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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ons Gate
사람들은 왜 뉴스를 보는가?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고 답한다면 당신은 대단히 순진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뉴스를 보는 이유는 연속극을 보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즐기기 위해서 뉴스를 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뉴스는 결코 세상사에 대한 객관적인 기록이 아니다. 저널리즘 용어 가운데 '뉴스가치'라는 것이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뉴스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는(newsworthy)' 것만을 골라서 보도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는 결정하는 것은 독자가 아닌 언론사다. 이윤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상업언론은 '뉴스'라는 상품을 독자에게 배달하는 것 못지않게 독자들을 광고주에게 배달하는 데 관심을 쏟는다.

언론이라는 '대량 기만 무기'와 맞선 다큐멘터리

신문사나 방송사가 독자나 시청자 확보에 열을 올리는 것은 정보를 가급적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려는 숭고한 소명의식 때문이 아니라, 더 많은 광고를 팔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광고 뒷면에 인쇄되는 어떤 것'이라는 뉴스의 정의는 크게 과장된 것이 아니다.

상업적 토대 위에서 작동하는 언론사는 공익성보다는 상품성에 따라 뉴스를 선택하고 생산하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독자나 시청자는 단순히 뉴스라는 소모품을 소비하는 '소비자'로 전락해 버린다. 이제 뉴스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소비 자체를 목적으로 생산되는 소모품이 되었다.

▲ 2002년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콜럼바인을 위한 볼링>
ⓒ U.A.
마이클 무어가 200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우리는 허구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하며 "허구의 선거로 뽑힌 허구의 대통령"을 향해 "수치를 알라"고 외쳤을 때, 그 '허구'란 상업미디어가 만들어 낸 세계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무어는 올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아 들고는 이렇게 말했다.

"저의 수상 소식을 폭스 방송에서도 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한국의 상업언론이 '낙원'으로 생각하는 미국의 미디어 환경은 의식 있는 국민들에게는 한 마디로 '재앙'이다. 철저한 상업체제로 운영되는 미국의 미디어 가운데서 선두를 달리는 '일등 방송' 폭스채널은 '오락시간'에는 돈 20불에 서로 발바닥을 핥는 연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뉴스시간'에는 멀쩡한 주권국가의 수도가 불바다가 되는 장면을 경쾌한 음악을 넣어서 보여준다.

부시 행정부가 증거도 없는 '대량살상무기'를 이유로 이라크 침공을 감행할 수 있던 것이나, 결국 그곳에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밝혀진 이후에도 흔들림 없이 '테러와의 전쟁'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보수상업언론 덕분이었다. 후세인이 알 카에다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는 사실과 미군에 의한 잔혹한 포로학대 사실이 밝혀진 현재에도 부시의 지위는 위협 받지 않고 있다.

결국 미국사회를 위협한 것은 외국의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가 아닌 국내언론의 '대량기만무기(Weapons of Mass Deception)'였던 셈이다. 마이클 무어에 따르면 보수정치와 상업언론의 합작품인 '테러와의 전쟁'은 실체가 없는 유령에 지나지 않는다.

'테러(terrorism)'는 분명한 지시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추상화 된 개념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테러와의 전쟁'은 결국 '어휘와의 전쟁'일 뿐이고, 실체 없는 공포를 유발함으로써 국민들을 동원하는 '국민과의 전쟁'일 뿐이다. 우리는 이처럼 '허구의 적'을 상대로 싸우는 '허구의 전쟁'에 내몰리는 '허구의 시대'에 살고 있다. 문제는 이 '허구'가 실제의 목숨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 2003년 3월 19일, 이라크공격 선언을 앞두고 표정연습을 하고 있는 부시
ⓒ Lions Gate
마이클 무어의 영화 제목 <화씨9/11>은 레이 브래드버리의 소설 <화씨 451>에서 따온 것이다. 정보감시의 사회를 암울하게 그려낸 이 소설에서 '451'은 책이 타기 시작하는 온도를 의미한다.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 역시 테러의 공포와 증오의 화염 속에서 어떻게 진실이 사라져버렸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마이클 무어에 따르면 '화씨 9/11'은 진실을 잿더미로 바꾸어 버린 불의 온도다.

<화씨 9/11>의 놀라운 성공 뒤에는 보수상업언론에 의해 조직적으로 은폐되어 온 진실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이 자리잡고 있다. 일간지 일면에 맥락과 관계 없는 수영복 패션쇼 사진을 넣거나 국민의 뜻은 아랑곳 없이 파병을 재촉하는 한국의 상업언론이 판매하는 '현실'은 폭스방송의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우리가 <화씨 9/11>을 기다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 대신 대통령을 뽑은 상업언론, 대통령 대신 전쟁을 치르다

<화씨 9/11>은 2000년 미 대선의 한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앨 고어가 환하게 웃으며 지지자들과 함께 "플로리다 승리"를 연호한다. 방송 네트워크인 시비에스(CBS)와 뉴스케이블 시엔엔(CNN)은 앨 고어의 플로리다 승리를 선언한다. 사방에서 폭죽이 터지고 색종이가 날릴 때 마이클 무어의 무거운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이것은 꿈이었을까? 이것은 모두가 꿈이었을까? 모든 방송사에서 앨 고어가 승리를 거두었다고 발표했을 때, '폭스뉴스채널'이라는 곳에서는 다른 친구가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갑자기 다른 방송사에서 말하기 시작했다. '이런, 폭스가 그렇게 말하면 그게 사실이겠지.'"

다른 방송사들의 '정정보도'가 나가기 시작하고, 여론은 '부시대통령'을 기정 사실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제로 더 많은 표를 얻었던 앨 고어는 대법원의 판결을 통해 '패자'가 되었다. <화씨 9/11>이 밝히는 바에 따르면, 폭스채널의 선거보도팀에는 부시의 사촌 존 엘리스(John Ellis)가 있었다. 플로리다의 선거행정을 지휘했던 것은 주지사로 있던 친동생이었고, 부시의 승리를 최종 승인한 대법원 판사들은 아버지의 친구들이었다.

▲ 취임 후 8개월간 업무시간 반 가까이를 휴가로 보낸 부시. 그는 기자들에게 '테러와의 전쟁'의 당위성을 역설한 직후 이렇게 말한다. "자, 이제 내 드라이브 실력을 봐요."
ⓒ Lions Gate
이렇게 부시는 '허구의 선거'를 통해서 백악관에 들어가 앉았으나, 언론이 그의 무능함까지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경제는 곤두박질치고 실업률은 치솟았으며, 그의 지지율은 바닥을 헤매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부시는 무어의 말대로 "이렇게 일이 안 풀릴 때 우리가 늘 하는 그 방법을 따라" 휴가를 떠나, 근무시간의 42%를 휴가로 보내는 기록을 세운다.

그러나 부시의 모든 골치거리는 하루 아침에 해결된다. 그 해 9월 11일 아침에. 부시는 이 순간부터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는 유능한 대통령으로 탈바꿈한다. <화씨 9/11>은 주류언론을 타고 부상한 이 '강력한 지도자'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2001년 9월 11일 오전, 부시는 한 초등학교를 방문하고 있었다. 부시가 교실로 들어서기 전, 여객기가 뉴욕 세계무역센터 건물을 들이받았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서둘러서 백악관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자신의 '어린이 사랑'을 언론에 알리는 쪽을 택했다. 교실에 태연히 앉아 아이들과 함께 동화책을 읽던 부시에게 보좌관이 황급히 들어와 귓속말을 전한다. 두 번째 비행기가 무역센터를 덮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시는 꼼짝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부시의 얼굴 위로 무어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아무도 어떻게 하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대로 앉아 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그 동안 잘못된 친구들과 어울린 게 아닌가'하고 반성하는 것일까?"

▲ 테러 보고를 받은 후 교실에 무표정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부시
ⓒ Lions Gate
무어가 말하는 '잘못된 친구들'이란 그 동안 부시가문과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재벌들을 말한다. 그들은 부시가문의 사업과 행정부에 14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고, 여기에는 '테러의 주범'으로 지목된 빈 라덴 가문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테러와의 전쟁'을 벌일 대상은 이라크가 아니라 사우디 아라비아나 빈 라덴이 머물던 아프가니스탄이 되어야 한다.

실제로 테러범 용의자 19명 가운데 15명이 사우디 아라비아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미행정부는 사우디를 '테러국'으로 지목하기는커녕 미국에 머물던 빈 라덴의 가족들이 특별기편으로 미국을 무사히 빠져나가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사우디가 아닌 이라크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믿기 어렵겠지만, 미 행정부의 한 관리가 밝힌 이유는 이러하다.

"아프가니스탄은 사막밖에 없어서 폭격을 해도 별로 표가 나지 않으니까, 그보다는 부술 것이 많은 이라크의 바그다드를 공격하기로 했다."

미행정부의 핵심적 정책을 구성하는 '테러와의 전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대량 학살무기'를 이유로 한 나라의 수도를 불바다로 만들었고, 있지도 않았던 '이라크-알 카에다'의 관계를 명분으로 후세인도 제거했다.

놀이터에서 뛰어 노는 이라크 아이들의 환한 모습 위로 미군기의 공습이 시작되고, 그 평화롭던 도시는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화염 속에 묻혀버린다. 미국방장관인 럼스펠드가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이 교차된다.

"우리들은 바그다드의 일부 목표물에 대한 제한폭격을 감행했습니다. 목표물만 골라서 파괴하는 미 공군의 정밀폭격능력은 놀라운 수준입니다."

그 '정밀폭격' 후 길거리에 나뒹구는 어린이들의 시신을 부둥켜 안고 절규하는 부모들이 보인다. 그들은 눈물을 쏟으며 신의 이름으로 복수를 맹세한다. 미국은 이라크의 테러리스트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하고 있었다. 폐허로 바뀌어가는 바그다드의 모습 위로 무어의 목소리가 덮인다.

"우리의 군대는 그때까지 단 한 명의 미국인도 죽인 일이 없고, 단 한 차례도 미국의 영토를 공격해 본 일이 없는 주권국가에 폭탄을 쏟아 부었다."

누가 전쟁터에 나서는가?

명분 없는 전쟁에 나선 군인들이 방아쇠를 당기도록 하기 위해서는 '허구의 적'을 만들어야 한다.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 온 해방군'이라는 정신교육을 받은 군대가 양민을 학살하지 않고 포로를 학대하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화씨 9/11>은 이라크에서 전투를 벌이는 사병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들의 육성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살기 위해서는 움직이는 것은 뭐든 쏴버릴 수밖에 없다"는 고백으로부터 "남을 죽이기 위해서는 내 일부를 먼저 죽이지 않을 수 없다"는 절규에 이르기까지 주류언론에 의해 외면된 목소리들로 가득하다. 여기에는 전쟁포로에게 검은 두건을 씌운 뒤 '알리바바'라고 조롱하며 성기를 만지는 미군부터 이어폰으로 "다 태워버려 망할 것들, 다 태워버려(Burn, Motherfucker, Burn)"라는 음악을 들으며 닥치는 대로 총질을 해대는 병사의 모습도 포함되어 있다.

▲ 이라크 전사자 어머니를 인터뷰하는 마이클 무어
ⓒ Lions Gate
놀라운 것은 이 전쟁을 결정한 의원들 가운데 자식을 이라크에 보낸 사람은 단 한 사람 뿐이라는 것이다. '애국'을 혼자 독점한 듯 '국익'을 외치던 의원의 귀한 자식들이 해변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을 때, 군대 이외에는 생활고를 해결할 대안이 없는 빈곤층 자녀들은 사지가 잘리거나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지원병이 줄어들자, 미군당국은 적극적으로 군지원자 모집에 나선다. <화씨 9/11>은 군 홍보 및 모집을 담당한 군인들의 뒤를 밟는다. 그들은 아예 부촌에는 들어가지도 않은 채, 가난하고 실업률 높은 가난한 마을을 중심으로 지원자를 물색한다. 자동차 산업의 철수로 폐허가 된 무어의 고향, 미시건주의 플린트 같은 마을이 그곳이다.

무어는 그곳에서 자식을 이라크에 보냈던 한 어머니의 증언을 듣는다. 마지막 안부편지를 유서로 받은 그 어머니는 자신이 어떻게 미디어에 의해 속아왔는지를 눈물로 고백한다. "아들을 살리고 싶다"고 절규하던 어머니는 "내 아들을 이라크에 보낸 것은 알 카에다가 아니라 미국정부"라고 말하며 울음을 터뜨린다.

마이클 무어는 군지원서를 들고 워싱턴 디 시(Washington D.C.)를 찾아간다. 파병을 결정한 의원들에게 자신의 자식들을 이라크에 보낼 용의가 있는지를 묻기 위한 것이다. 예상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는 단 하나의 서명도 받아내지 못한다.

블록버스터가 된 독립영화

▲ 시사주간지 <타임>의 7월 12일자 표지
ⓒ TIME
역사상 가장 성공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낸 무어는 35살이 되기 전만 해도 '성공'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삶을 살았다. 무어 자신의 말에 따르면, 그가 대중적으로 성공한 첫번째 작품 <로저와 나>를 만들기 전까지는 일 년에 만5천불 이상을 벌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치열한 작가의식만은 결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사주간지 <타임> 최근호는 마이클 무어를 표지모델로 내보내면서 "그의 삶 자체가 영화"라고 썼다. 이에 따르면, 마이클 무어는 자동차 공장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줄곧 종교교육을 받아왔고, 한 때에는 성직자가 될 꿈을 꾼 적도 있었다. 그러나 옳다고 믿는 바는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성품은 어린 시절부터 그를 평범한 학생으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는 고등학교 재학시절 교칙에 항의해 학교당국과 충돌한 후, 자신이 속한 학군의 교육위원회에 출마해서 당선되기도 했다. 그리고 몇 달 지나지 않아 학교의 교장과 교감 모두 학교를 떠났다. 그가 18살에 세운 최연소 교육위원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그는 대학에 입학하지만, 학교생활에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 채 스스로 학교를 떠난다. 그가 밝히는 '중퇴의 변'을 들어보자.

"대학교 2학년 어느 날 주차하려고 플린트에 있는 캠퍼스 여기 저기를 헤맨 적이 있다. 어디를 가도 차 세울 곳이 마땅치 않았다. 내 69년형 쉐비 임팔라를 몰고 한 시간 이상 돌아다니다가 하도 속이 터져 '이 것으로 끝이야. 대학 더 안 다녀!' 하고 집에 와서 부모님께 더 이상 안 다니겠다고 말했다. '왜?' '주차를 못해서요.' 그게 전부였다. 그날 이후로는 강의실 책상에 앉아 본 적이 없다." (마이클 무어, <멍청한 백인들>, 136쪽)

학교를 그만 둔 무어는 <플린트 보이스>나 <마더 존스> 등의 대안매체를 위해 일하는 가운데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다듬기 시작한다. 그는 한 때 전국으로 방송되던 텔레비전 정치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으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기피하는 상업언론에서의 활동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늘 낡은 운동모자와 티셔츠를 걸치고 나타나는 이 비만의 중년감독은 여러 모로 신비스러운 존재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심각한 주제를 웃음 속에 담아내는 능력이다. 그의 이런 감각이 없었더라면, <화씨 9/11>의 신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 <화씨 9/11>을 보기 위해 줄을 선 관객들
ⓒ 강인규
<뉴욕타임즈>는 5일자 신문에서 <화씨 9/11>가 상업적으로 성공한 이유를 분석하면서 미국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리얼리티 쇼'를 그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다큐멘터리의 현실적 요소를 오락화 한 리얼리티쇼(예컨대 길가는 사람에게 돈을 주며 발바닥을 핥게 하는)의 대중화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이 폭스방송이라는 점에서, <화씨 9/11> 성공신화의 주역은 결국 보수상업언론인 셈이다.

물론 이 영화의 주연인 부시도 흥행에 큰 몫을 했다. 이 영화가 개봉되고 나서 부시 대변인인 댄 바틀릿은 "터무니 없는 거짓말"이라고 혹평했는데, 당시 그는 영화를 보지도 않은 상태였다. 보수논객 러시 림보도 "<화씨 9/11>은 거짓말 투성이"라고 비난했으나, 영화의 어느 부분이 거짓말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무어의 꿈, 부시의 악몽

다큐멘터리로서는 기록적인 개봉관 확보, 상업적 오락영화에 필적할 만한 입장수입, 연일 매진으로 이어지는 관객들의 호응.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성공에 감동한 무어는 관객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썼다.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까요. 영화가 개봉 된 첫 주는 제게 아찔한 현기증을 안겨 주었습니다…. 모두에게 감사 드립니다. 우리들은 역사책에 오를 만한 성과를 이루어낸 것입니다. 제 영화로 인해 기록이 깨져버린 <제다이의 귀환>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도 아울러 전합니다. 우리 모두 사과하는 의미에서 11월에 영화 한 편을 만들어 줍시다. <텍사스인의 고향으로의 귀환>이라는 제목으로."

무어는 '부시를 백악관에서 쫓아내는 것'이 영화의 목표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영화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단호하게 말한다. "단언컨대 그 영화가 말하는 사실에는 단 하나의 오류도 없습니다. 만일 영화에서 잘못된 점을 찾아내는 사람에게는 1만불을 상금으로 줄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가져올 파급력을 애써 무시해 오던 부시진영도 이제 서서히 긴장하는 눈치다. 디즈니사가 배급을 거부했던 <화씨 9/11>은 지난 주말까지 5600만불을 벌어들였고, 개봉 이후 존 케리의 후원금 역시 기록적으로 증가했다. 또한 <화씨 9/11>의 성공에 고무받은 <부시의 두뇌>와 <대통령 사냥> 등 다른 진보적 다큐멘터리들도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 관객들의 토론을 위한 파티 초대장
ⓒ 강인규
그러나 부시행정부와 보수언론을 가장 당혹케 하는 것은 관객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연대의 움직임이다. <화씨 9/11>을 본 관객들이 영화에서 얻은 깨달음과 분노를 토론과 발언을 통해서 표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극장에서 만난 낯선 관객들이 서로 저녁식사에 초대해 함께 영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화상회의를 통해 무어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구체적인 실천을 모색하기도 한다. 극장을 전 사회로 확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화씨 9/11>은 주목할만한 문화현상이다.

무어의 <화씨 9/11>은 주류언론이 건설한 '매트릭스'에 살고 있는 우리를 향해 내미는 두 가지 알약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안락한 허구와 불편한 현실 가운데 어떤 것을 고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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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와 <미디어기호학>을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