따고 감격의 눈물을 쏟는 김 선수와 울부짖던 감독 그리고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오”라고 막상 메달을 딴 선수보다 더 흥분했던 아나운서들의 목소리입니다.

올림픽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여자 양궁에서도 금메달을 땄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메달이 기대되던 김진호 선수가 아니라 여고생 서향순 선수가 메달을 따서 이변으로 받아들여졌지요.

초등학교 2학년에 불과했던 제가 그때 일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까닭은 어린 마음에도 올림픽 금메달이 무척 감격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 선수가 시상대 맨 위에 올라가 서고,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이상하게 눈물이 나기도 했습니다. 아프지도 않은데 왜 눈물이 나는지 몰라 혼자 의아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올림픽 역사상 84년 LA올림픽과 이전 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인류의 화합이라는 올림픽 취지에 걸맞지 않은 반쪽 대회였습니다. 80년 모스크바 대회는 미국을 위시한 서구진영이 참가하지 않았고 84년 LA대회는 소련을 비롯한 동구 진영이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세한 이야기는 88년 서울 올림픽이 다가오면서 학교에서 내준 다양한 올림픽 관련 숙제 덕분에 알 수 있었습니다. 88올림픽이 전 세계 동서 화합을 이루는 올림픽이라고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지요.

그룹 '코리아나'가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나가야 한다"고 불렀던 올림픽 주제가를 열심히 따라 부르기도 했었습니다. 또 하나, 우리 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것을 가장 반대하는 나라가 바로 북한이라는 것. 역시 잊지 말아야할 선생님의 가르침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원희 선수의 경기를 지켜보면서

어느 때부터인가 유독 금메달 수에만 집착하며 호들갑을 떠는 언론의 보도나 금메달을 따지 못해 풀이 죽은 선수들의 모습이 보기 싫어졌습니다.

게다가 요즘 사는 것이 바빠서 그런지 올림픽에 대해 예전만큼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더군요. 그러던 어제 모처럼 집에 일찍 들어가는 바람에 우연찮게 올림픽 경기 중계를 보게 되었습니다.

마침 유도 결승전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해야 할 일을 미루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렇게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겨 준 이원희 선수의 유도 경기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결승전에서 절반을 빼앗긴 상황에서도 결국 멋진 한판으로 금메달을 따는 이원희 선수의 모습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박수를 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 자신의 모습이 괜히 멋쩍기도 했습니다. 이원희 선수가 금메달을 따지 못했어도 제가 이렇게 좋아했을까요? 저 역시 성적지상주의를 비판하면서도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구나 싶었습니다.

정작 금메달을 딴 이원희 선수는 예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던 선배들과는 달리(?) 다소 담담한 표정으로 경기장에서 내려오더군요. 그 의연한 모습은 요즘말로 쿨하고 신선하게 보였습니다.

메달과 국가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경기 자체를 즐기는 진정한 실력자처럼 보였습니다. 그 모습이 같은 한국인으로서 무척 자랑스러웠습니다.

시상식 장면 역시 메달을 딴 모든 선수들의 표정이 뿌듯해 보여서 좋았습니다. 사실 전 세계에서 3위 안에만 든다는 것도 엄청난 일 아니겠습니까? 시상식에 오른 선수들 모두는 메달 색깔에 관계없이 올림픽에서 수상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원희 선수와 함께 시상대에 오른 동메달을 딴 미국 선수와 브라질 선수들이 자신의 응원단에게 연신 손을 흔들며 환희에 찬 표정을 지었습니다. 승패에 대한 미련은 전혀 보이지 않더군요. 저런 것이 선진국의 진정한 힘은 아닐까 괜히 부럽기도 했습니다.

"우리 계순이 선수"를 외치는 아나운서를 보며

사실 어제는 북한 계순희 선수의 결승전 경기도 중계되었습니다. 계순희 선수 경기가 먼저 벌어졌고 뒤이어 이원희 선수의 경기가 시작되었지요. 두 선수의 경기를 번갈아 지켜보면서 순간 아득했습니다.

중계방송 아나운서는 연신 "우리 계순희 선수"를 연발하더군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계순희 선수는 우리 나라 선수가 아닙니다. 우리와 아직 전쟁 상태에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표 선수지요.

84년 올림픽 그리고 88년 올림픽을 치르던 80년대 제 기억 속에 북한은 '빨갱이 나라'였습니다. 학교에서는 매월 반공 글짓기가 열렸고,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잘 표현할수록 상을 받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서슴없이 "우리 계순희 선수"를 연호 하는 우리 나라 아나운서의 중계방송을 시청하면서 전쟁 세대도 아닌 제가 왜 마음이 아득했는지 그 까닭은 잘 모르겠습니다.

국제 경기에서 북한 선수와 미국 선수, 북한 선수와 일본 선수, 북한 선수와 중국 선수가 만나면 당연히 북한 선수의 편을 드는 지금의 남한 분위기가 제가 기억하는 80년대에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것임은 비단 저만의 생각은 아니겠지요.

아쉽게도 '우리 계순희 선수'는 적극적인 공격에도 불구하고 별로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던 독일 선수에게 패해 금메달을 따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상식에서 계순희 선수의 모습은 당당했습니다. 그런 의연한 모습에 마음 속으로 힘껏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그리고 남한의 이원희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보면서 북한 동포들도 마음 속으로 힘껏 박수를 쳐주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