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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매월 1000엔씩 내고 있는 볼런티어 단체가 있습니다. 아시아국제교류협회인데, 이 협회가 하는 일이 주로 네팔이나 인도의 산간지방 같은 곳, 그리고 북한에 쌀 보내기 운동 같은 겁니다.

처음에는 혹시 인권을 빙자해서 우익적 사고를 지닌 단체가 아닐까 하는 의심도 했지만 너무나 건전한 인권단체였습니다.

그 단체 안의 실무진을 보면 한국인이 두 명 있습니다. 저와 비슷한 케이스로 둘 다 일본인 아내를 두고 있지요. 그런데, 그중 한 명이 얼마 전에 귀화를 했습니다.

귀화를 해도 물론 한국 이름은 그대로 쓸 수 있도록 일본의 법령이 바뀐지라 여전히 이름은 "김"이지만, 귀화 자체에 거부감이 있는 저로서는 그 분을 대하기가 좀 꺼려지더군요.

그런데 지난 주 일요일 사무실에 들렀더니만, 나머지 한 사람도 조만간 귀화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름은 "강"씨 성을 그대로 쓴다고 합디다.

두 사람은 민족이나 그런 것에 대해서 아주 관심이 큰 사람이었습니다. 민족운동단체들과의 집회에서도 종종 만나고, 활동의 대부분이 북한·재일·민족에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귀화"했거나, 혹은 귀화할 예정이라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어떤 의미에서는 충격적이었지요.

그런데 둘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습니다. 두 사람의 요지는 "어차피 우리가 활동하는데는 국적이 별로 필요 없다. 아니 오히려 한국 국적보다 일본 국적이 더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예컨데 한국인이 북한이나 재일에 대해서 떠드는 것 보다, 일본인의 국적을 가지고 재일·민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먹혀 들어갈 때가 많다고 그러더군요.

명함에도 각각 카네모토, 야스다라고 적힌 것을 보면 일본어가 완벽한 두 명이 대외활동에서 일본인으로 활동한다는 것인데, 그렇게 될 때 보통의 일본인이 그들의 활동에 공감을 표하고 동의해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전 이해가 안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주 일요일 사무실에 들른 그날, 저녁을 같이하게 되었습니다. 술이 몇 잔 오고가고 하는데, 귀화를 할 예정이라는 강씨가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한국에서 온지 7년 되었어요. 한국에서도 시민단체에서 활동했는데, 일본에서도 그 습성을 못 버리고 일을 하게된지 5년째가 되네요. 아무튼 바깥에서 한국을 바라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죠. 어차피 생각은 변하지 않습니다만, 국적은 저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잔잔한 표정으로 드문드문 말을 이어나가는 강씨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가 얼마나 신실한 사람인지 지난 2년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귀화라는 단어. 그의 본 마음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김선일씨가 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지금 나는 왜 그가 그런 선택을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국가가 국민에 대해서 책임을 못 진다면, 국민이 국가를 버릴 권리도 있습니다. 강씨나 김씨는 아마도 국민이 국가를 버린 경우가 아닐까, 깊게 생각해 보게 되는 23일 오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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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부터 도쿄거주. 소설 <화이트리스트-파국의 날>, 에세이 <이렇게 살아도 돼>, <어른은 어떻게 돼?>, <일본여친에게 프러포즈 받다>를 썼고, <일본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를 번역했다. 최신작은 <쓴다는 것>. 현재 도쿄 테츠야공무점 대표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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