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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2년 이른바 '사노맹사건' 총책으로 구속 기소돼 옥고를 치른 백태웅씨가 최근 국내 한 로펌에 해외자문 변호사로 활동중인 사실을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접한 바 있다. 불과 10여년만에 달라진 그의 신상변화를 보면서 필자는 세월의 흐름을 실감했다.

백씨의 근황을 접하면서 필자는 그가 감옥생활 중에 발생했던 한 석간신문의 '오보'가 언뜻 떠올랐다. 당시 시정의 화제거리였던 그 기사를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백씨가 사노맹사건으로 구속된 것이 92년이었으니 문제의 기사는 아마 그로부터 1~2년쯤 뒤가 아닌가 싶다. 당시 석간이었던 중앙일보 사회면에 사노맹사건으로 복역중인 백태웅씨가 옥중결혼을 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필자의 기억으로 백씨는 당일 오후에 옥중결혼을 할 예정이었으며, 중앙일보는 이를 단독취재해서 석간에 보도했다.

그런데 이 보도가 나간 이후 문제가 생겼다. 일부 진영에서 말하자면 빨갱이에게 무슨 놈의 옥중결혼을 선처하느냐며 검찰에 비난화살을 퍼붇자 백씨의 옥중결혼은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이 때문에 중앙일보 기사는 결국 오보가 됐다.

중앙일보 특종으로 무산된 백태웅씨 '옥중결혼'

위의 경우는 언론사가 안고 있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발생한 것으로 참작할 수 있다. 즉 오전 10시경에 기사 마감을 해서 정오에는 초판을 발행하는 석간의 입장에서 개연성이 높은 사안, 그것도 특종이라면 기정사실화하고 보도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강변이다.

흔히 '오보'라면 '미확인 등으로 인해 발생한 사실과 다른 보도'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또 앞선 중앙일보의 경우처럼 '이해가 되는'(?) 오보도 있다. 반면 이런 것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아주 '악성 오보'도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엄연한 사실을 전연 보도하지 않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금년 들어 조선일보의 경우에서 바로 이같은 '악성 오보' 사례를 몇 목격한 바 있다. 대표적인 두 가지 경우만 소개하면, 올 연초 <오마이뉴스>는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으로 친일인명사전 편찬비 5억원 모금운동을 펼친 바 있다.

당시 친일진상규명특별법 제정이 국회에서 난항을 겪고 있었던 데다 국회가 올해로 3년차 사업인 친일인명사전 편찬사업의 사업비 5억원을 전액 삭감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네티즌들의 분노는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갔다.

마침내 부산에 거주하는 한 네티즌이 오마이뉴스에서 모금운동을 전개해줬으면 좋겠다는 댓글을 올린 것을 계기로 모금운동이 시작된 지 불과 11일만에 편찬비 5억원을 모금했다.

짧은 기간에 거액을 모은 것도 화제지만 모금운동 과정에서 나타난 네티즌들의 반응과 호응은 감동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타사의 사업을 잘 보도하지 않는 속성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언론들이 이를 짧게라도 보도했지만 조선일보는 단 한 줄도 다루지 않았다.

두 번째로, 지난 3월 12일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이후 그 다음날인 13일(토), 그로부터 1주일 뒤인 20일, 다시 1주일 뒤인 27일 등 세 차례에 걸쳐 토요일 저녁 광화문 네거리에는 수십만명이 모인 '탄핵반대 민주수호' 촛불집회가 열렸다. 13일과 27일의 집회가 광화문 네거리~종각에 이른 종로집회였다면, 20일의 경우 광화문 네거리~시청앞 광장에 걸친, 이른바 태평로집회였다.

▲ 지난 3월 27일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탄핵철회 촛불문화제.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자사 사옥 코 앞에서 20만명이 모인 집회를 외면한 <조선>

이날(20일) 집회의 경우 무대가 동아-조선의 사옥을 코 앞에 둔 지점에 마련됐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청앞광장 남단인 플라자호텔 너머까지 인파가 몰린 것은 87년 6월항쟁 이후 최대 규모라면서 여러 언론에서는 나름의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고공에서 찍은 이날 사진은 압권이었다. 1킬로가 넘는 길따란 행렬이 마치 바둑판처럼 정렬돼 있어 참가자들의 높은 질서의식을 그대로 보여줬다.

집회 내용의 동의 여부를 떠나 그날 그 집회 자체에 대해서는 찬사가 적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몇몇 신문은 하루가 지난 월요일자(일요일자엔 신문 발행 안함)에서도 이날 집회를 사진과 함께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또 매체의 성향으로 인해 평소 촛불집회를 썩 내켜하지 않던 신문들조차도 비록 작게라도 이를 다뤘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역시 달랐다. 이날 집회를 정면으로 다룬 기사는 없었다. 대신 관련 기사에 '한 줄' 걸치고 지나가는 데 그쳤다. 혹자는 매체마다 기사 가치 판단이 다를 수 있다고 강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기 회사 코 앞에서 20만 명이 모인 집회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나쳐버린 <조선>의 행태까지를 변호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마 조선일보 하나만을 구독하는 독자들 가운데 더러는 네티즌들이 친일인명사전 편찬비 5억원을 열 하루만에 모았다는 사실, 또 '탄핵반대'를 외치며 광화문에 촛불을 든 시민이 수만~수십만명이 모였다는 사실을 전연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 가운데는 어쩌면 뒤에 입소문이나 다른 매체를 통해 그런 사실을 알고서 분노한 나머지 구독하던 조선일보를 끊지 않았을까 싶다.

최근 총선을 전후한 시기의 보도에서도 조선일보는 외부의 강한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우선 강연한 지 10일이 지난 시점에서 명계남씨의 강연 내용을 자의적으로 보도한 사례, 총선 기간중 정동영 의장 사진을 의도적으로 축소, 조작한 사례, 투표일 직전에 '목-금-토-일' 황금 연휴를 강조하면서 은근히 젊은층의 투표 불참을 유도한 듯한 사례, 그동안은 입도 뻥끗 않다가 느닷없이 국회의원 특전(주간조선 기사를 조선닷컴에서 다시 보도)을 거론하며 마치 17대국회의 의원들만 특전을 누리는 것처럼 보도한 사례 등등.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지난 3월 5일 창간 84주년 기념행사에서 '창간 100주년'을 운운한 것으로 전해진 바 있다. 이런 식의 보도를 해오면서 창간 100주년을 맞을 생각을 하는가. 조선이 이래 놓고도 신문을 감히 돈 받고 팔 생각을 하는가? 안티조선 진영에서 '불량상품 추방' 차원에서 안티조선운동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한 말이 새삼 귓전을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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