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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수도 이전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그러나 추진 절차 문제나 정치적 의도가 쟁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치적 논란 대신 수도이전의 경제적 득실을 따져보자. 우선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으로 각기 다른 이전 비용의 크기다. 이전 비용은 기반시설 및 관공서 조성비용과 민간자본이 건설하는 건축물 비용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전자만 간주하면 이전비용이 수조원이고 후자까지 포함하면 수십조원이다. 따라서 기준이 다를 뿐 논란의 여지는 크지 않다.

다음으로 이전 비용이 과연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지 생각해보자. 기반시설 및 관공서 조성비용은 국가재정이 투입된다. 하지만 서울의 높은 부동산 가격과 기존청사 매각수익을 고려해보면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기존청사와 부지를 아파트나 상업적 용도로 활용하면 오히려 남는 장사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방안은 여론의 지지를 받기 힘들다. 기존청사를 공공성을 위한 용도로 활용하면 재정에 부담이 되지만 이 경우 그만큼 서울에 공공재가 느는 것이기 때문에 큰 문제로 볼 수 없다.

민간부문의 비용 역시 어딘가에 대신 쓰였을 국가자원이라는 이유로 이에 상응하는 효과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지만 정부가 특혜를 베풀지 않는다면 민간이 수익성이 나지 않는 건물을 짓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즉 행정수도 건설비용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관건은 수도이전이 국민경제 전체의 효율성에 미치는 영향이다. 즉 득과 실 중 어느 쪽이 더 큰지가 사안의 본질이다. 우선 균형발전을 위해 수도를 이전한다지만 거주이전이 자유로운 국가 내에서 균형발전이 바람직하다고 믿는 것은 별다른 근거가 없는 상식적 입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예를 들어 서울의 경제 규모가 대전의 9배라고 해서 서울시민들이 대전시민보다 9배 잘 사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1인당 평균소득은 거기서 거기고 지방도시 거주자들의 평균소득이 다소 낮다고 해도 낮은 주거비용을 고려하면 큰 차이 없다. 즉 지역간 균형발전이 지역간 주민의 평균적인 삶의 질의 격차해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균형발전은 강고한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렸다.

균형발전은 목표가 될 수 없고 수도권 과밀완화를 위한 정책수단이며 그 수단의 유효성을 살펴보아야 한다. 질문은 "현재의 수도권 집중이 적정한 선을 넘었는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흔히들 수도권 과밀 현상을 언급하지만 과밀과 고밀은 다르다. 밀도가 올라가는 이유 즉 도시가 생기는 이유는 집적에 따른 편익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여 살면 정보교환이 쉽고 물류비용도 절약된다. 분업과 협업도 쉽게 이루어져 경제활동의 비용이 준다. 규모의 경제가 생겨 국지적으로 큰 시장을 필요로 하는 산업과 시설이 자리잡을 수 있다.

도시경제학자들이 하는 이야기 중의 하나가 100% 동질적인 공간이 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집적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획일적인 균형발전은 애당초 가능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집적의 편익은 집적의 정도 즉 도시의 크기에 비례하지만 편익만 존재한다면 하나의 거대도시만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국민 모두가 서울에 살 텐데 실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고 도시들은 아주 큰 도시와 그보다 작은 몇 개의 도시 더 많은 수의 소도시 등으로 하이어라키 체제를 이루게 된다.

도시의 규모에 제동이 걸리는 이유는 집적이 강화되면 비용도 따라서 커지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높은 땅값과 교통혼잡과 공해 등의 부작용이다. 그래서 과밀해소를 위한 수도권규제나 수도이전 등의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수도권이 고밀인 것은 사실이지만 과밀인지는 확실치 않다. 집적에 따른 비용이 편익보다 커야 과밀로부를 수 있는데 이건 체계적이고 심층적인 연구를 통해서만 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만족할 만한 연구결과는 보지 못했다. 비용과 편익을 비교하려면 항목의 나열이나 정성적 분석에 그치지 않고 정량적 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편 시장에 맡겨 놓을 수만 없는 것이 도시 문제다. 왜냐하면 집적에 따른 사회적 편익과 비용이 개인의 행동에 그대로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교통혼잡을 예로 들면 나로 인해 출퇴근 때 내가 다니는 길의 평균속도가 0.0...01km 떨어질 때 피해가 수많은 다른 운전자에게 전가되지만 나는 이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 나로 인한 추가적인 사회적 불이익 중 내가 부담하는 비용은 수천 또는 수만분의 1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나 역시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런 피해를 받는다. 수많은 다른 운전자들 때문에 주행속도가 수십 km 줄지만 나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다. 서로에게 피해를 주므로 통행량을 줄여야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못한다. 어민들이 고기를 너무 많이 잡아 씨를 말리는 것과 유사한 상황인 것이다. 집적의 편익 역시 이런 형태로 과소평가될 수 있다. 나는 집적의 편익 때문에 서울에 살려고 하지만 다른 사람 역시 나로 인해 도움을 받게 된다. 하지만 내가 다른 사람까지 배려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시장이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득실이 있는 것이다.

이제 건설비용 말고 기능적인 측면에서 수도이전의 비용을 살펴보자. 수도가 이전하면 수도권에서 중앙정부의 행정과 관련된 기능을 수행하려면 금전적 시간적 비용이 크게 증가할 것이다. 지방에서는 관련비용이 줄겠지만 수도권에 중앙정부의 행정기관과 유관업무가 있는 조직이나 사람이 더 많으므로 사회 전체적으로는 비용이 증가한다. 수도권과 지방 인구가 비슷한데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현대 자동차 공장이 울산에 있고 본사는 서울에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이유는 자명해진다.

업무의 성격상 수도권에 있는 사람들이나 기업이 중앙정부와 접촉할 필요가 많다. 정부의 입장에서도 만나고 협의해야할 사람이 수도권에 많기 때문에 업무추진 비용이 증가한다. 고속전철로 한 시간 걸린다고 하지만 역까지 가고 역에서 다시 최종 목적지까지 가는 비용을 고려해야 하고 지하철요금과 KTX요금의 차이도 크다. 다행인 것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업무협의를 위해 굳이 인접한 공간에 있을 필요가 예전에 비해 크게 줄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정보통신기술이 대면접촉에 의한 정보교환 또는 업무협의를 완전히 대체하지 못한다. 이메일, 전화, 팩스, DHL 다 있어도 해외출장을 가는 이유가 뭔가?

수도권이 과밀이고 수도이전에 따른 과밀완화의 편익이 앞서 언급한 비용보다 크다면 수도이전은 고려할 만하지만 우선 과밀 여부도 불확실하므로 최종적인 답은 아직 아무도 확실히 모른다. 물론 찬반을 막론하고 양쪽에 확신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충분한 객관적 근거를 갖고 있는지는 회의적이다. 노대통령에 대한 지지 여부가 오히려 잣대 중의 하나로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 흔히 간과되는 수도권 과밀의 근거를 살펴보자. 우선 기반시설 또는 공공재의 비용을 누가 어떻게 부담하는가에 관한 문제이다. 사람이 몰려 사면 당연히 기반시설이 더 필요하다. 하지만 기반시설은 공공재로 간주되어 사용자가 관련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분당-서울간 전철과 도로 건설비용을 분당시민이 부담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국민들 또는 수도권 시민들이 분담한 것이다. 처음부터 분당주민들에게 부담을 지웠으면 아파트 가격이 더 올라갔을 것이고 그렇다면 분당시의 크기도 줄었을 것이다. 기반시설이 없어 허덕이는 용인도 마찬가지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수많은 돈을 퍼부어야하는데 그 돈을 용인주민들이 부담할 것인가?

수도권에는 기반시설이 밀집해 있고 토지보상비용까지 고려하면 지금까지 엄청난 국고가 투입되었다. 수도권 주민이나 기업이 그 이상의 세금을 냈다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기반시설의 이용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지 않는 상태에서 세금을 물리므로 과밀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가구별 전기료를 평균치로 일괄 부과한다고 하자. 주민들이 다 부담하는 것이지만 전기를 아껴 쓸 유인은 사라진다.

앞서 대면접촉의 주요성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이런 접촉은 사회적 편익으로 간주할 수 있다. 하지만 사안에 따라 개인에게는 편익이지만 사회적으로는 비용일 수도 있다. 선후배 찾고 모르는 사람끼리는 술친구하고 로비하면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고 부패를 낳기도 하는 비용 측면도 강하다. 사회가 불투명하거나 연고주의가 강하면 이런 부작용이 크다. 수도이전은 이런 부작용을 완화시킬 수 있다. 지금의 서울이 통째로 옮겨가지는 않을 것이므로 소위 '네트워크' 쌓고 활용하는 비용이 늘 것이고 그게 사회적으로 오히려 바람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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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전반에 경제학을 전공하고 잠시 직장생활을 하다 미국에 가서 도시경제학을 공부하고 귀국해서 인천시 출연연구기관인 인천발전연구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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