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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

이봉렬 기자의 '이제 이승연은 잊어라'는 기사를 읽었다. 우선 이봉렬 기자는 '종군 위안부'라는 표현을 썼으나 옳지 않다. 종군 위안부란 일본군을 스스로 자발적으로 따라가서 위안부 노릇을 했다는 뜻이 담겨있다. 잘못된 표현이다. '일본군 강제 위안부' 혹은 '일본군 성노예'라는 표현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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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승연은 잊어라


이봉렬 기자의 큰 주제, 그러니까 이승연 파문을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의 기회로 삼자는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 기사는 너무 빨리 나왔다. 좀 더 있다가 기사화 되어도 늦지 않다는 말이다. 더구나 네티즌들의 의지를 오해하는 부분도 있어 지적한다.

시점

지금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은 누드 서비스 중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낸 상태이고 아직 판결이 나지 않았다. 게다가 기획사 측에서는 촬영 강행 입장을 밝혔다. 이승연과 투자기획사가 사죄는 커녕 프로젝트는 아무 문제 없다며 기획대로 밀고 나가겠다는데, 잊으라니? 잊을 시점이 아니다.

모바일 서비스 불가 방침이 이승연과 투자기획사에 커다란 타격을 준 것이 분명하다. 3개 이동통신사가 이승연 누드 콘텐츠를 서비스 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이용자들의 항의 때문이었다. 네티즌들의 집단 행동이 쥐떼처럼 보여도 때로는 문제 해결에 상당한 영형력을 발휘한다. 적어도 위안부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사죄할 때까지 그들의 정당한 항의는 계속되어야 한다.

오해

더구나 네티즌들이 이승연이라는 개인에 대해 신상공격만 일관하고 있다고 보면 오해다. 네티즌들이 역사문제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배려없이 오직 이승연만 재미로 죽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자. 관련 '다음' 까페에서는 이미 할머니들을 위한 3만 회원 1000원 모금 운동이 시작되었다. 정대협과도 모금 및 향후 활동에 있어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

▲ 위안부 누드 반대 까페의 천원 모금운동
ⓒ 김범수
이틀 간 3만명이 모인 온라인 모임의 열기가 단숨에 사그라들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이면에는 역사문제에 대한 네티즌들의 잠재적 고민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마치 가시가 풍선을 터뜨린 것처럼 이승연의 상업주의가 네티즌의 잠재의식을 깨어나게 했을 뿐이다.

이승연 사건이 마무리 된 다음에는 한일역사문제 해결 및 일본군 강제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모임으로 발전하리라 믿는다. 해당 까페에서는 오프라인 운영자 회의 등 향후 활동 방향을 정하기 위한 몸짓이 이미 진행 중이다.

불허

이봉렬 기자의 지적처럼 이승연 죽이기만 반복하는 것은 나도 싫다. 또 이승연의 과거 신상까지 들먹이며 개인의 인권마저 침해하는 행위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들이 문화 소비자로서 향후에는 성과 역사적 상처마저 팔아 먹는 문화 시장의 천민적 행태를 절대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하려면 지금 이승연 사건을 잊으면 안된다. 그러기엔 이승연 위안부 누드의 파장과 상징성이 너무 크다. 적어도 이승연과 투자기획사가 스스로 사죄하고 프로젝트를 중단하기 전까지는 이 사건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과 비판의 고삐가 늦추어져서는 안된다. 누드 장사꾼들이 어떻게 하면 쪽박 차는지를 합리적으로 계산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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