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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나는 능소화랍니다. 지금이야 시절이 좋아서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심을 수 있는 꽃이지만 옛날에는 양반집 정원에만 심을 수 있었던 꽃입니다. 일반 평민들이 이 꽃을 심으면 잡아다 곤장을 치기도 했다고 해서 일명 '양반꽃'이라고도 불립니다.

그러나 당신도 아시다시피 자연의 세계에는 고리타분한 신분차별 같은 것이 없답니다. '예쁘다', '못생겼다'는 것도 당신들의 생각일 뿐 시절을 따라 피고 지는 꽃들마다 자기만의 색깔과 향기를 가지고 있어서 모두 예쁘기만 하죠. 우리는 각자가 가진 특성들을 모두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겨주면서 살아간답니다.

ⓒ 김민수
나는 무엇이든지 척척 붙잡고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갑니다. 담장도 좋고 나무도 좋습니다. 높이 올라가서 아주 먼 곳까지 잘 보이는 곳에서 탐스러운 꽃들을 주렁주렁 피운답니다. 사람들은 너울너울 바람에 흔들리는 내 모습을 보면서 그네 타는 아낙의 너울거리는 치맛자락을 떠올리기도 한답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담장이나 나무를 타고 올라가 담장 너머에 꽃을 피우기도 하고, 높은 곳에서 꽃을 피우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 김민수
아주 먼 옛날 '소화'라는 어여쁜 궁녀가 있었습니다. 임금의 눈에 들어 하룻밤 사이에 빈이 되어 궁궐의 어느 곳에 처소가 마련되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이후 임금은 빈의 처소를 한 번도 찾아오질 않았죠.

게다가 빈의 자리에 오른 다른 이들마다 자신의 처소에 임금을 불러들이기 위해 온갖 음모를 꾸미는 가운데서도 마냥 착하기만 했던 소화는 밀리고 밀려 궁궐의 가장 깊은 곳에서 지내며 마냥 임금이 오기만을 기다렸죠.

그러던 어느 여름날 기다림에 지친 소화는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죠. 빈이 되었으되 아무런 권세도 누리지 못했던 이 여인, 임금과의 단 하룻밤의 사랑 이후 잊혀진 소화는 초상도 치르지 못하고 그녀의 유언대로 자신이 머물던 처소의 담장 곁에 묻혔습니다.

이듬해 초여름, 그 곳에서 가느다란 줄기가 나와 담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하더니만 담장 위에서, 담장 너머에 예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답니다. 소화의 복숭아 빛 뺨을 닮은 꽃, 행여나 님의 발자국 소리를 놓칠 새라 귀를 닮은 꽃, 이 꽃이 바로 '능소화'입니다.

ⓒ 김민수
당신들은 나를 '양반꽃'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차라리 '민중의 꽃'이라고 불리고 싶습니다. 소화의 삶은 양반의 삶이라기보다 민중들의 삶과 가깝기 때문이죠. 이렇게 억울한 사연을 담아 피어난 것도 억울한데 이제 꽃이 되어서도 양반님들의 눈만 만족시키는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너무 억울한 일이거든요.

내 이름에는 '하늘의 밝음도 능가하고, 깜깜한 밤에도 화려한 꽃으로 어둠을 제압할 수 있다'는 뜻이 들어있기도 합니다. 아마 '소화'가 꽃이 되어 담장에 피어났을 그 여름에 소화를 잊었던 임금도 능소화를 보면서 따스한 미소를 지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를 기다리다 죽은 '소화'의 넋인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그리고 동백꽃처럼 오래 가지는 않지만 동백의 낙화처럼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땅에 떨어지는 꽃이기도 하지요.

ⓒ 김민수
나는 뿌리를 내린 곳이 어디든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갑니다. 때로는 나즈막한 담장이라면 그 담장을 벗삼아 자랍니다. 몇 해 전인지 제가 심겨진 곳은 좀 특별한 곳이었답니다. 성모마리아상이 있는 곳, 그 곳에 심겨졌는데 해마다 여름이면 피어나 성모마리아에게 나의 소원을 빌기도 합니다.


내가 품은 그리움이 너무도 컸나 봅니다
혹시라도 내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님이 오셨을까
귀를 기울여도 보았습니다
오지 않는 그리운 님을 기다리다 내 삶이 다 할 때
혹시나 그 때에라도 오실까
예쁘게 화장을 하고 흙에 누웠습니다
그렇게 흙에 누워 다 시들어갈 때까지도
누군가의 발에 짓밟혀 짓물러질 때까지도
그리운 님은 오시지 않더이다.
<자작시-능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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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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