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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아
▲ 이자람 씨의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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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된 침묵, 기독교 안의 동성애 - 입을 떼다' 란 주제로 재미 신학자 현경 교수 강연이 열린 18일 오후 5시 40분경. 행사가 시작되기 20분 전임에도 불구하고 행사장 앞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동성애 관련 행사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주위에서 눈총을 받아야만 하는 현실이기에 관심도에 비해 참석하는 사람은 적지 않을까 하는 예상은 빗나갔다.

행사가 시작되기로 한 6시경. 준비된 200여 개의 좌석은 이미 꽉 찬 상태였고 미처 자리에 앉지 못한 수십여 명의 사람들은 행사장 뒤편에 서 있어야만 했다.

10여 분이 지나서 시작된 행사의 처음을 장식한 것은 미국유니온신학대학의 최초 아시아 여성 종신교수이자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꺼야> 등의 책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신학자 현경 교수였다. 그의 시낭송과 함께 시작된 행사는 퓨전 국악인 이자람씨의 노래, 기독 풍물패 예굿의 비나리 기도 등의 공연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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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풍물패 예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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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홍세화씨, 김경호 목사, 홍석천씨 등의 동성애에 관한 영상인터뷰도 준비됐는데 몇 년 전 커밍아웃으로 큰 주목을 받았던 홍석천씨는 "나 역시 어릴 적부터 교회에 잘 나가는 학생이었지만 커밍아웃 이후로는 교회에 나가지 못한다"면서 "한국기독교가 너무 고여있는 것 같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다. 그러니 동성애자들을 사랑으로 감싸주고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양한 사전 행사들 중 가장 많이 눈길을 끈 것은 한기연(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에서 준비한 퍼포먼스. <공명>이란 주제를 가진 이 퍼포먼스는 전문 퍼포머들이 아닌 한기연 청년들이 준비한 것이었다.

빨, 주, 노, 초, 보. 각각의 색깔을 두른 이들과 이 모든 색을 섞은 색동을 두른 이가 서로 만나 갈등하고 대립하고 상처를 주다 결국은 다같이 어우러지게 되는 과정을 그린 이 퍼포먼스는 커다란 색색의 천을 준비해 청중들과 함께 하는 방식으로 진행 돼 청중들의 탄성과 박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 한기연의 퍼포먼스, <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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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사전 행사가 끝난 후 강연회가 시작됐다. 먼저 "종교사적 관점으로 바라본 동성애"라는 주제로 발제를 준비한 김윤성(서울대 종교학 박사·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 교수는 "동성애와 관련한 행사에서 발제를 맡았다는 소식을 들은 한 친구가 혹시 너도 동성애자가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에피소드도 있었다"면서 발제를 시작했다.

김 교수는 기독교적 관점이 아닌 객관적인 종교사적 관점에서 동성애가 어떻게 인식돼 왔는지, 또 여러 종교에서 동성애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왔는지 등에 관해 발표했다.

▲ 김윤성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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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발제를 통해 "종교사 속에는 동성애를 철저한 종교적, 윤리적 '죄악'으로 단죄하는 태도가 있다. 이런 부정적 태도는 3대 유일신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지배해 온 전통적인 서양과 아랍세계에서 주로 나타나며 이들이 정착한 비서구 사회 기독교인들에게도 똑같이 나타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에 속한다.

그러나 동성애에 대한 이런 관점이 전부가 아니다. 동성애가 죄악이 아니라 수치로 여겨지는 태도도 있으며 마지막으로 동성애가 수치는커녕 오히려 일반적 관습으로 널리 행해지고 심지어 종교적 실천이나 영적 추구의 방편으로 적극 활용되는 경우도 있다"면서,

"우리나라의 경우는 성적 소수자들의 고통이 늘 사적인 차원에 갇혀 있었을 뿐 공적 차원으로 드러난 적이 없다. 유교라는 변수만으로도 서구 페미니즘과 우리 페미니즘이 달라질 수밖에 없듯이 유교와 기독교가 혼합된 복잡한 상황에 있는 우리들(일반과 이반)에게 성적 소수자 문제를 둘러싼 담론과 실천 전략이 서구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 곽라분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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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이어진 발제는 "동성애에 대한 성서의 입장"을 다룬 곽라분이(전 한성신대 교수·여성회 회장) 교수의 순서였다. 그는 발표에 앞서 "이 논문은 이미 94년도에 쓰여진 논문임에도 불구하고 주제가 '동성애'라는 이유로 발표할 수가 없었다. 이후 95년도에 여성신학자협의회를 통해 발표할 수 있었고 이 자리를 통해 여러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게 돼 매우 기쁘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구약과 신약의 여러 내용을 짚으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동성애에 대한 잘못된 이해들을 정정하고 성서가 가지고 있는 성에 대한 태도에 대해 면밀히 분석하는 내용을 주로 담았는데, "구약에서 특히 소돔과 고모라의 예를 들어 동성애가 죄라는 근거를 들고 있는데 성서에서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의 죄의 목록에는 동성애라는 언급은 없었다. 그것은 동성애 행위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손님으로 대접받을 권리를 명백하게 위반한 데 대한 처벌이었다.

또한 동성애를 확실하게 정죄하고 있는 레위기의 본문에서도 그것이 동성애이기 때문이 아니라 '생산을 위한 목적에서 벗어난 정액의 방출' 자체가 죄악시 됐던 당시 히브리적 사고방식에서 기인한 것이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 현경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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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발제자인 현경(미국 유니온신학대학교) 교수는 "그리스도인이 사랑할 사람을 선택할 권리"라는 제목의 발제를 시작하며 "나는 정치적 레즈비언이다. 그리고 육체적으로는 이성애자이다. 그러나 감성적으로는 양성애자다"라면서 "강제적 이성애적 사회에서는 상상력이 허용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현경 교수는 발제문을 통해 동성애자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 대해 여러 이야기들을 전하면서, 발표를 통해서는 동성애를 비롯한 여러 성적소수자들이 모두 함께 공생하고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사람이 빵만 먹고살지 않는다. 임금, 권리와 같은 일도 중요하지만 내가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 누구와 잘 것인가를 선택할 권리도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권리다. 그것을 막는 일은 정말 죄악이다"라면서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는 동성애 문제를 이해하는 핵심적 관건이다. 성경이 곧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성경은 하나님 말씀을 담고 있으며 하나님 말씀의 메타포이며 심볼이다. 만약 일점 일획의 오류도 없는 것이 성경이라면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강연회가 끝난 후 이어진 질문 시간에는 참석자들의 높은 관심도를 가리키듯 많은 질문이 쏟아져 들어오기도 했다.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마무리 된 강연회는 끝까지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자리를 지켰다.

▲ 청중과 함께 한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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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성애자의 자살, 그리고 한기연의 활동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면 난 그것만으로도 나 죽은 게 아깝지 않다고 봐요. … 수많은 성적 소수자를 낭떠러지로 내모는 것이 이 얼마나 잔인하고도 반성경적 반인류적인지…."

작년 4월 26일,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자살한 고 육우당씨의 사건은 한기연이 기독교 안에서 동성애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시발점이 되었다. 6장의 유서에는 그가 동성애자로서 겪었던 고통과 슬픔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고 특히 성적 소수자들을 죄악시하는 기독교에 대한 깊은 원망 또한 담겨 있었다.

가톨릭 신자였기에 두세 배의 고통을 느껴야 했던 그는 "기독교인들에게 깨달음을 준다면 자신의 죽음은 아깝지 않다"고 그의 유서에 적고 있다.

자료집을 통해 "그의 죽음을 접하면서 곁에 있었지만 알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동성애자들의 현실을 보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는 한기연측은 고 육우당씨의 죽음 이후 국가인권위원회가 청소년보호위원회측에 동성애 사이트를 유해사이트라고 명명한 것에 대해 삭제 권고를 요청한 데 대해 한국기독교총연합이 반박 성명을 낸 것에 대해 사과를 촉구하는 것을 시작으로 고 육우당 추모예배를 드리고 공동선언문을 발표하는 등의 활동을 해 왔다. 그리고 이번 강연회 역시 그 일환에서 준비되었다.

"기독교 내부에서도 활발한 동성애 논의가 시작되었으면..."
행사 주최한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 김현정 간사

▲ 김현정 한기연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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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에 관한 신학적, 종교적 접근을 시도한 이번 행사를 기획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한기연이 동성애 문제에 대한 구체적 행동은 작년, 가톨릭신자이면서 동성애자였던 스무살의 청년 고 육우당이 자살을 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사회적 냉대'와 '종교인들의 비난'으로 인해 결국 한 동성애자의 자살은 결국 사회적 타살이라고 규정했던 한기연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 동성애자들에 대해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사과촉구문을 발표하고 KNCC측에 동성애에 대한 공식적 입장 발표를 요구하기도 했으며 추모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그러나 활동을 하는 가운데 동성애에 대해 신학적, 종교적인 기반이 약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왜냐하면 한기총측이나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성경의 문자적인 해석을 바탕으로 동성애가 죄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성애에 대해서 종교적, 신학적인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이번 행사를 기획하게 됐다."


-매우 민감한 주제다. 소위 진보적인 기독교단체에서조차 공식적 입장을 꺼릴 만큼 드러내기 어려운 문제였을 텐데.
"사실 동성애가 얼마나 민감한 소재인지는 누구나 잘 알 것이다. 기독교에서 '동성애=죄'라는 등식은 오랫동안 당연히 여겨져 왔다. 한기연 내부에서도 '동성애가 죄가 아닌가'에 대한 많은 입장 차이와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계속 토론하고 기도하면서 결국 어느 정도의 입장은 정리가 됐다.

그것은 동성애가 죄냐 아니냐의 문제는 하나님만이 판단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세상의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과 함께 하라고 하셨던 말씀에 따른다면 우리가 손 내밀어야 할 사람은 반대로 동성애자들이 된다. 그런 관점에서 그들을 정죄하고 판단하기에 앞서 대화하고 함께 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동성애자 단체의 반응은 어떤가.
"동성애자인권연대가 한기연과 함께 꾸준히 접촉을 해 온 단체다. 그 쪽에 연락을 했고 그 외 몇몇 단체들에도 연락했다. 참석 요청을 하면서 내심 이런 행사를 반겨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의외로 반가는 마음과 함께 우려를 보내는 것을 보고 다시 한번 동성애자들의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지난 번 고 육우당의 추모집회에서도 언론에 얼굴이 노출되는 걸 상당히 꺼리는 걸 본 적이 있다. 정식으로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이 노출되는 것은 결국 예기치 못하게 커밍아웃하게 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었다."


-이 행사를 통해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보다 이 행사를 계기로 기독교 내부에서도 동성애에 대한 활발한 논쟁이 시작됐으면 좋겠다. 동성애자에 대해서 기독교인들은 가장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모습이 된다. 실례로 이대의 동성애단체에서 문화제를 열려고 했던 시도가 기독교인들에 의해 반대되고 일종의 테러를 당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동성애자들에게는 일상의 신변이 어디서나 존재하고 그 위협을 가하는 사람들 중의 많은 이가 기독교인들이다. 더구나 이 폭력이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지고 있다니 이 얼마나 더욱 큰 아픔인가. '동성애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부터 하나하나 짚어보고 음지에 머무르게 두지 말고 꺼내놓고 함께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정말 좋을 것 같다."
/ 김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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