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영화 <스캔들>의 배용준
ⓒ 스캔들홈페이지
요즘 일본은 배용준 때문에 난리다. NHK 위성방송의 해외드라마 방영 역사상 가장 높은 평균시청률 12.5%을 기록한 '겨울연가(일본제목 '겨울소나타')'가 미국 드라마 'ER'의 기록을 넘어버려 한 차례 일본 스포츠신문의 지면을 요란스럽게 장식하더니만, 결국엔 NHK 정규방송에도 진출했다.

지난 4월 배용준이 일본에 왔을 때 그는 한 가지 기록을 세웠다. 하네다 공항에 모인 팬의 수가 물경 5000명이라는 기록. 이 기록은 해외스타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의 모든 숫자를 뛰어 넘는 신기록이다.

멀리는 비틀즈, 가깝게는 데이비드 베컴이라는 세계적 스타가 방문했을 때도 각각 2000명, 1500명 정도의 팬들이 모인 것을 감안한다면 배용준 아니 '욘사마(ヨン樣; '용준님'이라는 뜻의 애칭)'의 열풍이 어느 정도 짐작이 갈 것이다.

'미소의 귀공자'로 불리는 배용준이 '겨울연가'에서 보여주었던 순애보적 귀공자의 이미지를 벗고, 절세의 바람둥이로 분한 영화 '스캔들(감독 이재용)'로 다시 일본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고 하는데 과연 귀공자 분위기에 열광했던 팬들이, 특히 아줌마 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진다.

참고로 얼마 전 열린 '스캔들' 시사회장에서는 욘사마를 보기 위해 몰린 수많은 아줌마 팬들이 욘사마의 변신에 눈물을 글썽거렸다는 후문이 들려오긴 하지만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그런데 아내는 배용준이 중심이 되어 불고 있는 '한류(韓流)'에는 별로 흥미가 없다. 일테면 배용준이 일본 텔레비전에 나와 특집 인터뷰 같은 것을 할 때, 나는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시키지만 아내는 처음에만 흥미를 보이다가 금세 딴 짓을 하는 것을 몇 번이고 경험했기 때문이다.

"왜 안 봐? 욘사마 나왔어."
"어. 난 별로 흥미없어…."

"왜? 욘사마 이쁘잖아."
"스타일이 아냐."

흥미없다고, 스타일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 이유를 나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아내는 본래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류로 시작되는 일시적 흥행에 대해 체질적으로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야 물론 한국인으로서 배용준 덕분에 '츠타야' 같은 대형비디오렌탈숍에 한국잡지 코너나 한국영화코너가 따로 마련되는 것에 흥미를 가지면서, 또 한국의 대중문화가 일본인들 사이에 널리 퍼지는 것을 꽤나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이지만, 아내에게는 그저 그런 반짝스타 한 명이 갑자기 나타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금세 사그라들겠지'라는 추측. 하긴 재작년 원빈과 후카다 쿄코가 공동주연으로 등장한 '프렌즈'라는 한일합작드라마가 방영될 당시 원빈이 얼마나 인기를 끌었던가? 하루가 멀다하게 매스컴들이 경쟁적으로 원빈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정도였으니. 그런데 딱 한 달 지나니까 그 열풍이 마치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물론 원빈의 열렬 마니아들은 아직도 존재하지만.

아무튼 그런 경험이 있다보니 왠지 아내는 매스컴이 거창하게 다루는 한류니 뭐니 하는 것에 대해 그다지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듯하다.

▲ 2002년 11월 르포라이터 유재순 작가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보아. 화장을 거의 하지 않은 수수함이 돋보인다.
ⓒ 박성조
오히려 '스맵(SMAP)'의 쿠사나기 츠요시(초난강) 같이 일상적으로 우리말을 사용하는 일본연예인이나, 한국에서 건너온 윤손하, 보아처럼 꾸준히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한국을 알리는 연예인들을 더 높이 평가하는 것 같다. 왜냐면 그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있게 지켜보니까.

아내는 윤손하에 대해 아주 흥미롭다는 말을 자주 한다. 윤손하의 일본어 발음이 비록 "나마리"라고 불리는 사투리식 억양이 섞여 있기는 하지만, 짧은 시간에 저 정도의 일본어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 경이롭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또 일전의 어느 다큐멘터리에서는 신주쿠 쇼쿠안도오리에 위치한 할인마트 '돈키호테'를 자연스럽게 들락날락 하는 모습이 나왔는데, 그걸 보고서는 "연예인답지 않게 참 서민적인 거 같다"면서 놀란 표정을 짓기도 했고.

보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사히TV의 "마슈의 베스트TV"에 등장했을 때 밀리언셀러 가수답지 않은 소탈함에 아내는 '놀랍다, 재미있다'를 연발했다. 화장을 별로 하지 않은 용모에, 모르는 단어가 나왔을 때 배시시 웃으면서 딴청을 피는 모습 등을 보면서 "귀엽다, 귀엽다"를 계속 외쳤다.

그들이 일본에서 연예활동을 하면서 별다른 스캔들 없이 꾸준히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는 것을 보는 즐거움은 나 역시 크다. 배용준을 중심으로 한 한류도 의미가 있지만, 윤손하와 보아를 통해 퍼지는 한류가 더 안정적이라는 느낌도 이런 그들의 활약에서 오는 것일 테다.

어느 날 문득 윤손하가 메인 진행자로 출연하고 있는 퀴즈프로그램을 아내와 함께 보는 도중 나는 아내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왜 윤손하와 보아는 한번도 같이 출연한 적이 없을까?"

아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한다.

"스타일이 비슷하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마이너스가 된다고 여긴 게 아닐까? 둘 다 생머리에 얼굴도 갸름하고… 윤손하 입장에서는 스타일이 비슷한데 보아쪽이 아무래도 어리고 귀여우니까 자기가 좀 손해본다는 느낌이 들테고, 보아 입장에서는 윤손하가 일본어에 더 능숙하고 성숙미가 있어 보이니까 반대로 생각할 테고."

들어보니 일리가 있다.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에게 아내는 또 덧붙인다.

"둘 다 어떻든 일본에서 인기를 끌 스타일이야. 남자들이 좋아할 부분들은 다 갖추고 있으니까. 성에 관련된 좀 야한 이야기가 나오면 얼굴이 빨개지고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보통 일본 여자 연예인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매력이지."

그러고 보니 일전에 한국의 스포츠 신문에서 윤손하가 무슨 일본프로그램에 나와 성적인 모욕(?)을 받았다는 가십성 기사가 실렸던 적이 있다. 일본 최고의 개그맨이라 불리는 '아카시아 삼마'가 진행하는 쇼 프로그램에서 일어났던 해프닝인데, 나도 그 프로를 보았지만 그다지 거부감을 느끼지 못했다. 일본 프로그램은 워낙 성(性)적으로 자유로우니까.

그런데 한국의 윤손하 팬클럽이나 대형 포털 사이트에서는 그걸로 한바탕 난리가 났던 모양이다. 하긴 한국의 프로그램에서는 그런 성적 표현이 허용되지 않으니까. 이것도 문화의 차이인 셈이다.

그렇지만, 윤손하와 보아는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면서 차근차근 일본의 중요한 연예인으로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배용준이나 원빈처럼 흥미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외국스타가 아니라 언제 어느 때고 텔레비전을 켜면 나오는 친근감 있는 연예인으로 둘은 성장하고 있다.

보아의 경우엔 벌써 그 나이 또래 일본 최고의 가수 반열까지 올라갔으니, 그 위치를 잘만 지켜내면 되지 않을까 할 정도의 안정감마저 든다. 아무튼 윤손하와 보아 덕분에 '일시적' 한류가 아닌 '안정적' 한류을 느끼면서 나와 아내는 일상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 셈이다.

고맙다. 손하, 그리고 보아!

▲ JR 전철 차량에 걸린 "조폭마누라" 포스터. 올해 5월 8일 개봉했다. 한류열풍에 힘입어 이미 한국에서는 간판을 내린 한국영화들이 속속 일본에서 개봉되고 있다.
ⓒ 박철현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1년부터 도쿄거주. 소설 <화이트리스트-파국의 날>, 에세이 <이렇게 살아도 돼>, <어른은 어떻게 돼?>, <일본여친에게 프러포즈 받다>를 썼고, <일본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를 번역했다. 최신작은 <쓴다는 것>. 현재 도쿄 테츠야공무점 대표로 재직중이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