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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7일 베이징에서 개막된 제13회 아시아컵 축구대회가 8월 7일 중국과 일본의 결승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 제13회 베이징아시안컵 축구대회의 휘장
ⓒ 김대오
중국은 아시안컵을 통해 경제성장으로 얻은 자신감을 전세계에 선보이며 중국인의 민족주의를 자극하여 중화사상을 한층 고취시켰다. 한편 우리나라와 일본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경쟁의식과 적대감정을 표출하면서 철저하게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다. 중국이 경제, 외교적으로 힘이 커지면서 '무엇이든 중심이고 최고여야 한다는 중화사상'이 슬슬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중국이 동북공정과 관련하여 고구려사를 왜곡하고 우리 정부의 시정과 재발방지 요구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이란에게 덜미를 잡혀 중국과의 맞대결 기회조차 잡지 못한 한국축구는 역사 전쟁에서 맛본 고배를 다시 한번 들이키며 국민들에게 커다란 아쉬움을 남겼다. 반면 일본은 결승에서 만난 중국과의 축구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기고만장해 있던 13억 중국인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아시안컵을 통해 철저히 배타적이면서 자신들의 축제만을 일구어내려는 해묵은 중화의 부활을 읽을 수 있었으며 그 중화를 넘어서 화평굴기(和平堀起, 평화의 힘에 의해 우뚝 일어서다)로서 새로운 패권을 추구하려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축구 종주국 중국의 자존심?

중국은 아시안컵 개막식 식전행사에서 축국(蹴鞠)이라는 당대의 축구경기를 재현하며 축구의 기원이 중국임을 강조하고 은근히 고대 중국인의 축구에 대한 선견지명을 과시하였다. '원조 축구 종주국'으로서 위상을 확인하며 모든 문명이 중국에서 흘러나와 세계를 교화시켰다(文化시켰다)는 중화주의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개막전을 관전하는 중국 관객들의 수준은 그다지 높지가 못했다. 제프 블래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의 개막식 연설 도중 갑자기 관중들이 웅성대는 바람에 연설이 중단되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이 일을 두고서 피터 벨라판 아시아축구연맹(AFC) 사무총장이 중국인은 올림픽을 개최할 만한 성숙된 시민의식을 갖추지 못했다고 기자회견에서 말했다가 중국 치우미(球迷)대표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결국 벨라판 사무총장은 거듭되는 사과요구에 시달리다 공식 사과를 표명하는 것으로 이 사건을 일단락지었다. 중국의 언론보도에는 아시안컵에서 올림픽 시민의식을 운운한 벨라판 사무총장을 성토하는 분위기 일색이었고 중국 관중의 성숙한 관전문화가 요구된다는 언급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내가 얻지 못하면, 너도 얻을 생각 마라

중국인들의 보편화된 질투를 이를 때 "내가 머리를 내밀지 못하면, 너도 머리를 내밀지 마라(我出不了頭, Ni也不要出頭)"는 말을 사용한다. "내가 얻지 못하면, 너도 얻을 생각 마라"는 산평주의(뭉뚱그려 평평하게 하다는 의미에서 뛰어난 사람을 질투하고 시기하는 중국인의 심리를 가리키는 말)가 월드컵에 이어 이번 아시안컵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났다.

예선 리그가 벌어지는 동안 중국 관객들은 한국과 일본 축구팀 경기시 철저하게 상대팀을 응원하며 한국과 일본에 대한 경쟁심리와 적대감을 표시하였다.

▲ CCTV5 아나운서 앞에 아시안컵 스폰서인 현대 엘란트라 광고가 높여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한국축구에 대해 월드컵 때보다 한결 부드러운 해설을 볼 수 있었다.
ⓒ 김대오
한 가지 이번 아시안컵 공식스폰서인 현대의 광고판이 아나운서들 바로 코 앞에 있어서인지 아니면 축구가 한중관계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간파해서인지 중국의 언론들이 월드컵때와 달리 한국 축구에 대해서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평가를 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한국이 이란에게 졌을 때 중국 CCTV아나운서들의 싱자이러훠(幸災樂禍, 남의 재앙을 고소하게 생각하다)하는 냉소와 오만을 어쩔 수 없이 지켜봐야 했다.

모든 경기를 생중계하면서도 유독 일본전은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불상사에 대비해 녹화중계를 하는 철저함을 보였는데 이는 중국인의 반일감정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일본인의 집단매춘 사건, 일본이 폐기한 생화학무기 폭발로 인한 중국인 희생자 배상문제,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댜오위다오(釣魚島) 영유권 분쟁, 남중국해 가스전 개발 마찰 등 중국과 일본간의 끊이지 않는 갈등 국면으로 고조된 중국인의 반일감정은 아시안컵 일본경기가 있을 때마다 중국정부 당국을 긴장시켰다.

경기장에는 "댜오위다오는 중국의 것", "일본은 과거사를 사죄하라"는 정치적 현수막이 내걸렸으며 일본선수단과 관객들은 쓰레기세례를 받아야 했다.

일본은 고이즈미 총리와 호소다 히로유키 관방장관이 직접 나서서 우호의 제전인 아시안컵에서 일본 선수도 따뜻하게 환영받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축구를 통한 반일감정 부추기기를 자제해 줄 것을 중국측에 주문하였다. 중국은 이에 대해서 8월 4일 외교부대변인 공취엔(孔泉)이 개최국민으로서 성숙된 관전문화를 보여줄 것과 경기장 내 난동과 정치적 선동활동을 자제해 줄 것을 당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마오쩌뚱과 지켜주지 못한 승리

▲ 궁런체육관 입구에서 응원연습을 하는 중국치우미들의 모습
ⓒ 김대오
8월 7일 아시안컵 결승전이 열린 공런(工人)체육관 주변은 그야말로 거대한 붉은 오성기의 물결이었다.

2만여 무장경찰들은 군견을 동원하여 혹시나 있을지 모를 사태에 대비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는 모습이었다.

중국 치우미들은 "중국필승"을 외치며 승리를 확신하는 모습이었으며 일장기를 얼굴에 그리고 입장하는 일본관객들은 사방에서 시비를 걸어오는 중국치우미들을 의식한 듯 조심스럽게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 한 중국치우미가 마오쩌뚱 사진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마오가 일본제국주의를 물리칠 것이라고 소리 높여 외친 후 사진기자들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김대오
경기장 입구의 한 치우미는 마오쩌뚱(毛澤東)의 사진을 높이 들고 "마오가 일본제국주의자들을 물리칠 것이다"고 소리쳤고 중국관중들을 소리 높은 환호로 답례하였다. 웃통을 벗은 사내의 일본 비난 구호에 맞추어 일부 중국관중들은 일본제국주의 만행을 성토하기도 하였다.

▲ 중국치우미가 경기장 근처의 차량에 일본에 대한 반일감정을 표출한 문귀를 적어 놓았다.
ⓒ 김대오
그러나 6만여 중국관중들의 함성도, 마오도 중국의 승리를 지켜주는 못했다. 중일 축구전쟁에서 중국은 일본에 3대1로 무릎을 꿇었다.

경기 후 공안의 강력한 통제로 대형 불상사는 없었지만 중국치우미들은 심판판정에 강한 불만을 토로하며 오히려 반일감정의 수위를 한층 높였다. 외설적인 욕에서부터 일장기 소각 등 경기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치우미들이 베이징 시내 곳곳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다.

중국의 각종 인터넷사이트에는 일본 나카타의 오른손에 맞고 골이 들어가는 사진과 동영상이 올라와 있으며 메달 수령을 거부한 아리에 한 축구감독을 영웅시하는 글들이 수록되고 있다. 쿠웨이트 심판의 오심으로 인한 패배를 절대 승복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그나마 중국인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있는 셈이다.

패권적 중화주의로 가는 것 아니냐

아시안컵에서 보여준 중국인의 한국과 일본에 대한 배타성은 동북공정과 세계문화유산을 통해 한국을 한반도 안에 철저하게 묶어두고 과거사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의 입지를 축소시키며 미국을 등에 업은 대만을 철저하게 경계하면서 6자회담을 통해 동북아시아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중국의 전방위적 외교전략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이 우리나라를 깔아뭉개도 되는 우스운 존재로 여기면서 일본에 대해서는 아시아의 맹주자리를 놓고 반드시 따라잡아야 할 상대로 여기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아시안컵의 결과가 더욱 아쉬워지는 대목이다.

급성장하며 거대해진 경제력에 고무된 중국이 곳곳에서 패권주의의 냄새를 풍기며 새로운 중화주의를 추구하려 하는 이때, 우리의 모든 역량을 모아 각방면에서 경쟁력 있는 발전을 도모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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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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