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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새벽 3시. 광화문 네거리 지하도가 젊은 예술가들에 의해 새로운 옷을 입었다.
ⓒ 김진석
"어릴 적 나는 우리나라엔 햇님이 반짝하고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 나는 공약이 반짝하고 거짓말이 졸졸 흐르는 우리나라에 산다!"

"2, 주노동은 안됨! B, 정규직도 안됨! 승용차 자율요일제는 가능!"

"광화문을 돌리도!"


광화문 사거리를 관통하는 지하도에 익살스런 문구가 등장했다. 'Hi Seoul'이라는 문구가 전부였던 지하도에 놀이터가 생겨나고 소원을 들어주는 40여개의 촛불이 켜졌다. 17일 새벽 2시 광화문 사거리. 우비를 입은 5인의 젊은이들이 나타났다.

"광화문에서 놀자!"

이름하여 젊은 예술가들의 모임(가칭). 이는 '광화문에서 놀자!'라는 캠페인을 위해 붓을 꺼내든 그림 작가들의 모임이다. 광화문 민간 매각 발표 후 문화연대는 이를 막기 위해 공대위를 구성하고 다양한 형식의 광화문 캠페인을 벌여왔다.

문화연대와 젊은 예술가들의 모임이 함께한 '광화문에서 놀자!' 캠페인도 위 활동의 일환이며 광화문을 시민의 놀이터로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다. 광화문 민간 매각 발표가 얼마 지나지 않아 흥분이 채 가시기 전 서울시는 시청 앞 광장을 잔디밭으로 개조하겠다고 공포했다.

시민의 공공 광장이었던 '광화문'과 '시청'이 '거대자본'과 '잔디'로 '주인'을 대신할 예정이다. 시민들은 그들의 광장을 속수무책으로 두 번씩이나 빼앗길 형평인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문화연대와 젊은 예술가들의 모임이 팔을 걷어붙였다. 그들은 시민의 공공공간 확보와 자유로운 접근 및 이에 따른 집회와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해 '낙서 퍼포먼스'를 펼쳤다.

@ADTOP@
▲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젊은 예술가의 모임(가칭)
ⓒ 김진석

"앗! 똥이다!"

"앗! 똥이다!"

우연히 친구들과 지하도를 지나던 이영은(21)씨가 벽면에 태연하게 (?) 그려진 '똥'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씨는 어둡고 칙칙한 지하도 벽을 손으로 가리키며 "이런 지루한 벽에 비하면 훨씬 낫지 않는가? 그냥 지나가는 것보다 잠깐이지만 웃을 수 있어 좋다. 신선하고 재미있다"고 연신 호응을 보냈다.

막차가 끊기고 사람이 뜸해진 새벽 두 시. 젊은 작가들은 기다렸다는 듯 붓을 들고 광화문 7번, 6번, 5번 출구에 자신이 구상한 낙서 하기에 몰두했다. 그들은 백색, 흑색, 적갈색, 밝은황색, 밝은청색의 페인트로 다양한 메시지들을 형상화 하기 시작했다.

지하도엔 금세 페인트의 매케한 냄새가 채워졌으며 젊은 작가들의 낮은 콧노래와 휘파람 소리가 감돌았다. 가벼운 흥분과 짜릿함으로 작업을 시작한 그들은 '잘한다'며 서로에게 추임새를 넣어주기도 하는 등 연신 유쾌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광화문에서 줄넘기를 폴짝 폴짝!"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 광화문을 문화 광장으로 만들어 보세!"
"Fair! Foul! 니네들 다 파울이야!"

혀와 뇌에서 새싹이 자라나는 사람의 얼굴, 똥, 장난감 총. 땅따먹기, 줄넘기, 놀이터, 익살스런 글귀 등 각양 각색의 낙서가 금세 벽면을 가득 메웠다. 바지를 걷어올린 채 신발 벗은 발로 시멘트 바닥 위를 뛰어다니고 얼굴에 페인트를 묻혀가며 낙서를 마감한 시간은 3시.

"촛불 속에 소원을 적어 보아요!"

소원을 적는 40여개의 촛불이 꺼지지 않는 불을 밝히면서 낙서가 마감됐다. 그들이 표현한 메시지도 각양각색. 권력자들이 가진 무기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는 이, 가재를 통해 침묵하는 주체를 묻고 싶었다는 이, 낙서하는 그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었다는 이 등 다양한 방식에 다채로운 의미가 부여됐다.

한동안 작가들의 작업을 지켜본 후 촛불 낙서를 최고로 꼽은 박민규(32)씨는 "외국영화를 볼 때 그림이 그려진 외국 전철과 벽면을 봤는데, 솔직히 보기 좋았다" 며 "공공 공간이지만 혐오스런운 그림이나 욕설같은 글귀가 아니라면 허용해도 괜찮을 것 같다" 고 평했다.

ⓒ 김진석
ⓒ 김진석

"소외된 개인의 발언까지도 허할 수 있는 열린 공간 되길!"

보는 이와 하는 이 모두가 즐거웠다. 낙서 퍼포먼스는 그간 여러 단체가 의사개진을 위해 기습점거, 시위 및 문화제 등으로 고착화된 표현의 방식을 넘어 새로운 문화적 상상력을 표현한 것에 남다른 의의가 있다.

집시법 개정 후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여러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낙서 퍼포먼스가 추후 시민들과 서울시에게 어떤 반응을 얻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동물 그리기를 좋아하는 노아조(32, 가명) 작가는 "사람들이 한 발 떨어져 다양한 문화적 표현과 상상력을 인정해 주고 편안히 웃어 줬으면 좋겠다"며 "집시와 시위를 통한 다수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광화문이 다수에 반하는 소수에게도 열려있는 모두의 공공장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화연대 송수연(32)씨는 "우선 시민의 육성을 대변할 공공 공간이 없어진다는 걸 시민에게 환기시켜 주고 싶었고, 더불어 단순히 보행의 기능만 하는 따분하고 답답한 공공장소에 다양한 문화, 사회, 정치적 상상력을 불어넣고 싶었다"며 "낙서 퍼포먼스를 통해 집회 및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한 새로운 시위 문화를 시도했다. 이를 계기로 더 많은 일반 시민들도 사회적 활동에 적극 참여해 표현의 자유를 위한 그들의 권리를 지키기 바란다" 고 당부했다.

광화문이 시민의 놀이터가 되는 그 날까지 '광화문에서 놀자!' 캠페인은 계속될 예정이다. 추후 관련 홈페이지가 제작될 것이며, 광화문 거리를 난장으로 만들고 싶은 시민은 누구나 함께 참여할 수 있다. (문의) 02-773-7707.

▲ 작업을 끝내고 기념 촬영을 한 우비를 입은 예술가들(신상을 밝힐 수 없어 뒷모습으로 기념 사진을 찍었다).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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