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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초원과 사막의 이국적 정취를 꿈꾸며 징빠오(京包, 베이징에서 빠오터우까지 가는 철로)선 기차에 몸을 실었다. 담배 연기와 땀 냄새가 뒤섞인 객실 로비를 헤치고 잉워(硬臥, 딱딱한 침대칸)의 지정된 자리를 찾아 앉는다. 에어컨이 없어 열어 놓은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이치고 보름에 가까운 달이 만리장성의 윤곽을 따라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 붉은 노을의 배웅을 받으며 기차는 베이징북역을 출발하려 하고 있다. 네이멍구까지 11시간 정도 소요됨.
ⓒ 김대오
붉은 노을의 배웅을 받으며 베이징북역을 출발하여 밤새 11시간을 달린 기차는 네이멍구(內蒙古, 내몽고) 자치구의 중심인 후허하오터(呼和浩特, 몽고어로 '푸른 성'이란 의미)에 도착한다.

1인당 850위엔(13만원)을 낸 관광객들은 버스를 나눠 타고 사막이 있는 빠오터우(包頭)를 향했다. 황허(黃河)를 가로 질러 옥수수와 해바라기가 서 있는 들판을 3시간 정도 달리자 드디어 사막이 눈 앞에 펼쳐진다.

너 없이도, 너와 함께도 살 수 없다

이 사막은 모래 입자가 작아서 바람이 불면 모래가 날리며 소리를 낸다고 해서 샹샤(響沙, 소리나는 사막)라는 이름이 붙었다. 바람을 타고 해마다 주거지를 덮치는 사막을 막기 위한 방풍림과 사막 고정 인공 구조물들이 도로 곳곳에 심어져 있다. “모래에 밀려 쫓겨 나느냐, 모래를 막아 내고 살아남느냐?”는 배사진(背沙陣)을 치고 살아가는 사막 인접 주민들의 생존의 몸부림이 느껴진다.

사막에서 모자와 음료수를 파는 청년의 소개에 따르면 4월에서 10월까지 초원을 찾는 관광객들이 이곳을 함께 찾는다고 한다. 그들에게서 벌어 들이는 관광 수입이 이곳 주민들의 주된 수입원이 되며 나머지는 사막화 방지를 위한 식수나 구조물 설치 등의 공사나 농목축으로 생계를 유지해 간다고 한다. 과연 샹샤 사막은 모든 것이 돈으로 계산되는 곳이었다. 계곡을 건너는 리프트카는 왕복 50위엔, 모래 방지를 위한 헝겊 신발은 10위엔, 낙타 타기는 1시간당 60위엔, 모래 썰매 10위엔, 사막의 차가 끄는 낙하산은 80위엔 등등….

▲ 소리 나는 사막에서의 낙타 타기는 1시간에 60위엔이다. 한 마리 5000위엔 정도 한다는 낙타는 사막 인접 주민들의 가장 큰 소득원이 되고 있다.
ⓒ 김대오
이미 관광지로 자리잡은 샹샤에서 사막의 고독이나 존재의 극한의 의미보다는 ‘너 없이도, 너와 함께도 살 수 없다’는 카프카의 잠언이 떠오를 뿐이었다. 점점 늘어나는 관광객이 이곳 사막 주민들의 수입을 늘려 줄지 모르지만 오염과 생태 환경 파괴로 더 심각한 사막화를 불러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생겨나게 하였다.

네이멍구 초원에도 거세게 부는 상업화 바람

버스는 사막을 뒤로 하고 다시 후허하오터로 향했다. 후허하오터 시내에서 공룡 화석과 멍구족의 문화가 전시된 박물관과 따자오쓰(大召寺)를 관람하고 초원으로 출발했다.

초원을 향해 2시간을 달리는 차장 밖으로 농로(農路)도 없는 산 구릉에 게릴라식으로 밭이 있을 뿐 황무지처럼 버려진 벌판이 펼쳐진다. 반건조 지역인 이곳도 사막화 잠재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래도 드넓게 펼쳐진 벌판에 노란 유채꽃과 하얀 감자꽃 사이로 이름 모를 들꽃들이 외지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 내한성이 강한 유채꽃이 네이멍구 들판 곳곳에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 김대오
버스가 멍구파오(蒙古包, 멍구족의 이동식 천막)가 있는 곳에 멈추자 어느새 멍구 전통 복장을 한 주민들이 달려와서 노래를 부르며 하마주(下馬酒)를 권한다.

차에서 내리자 코를 찌르는 것은 말똥 냄새이다. 그러나 이 냄새야말로 저 초원을 기름지게 하고 들꽃을 키우며 이곳 주민들에게 소중한 연료가 되는 것이라 생각하니 그것도 금방 적응이 되어 맡을 만하다.

우리가 찾은 뿌라무런(布拉慕仁) 초원은 올해 비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들풀의 양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과다한 방목과 늘어나는 관광객들이 그 원인일 것이다. 초원의 들꽃을 보고 메뚜기를 잡으며 거닐다가 양떼를 몰고 가는 할아버지가 있어 사진을 찍으려 했더니 5위엔(750원)은 내라고 한다. 돈의 액수를 떠나서 목가적인 분위기가 일순간에 증발하는 느낌이어서 아쉬움을 갖게 하였다.

▲ 양을 치는 할아버지의 모습. 그러나 할아버지는 몰려드는 관광객이 귀찮을 뿐이라고 한다.
ⓒ 김대오
초원의 석양과 달이 뜨는 모습, 그리고 멍구족들의 말 시합과 씨름을 번갈아 감상하고 양고기가 주 메뉴인 저녁을 먹고 멍구족의 전통 공연까지 즐기고 멍구파오에서 잠을 잤다. 멍구파오는 원래 가장 자연 친화적인 주거지로 초원에서 나는 양털 모피와 털실로 꼰 끈과 나무로 땅을 파거나 돋우지 않고 평지에 짓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멘트로 단을 쌓고 대문은 물론 전등 시설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있어서 전통적이고 자연스러운 멋을 느낄 수가 없었다. 또 한가지 보름달이 너무 밝아서 멍구초원 여행의 백미인 반구의 밤하늘에 쏟아질 듯한 별을 보지 못한 것도 아쉬웠다.

아침 일찍 일어나 드넓은 초원 너머로 떠오르는 일출을 보는 것은 네이멍구 여행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풍경 중의 하나일 것이다.

▲ 멍구파오 너머로 떠오르는 초원의 일출이 장관이다.
ⓒ 김대오
일출의 장관을 보고 드디어 말을 탔다. 마을 주민들이 가격을 담합했기 때문에 흥정하고 말 것도 없이 1시간에 50위엔이라는 비싼 값을 내고 멍구족이 사는 마을까지 왕복 2시간의 말을 타야 했다.

말 위에 올라 타자 탁 트인 초원으로 시야가 넓어지는 것이 정말 유럽까지 정벌하고 대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의 기상이 되살아나는 듯하였다. 관광객용으로 길들여진 말들은 잘 달리지 않아 애를 태웠는데 막상 달리기 시작하자 엉덩이와 배가 아팠다.

초원을 떠나려는 사람들

멍구족 주거지에서 만난 18살 마부 청년은 하루에 네다섯번씩 관광객을 데리고 마을을 오가는데 자기 말이 아니기 때문에 하루에 30위엔 정도 밖에 받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도 그에게는 큰 수입이다. 그 돈을 모아 말보다도 비싼 오토바이를 한 대 사서 돈을 벌어 도시에서 자동차 운전을 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말 한마리에 보통 4000~5000위엔 하는데 국가 소유이던 것을 주민들에게 배당한 것이 아니고 개인에게 판매했기 때문에 말을 소유한 사람들은 모두 돈 있는 사람들뿐이라는 것이었다. 멍구족 주거지에서 간단한 다과를 준비해 주었는데 젖소에게서 자신들이 직접 짠 우유와 그것을 말린 유제품들이 대부분이었다.

관광객들에게 멍구 전통 의상을 5위엔에 빌려주던 할머니의 손자에 따르면 초원 옆으로 도로가 생기면서 최근에는 많은 외지인들이 자동차를 몰고 와 멍구파오에서 회의를 하거나 휴가를 보내는 일도 많아졌다고 한다. 초원이 관광지에서 중국 상류 사회의 별장과 놀이터로 변모해 가고 있는 모습이다.

▲ 멍구파오도 현대식으로 개조되어 환경 친화적인 자연미를 잃어가고 있다. 말들이 멍구파오 앞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 김대오
8월 6일부터 네이멍구에서는 제1회 국제초원문화제와 제5회 소군(昭君, 한나라 때 흉노와의 우호 수단으로 멍구에 시집 보내진 중국 4대 미인 중의 하나)문화제가 개최된다. 지역의 특성에 맞는 관광자원을 개발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 자체가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고 그곳 주민들의 삶을 궁극적으로는 더욱 위태롭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것은 왜일까. 초원 가득 자리펴고 누운 이름없는 들꽃들이 오래오래 아름답고 향기롭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초원의 향기롭고 아름다운 들꽃들
ⓒ 김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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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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