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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집 앞에는 베트남 사람들 다섯 명과 네팔 사람 한 명이 일하는 공장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던 베트남인 '뢰청해'라는 사람이 귀국에 앞서 작별 인사차 저를 찾아 왔었습니다. 그 답례로 그가 귀국하기 전날 저녁 그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청해씨는 함께 일하던 아내가 출산을 하자 귀국을 위해 저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뢰청해씨의 부인은 귀국을 희망했지만, 불법체류와 관련한 벌금 문제로 출국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청해씨는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얼마 안 있어 자진 출국 기간에 벌금 없이 출국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수 있었습니다.

청해씨는 한국에 온 지 4년 되었습니다. 비록 높임말과 낮춤말이 오락가락하긴 하지만, 한국어를 여타 베트남 사람들에 비해 유창하게 하는 편이었습니다.

다음은 청해씨 집을 방문한 자리에서 나눈 대화의 일부입니다.

"고 선생님, 영어 잘해! 인도네시아말 잘해! 베트남말 못해! 이거 베트남말 공부책, 고 선생님 베트남말 공부하십시오!"
"아, 네, 고맙습니다."

청해씨는 우리말을 어디서 배웠는지, 저를 부를 때면 늘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 청해씨가 저에게 베트남어를 공부할 수 있도록 여행용 베트남어 회화책과 자신이 한국어를 공부하던 교재를 건네주었습니다. 대개의 경우 베트남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면 인도네시아나 영어권 나라와 달리 통역을 통했습니다. 청해씨는 그 부분에 아쉬움이 있었는지 마지막 인사로 책을 선물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비록 공부하겠다고 답했지만, 베트남어는 사실 부담이 가는 언어입니다. 음치인 저로서는 성조가 있는 언어가 만만하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일본어나 스페인어를 하라면 할 것 같은데….

어찌됐든 청해씨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했었습니다. 청해씨는 외국인이주노동자센터 일을 한다는 선생이 베트남어를 잘해서 베트남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길 바라는 심정을 표현한 것이니까요.

그렇게 청해씨가 베트남으로 갔습니다. 그 후 얼마 동안 저는 유창한 베트남어를 구사할 수는 없겠지만 기본회화 정도만이라도 연습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책을 들고 다녀봤습니다. '말이 통하면 대화가 통하고, 대화가 통하면 마음이 통하는 것 아니겠나'하는 생각으로 열심히 해 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옆에 많이 있는데 굳이 시간 내서 공부해 뭣하겠나, 차라리 다른 일에 힘을 쏟는 게 낫다는 생각과 너무 쉽게 타협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베트남어의 경우 베트남에서 칠년 동안 태권도 사범을 했던 분, 교수로 대학에서 강의했던 후배 등이 늘 통역 봉사를 해 주기 때문에 꼭 배워야겠다는 절실함이 생기지 않더군요. 지금도 베트남어 공부를 위한 책이 제 책상에 놓여 있지만, 쉽게 진도가 나가지 않습니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하고, 그 나라에 적응하기 위한 첫 단추를 꿰는 작업입니다. 만약 제가 베트남에 갈 기회를 얻는다면 그땐 열심히 공부할 수 있을까요? 어찌됐든 공부하라던 소리가 듣기 싫지 않았던 청해씨의 시원한 말투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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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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