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비둘기가 우리 집 베란다에 있는 에어컨 실외기 밑에 찾아오기 시작한 것은 2년 전의 일이다. 처음에 비둘기가 왔을 때는 신기하고 가끔은 먹이를 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런 비둘기와 우리 가족의 평화는 그리 오래 가진 못 하였다.

비둘기들의 행패는 결코 작지 않았다. 에어컨 실외기 위를 배설물로 엉망으로 만들 뿐 아니라 털과 냄새가 집안으로 들어와 몹시 불쾌했다.

그 후로 우리 가족은 비둘기가 다시는 찾아오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분무기로 물을 뿌려 비둘기를 쫓아내고, 아빠는 막대기로 쫓아내고 엄마는 대야에 물을 받아 실외기 위에 올려놓아 비둘기들이 앉지 못하게 하였다.

▲ 비둘기를 쫓아내려고 실외기 위에 대야도 올려 놓는 등, 여러가지 방법을 써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 천영주

그러나 비둘기들은 끝내 이곳을 장악했고 베란다 바깥 실외기 주변은 온통 비둘기 똥과 털로 뒤덮여 버렸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비둘기들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잘 됐다 싶었고 이 일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런데 또 다시 비둘기가 다시 찾아오기 시작했다. 비둘기를 발견하자마자 나는 어김없이 옛날과 같이 분무기를 들고 나가 비둘기에게 사정없이 물을 뿌렸다.

그런데 한 마리가 날아가고 실외기 기계 밑에 웅크리고 있던 또 한 마리를 쫓아보낸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비둘기가 알을 낳고 품고 있었던 것이었다.

▲ 에어컨 실외기가 설치된 비좁은 공간에서 비둘기가 알을 품고 있다.
ⓒ 천영주

우리 가족의 그 무서운 막대기와 물세례를 견디고 결국 약 10㎝ 정도의 바닥 틈새에 알을 낳은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비둘기들의 실외기 밑 둥지는 명당이나 다름없었다. 비둘기에게는 우리 가족만이 그들의 천적이었을 뿐이었고, 7층도 아파트의 중간 정도이니 적당한 높이였다.

그러나 막상 비둘기들이 알을 낳고 나니 우리 가족은 난감했다. 여름인데도 냄새나고 불결한 것 때문에 유리문을 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알을 버리고 무작정 쫓아낼 수도 없게 된 것이다.

결국 우리 가족은 알이 부화하고 나갈 때까지 비둘기를 쫓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비둘기 알을 발견한 것이 7월 7일이었는데 7일 정도가 지났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비둘기는 약 10-12일 사이에 부화한다고 하는데, 아직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인터넷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 집 말고도 여러 집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비둘기가 알을 낳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이야기가 많았다. 대부분의 답변에는 냄새가 나고 털이 날리고, 좋을 것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와 함께 쫓아 버리라는 답변이 많았다.

▲ 어미 비둘기는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갈 생각을 안하고 손을 쪼기도 한다.
ⓒ 천영주

하지만 우리 가족은 이제 비둘기 알을 보호하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다. 몇 가지 이유 중 하나가, 비둘기들의 모성애가 강했기 때문이다. 평소 비둘기들은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도망가는데 알을 품은 비둘기는 달랐다. 베란다 유리창 옆에 쪼그리고 앉아 쳐다봐도 경계만 할 뿐 결코 도망가지 않았다.

또 손을 갖다 대면 꾹꾹거리며 오히려 내 손을 쪼려고 하였다. 이런 비둘기의 지극한 모성애를 보며 쫓아 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생명의 소중함을 지극히 중시하는 아빠 때문이기도 하였다.

▲ 비둘기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예쁜 두개의 알을 사진 찍었다.
ⓒ 천영주

그동안 나는 알이 신기해서 비둘기가 먹이를 구하러 나갔을 때 몰래 손을 넣어 알을 만져 보았다. 꼭 삶은 달걀처럼 따뜻했다. 그러면서도 비둘기가 내가 알을 만져본 걸 알고 알을 품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비둘기들은 어김없이 와서 알을 품어 주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비둘기가 알을 품지 않는 것이다. 일주일 이상 계속된 장맛비로 둥지 주위에 물이 고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곳이 비둘기들에게는 알맞은 둥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만약 나무에 둥지를 틀었더라면 장맛비의 피해를 보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우리 가족과 비둘기들은 물에 잠겨있는 알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헌옷 등을 깔아 주면 어떨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비둘기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 그럴 수도 없었다.

▲ 빗물이 고였던 자리에 알이 버려져 있다. 어미가 위치를 옮기려고 한 듯 알이 지저분해져 있다.
ⓒ 천영주

엄마는 자연 상태로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제일 좋겠다고 하셨다. 물에 잠긴 알을 보며 어미 비둘기의 심정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후 어미 비둘기들은 4-5일 정도 옆에서 알을 지켜보다가 결국 떠나고 말았다.

우리 가족은 언젠가 부화할 새끼들을 위해 이번 여름에는 에어컨도 틀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건만, 이러한 모든 기대는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이제 알을 발견한 이후 거의 3주가 다 돼 간다. 오늘도 어미 비둘기는 잠시 왔다갈 뿐 두 개의 알은 돌보는 이가 없다. 우리 가족이 그토록 쫓아내려고 했던 비둘기들이지만 다시 한번 우리집에 둥지를 틀고 새끼들을 키웠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