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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28일 아사히 TV의 토론프로그램 "아침까지 생방송"에 출연한 유재순 작가. 그녀는 집필 및 방송활동으로 바쁜 일본생활을 보내고 있다.

기자에서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다 17대 국회 들어 정치인으로 변신한 전여옥(46) 한나라당 대변인. 전 대변인은 KBS 도쿄특파원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93년 <일본은 없다>라는 도전적인 제목의 일본탐구서를 출간했다. 이 책은 무려 100만 부가 넘게 팔린 초특급 베스트셀러로 기록됐으나 출간 직후부터 표절시비에 휩싸였다.

표절의혹을 제기한 사람은 재일 르포작가 유재순(46)씨. 전씨보다 앞서 일본생활을 시작한 유씨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전씨에게 취재후기 등을 방송보도에 도움을 주기 위해 더러 제공했는데 전씨가 그걸 책으로 묶어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씨는 그 내용들은 나중에 자신이 책으로 펴내고자 했던 것들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10년만에 다시 불거진 <일본은 없다> 표절 논쟁

책 출간 이후 10여 년째 잠재돼 있던 '표절' 논란은 최근 전씨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표절 의혹을 강하게 부인함에 따라 다시 불거졌다. 전씨는 표절 의혹에 대해 "10년 전 내 경험으로 직접 쓴 책이다. 일본에 대해서는 유재순씨 밖에 못쓰는 것이냐"며 이같은 의혹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전씨는 이어 최근 <서프라이즈>에서 표절의혹을 다시 거론한 것을 지칭한 듯 "이 문제와 관련 언론사에서 어떤 입장을 갖고 나에 대한 명예를 훼손했을 경우, 언론사도 같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라며 유씨는 물론 언론에 대해서도 적극 법적 대응을 할 방침임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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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여옥 인터뷰] "<일본은 없다> '표절' 제기땐 법적 대응"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관련 내용

다음은 전여옥 대변인이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표절의혹 관련 문답 전문이다.

- 저서 <일본은 없다>를 둘러싼 표절 논란에 대한 입장은.
"이 책은 10년 전 내 경험으로 직접 쓴 책이다. 예를 들어 한나라당에서 신행정수도에 대해서 얘기한다고 할 때 기자실에 있는 기자들은 다 쓰는 것 아니냐. 일본에 대해서는 유재순씨밖에 못 쓰나. 아주 간단한 이치다. 그게 10년 전인데 뒤에서만 시끄럽게 하지, 전면에는 한 번도 안 나타난다. 소송한다고 해서 변호사까지 구해놓고 기다렸는데 (소송을) 안 건다. 좀 황당하다.

지금까지 내가 가만히 있었던 이유는 그 분이 일정한 기관에 몸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고, 특정한 신문사와 보조를 맞춰서 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개인적으로는 같은 여자끼리 싸우는 것도 그렇고…. 그러나 지금은 서프라이즈 같은 곳에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 언론사에서 어떤 입장을 갖고 나에 대한 명예를 훼손했을 경우, 언론사도 같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하더라. 유씨의 주장을 앞세워서 언론의 논객이 입장을 밝혔을 경우, 그것도 고소의 요건이 충족이 된다.

이제는 내가 공인이고, 공당에 있기 때문에 법적으로 하겠다. 그 분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증거가 다 있다. 특히 요즘 들어서 이 문제가 아주 증폭되고 있다. 그 배경이 어디인지 생각하고 있다.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전씨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표절의혹을 강하게 부인한데 대해 유씨는 "얼토당토않은 매스컴 플레이를 통해 거짓말만 늘어놓지 말고 책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라"면서 "자신이 취재해서 쓴 내용이라면,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하는 일본인을 만나 인터뷰를 했는지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유씨는 이어 "8년 동안 일본에 살면서 직접 발로 뛰어 취재한 내용들이 아무 가감없이 절반 이상이 그대로 차용됐다"며 "원래 <일본인,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출간할 예정이었는데 이같은 사실은 당시 내가 일본언론과 인터뷰를 할 때마다 말해서 일본독자들도 다 알고 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유씨는 이후 출간한 <하품(下品)의 일본인> 서문에서 이같은 사실을 폭로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곧 판매중지가 돼 그 배경을 두고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유씨는 "이 책의 서문에 나온 내용은 100% 틀림없는 사실"이라며 "출판사가 표절논란에 편승,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걸 알고서 글쟁이의 자존심이 손상돼 출판사에 판매중지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원수가 된 두 사람... 법정서 진위 가려질 듯

또 그간 전씨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이유와 관련, "집안사정으로 소송을 정상적으로 할 상황이 되지 못했으며, 특히 전씨가 주변인들에게 협박 등 피해를 끼쳐 주변사람들을 위해 소송을 자제해 왔다"고 그는 덧붙였다.

일본 체류시절 서로 친하게 지내며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으나 두 사람은 이 문제로 원수처럼 되고 말았다. 유씨는 "처음에는 그녀가 '책을 쓰다 보니 본의 아니게 욕심이 나서 네 것까지 도용하게 됐다. 미안하게 됐다'라고 한마디만 사과를 했더라면 끝났을 것이나 이제는 감옥 갈 준비마저 돼 있다"며 화를 삭이지 못했다.

밀리언셀러 <일본은 없다>를 둘러싼 표절 논쟁이 책 출간 10년도 더 지난 시점에서 피해자랄 수 있는 유씨의 반격을 통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게될 이 사안은 어쩌면 법정에서 진위가 가려지게 될 지도 모른다.

만약 전씨가 표절의 당사자로 밝혀질 경우 현재 제1야당의 대변인인 그의 도덕성에 적잖은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보인다. <오마이뉴스>는 반론권 보장 차원에서 전씨가 반론 인터뷰를 요청할 경우 이를 수용할 방침이다.

유재순씨와의 인터뷰는 지난 6월 15일 밤 도쿄시내 와세다대학 인근 유씨 자택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유씨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일 정치거물 인터뷰로 유명한 언론계 마당발
르포작가 유재순씨는 누구?

유재순 작가는 1958년 공주 출생으로 81년 신동아 논픽션 부분에 당선하면서 저널리스트의 세계에 입문하였다. 전문 르포라이터로 <서울서 팔리는 여자들> <하품의 일본인> <일본여자를 말한다> 등 다수의 르포집을 내어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84년에는 나카소네 전 수상을 인터뷰하고, 87년 도이 다카코 사회당 당수를 한국인 저널리스트 최초로 인터뷰한 전력이 있다. 그 외에도 다케시타 노보루 전 수상, 우노 전 수상, 필리핀 마르코스 이멜다 여사, 타이의 퓨안 수상,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 여사 등을 인터뷰하는 등 폭넓은 저널리스트 활동을 통해 일본 언론계에서 유명해 졌다.

이후 NHK, 아사히TV의 "아침까지 생방송" 등의 토론프로그램, TBS의 "보도특집" 등에 토론자, 코멘테티터 등으로 출연하는 등 활발한 방송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86년 "올해의 여성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특히 한국 기자로서는 최초로 88년 사할린을 취재하여 성가를 올린 바가 있다. 지금은 동경 와세다 대학 근처에 거주 중. / 박철현 기자
- <일본은 없다>의 표절의혹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책 출간 당시 수많은 언론이 표절에 대해서 물어왔다. 하지만 모두들 책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확인작업을 할 생각은 않고 (표절)했나, 안했나 하는 표피적인 문제만 가지고 물고 늘어졌다. 내가 책 내용에 대해서 확인작업을 하자고 주장했는데도 그에 대해 관심을 보인 언론사는 한 군데도 없었다. 그나마 표절 시비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보도한 곳은 94년 9월 <여성신문> 뿐이었다."

- <여성신문>의 보도는 어떤 내용이었나?
“당시 <일본은 없다>를 낸 지식공작소의 백아무개 부사장이라는 사람이 서울에서 전화를 걸어와 만나자고 해서 도쿄 시부야에서 만났다. 나는 그에게 그 책의 어떤 부분이 내가 쓴 것인지를 하나하나 목차를 불러줘 가며 짚어줬다. 그러자 백 부사장이라는 사람이 내게 '뭘 원하느냐'고 묻길래 '원하는 건 단 하나다. 책을 쓰다 보니 본의 아니게 욕심이 나서, 네 것까지 도용하게 됐다. 미안하게 됐다라는 말 한마디 사과면 족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 당시는 그런 마음이었다. 억울하지만 책은 이미 나왔고, 그동안 일본에서 친하게 지낸 우정을 생각해서라도 사과를 해오면 그냥 덮어두려 했었다. 물론 이같은 대화는 모두 녹음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이 녹음테이프를 복사해 나에게 주기로 했는데, 호텔에 전화를 걸어 테이프를 달라고 해도 그 사람은 이 핑계 저 핑계 대더니 결국 그냥 서울로 돌아갔다.

그 뒤 전여옥씨의 사과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대신 이상한 얘기가 들려왔다. 표절문제와 관련, 내게 전화를 걸어온 몇 명의 기자들은 출판사측에서 내가 정신이상으로 병원에 다닌 전력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면서 그게 사실이냐고 물어왔다. 그 일로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목이 마비돼 3개월간 많은 고생을 했다.

그 무렵 <여성신문> 김아무개 여기자가 똑같은 문제로 일본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래서 그에게 녹음테이프 존재를 얘기해 주면서 표절부분은 그 녹음 테이프에 그대로 녹음돼 있으니 그걸 확인해보라고 말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처음에는 그 백 부사장이 그런 테이프가 없다고 하다가, 김 기자가 계속 조르니까 결국 그 테이프를 내놓았다고 들었다.”

▲ 서재에 빼곡히 들어찬 그녀의 자료 스크랩 철과 일본관련 서적들.
ⓒ 박철현

유재순씨가 언급한 <여성신문>의 김아무개 여기자를 수소문해 전화연결을 했다. 그는 "당시 내가 두 사람을 취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전여옥씨에게 확인을 위해 전화를 했더니 유재순씨가 표절부분으로 거론한 내용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반론은 하지 않고 그 뒤에 내게 전화를 걸어서는 협박을 했다"고 밝혔다.

당시 유재순씨가 지식공작소의 백 부사장에게 <일본은 없다>의 내용 중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한 목차는 약 30개 정도. 김씨의 증언에 의하면, <몰개성 패션주의> <식어버린 도시락> <그녀들이 흑인병사를 좋아한 이유> <여자의 복수가 시작됐다> <결혼 30년의 청구서> <졸부에게 과거는 없다> <내가 울던 날> <치맛바람> 등이 대표적인 표절사례라고 한다.

- 표절인가, 아니면 무단 인용인가? 그리고 그 분량이 어느 정도나 되나?
“표절이 맞다. 내가 8년 동안 일본에 살면서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한 내용들이 아무 가감없이 절반 이상이 그대로 차용됐다. 원래 나는 <일본인,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일본에서 책을 출간할 예정이었다. 이같은 사실은 당시 내가 일본언론과 인터뷰를 할 때마다 말해서 일본독자들도 다 알고 있을 정도였다.

86년 내 르포집 ‘고미노 시마데 이키루(쓰레기 섬에서 살다)’가 일본어로 번역돼 출판했는데 반응이 대단히 좋아 그 후속타로 준비하고 있던 책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주관적인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변하고 그래서 좀 더 신중하게 써야 한다고 생각해 수정과 탈고를 거듭하고 있던 차에 <일본은 없다>가 나온 것이다."

▲ 전여옥 한나라당 대변인
ⓒ 오마이뉴스 이종호
- 전씨를 언제,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가?
“원래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서울 모 신문사 문화부에 있는 친구가 자기 이화여대 후배가 일본특파원으로 나가니 현지사람도 좀 소개시켜주고 도와주라는 전화를 몇 번 받고 만나서 알게 됐다. 당시 난 81년부터 아사히신문을 비롯, 대형출판사인 고단샤 등에서 1년에 한 두 번은 꼭 강연이나 토론회 등으로 초청을 해 왔고, 86년에 르포집 일본어판 출판도 있어서 이미 일본에서 나름대로 기반을 닦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이후 어느 인터뷰에서, 나와 그의 관계를 KBS 기자와 프리랜서로 굳이 나누어 의도적으로 날 깔아뭉개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 오히려 내게 원고를 열심히 쓰라고 격려를 했다고 한다. 우리 두 사람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이런 얘기에 너무 기가 막혀 하품을 한다. 당시 난 아사히저널 등 일본 시사주간지에 내 르포를 연재하고 있었고, 또 일주일에 한번씩 일본신문에 오랫동안 칼럼을 연재했다.

NHK라디오 국제국에서 6년간 매주 토요일 30분간씩 일주일 동안 취재한 내용을 방송하면서 86년 책을 낸 인연으로 일본 전국에 강연을 하러 다녀서 상당히 바빴지만, 친구의 부탁대로 그녀를 만나 NHK 사람 등 내 지인들을 상당히 많이 소개해 줬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런 사실을 거꾸로 자신이 나를 도와준 양 거짓말을 하는 데는 솔직히 저런 거짓말 천재도 있나 오히려 감탄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녀가 일본에 있는 2년 반 동안 비교적 친하게 지냈다. 서로의 집도 오가고."

- 그런 사이였음에도 전씨가 표절을 했다는 것인가?
“정확히 표현하자면 도용이다. 몰래 의도적으로 내 자료와 원고, 취재기를 훔쳐다 썼으니까.”

- 그런 사실을 안 시점은 언제인가?
“정확히 연도와 날짜는 기억할 수 없지만 그녀가 귀국한 후 서강대 앞에서 한번 만났다. 만난 이유는 그녀가 귀국하기 전 내게 20만엔을 꿔서 다이아몬드를 사갔기 때문이다. 난 그 돈을 받으러 간 것이다. 그 날 빌려준 돈과 책을 받았다. 그리고 난 그 이튿날 짐이 많아 그녀로부터 받은 책은 읽지도 못한 채 시댁에 그대로 두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서울에서 몇몇 기자 친구들이 아주 조심스럽게 내게 전화를 해 왔다. 그녀의 책을 읽어 봤느냐고. 그 때 당연히 안 읽었으니까 태연하게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너희들이 그렇게 뜸을 들이고 조심스럽게 전화를 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런 전화가 한동안 되풀이해서 왔다. 그런데 한 기자가 책을 일본으로 보냈으니 읽고 대응책을 강구하라고 했다. 난 이런 전화를 받으면서도 무슨 영문인지 전혀 몰랐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며칠 후 비로소 그 책을 읽고서 나는 배신감과 분노에 며칠 동안 단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제서야 난 친구들이 왜 조심스럽게 그 책을 읽어봤느냐고 전화를 걸어온 이유를 알았다. 내가 친분이 있는 특파원 몇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 봤다. 이미 그들 사이에는 그 사실이 화제라고 했다.

또 ‘유재순이 죽 쒀서 전여옥이 좋은 일만 시켰다’는 말이 떠돈다고도 했다. 말하자면 그 책이 나온 후 우리 두 사람을 잘 아는 기자들은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나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 때부터 난 믿었던 친구에게서 배신을 당했다는 사실에 한동안 자지도 먹지도 못했다.”

- 어떤 형태로 자신의 글을 도용 당했나?
“다양하다. 2년 반 동안 가끔씩 우리 집에 와서 내가 써놓은 원고를 읽고 유재순답게 썼다고 얘기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자료나 원고를 가져가도 되느냐고 해서 가져가라고 한 적도 있다. 또 시내에서 만날 때는 그날 취재한 취재기를 들려준 적도 있다. 그런 내용들이 <일본은 없다>에 그대로 나왔다.

일부 내용은 우리 두 사람뿐만이 아닌 여럿이 만날 때 들려준 취재기도 있어, 지금도 그들을 만나면 그녀가 심해도 너무 심하게 도용했다고 이야기한다. 오죽하면 우리끼리 하는 말로 교통사고 나서 병원에 왔다 갔다 한 것과, 술 마시고 논 얘기 빼고 나면 전여옥 것이 하나도 없다라고 얘기할까. 더구나 그녀는 책이 나오기 3개월 전에 우리 집에 와 3박4일 동안 숙박하면서 자료들을 섭렵한 적도 있다."

- '우리끼리'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누굴 가리키는 것인가?
“구체적인 실명을 거론하면 또 그녀로부터 험악한 협박이 들어갈 테니 말을 못하고, 당시 언론사 특파원 몇 명과, 나와 그녀를 동시에 아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렇게 얘기한다. 어떤 특파원은 내게 이런 말도 했다. '유재순씨만 당한 거 아니예요. 내 취재기를 들려준 것도 마치 자기가 취재한 냥 그 책에는 나왔다오’라고. 상황이 이런데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 온갖 의혹을 불러일으켰던 유재순의 <하품의 일본인>. 유재순 작가는 <하품의 일본인> 서문에 적혀진 내용이 100% 진실이라고 말했다. <하품의 일본인>에는 전여옥 대변인을 지칭하는 '친구'가 자신의 원고를 도용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 박철현

- <하품(下品)의 일본인> 서문에 그 책으로 인해서 목이 마비됐다는 구절이 있다. 그로 인한 충격 때문이었나?
“내 원고 상당부분이 도용됐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 분노에 한동안 자지도 먹지도 못할 때였다. 그렇다고 소송을 하자니 몸은 일본에 있고, 또 그런 이유로 연재물을 당장 중지하고 서울에 갈 수도 없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혼자 끙끙대고 있는데, 내가 그녀에게 소개시켜준 세키네 히로코라는 일본 여성으로부터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그래서 신주쿠 기노쿠니야 서점 앞에 있는 나카무라야라는 커피숍에서 만났는데, 날 보자마자 그녀가 대뜸 ‘유상(유씨의 일본식 표현), 어떡해요 억울해서’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 세키네 히로코는 누구인가?
“세키네씨는 전여옥씨가 펴낸 <일본은 없다>에 서문을 써준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날 위로하며 굉장히 미안해 했다. 세키네씨는 그 책이 그런 내용인 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전여옥씨는 노미스기닷다요, 아소비스기닷다요(너무 마시고 놀기만 했다)’라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그녀로부터 그 책을 일본어로 번역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자신의 양심으로는 도저히 번역할 수가 없어 거절하는 편지를 조금 전에 부치고 오는 길이라면서 계속 나를 위로했다. 세키네씨는 내게 유재순씨는 작가라서 더 억울하겠지만, 그녀의 친구로서 자신도 그녀가 그런 사람인줄 몰랐다면서 배신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그 날 세키네씨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얼굴에 경련이 심하게 일어나고 목이 뻐근하면서 심장이 뛰는 등 평소하고는 몸 상태가 달랐다. 그래서 집에 와 그대로 누웠는데, 한 시간도 안돼 목과 오른쪽 팔이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의사말로는 목 신경이 마비됐다는 것이었다. 그날부터 약 열흘간은 대소변을 받아내고 한달 정도는 꼼짝없이 누워지내고 그 후 3개월간은 병원에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그러는 동안 가족들은 또 쓰러질까봐 내 앞에서 그 책에 대한 얘기는 일체 입밖에 못 내게 했다. 그 뒤 얼마 안 있어 그녀를 나에게 제일 처음 소개시켜준 모 신문사 기자가 일부러 휴가를 내 일본으로 날 찾아 왔었다. 그리고는 그런 여자를 소개해서 미안하다고 우리 남편한테 사과했다는 소리를 나중에 들었다."

- 그런데 전씨는 그간 표절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유명세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거라면서 유재순씨가 오히려 격려전화까지 해줬다는 말을 했다는데.
“전화통화? 정말이지 어이가 없다. 딱 한 번 전화한 적이 있는데 그날은 정확히 94년 12월 2일이다. 내가 이날을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12월 4일에 우리가 한국으로 귀국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2일 날 유학생들과 함께 이삿짐을 싸고 있었다."

- 그날 전화통화 내용은 무엇이었나?
“그 때 난 임신 8개월 몸으로 그 책에 대한 분노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상태였다. 아니 의도적으로 일부러 그 책 생각을 안 하려고 내 자신에게 최면을 걸면서 지냈다. 뱃속의 아이에게 안 좋으니까. 그런데 그날 오후 두 세 시쯤 그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표절 문제가 제기된 이후 처음 통화하는 전화였는데 대뜸 시내에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바빠서 못 나가니 만나고 싶으면 네가 우리 집에 와라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그녀가 내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 전씨가 그같은 욕설을 한 것이 사실인가?
“정말이다. 그것도 임신 8개월인 상황에서 그런 말을 들어봐라. 누구의 잘잘못은 제쳐 두고라도 온 몸이 사시나무 떨듯 안 떨리나. 그것을 나 혼자 들은 것도 아니다. 당시 유학생 여럿이 양쪽 방에서 전화기를 들고 다 들었다. 당시 우리 집은 105, 106호 두 채의 아파트를 빌려서 썼기 때문에 양쪽 집에 전화를 연결시켜 사용했다. 그녀도 우리 집에 자주 왔었으니까 잘 알 것이다.

그 때 내가 부들부들 떨고 있으니까 남편은 나를 진정시키느라 바빴고, 유학생들은 메모지에 그녀의 욕을 받아 적었다. 그 내용은 나중에 공증을 해놨다. 그런데 그 다음 말이 가관이었다. 갑자기 전화기 저쪽 너머에서 그녀의 남편이 나오더니 ‘옆집 신발공장에서 똑같은 신발을 만들었기로서니 그게 무슨 잘못이냐’고 오히려 내게 따지는 것이었다.

헌데 내가 미처 이 말에 대답도 하기 전에 또다시 전화에서 그녀의 욕설이 터져 나왔다. 그래서 부들부들 떠는 와중에 나도 한마디 욕설로 대꾸를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지금까지 그 전화가 처음이자 마지막 전화다. 그런데 내가 무슨 격려전화를 걸어줬단 말인가?”

- 그런데, 왜 소송을 걸지 않았나? 전씨는 법대로 해보라는 입장인데.
“왜 안 했겠나. 처음엔 그 쪽에서 사과 한 마디 하면 그냥 넘기려고 했지만, 잡아떼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은 일류대, 난 삼류대, 그리고 자신은 KBS 기자고 난 프리랜서 운운하면서 내가 책을 팔기 위해 그러는 것이라는 등 인신공격에 거짓 모함까지 서슴지 않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참아서는 안되겠다 싶었다.

그 때 개인적으로 절친한 이철 전 의원과 지금도 현직에 있는 의원 몇 분, 그리고 몇몇 대학교수분들이 사회정의를 바로잡는 차원에서 소송을 해야된다고 적극적으로 권유해 왔다. 그래서 그분들의 소개로 저작권 소송에 대가인 한승헌 변호사와 참여연대의 박원순 변호사를 만났다. 박 변호사는 그 전부터 친분이 있었다. 그 때 박 변호사가 나와 같이 간 오빠에게 말했다. 1억원의 청구소송을 해서 받으면 우리는 1원 한 푼도 쓰지 말고 전부 불우이웃 돕기에 기부하자고. 물론 우리도 쾌히 동의했다."

- 그런데 그렇게 준비까지 해놓고 왜 소송을 하지 않았나?
“그것은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모두 궁금해하는 부분이다. 그 때 상황이 그렇게 몰고 갔다. 당시 우리 7남매의 기둥인 큰오빠가 사업을 하면서 여당의 정치인 신분이었는데, 그 때 자민련 창당에 직간접으로 관여하게 됐다. 그 일로 정치적으로 휘말리면서 시퍼렇게 눈 뜬 상태에서 오빠의 전 재산이 경매로 넘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 쇼크로 아버지가 쓰러지고, 결국 나중에는 그 와중에 암까지 발생해 얼마 후 돌아가셨다. 거기에다 설상가상으로 바로 내 윗 언니가, 44세에 늦둥이를 가져 노산이라고 일부러 제왕절개 수술을 하러 천안 단국대학 부속병원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가 몇 시간 뒤 죽어서 나왔다. 당시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 건으로 소송을 추진하자는 말을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소송을 포기하게 만드는 일들이 연이어 터졌다. 녹음 테이프 녹취록을 풀어 보도한 <여성신문>의 김아무개 여기자가 전씨로부터 온갖 욕설과 협박을 듣고 있다는 이야기를 다른 신문사 기자로부터 들은 것이다. 사실 그런 협박은 그 김 기자가 처음은 아니었다. 당시 도쿄에 특파원으로 나와 있던 신문사 기자 몇 사람도 유사한 일로 협박을 받았다고 들었다.

내가 소송을 하게 되면 어차피 이들도 재판에 증인으로 나서야 한다. 그러면 이들에게 그녀는 말도 안된 험악한 협박을 또다시 할 것 아닌가? 주위 분에게 상담을 했지만 그 누구도 명쾌한 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소송을 하자니 애꿎게 당하는 사람이 많고, 안 하자니 너무 억울하고. 그런 차에 모 일본 출판사의 사장이 몇 년 동안 재판할 그런 에너지가 있으면 그 에너지로 공부를 하라며 내게 일본유학을 권해 호세이대학 객원연구원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 이 모든 진술이 사실이라면 적잖은 논란과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이는데.
“내가 언론계에서 20년 넘게 글을 써 왔지만 난 목에 칼이 들어와도 거짓말을 못한다. 나도 그녀처럼 독했으면 주변의 친한 사람들이 어떤 수모를 당하건 무시하고 소송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 때문에 아무 죄도 없이 당하는 그 분들을 더 이상 상처받게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내 인생에 있어 참 소중한 선배이고 친구이며 후배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송을 포기하고 일본에 유학을 온 것이다. 생각해 봐라. <일본은 없다>를 읽어보면 전여옥 개인이 실제로 취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내용들이 나온다. 하지만 자신이 경험한 내용들은 육하원칙에 의해서 확실하게 나오는데, 그렇지 않은 내용은 두루뭉실 뭉쳐서 그저 추상적으로 자기가 경험한 냥 감정풀이로 써놨다.

어떤 구절은 내가 한 말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자기가 느낀 냥 나온 부분도 있다. 그러면서 그녀는 표절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구체적으로 책 내용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고, 소송하면 되지 않느냐는 식으로 나온다. 그건 전씨 스타일이 아니지 않은가?

나는 분명히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여성신문>에 보도된 것처럼 그녀가 표절한 부분에 대해서 말해왔다. 기자회견? 웃기지 마라. 나에게 알리지도 않고 자기와 친한 기자 몇 명 불러놓고 내가 안 왔다고 하는 건, 그녀 특유의 매스컴 플레이에 이용하려고 일부러 연출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이번에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을 보면 ‘유재순 혼자만이 쓰는 것이냐, 다른 기자도 쓸 수 있는 것’이라고 얘기한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내가 얘기하는 것은 공동으로 취재하고 공공장소에서 발표된 내용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한 것이 아니라 나 개인이 혼자서 발로 취재해서 기록한 내용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제발 말도 안되는 얘기 하지말라."

- 그 외에 전씨가 원고내용을 훔쳐갔다는 증거가 될 만한 것이 있는가?
“옛날 친구들을 만나면 늘 하는 얘기인데, 그 하나를 예로 들겠다. 일본에서 한국을 매도해 유명인이 된 '현대판 매국노' 오선화라는 여자가 있다. 그런데 그 여자 이름으로 발간한 베스트셀러 <스커트카제(치맛바람)>가 사실은 5명의 일본인이 각자 단락별로 나누어 썼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5명의 신원이 비밀로 돼 있어 아는 분으로부터 ‘오프더레코드’를 전제로 그들 중 세 사람을 소개받아 몇 개월간 잠입취재를 했다. 때로는 혼자 가기가 무서워 당시 도쿄 대에 유학 중인 여성과 함께 간 적도 있다. 아마 취재기간이 4~5개월쯤 되었을 것이다. 이 내용 일부는 당시 한국 여성지에 발표됐고, 나머지는 취재수첩에 기록돼 있다.

나는 그 내용을 몇 번에 걸쳐 그녀에게 얘기해 줬다. 물론 여성지에 발표된 기사내용은 그녀가 갖고 있었고. 그런데 나중에 <일본은 없다>를 보니 내가 취재한 내용 알맹이가 그대로 도용돼 있었다. 그래서 훗날 ‘오프더레코드’로 3명의 사람을 소개시켜 준 그 분이 그녀에게 따졌단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 내용은 틀림없는 표절이라고.

그랬더니 그녀 왈, ‘<스커트카제>는 유재순 혼자 취재하나요. 우리 특파원들도 얼마든지 취재할 수 있죠’ 라고 답하더라고 들었다. 하지만 그 문제의 실체를 취재한 사람은 지금까지 나 이외에 아무도 없다. 그녀는 물론 어느 한국인도 이를 취재를 한 사람이 없다. 왜냐하면 이 책은 공식적으로는 오선화라는 매국노가 쓴 것으로 되어 있고, 정작 당사자들은 꼭꼭 숨어 있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그녀가 그 내용을 취재를 할 수 있었겠나?"

- 전씨가 원고를 통째로 훔쳐갔다는 얘긴가?
“물론 통째로 훔쳐간 것은 아니다. 그녀가 일본에 있는 2년 반 동안 내 원고, 취재기록, 자료, 내가 말한 취재기를 듣고 종합하여 쓴 것이다. 또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그녀가 한국에 돌아간 뒤 얼마 후 세키네씨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우리집에서 3박 4일 동안 머문 적이 있다.

당시 우리 집에는 유학생, 한국과 일본의 기자 가리지 않고 자유로이 드나들었다. 그 중에는 참고될 만한 자료나 내 원고가 있으면 스스럼없이 복사해 가져가곤 했다. 그녀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기자들은 그녀처럼 그렇게 노골적으로 내 것을 도용해 가지는 않았다. 최소한 내 이름을 넣어 인용은 할 망정.

나중에 결국 이 사건이 터지자 절친한 일본인 친구는 내 책임이 더 크다는 말을 했다. 일본인들은 어떻게 그런 지적 재산을 함부로 타인에게 보여주고 내줄 수 있느냐고 내게 질책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친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었다. 그런데 3개월 후 그 책이 나온 것이다”

- <일본은 없다>에 실린 내용이 당신의 원고와 일치한다는 것을 증언해 줄 사람이라도 있나? 이를테면, 복사를 할 때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라든지.
“있다. 현재 동경에 거주하고 있다. 당시 내 자료를 스크랩 해주던, 같은 아파트 위층에 살던 한국여성이다. 1년 정도 그녀가 내 자료 스크랩 일을 도와주었고, 원고의 오탈자 등도 수정했으니, 그녀 이야길 들어보면 제대로 전모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녀 역시 당시 그 책을 읽고 나에게 억울해서 어떡해요 라면서 나보다 더 분노를 느꼈었다.”

이튿날 유씨의 일을 도와주었다는 김아무개(여, 현재 한국기업 도쿄지사 근무)씨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그녀는 "아직까지 그 얘기가 해결되지 않았느냐"면서 이렇게 증언했다.

"당시 유재순 작가 집에는 유학생, 기자, 작가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이 드나들었다. 전여옥도 그중 하나였다. 나도 그녀가 온 걸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내가 약 1년 가까이 유재순씨 집에서 자료정리와 스크랩을 도와주면서 같이 원고를 보고 토론도 하고, 함께 울분을 느꼈던 적이 많았다. 그랬기 때문에 유재순씨가 어떤 테마, 어떤 내용으로 원고를 쓰고 있었는지 나는 대체로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유재순씨는 자기가 쓰고 있는 원고에 대해 주변사람들에게 자주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유재순씨를 아는 사람은 책 내용에 대해서 웬만큼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반 이상이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에 나온 걸 보고 모두들 깜짝 놀랐다.”

▲ <하품의 일본인> 서문. 오른편 중간쯤에 "이 책이 나오기까지 참으로 많은 고통이 있었다"고 적혀져 있다. 현재는 도서관에만 비치되어 있다.
ⓒ 박철현
- <하품(下品)의 일본인> 서문에는 표절 당사자로 전씨를 지칭하는 구절이 등장한다. 전씨가 표절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이 책이 갑자기 사라진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하는데.
“<하품의 일본인> 서문은 틀림없는 100% 진실이다. 그리고 갑자기 이 책이 서점에서 사라진 것은 내가 출판사에 판매중지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글쟁이로서의 자존심 같은 것이지 그녀와는 전혀 상관없다.”

- 글쟁이로서의 자존심이 어떻게 됐길래 판매중지라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하게 됐나?
“이 책은 지금은 없어진 '청맥'이란 출판사에서 나왔다. 당시 청맥 사장의 남편이 유명 여성지의 편집장이었는데, 이 분의 요청으로 <하품의 일본인>을 그 출판사에서 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초판이 다 나가고 재판을 찍을 무렵 서문에 나온 표절의혹에 대한 기자회견을 프레스센터에서 하기로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전날밤 출판사 여사장이 내게 전화를 걸어와서는 내가 수용하기 어려운 부적절한 형태의 '준비'를 요구했다. 출판사가 표절논란에 편승,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꼭 그렇게 하면서까지 내 책을 팔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안되겠다 싶어 결단을 내린 것이다.”

- 이 책은 한일 동시출간이라는 의욕을 가지고 출간한 걸로 알고 있다.
“80년대 내가 출판하는 책마다 운좋게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책 모두 내 발로 뛰어서 현장을 채록한 글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기자들에게 촌지를 줘가며 책을 팔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여사장이 그러더라. ‘누구’처럼 스타로 키워주려고 텔레비전 출연 스케줄을 잡고 백방의 노력을 다하는 등 열심히 로비 하는데 작가가 너무 안 도와 준다고.

그날 밤 고민고민 하다가 대학노트를 찢어 출판사 사장에게 편지를 썼다. 이런 식으로는 기자회견도 책도 팔고 싶지 않다고. 만약 독자들이 이 책을 외면한다면 제게 좀더 공부하라는 충고로 알고 더 열심히 뛰겠다고. 그러니 내일부터 당장 책 판매를 중지시켜 달라고 써서는 즉시 팩스로 보내버렸다. 이 편지는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그런데 전씨는 일본 <주간 포스트>지에서 표절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자, 내가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책을 팔려고 그러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짜 내가 책을 팔려고 했다면 스타로 키워준다는 출판사의 기획을 마다하고 나 스스로 판매중지를 요구했겠는가?"

- <오마이뉴스>와 <서프라이즈>에 표절의혹 관련기사에 달린 독자들의 리플을 읽어보면 전씨한테서 돈을 받았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는데.
“나도 읽었다.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오더라. 이 자리를 빌어 밝히지만 전씨로부터 단돈 1원도 받은 적 없고, 또 줘도 안 쓴다. 그 돈을 내가 왜 받나? “

- 정리를 한다면 거짓말을 한 쪽은 전씨라는 얘기로 들린다. 즉 그간 표절의혹과 관련, 전화통화를 여러 번 했다거나 기자회견을 하는데 유재순이 참석하지 않았다는 등의 전씨의 주장은 전부 거짓말이란 말인가?
“그렇다. 전화통화는 딱 한번, 앞에서 말했듯이 당시 임신 8개월의 나에게 무지막지하게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난 전화통화 그것 한번 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자회견은 물론 그 이후에 연락을 받은 바가 없으니 내가 알 리가 없다. 이에 대해 지난 번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거짓말하지 말라고 반박했더니 이번 <오마이뉴스> 인터뷰에는 그 말은 쏙 뺏더라."

- 마지막으로 한 마디 보탠다면.
“분명히 말하지만 <하품의 일본인> 서문에 나온 내용은 100%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녀에게 경고하지만 더 이상 내 주위 사람들에게 협박하지 말고 나에 대한 얘기도 거짓말 하지 마라. 소송? 얼마든지 해라. 내가 잘못이 있다면 기꺼이 감옥에 갈 각오가 돼 있다.

하지만 전씨도 이것만은 명심하라. 나를 비롯하여, 협박을 당한 선후배 등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했으니 언젠가는 그 몇 배의 피눈물을 흘리게 되리라는 것을. 난 정의는 꼭 살아 있다고 믿는다. 진짜 조금이라도, 일말의 양심이 남아 있다면 당장 국회의원 배지를 국민 앞에 내 놓아라.

앞으로 더 이상 이 건으로 인터뷰 할 생각 없다.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 생각을 밝히는 것이다. 글쟁이는 글로써 말할 뿐이다. 두 번 다시 이런 일로 날 귀찮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본은 없다>는 과연 어떤 책?

1993년 '지식공작소'에서 출간된 <일본은 없다>는 일본 전반을 특유의 독설과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가볍게 풀어내어 발간 즉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94년 국내 대형서점 56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초특급 베스트셀러로 기록되어 있으며, 지식공작소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무려 100만부 판매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이 책은 일본의 대중문화와 천황제, 군사대국, 민족의식, 섹스산업, 음식문화 등 일본 그 자체를 조목조목 흥미롭게 분석하여 여타의 일본관련 서적의 홍수를 낳기도 하는 등 하나의 신드롬 현상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당시 KBS 동경특파원이었던 전여옥이 썼다는, 즉 기자라는 신분을 가진 사람이 쓴 파격적인 내용이라는 점에서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후 지식공작소는 일본의 타마출판사에 선인세 300만엔, 인세 10%의 파격적인 조건으로 저작권을 판매, 지금도 <슬픈 일본인(悲しい日本人)>이라는 제목으로 심심치않게 팔리고 있다. 일본 최대의 사이트인 "2채널"에도 "일본은 없다(日本はない)"라는 전문게시판이 있을 정도. 그러나 일본번역판에는 암묵적으로 금기시되어 있는 천황제도에 관련된 부분은 빠져 있다.

전여옥은 <일본은 없다> 서문에서 "이 책은 절대로 `기자`인 내가 쓴 글이 아니다. 전여옥 개인이 쓴 글이다. 절대로 객관적으로 쓴 글이 아니라 주관적인 글이다. 기사화하지 않은 글, 취재의 뒷이야기가 아니라 엄밀히 말하면 기사화될 수 없는 글이다"라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 박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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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부터 도쿄거주. 소설 <화이트리스트-파국의 날>, 에세이 <이렇게 살아도 돼>, <어른은 어떻게 돼?>, <일본여친에게 프러포즈 받다>를 썼고, <일본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를 번역했다. 최신작은 <쓴다는 것>. 현재 도쿄 테츠야공무점 대표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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